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음식을 보면 왜 사랑하는 사람이 떠오를까요?'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광고, <사기열전>의 '미자하 이야기'를 상기한다. 그 다음인가, 효(孝) 시리즈의 다음 버전인가, "꼭꼭 씹으면 다 맛집" 이라는 카피가 와 닿는 잇몸 약 광고가 있다. <한국인의 밥상>을 진행하는 최불암 선생의 내레이션이다. 한 끼 식사만 그럴까? 모든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단행본 한 권으로 세상에 나올만한 요건을 갖춘 것이라면, 잘근잘근 씹듯 읽는다면 얻을 것이 있다. 너도 그래, 나도 그렇던데, 감칠맛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책은 고전이 된다. 읽기는 곧 쓰기, 독서와 창작 관련 구절들을 모아보았다. 

 

방송인 최불암, "꼭꼭 씹으면 다 맛집", 책 읽기도 그런 것 같아

"느리게 읽기가 빨리 읽기보다 더 어렵다는 건 느리게 읽기를 해본 사람은 안다. 그것은 마치 오래 밥을 씹는 것과 같고 자동차를 버리고 자전거의 페달을 아주 천천히 밟는 것이 어려운 것과 같다. 음식은 식도를 타고 넘어가려 하고 자전거는 달리지 않으면 넘어지기 쉽다. 그러나 음식은 오래 씹어야 제 맛이 나듯, 자전거 페달을 느리게 밟다보면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된다."  -이승우,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마음산책, 2019-02-25) 24면

앞서 거론한 광고 카피가 여기서 나오지 않았을까, 정곡을 찌르는 문장이다. 작가 이승우는 우리나라의 중견작가이면서 한 대학의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소설 쓰기와 관련하여 자신의 노하우를 후학들과 나누는 것. 그러나 이 책에서 작가는 소설 창작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역설한다. 소설을 읽어라, 그러면 소설 창작 방법이 보인다. 소설 창작의 교과서가 따로 없다. 그런데 작가는, '가급적 느리게 깊이 읽는 것이 창작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독서법의 하나인 정독과 같은 듯 다른 점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그는 소설을 천천히 읽을 때 문장들은 독자의 사고를 자극하고 상상력을 추동한다는 것, 문장들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나는 1)대들거나 2)반문하거나 3)수용한다. "나의 대듦이나 반문이나 수용에 대한 소설 문장들의 대듦이나 수용이 이어지고,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면서 거기에 하나의 유연하고 둥글고 탄력 있는 공간이 생겨난다." 바로 이 공간에서 소설이 태어난다는 것.

 

작가 이승우, '가급적 느리게 깊이 읽는 것이 창작에도 도움이 된다.'

"섬이 작으니 내도의 숲길은 다해 봐야 3킬로미터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아름다운 원시의 숲을 오래 즐기고 싶다면 보폭을 최대한 늦춰야 마땅하다. 급하게 걸으면 숲길은 금방 끝나고 만다. 섬 밖으로 추방당하지 않으려면 사람들도 달팽이나 거북이처럼 느리게 걸어야 한다. 느리게 걸을수록 우리는 숲이 주는 혜택을 더 많이 누리게 될 것이다. 몸속의 나쁜 기운들이 더 많이 빠져 나가고 숲의 정령들이 불어넣어주는 맑은 기운은 더욱 충만하게 되리라."  -강제윤, 『당신에게, 섬』(꿈의지도, 2015년 7월) 296면

