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이희재 옮김 / 해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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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아무 할 일이 없을 때 비로소 자신의 잠재력을 깨달을 수 있다고 고대 사상가들은 주장하였다. 그리스 철학자들에 따르면 학문, 예술, 정치 같은 자기개발 활동에 시간을 투여할 수 있을 때만 우리는 진정한 인간이 된다. 실제로 학교를 뜻하는 영어 단어 ‘school‘은 여가를 뜻하는 그리스어 ‘scholea‘에서 나온 것이다. 여가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이 곧 학문하는 길임을 알 수 있다. - P21

사람들은 대체로 세 가지 유형의 사회적 활동 영역에 시간을 엇비슷하게 투입한다. 첫째 영역은 안면이 없는 사람, 동료, 급우로 채워진다. 이 ‘공적‘ 영역에서는 한 사람의 행위가 남들의 평가를 받게 되고, 또한 한정된 자원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든가 아니면 협조적 공생 관계가 맺어지기도 한다. 한 사람의 잠재력을 개발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이 공적 행위 영역이라고사람들은 흔히 강조한다. 위험 부담도 크지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둘째 영역은 가족이다. 아이에게는 부모와 형제이며 어른에게는 배우자와 자식이다. 요즘 들어서는 뚜렷한 사회적 단위로서의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도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고 사실 가족의 정의를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구성 형태로 못 박기도 어려운 노릇이지만, 사람에게는 유달리 끈끈한 정을 느끼고 같이 있으면 편안하며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강한 책임감을 느 - P23

우리는 타인을 바라볼 때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한 귀로 흘려듣고 오직 그의 행동에만 무게를 두면서 행동주의 심리학자처럼 구는 반면, 스스로를 돌아볼 때는 겉으로 드러난 사건이나 행동보다는 자신의 속마음을 더 중시하면서 마치 현상학자처럼 구는 모순된 자세를 종종 보이곤 한다. - P28

의도의 경우는 에너지가 단기간에 투입되는 반면, 목표는 좀 더 장기적으로 투입된다. 우리가 도달하려는 자아의 모습을 결정짓는 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다. 테레사 수녀와 마돈나라는 가수의 삶이 판이하게 다른 것은 두 사람이 평생토록 자신의 주의를 투입하는 목표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일관된 목표의추구 없이 일관된 자아를 만들어나가기는 어렵다. 뚜렷한 목표의 의식을 가지고 에너지를 제대로 투입해야 한 사람의 경험에 질서가 생긴다. 예측이 가능한 행동, 감정, 선택에서 드러나는 이 질서는 시간이 흐르면 개성 있는 ‘자아‘로서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 - P35

당신에게 스키가 별 볼 일 없는 것이라면 그 장면에 당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넣어보라. 그것은 성가대에서 부르는 합창일 수도 있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일일 수도 있고, 춤이나 카드놀이, 독서일 수도 있다. 혹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처럼 당신도 일을 좋아한다면 까다로운 외과 수술이나 피가 마르는 거래처와의 상담에 몰입하는 순간일 수도 있다. 또는 좋아하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엄마와 아기와 놀 때처럼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순간에 완전히 빠져드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순간의 공통점은 의식이 경험으로 꽉 차 있다는 것이다. 이때 각각의 경험은 서로 조화를 이룬다. 일상생활에서는 좀처럼 그런 경험을 맛보기가 어렵지만 그 순간에는 느끼는 것, 바라는 것, 생각하는것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 P42

목표가 명확하고 활동 결과가 바로 나타나며 과제와 실력이 균형을 이루면 사람은 정신을 체계적으로 집중할 수 있다. 몰입은 정신력을 모조리 요구하므로 몰입 상태에 빠진 사람은 완전히 몰두한다. 잡념이나 불필요한 감정이 끼어들 여지는 티끌만큼도 없다. 자의식은 사라지지만 자신감은 평소보다 커진다. - P45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이다. 몰입해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행복을 느끼려면 내면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정작 눈앞의 일을 소홀히 다루기 때문이다. 암벽을 타는 산악인이 고난도의 동작을 하면서 짬을 내어 행복감에 젖는다면 추락할지도 모른다. 까다로운 수술을 하는 외과의나 고난도의 작품을 연주하는 음악가는 행복을 느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일이 마무리된 다음에야 비로소 지난 일을 돌아볼 만한 여유를 가지면서 자신이 한 체험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했는가를 다시 한번 실감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되돌아보면서 행복을 느낀다. - P46

그러므로 삶의 질을 끌어올리려면 먼저 가장 보람찬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루의 활동을 설계해야 한다. 말은 쉽다. 그러나 습관과 사회적 관성의 압력이 워낙 크게 작용하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고 스트레스를 주는지, 어떤 일이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지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밤에 일기를 적거나 하루 일과를 반성하는 버릇을 들이면 내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과연 무엇인지를 차분히 추려낼 수 있다. 여기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활동이 명확히 드러나면, 바람직한 활동은 빈도를 늘리고 그렇지 못한 활동은 빈도를 줄이는 새로운 실험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 P54

목표가 없고 교감을 나눌 수 있는 타인이 없을 때 사람들은 차츰 의욕과 집중력을 잃기 시작한다. 마음은 자꾸만 흔들리고, 불안감만 조성하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붕괴되는 이런 최악의 무질서 상태를 피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불안의 샘을 의식에서 지워주는 자극에 의존하게 된다. - P85

