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9월에 버지니아는 이렇게 적을 수 있었다. "일기에 쓸, 대단히 심오한 관심사가 너무도 많다. 영혼과 영혼 사이의 대화라든지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그냥 흘려보낸다. 왜? 금붕어에게 먹이를 주고, 새 연못을 바라보고, 잔디볼링을 하느라. (...) 행복." - P104
1939년 7월, 다른 종류의 전쟁이 있었다. 바로 ‘온실 사건‘이다. 레너드는 온실에 꽤나 열정적이었고, 이미 과수원 서쪽 벽 옆에 커다란 온실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위 왼쪽 사진은 담이 있는 정원의 사진인데, 한 귀퉁이에 온실이 보인다. 7월에 레너드는 버지니아에게 의견을 구하지도 않고 분홍색이 도는 벽돌로 새 온실의 기초 부분을 쌓기 시작했다. 온실이 모습을 갖춰갈수록 "버지니아는 기분이 안 좋아졌다. "두통. 죄책감. 후회・・・・・・ " 버지니아는 일기에 썼다. 두 사람이 싸우는 일은 드물었지만 이번엔 충돌이 있었다. "그 추한 건물대(對) L의 바람. 이렇게 괴로워할 가치가 있는 일일까? 아침에 목욕하던 중에 레너드가 왔을 때 그냥 공사를 계속하라고 했어야 했나? 버지니아는 그러지 않았고, 온실은 헐린다. 둘의 관계는 껄끄러워진다. 버지니아는 그 아침에 썼다. "(우중충하고 맘이 몹시 불편한 오늘- 온실 사건의 아침, 나는 기분이 처지지 않게 휘파람을 불고 있다.) 이제 점심시간을 잘 넘겨야 한다. 짜증나는 점은, L이 내가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데 능숙하다는 것이다. 그의 독단. 그렇게 행동하면 편하겠지. ‘오, 당신은 그게 싫다고요. 그렇다면 당신 말을 따르기로 하죠." 이런 일이 있고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약간 성이 난 채로 볼링 시합을 한다. 저녁 늦게 버지니아는 레너드에게 묻는다.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나요?" 레너드는 답한다. "그 누구보다 아름다워요." 10 다음 날이 되자 "온실 대사건"은 마무리된다. - P143
버지니아의 편지와 일기에서 나는 대단히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본다. 침실에서 훨씬 성공적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한 부부라도 그런 정도의 친밀함을 누리기는 어려울 수 있다. 29년 동안의 결혼 생활에서 레너드와 버지니아는 떨어져 있은 적이 거의 없다. 혹시라도 떨어져 있을 때 둘의 편지엔 장난기와 애정이 넘친다. 편지에서 둘은 서로를 애태우며 시시덕거린다. 상대를 동물 이름으로 부르고, 다시 만나면 ‘코를 비비고‘ ‘물어뜯고 싶다는 말을 한다. 둘에게 서로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버지니아는 언젠가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라고 생각해?" 그러고는 혼자 대답하길, "나는 이런 순간이라고 생각해. 자기 집 정원을 걸으며 시든 꽃 몇 송이를 꺾다가 문득 생각하는 거야. 나의 남편이 저 집에 산다. 그리고 그는 나를 사랑한다." 비타의 롱반 자택을 다녀와서 버지니아는 쓴다. "집에 돌아오니 정말 좋다. (...) 전혀 따분하지 않았어. 내 결혼은 말이지. 전혀." 버지니아 사후 그의 일기를 읽기 전까지는 버지니아와 비타의 관계가 얼마나 깊었는지 레너드가 전부 알지는 못했을 수도 있다고 빅토리아 글렌디닝은 말한다. 내 생각으론, 버지니아가 다른 누구와도 성적인 관계를 성공적으로 갖기 어려울 것임을(비타가 그런 관계를 가져볼최선의 기회이긴 했다) 레너드는 누구보다 잘 알았고, 따라서 비타와의 관계가 결혼생활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버지니아 자신도 일기에 이렇게 적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계속한다. 생기 넘치며 훌륭한 관계, (영적으로) 순수하고내 생각엔 좋은 점만 있는 관계를. 레너드에게는 약간 싫은 일이지만 그를 걱정시킬 정도는 아닌 관계. 한 사람에겐 여러 관계를 위한 공간이 있다. 그게 진실이다." 그럼에도 분명 레너드는 버지니아에게 존재의 중심이었다. 버지니아는 그의 판단을 완전히 신뢰했다. 