2017년에 제작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Roméo et Juliette>(독일, 감독 위르겐 플림)은 2018년 5월에 개봉되었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현재 무대에 올라 공연중(2019.03.02~2019.06.30, 서울 종로구, 명작극장)이다. 연극으로 영화로 책으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함께 잘 알려진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한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원형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수록된 「퓌라무스와 티스베」다.
[자세한 이야기는 필자의 리뷰: '변신이야기'와 '이솝우화'에서 만나는 뽕나무와 오디,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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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의 원형은「퓌라무스와 티스베」
19세기 근대 역사학자 랑케는 로마 문화를 호수로 비유하면서 고대의 모든 역사가 로마라는 호수로 흘러들어갔고, 근대의 모든 역사가 로마의 역사에서 다시 흘러나왔다고 말했다.(위의 책 옮긴이 서문) '흘러들어갔고' 앞에는 '그리스문화'가 자리할 것이다. 결국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의 원형은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라는 믿음에는 숱한 균열이 생겼지만, 그래도 남녀 혹은 여남의 사랑이 완전하고 안전한 것이기 위해서는 결혼이란 제도가 필요하다. 다만 결혼이 사랑의 새로운 시작이기를 바랄 뿐. 어쨌든 결혼은 당사자들만의 결합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의 관계 맺음이다. '때문에' 서로 눈이 맞은 연인들이 숱한 장애물을 넘고 넘어 결혼에 이르고, 그 사이에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다.
랑케, "고대의 모든 역사는 로마라는 호수로 흘러들어갔고,
근대의 모든 역사가 로마의 역사에서 다시 흘러나왔다."
이것은 실화다! 한국의 섬이란 섬을 두루 여행하며 글을 쓰는 강제윤 시인은 섬을 탐사하는 동안 수집한 신화와 전설들을 들려주는데, 다듬으면 보석이 될 원석의 발견과 유포라고 할까? '섬'이라는 고립성 '덕분에' 그러한 이야기가 탄생하고,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당신에게, 섬』(꿈의지도, 2015)에는 신화와도 같은 현대의 실화가 등장한다. 제주 서귀포 가파도라는 섬 이야기(「가파도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등장하는 김동욱 전 이장님의 사랑 이야기다.
그에게는 두 살 아래 여동생이 있다. 여동생이 고등학교를 서울로 갔다. 방학 때마다 고향에 와서 놀이 삼아 물질을 했는데, 어느 날 물속으로 들어간 뒤 나오지 않았다. 여동생의 해녀 친구는 해녀대장이던 자기 어머니에게 구조를 요청한다. 그러나 다들 외면했다.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을 건져 주면 죽은 사람에게 남은 숨을 다 줘 버리기" 때문에 "다시는 해녀 노릇을 할 수 없다."는 오래된 믿음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장님 집안은 여동생의 친구네 집안과 원수가 되었다. 여동생의 죽음에 죄책감을 가진 친구를 위로하고 달래는 동안 이장님과 여동생의 친구는 연인 사이가 된다. 그러나 결혼 허락은 떨어지지 않고, 이장님은 유랑의 길을 떠나 객지에서 살아간다. "귀신이 세 개 들어도 남녀 간의 사랑은 못 말린다는데 내가 졌어." 그렇게 10년 만에 이정님은 결혼 허락을 받는다.(책 172~174면 요약) 강제윤 시인은 '사랑은 힘이 세다'며 실화 소개를 마무리한다.
어쨌든 한국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해피엔딩이다. 그는 가파도를 떠나 몇 달씩 떠돌다 돌아와 살기를 반복했다. 제주도 한 읍의 사무실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집을 떠나 유랑하는 시간이 늘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기에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야만 하는 선택, 문득 이 이야기를 읽으며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이것은 실화! 서귀포 가파도 이장님 부부의 '로미오와 줄리엣'
"형에 대한 내 감정은 날로 사나워졌다. 그녀에 대한 말 못할 사랑이 간절해질수록 형에 대한 미움도 커졌다. 나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결코 허물이 될 수 없다는 명제에만 편집적으로 집착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은 떳떳하고 자랑스럽고 나아가 바람직한 것이다. 사랑의 대상이 누구든, 나는 사랑의 보편성에 매달렸다. 하나의 관념, 또는 추상화된 사랑을 붙잡고 늘어졌다."
_이승우 장편소설 『식물들의 사생활』(문학동네, 2014, 발표는 2000년) 61면
어느날 문득 형의 애인을 사랑하게 된 동생이 겪는 번민인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도의적으로 힘든 사랑, 이 소설의 내레이터인 '나'의 사랑은 처절한 비극의 씨앗이 된다. '나'는 자신의 사랑을 다스릴 수 없어, 가출을 하고 수년 동안 객지를 떠돈다. 나와 형과 형의 연인 사이의 삼각 관계는 이 소설의 사랑 이야기 중 '메인'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어머니가 사랑한 '그분'의 사랑도 있다. 그래서 장편소설 제목이 '식물들의 사생활'('들의')이다. '나'는 가출하면서 사진가를 꿈꾸던 형의 촬영장비 일체를 팔아넘기고, 그 안에 든 필름 때문에 형은 강제징집을 당하고, (당국자들의 고의적인 행위로) 지뢰에 두 발목이 잘려 장애인이 된다. '동물'의 세계에서 '식물'의 세계로 진입한 것. '한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좌절된 사랑의 고통을 식물적 교감으로 승화해가는 과정을 처절하고도 아름답게 풀어낸 작품'. (더 이상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듯) 어쨌든 이승우는 『식물들의 사생활』로(프랑스 등에서 번역 출판되면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르 클레지오가 '한국 작가 중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가'로 지목할 만큼 찬사를 받았다.
