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 무엇을 선택하고 이룰 것인가
미로슬라브 볼프.마태 크러스믄.라이언 매컬널리린츠 지음, 김한슬기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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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베드로, 웰스는 지나치게 근본적이기에 명확하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의문을 품었다. 아마 이런 의문을 표현하는질문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좋은 삶이란 어떤 삶인가? 무엇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가? 인간다운 가치를 품은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진실한 삶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옳고, 진실하고, 선한가? - P21

기독교 사상가이자 소설가인 C. S. 루이스(C. S. Lewis, 1898~1963)는 단순한 동료와 진정한 친구를 구별해서 생각했다. 동료는 종교, 직장이든, 학업이든, 취미든 같은 활동을 공유하는 사이를 뜻한다. 긍정적이고 호의적이지만 루이스의 기준에서 우정에는 못 미치는 관계에 해당한다. 루이스는 우정을 나누는 사이란 질문을 공유하는 사이라고 대답했다.
"다른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질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친구가 될 수 있다. 대답까지 공유할 필요는 없다." - P24

우리 인생은 포커와 워 중 어디에 가까운가? 인생의 ‘규칙‘은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자유를 허용하는가? 쉽지 않은 질문인 만큼 논쟁의 여지도 많다. 하지만 인생이 포커와 워 사이 어디에 자리하든 다음의 두 가지는 꼭 명심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우리인생의 형태에 어느 정도 책임을 지닌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인생의 형태는 승패와 게임에 임하는 자세를 모두 포함한다. 둘째,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은 결코 무한하지 않다. 누구도 자신이 원하는 곳을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는다. 우리 주변 환경은 거대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며, 우리에게는 결과를 결정할 힘이 없다. 제아무리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고 해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이는 위험한 허상이다.
현재 우리의 모습조차 우리의 선택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피할 수 있었다면 피했을 만한 사건을 경험한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순간을 마주하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전지전능한 독재자가 아니다. 잘 알고있겠지만, 모든 상황을 내 입맛에 맞게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우리는 삶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누군가 마음대로 들어 올려서 적당히 깎아낸 후 정원의 길을 까는데 사용해도 돌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돌이 아니다. 우리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에 미약하게나마 분명히 반응하며 살아간다. 손에카드를 쥐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햄스터도 아니다. 누군가 햄스터를 집어 올리면 틀림없이 뭔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어쩌면 햄스터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반응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햄스터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우리는 고민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의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뿐 아니라 이 책에도 제약이 존재한다. 삶의 고통을 둘러싼 깨달음, 예수 추종, 인종차별 해결은 고대 마야인의 삶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에 추구할 만한 가치가 되지 못했다. 애초에 고민거리조차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가 걷는 길에 책임이 있는 삶을 사는 중이다.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평범한 길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길을 걸어서는 안 된다. 어떤 길을 걸을지는 우리의 책임이다. 또한, 많은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한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관점을 취해서는 안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우리의 책임이다.
이는 우리 삶을 형성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제한적인 책임이다. 우리에게는 추구할 가치가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우리 삶에 어떤 ‘의문‘이 주어졌고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지 최선을 다해 고민할 책임이 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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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에서 알리고자 하는 삶의 기술은 무아지경과 절제력의 조화를 요구한다. 이 책이 상반된 두 관점을 제시하며 문제를 설명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 책은 사회적 페르소나의 속박하에서 우리가 가진 통제되지 않은 에너지를 방출해 내야 할 필요성에 초점을 맞추며 출발해, 무아지경과 절제력의 불안정한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며 끝을 맺고 있다. 두 가지 주제를 설명할 때 모두 기질이란 우리 안에서 가장 사회화가 덜 된 모습과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러한 모습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사회성의 영역으로 침투하는 기고만장함에 경의를 표하고 싶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장기적인) 이로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지지 체계라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다른 형태의 기술에서 요구하는 신중한 인내심을 지닌 채, 자신의 삶의 기술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를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하루를 무사히 버티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페르소나가 무너지는 순간 나타나며 이성적인 의식의 포기를 의미하는 자아 상실은 애초에 잃어버릴 자아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렇기에 애초에 우리가 자아를 지니게 하고, 계속해서 변화시켜 나갈수 있게 하는 여러 모습의 사회성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고서 무아지경을 논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이와 함께, 자아를 형성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은 우리가 자아 상실의 상태에 들어설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지만 (단순히 기계적인 것이 아닌) 혁신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우리 대부분은 자아 상실을 잘 해내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우리는 통제된 페르소나를 유지하기 위해서 상당히 체계적인 방식으로 사회화되어 왔지만, 대부분은 이 장에서 설명한 무아지경에 이르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본래 무아지경에 이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조차도 약간은 두려워한다. 