파티라든지 너무 큰 자극이 될 만한 일들을 레너드의 뜻대로 삼가야 해서 실망하고 때로 격분했을 때조차 그랬다. 레너드가 아플 때 버지니아는 여느 때와 반대로 자신이 그를 돌본다는 걸 즐거워했다. 페미니스트로서 신념을 지녔지만 결혼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을 좋아했고, 가정생활도 즐겼다. 병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은 일에 관해 남긴 일기들은 가슴 아프다. 1937년 10월 버지니아는 파리에머물던 버네사를 방문하려고 한다. 그 얼마 전 아들 줄리언이 죽은 후 침묵 속에 있던 버네사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레너드는 버지니아가 가지 않길 바란다. 버지니아는 일기에 쓴다. "나는 행복에 휩싸였다. (...) 그러고 나서 우리는 다정히 공원 주위를걸었다. [결혼한 지 25년이 지난 우리는 떨어지는 걸 견딜 수 없어한다. (...) 그가 나를 원한다는 게, 아내라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우리의 결혼은 너무도 완전하다." 서로의 뛰어난 지성에 대한 존경이 두 사람의 행복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호가스 출판사에서의 공동 작업, 정치적 공감, 그리고 무엇보다 버지니아가 아플 때 레너드의 헌신적인 돌봄도 그들이 누린 행복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버지니아는 레너드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 쓴다. "우리만큼 행복했던 두 사람은 없을 거예요." - P184
글 쓰는 여성이자 아픈 사람으로 산 울프를 불운의 집합으로 제시하는 이 같은 초상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뭔가 갑갑하다고 느꼈고, 이 갑갑하다는 감정에 모욕감과 분노가 섞여 있다는 걸 점점 자각하던 차에 너무도 산뜻하게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 책<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을 만났다. 버지니아 울프가 22년간 살았던 몽크스 하우스와 그곳 정원을 주제로 한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은 그의 인생을 불행의 목록으로, 나아가 죽음으로 치환하는 이야기들의 반대쪽에 있다. 이 책은 몽크스 하우스를 배경으로 위대한 작가의 평범하고도 특별한 하루를 보여주고, 생활과 생계와 작업과 사교와 놀이의 나날을 따라가면서 울프의 다른 초상을 담아낸다. 공들인 자료조사, 애정과 즐거운 상상력과 위트가 담긴 서술 을통해 이 책이 그려내는 버지니아 울프는 비극의 정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소환되고 소비되는 아이콘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성실하고 치열하게 매일 노동한 작가이고, 욕실을 마련하기 위해 글쓰기로 돈을 벌자고 결심하는 생활인, 정열적인 산책가, 수다와 농담과 가십을 사랑하고 시가와 음악과 스포츠를 즐긴 사람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몽크스 하우스를 구입한 직후에 쓴 편지의 말처럼 그곳은 정말로 그가 죽은 곳(우즈강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이자 묻힌 곳이 되었다. 그러나 그 편지의 무덤이라는 단어는 죽음을 향한 충동이 담긴 말이라든지 죽음을 예감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정박할 자리를 마련한 사람의 흡족함과 그곳에서 펼쳐질 날들에 대한 기대가 담뿍 담긴 말이었다. 버지니아울프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는 죽음 이야기, ‘무덤‘이야기가 될 때가 많지만, 이 책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이 풀어내는 건 삶 이야기다. 우리는 ‘그곳에서 펼쳐진 날들‘을 본다. 고통과 고난도 분명 거기에 있지만 그럼에도 책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것은 아름다움, 기쁨, 유머, 관능, 열정, 욕망으로 찰랑대는 삶이다.