'한국 작가 중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 가장 높은 작가'로 주목받아
"매끈한 나무줄기가 날씬한 여자의 나신을 연상시켜" 형은 취한 것처럼 말했다. "정말 황홀한 것은 흰 꽃이지. 5월이니까 조금 있으면 꽃이 필 거야.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때죽나무의 흰 꽃들은 은종 같아. 그 아래 서 있으면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리는 것만 같지." 그의 목소리가 깊은 바다에 떨어지는 닻처럼 어두운 숲속으로 유영해들어갔다. _같은 책, 47면
이승우의 작품들에는 서양의 신화들이 배경에 깔리곤 하는데, 그가 '노벨문학상 수상이 유력한 한국 작가'라는 기대를 모으는 것과 연관이 있다. 서양인들의 시각에서 대체로 수상작이 결정되기에 하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이승우의 소설들에 그리스-로마의 신화들이 이야기의 원형으로 차용되고 변주된다는 점이 그들의 '공감을 이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에서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펼치는 사랑론이 소개된다(75면). 하지만 소설 전반에 걸쳐 주요한 뿌리가 신화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천병희, 숲, 개정판 2017.10. 초판 2005. 3.)에 소개된 「월계수가 된 다프네」 이야기다.
'활의 신' 포이부스(아폴론)은 쿠피도(에로스)가 활을 구부리는 것을 보면서 비웃고, 쿠피도는 앙갚음으로 화살 두 개를 쏜다. 하나는 사랑을 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을 불지르는 것. 쿠피도는 사랑을 쫓는 화살을 페네오스의 딸인 요정 다프네를, 다른 화살로 아폴로를 쏘아 그의 뼈와 골수를 꿰뚫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시작! 쿠피도의 복수는 잔인하다. 쫓고 쫓기는 사랑의 공방전이 펼쳐지고, 막다른 골목에 이른 다프네는 아버지 신(페네오스의 강물)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그 자리에서 한 그루 나무로 변신한다.
『식물들의 사생활』의 밑그림, 『변신이야기』중「월계수가 된 다프네」
그녀의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짓누르는 마비감 같은 것이
사지를 사로잡았다. 부드러운 가슴 위로 엷은 나무껍질이 덮였고,
머리카락은 나뭇잎으로, 그녀의 두 팔은 가지로 자랐다.
방금 전까지도 그토록 빠르던 발이 질긴 뿌리들에 붙잡혔고,
얼굴은 우듬지가 차지했다. 빛나는 아름다움만이 남아 있었다. _『변신이야기』, 550~552행
VS
그래도 포이부스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는 나무줄기에 오른손을 얹어 그녀의 심장이
새 나무껍질 밑에서 아직도 헐떡이는 것을 느꼈고,
나뭇가지들을 인간의 사지인 양 끌어안고 나무에 입맞추었다.
나무가 되어서도 그녀는 그의 입맞춤에 움츠러들었다.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대는 내 아내가 될 수 없으니,
반드시 내 나무가 되리라. 월계수여, 내 머리털과 내 키타라와
내 화살통에는 언제나 네가 감겨 있으리라" _위 같은 책, 553~559행
신화에서 소설에서 발견하는 또 하나의 사랑, "사랑은 하는 것"
쿠피도의 복수 때문이기는 하지만, 이 변신 이야기에서 '사랑은 하는 것'임을 추출할 수 있다. 『식물들의 사생활』에서도 나의 형의 연인인 순미를 향한 사랑, 아버지의 '그분'에 대한 사랑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가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아폴로의 사랑을 닮았다. "그가 수집한 변신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는 식물의 숫자보다 많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좌절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소설, 146면)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칸느영화제)을 받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으니 이 정도)임을 입증하였다고 할까. 신화는 동서양이 닮아있다. 그럼에도 세계의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서양의 신화나 그들의 정신세계의 원형이 되는 이야기들을 꼼꼼히 읽고 변용하여 사용할 때,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희소식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종려나무 꽃이랍니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칸느영화제)을 받았다. 트로피의 상징은 종려나무 잎이다. 다른 영화제의 대상인 황금사자상의 경우처럼 '황금'은 '최고'를 뜻하겠지만 사자는 황금색과 연관이 있다. 종려나무는 지중해 일원에 많기도 하고, 최근에는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서도 이국적인 느낌을 주겠다면서 가로수로 종려나무를 심기도 한다.
최근에 종려나무 꽃을 보고 아 황금색이구나, 하고 핸드폰으로 촬영한 것인데, 마침 봉준호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