우리는 무아지경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줄 아는 일관성 있는 개인으로서의 자아감을 위협한다고 느끼고, 특히나 이성적 의식이랄 게 없는 날것의 (사회가 억제하고자 하는) 동물적 본성을 일깨우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아지경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큰사물의 메아리를 가장 충실히 담고 있는 것)에 몰두하기를 거부한다. 앞서 연인 관계 (또는 연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관계)에 있어서도 이러한 거부가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줬다. 하지만 다른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특정한 것에, 특정한 종류의 대상과 활동에 특별히 몰두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그것에 "정복"되고 싶지는 않아 마음을 접으려고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마음을 열심히도 부추기는 대상과 활동에서 뒷걸음치면, 우리는 주어진 하루를 이디엄이 표현되는 공간으로 바꿔 내는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세상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다양한 대상과 활동을 단순히 목적을 위한 수동적 도구나 자원으로 사용한다면, 그것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마법 같은 일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마법 같은 일이 주는 혼란스러운 생소함을 억누른다면, 우리는 살아 있는 느낌으로의 초대를 거절하는 셈이 된다.
여기서 내가 강조한 에로스적 삶은 우리가 이 초대를 받아들이도록 만들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더욱이 우리 존재안의 가장 사회화되지 않은 단계, 즉 무아지경에 잘 빠질 수 있는 단계에 숨을 불어넣는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우리 안에 반항심이 주입되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더라도 규범을 답습하기만 하는 현상에 사로잡히지는 않게 된다. 이는 우리가 아무리 "사회화"되고 사회 속의 완전한 구성원이 되더라도, 절대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존재로 우리를 남게 한다. 사회가 획일적인 모습을 보일수록 우리가 가진 기질을 지키기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세상에는 여전히 자신의 사회생활에 균열이 생길지라도 기질을 형성하는 에너지와 지속적으로 교감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기질을 사회적 모습 속에 잘 통합시켜 낼 수 있는 개인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실존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흔히 누군가를 보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고 말할 때, 우리는 이 분위기에 대해 얘기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사람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하고 다부진 내면을 갖게 하는 기질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그런 이들에게 흥미를 느끼며, 종종 겉보기에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끌리지만, 사실은 그들이 용감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질의 부름을 받는다는 것은 진정 짜릿하기도 하지만, 정말 두렵기도 하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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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 나이가 들어도 몸의 시간은 젊게
정희원 지음 / 더퀘스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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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자아와 자기의 차이를 자각하는 것은 나에게 중요한것‘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기 위한 초석이다. 목표 설정과 행동이 모두 바뀔 때 비로소 자기와 세상을 상대로 벌이는 불필요한 전쟁을 매일매일 치르지 않을 수 있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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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아픈 여자들 - 왜 여성의 산재는 잘 드러나지 않는가?
이나래 외 지음 / 빨간소금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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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참고 산재를 신청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재옥씨 작업장 사례처럼 아파도 다쳐도 말하지 않는다. 아픈 몸을 드러내지 않고 견디는 것이 당연시된다. 사용자의 방해나 통제도 필요 없다. 이제 노동자들 스스로 산재 신청을 포기하고 치료받고 쉬지 못하도록 서로를 통제한다. 아픈 노동자가 점점 늘어나도 작업환경은 변하지 않고 일터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또 산업재해라는 일터의 문제가 개인화된다. 아픈 몸을 돌보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병을 이겨내지 못한 나약함을 탓한다. 자신의 취약함이 되고 낙오와 탈락으로 비칠까 봐 아픈 몸을 숨긴다. 결국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아픈 몸을 통제하게 된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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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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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은 환대를 사회의 외부에서 온 이방인들이 직면하는 문제로 여긴다. 하지만 이미 사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그들의 자리가 조건부로 주어지는 한, 환대의 문제를 겪는다. 절대적 환대라는 말로써 나는 데리다가 그랬던 것처럼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요구하지 않으며, 상대방의 적대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환대를 가리키려고 한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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