책 읽기도 그런 것 같다. 일단 재밌고, 감동이 있으면서, 술술 읽히는 그런 책은 아껴 읽게 된다. '강제윤 시인과 함께하는 꽃보다 아름다운 우리 섬 여행'이란 부제를 가진 책에서 시인은 경남 거제의 섬 내도의 비경을 소개한다. 인위적으로 만든 섬이 잘 알려진 외도라면 내도야 말로 대조되는 자연 그대로의 섬이라는 것. 내도의 편백나무 숲이 가진 탁월함을 소개하면서 숲길이 길지 않다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하다. 그래서 몸의 건강을 이야기하지만 궁극에는 마음의 평화가 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는 동안 생각은 더욱 깊은 어딘가에 이르게 될 것이다. "누구도 얻지 못하고 나만이 온전하게 얻어갈 수 있는" 오직 '한 생각'을 얻는 과정(같은 책 110면). 앞서 소개한 작가 이승우의 느리게 읽는 동안 '나만의' 소설을 쓰게 된다, "유연하고 둥글로 탄력 있는 공간"과의 만남을 떠올리게 된다. 사실 좋은 사진을 얻으려면 천천히 달리는 자전거마저 걸림돌이 된다. 천천히 걸을 때 비로소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프레임을 정하고 하루 종일 한 순간을 위해 잠복하는 형사처럼 기다리는 사진의 대가들이 있다.

 

시인 강제윤, ‘나만이 온전하게 얻어갈 수 있는’ 오직 '한 생각'

"창조적 아이디어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죽을힘을 다해 몰입해야 나오는 것이 창조력이다. 열정과 고민의 산물이며, 뭔가를 개선하고 바꿔보려는 문제의식의 결과물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집중하고 몰입해야 한다. 절박해야 한다."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메디치미디어, 2014-02-25) 43면
그런데, 무엇에 집중하고 몰입해야 하는가, 관련해서 어떻게 쓰느냐와 무엇을 쓰느냐의 차이를 설명한다. 어떻게 하면 멋있게, 있어 보이게 쓸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것은 부질없는 욕심이란다. 그러나 무엇을 쓰느냐에 대한 고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 앞서 소개한 인용들과 맥락이 닿아 있다.
"글의 중심은 내용이다. 하지만 글쓰기에 자신이 없다고 하는 사람 대부분은 전자를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명문을 쓸까 하는 고민인 것이다. 이런 고민은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담감만 키울 뿐이다. 글의 감동은 기교에서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시인도, 소설가도 아니지 않은가."(바로 위의 책)

 

연설문작가 강원국, 글은 열정과 고민의 산물, “죽을힘을 다해 몰입해야 나오는 것“

말이 글이고 글이 말이다. 그런데 말은 잘하지만 글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글로는 논리정연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말은 어눌하여 상대방을 설득하는데 '걸림'이 많은 사람도 있다. 말이란 잘 쓴 글을 읽는 것과는 다른 현장성과 임기응변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듣는 이를 즐겁게 하는 '애드리브'는 독서를 비롯 숱한 직간접적인 경험이 축적된 상태에서 터지는 것.   그럼에도 말이든 글이든 숙고 끝에 정곡을 찌르는 것이 아닐 때는 하지 않는 것이 하는 것보다 낫다. 플루타르코스의 철학에세이 「수다에 관하여」가 수다쟁이는 어떤 사람이며, 폐해는 무엇이며, 처방까지 제시하지만 가장 심플한 지침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확실한 것은, 말을 하지 않아 이득이 된 경우는 많아도, 말을 해서 이득이 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말하지 않는 것은 언제든 말할 수 있어도. 일단 말한 것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그것은 엎질러진 물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건 인간이지만, 침묵하는 법은 신들이 가르치는 것 같다. 우리가 비의(秘儀)에 입문할 때 침묵하는 법부터 배우기에 하는 말이다." -플루타르코스, 「수다에 관하여」 8장, 344~345면, 『그리스로마 에세이』(천병희 역, 숲, 2011.12.)

 

플루타르코스,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건 인간, 침묵하는 법은 신들이 가르쳐“
글로 말하기보다는 말로 말하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너 나 할 것 없이 유투브방송을 개설하고, '스피커'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그러나 뭔가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말을 하는(방송을 하는), 콘텐츠의 부재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필자만 그런지 모르겠으나 eBOOK의 '음성 듣기'도 거슬린다. 제3자가 개입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눈으로 읽으면서 생각하고, 자신의 견해와 일치(공감), 불일치(메모)를 확인하는 독서야 말로 말이든 글이든 창작으로 꽃피우는 진정한 독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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