픽션은 거미줄과도 같습니다. 네 모서리가 삶에 아주 살짝 붙어 있는 그런 거미줄과도 같지요. 그 부착 부분이 눈에 띄는 때는 드뭅니다. (...) 이 거미줄은 육체를 지니지 않은 어떤 존재가 공기 중에 짜놓은 것이아니라 고통받는 인간이 만든 작품이며, 건강, 돈, 사는 집처럼 지극히 물질적인 것들에 부착되어 있습니다.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 P199
<자기만의 방>을 출판하기에 이르는 1928년부터 1929년까지의 기간이, 이전 책들의 몇 배에 달하는 상업적 성공을 거둔 <올랜도>의 인세로 울프가 몽크스 하우스에 ‘자기만의 방‘을 증축할 계획을 세우고 공사하는 기간과 겹친다는 사실을 짚고 싶다(《자기만의 방>은 1929년 10월에 출간되고,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같은 해 12월에 완성된다). 이시기에 울프의 일기와 편지엔 ‘방‘ 이야기가 빈번한데, <자기만의 방> 작업과 관련된 언급일 때도 있지만 몽크스 하우스에 새로 만드는 실제 ‘자기만의 방‘일 때가 많다. "돈을 벌면 집에 한 층을 더 올려야지." "<올랜도> 판매가 아주 잘됐어요. (...) 방을 더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답니다." "다음 주에 필콕스를 불러서 방을 설계할 것이다. 방을 짓고 가구를 들여놓을 돈이 내겐 있다." "기사 네 개를 더 쓰기로 했다. 얼마가 들든 나의 새 방을 가질 수 있다." "언제나 갖 고 싶어 한 사랑스럽고 멋진 방". "나의 완벽한 방". 전망 좋은 새 방이 생겼다는 흥분과 기쁨뿐아 니라 자신의 노동으로 원하는 공간을 마련하고 꾸밀 수 있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자부심과 자신감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몽크스 하우스의 ‘자기만의 방‘에 대해 알고 나면 <자기만의 방>에 담긴 울프의 통찰이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예술작품은 공중에 홀로 떠서 영롱하게 반짝이는 거미줄처럼 보이곤 하지만 사실 몸을 지닌 인간이 만든 것이며 어딘가-건강, 돈, 사는 집에ㅡ에 붙어 있는 것이라는 통찰. <자기만의 방>의 전면에선여성에게 박탈된 것들이 주로 이야기되지만, 그 배경엔 젊은 시절의 경제적 순진함에서 벗어나 이렇게 (특히 여성이 작가로 사는데) 물질적 조건의 중요성을 배워가고 경제적 능력과 자신감을 획득해간 울프 자신의 역사와 변화가 있다. 몽크스 하우스는 울프가 엮고 지은 거미줄의 네모서리가 붙어 있는 곳이었다. 아프거나 건강하거나 우울하거나 즐거운 몸으로 그 특정 장소에서 보낸 ‘모든 것이 아름답게 딱 맞물리는‘ 하루와 앓기와 휴식의 나날들에서 그의 작품의 씨줄과 날줄이 뽑혀 나왔다. 점심을 먹으러 글쓰기 오두막에서 돌아오는 버지니아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는지 여부로 그가 오전에 쓴 글이 소설인지 아니면 비평인지를 알수 있었다고 레너드는 말한다. 때로 고통스럽지만 그렇게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환희에 찬 비상을 할 수 있게 해준 단단한 지반, 아픈 사람으로 살면서도 방대한 양의 글을 남길 수 있게 한 토양, 버지니아 울프가 몇번이나 딛고 다시 삶으로 떠오른 기반암, 그곳이 바로 몽크스 하우스였다.
로드멜에서 좋은 주말을 보내고 돌아오다 -침묵, 책 속으로 깊고 안전하게 가라앉기, 그러곤 밖에서 산사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마치 파도가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를 들으면서 맑고 투명한 낮잠, 정원의 모든 초록 터널과 둔덕들. 깨어나니 덥고 고요한 낮. 보이는 사람도 없고, 방해가 되는 것도 없다. 우리만의 장소. 천천히 가는 시간. -1932년 6월 13일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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