대부분의 직업은 반복적이고 일차원적인 활동으로 바뀌었다. 매일 하는 일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슈퍼마켓 진열대에 물건을 쌓거나 단순한 서류를 작성하는 것이라면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활동이 이루어지는 전체 맥락을 늘 염두에 두고 자신의 행동이 전체에 미칠 영향을 이해한다면, 아무리 사소한 직업이라도 세상을 전보다 살 만한 곳으로 탈바꿈시키는 인상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 P134

삶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면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마음을 통제하는 힘이다.
바깥에서 오는 자극이나 도전이 나의 관심을 앗아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먼저 관심을 기울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흥미도 자연스럽게 늘어나서 둘 사이에는 피드백 관계가 형성된다. 어떤 대상에 흥미를 가지면 당연히 관심도 더 쏟게되고, 거꾸로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가지면 자연히 흥미도 높아지게 마련인 것이다. - P166

즐거움을 주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실력이 쌓이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관계없다. 그러나 중요한 건 우리의 태도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성자가 되기 위해 기도를 하고 훌륭한 이두박근을 얻기 위해 운동을 한다면 활동의 의미는 반감된다. 활동 그 자체를 즐길수 있어야 한다. 결과는 대수롭지 않으며 나의 관심을 다스리는데서 희열을 맛보면 그만이라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관심의 방향을 좌우하는 힘은 유전 명령과 사회 관습, 우리가 어릴 적에 익힌 버릇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알게 되고 우리 의식에 어떤 정보가 들어올 것인가를 결정하는 주역은 나 자신이 아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내용의 대부분은 이미 오래전에 프로그래밍된 것이다. 우리는 봐야 하는 대로 보는 타성, 기억해야 하는 대로 기억하는 타성,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신을 숭배하는 사람에 대해서나 박쥐나 국기에 대해서 느껴야 하는 대로 느끼는 타성에 젖어 있다. 인생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도 그런 타성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생물학과 문화가 정해놓은 교본을 점점 더 그대로 따라간다는 점이다. 삶의 지배권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 자신의 의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이다. - P169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자기의식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어수선한 주변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느냐다. 불가에서는 그 비결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주의 미래가 내 한 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한시도 접지 말되,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 때마다 그걸 비웃어라." 이처럼 진지한 유희의 정신이 살아 있고 근심과 겸손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사람은 어딘가에 전념하면서도 무심함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지혜를 익힌 사람은 반드시 이기지 않아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성패와는 무관하게 우주의 질서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하는 시도 자체가 그에게는 보상으로 다가온다. 그런 사람만이 뻔히 질 줄 알면서도 선의를 위한 싸움에서 희열을 맛보게 된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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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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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호르몬을 가장 크게 증가시키고 원상태로 회복하는 데까지 가장 오래 걸리는 급성 자극은 다름 아닌 사회적 평가 위협 social evaluative threat 이었습니다. 이는 내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위협입니다. 내가 하는 일에서 작은 잘못이라도 찾아내려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고혈압, 우울증, 심장병을 비롯한 수많은 질병을 유발하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가장 크게 증가시킨다는 것입니다. - P55

교수가 되고 보스턴으로 연구년을 떠난 2019년, 나는 이번에는 그가 가르치는 학부 수업을 청강했다. 「빈곤, 인종주의 그리고 건강Poverty, Racism and Health」이라는 제목의 수업이었다. 차별이 어떻게 발생하고 인간의 몸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탐구하는 그 수업에서 데이비드 윌리엄스는 맨 마지막에 항상 유튜브 등으로 동영상을 보여주며, 이러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진행되는 사회운동들을 소개했다. 그 운동들의 가치는 알 수 있었지만, 수업의 전반적인 흐름과 약간 거리감이 느껴져 그에게 왜동영상들을 보여주는지 물었다.
"하버드의 학부생들, 특히 흑인 학생들이 이 수업을 듣고서 몇 번 내게 이야기한 적이 있어. 내용은 너무나 좋은데, 수업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힘들고 우울해진다고. 어떤 희망들을 함께 이야기해 주면 안 되냐고." 그러고 보니, 그는 언제부터인가 발표를 하는 자리마다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이자 법무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케네디 Robert Kennedy의 말을 인용한다.
"한 인간이 이상을 좇아 떨쳐 일어날 때마다, 다른 이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행동할 때마다, 불의에 맞서 싸울 때마다, 희망의 작은 물결ripple of hope이 세상에 보내진다. 그렇게 쌓인 물결들은 억압과 차별이라는 가장 강력한 장벽조차 무너뜨리는 파도를 만들어 낸다." - P66

‘강화된 경계심 측정‘ 설문지로 실제 차별 경험이 아니라 차별을 경험할 것 같다는 우려만으로도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었다. 가령 집을 떠나기 전에 미리 오늘 어떤 일을 당할지 걱정하고 무시나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만 하는 등의 스트레스가 삶을 해칠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설문지로 인해 1990년대 중반 내가 가지고 있었던 중요한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 당시 여러 도시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정해진 시간마다 혈압을 측정했을 때, 낮에는 젊고 건강한 흑인과 백인의 혈압이 크게 차이 나지 않았지만 밤에 잠을 잘 때면 백인의 혈압 감소폭이 흑인보다 더 컸다. 밤에도 흑인의 혈압이 많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늘 자신을 보호하기위해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하는 긴장에 따른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 있다. 마치 잠이 들었을 때도 온전히 긴장을 놓지 못하고 한쪽 눈을 뜨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이다. 최근에는 낮에 차별을 경험한 흑인들의 경우 밤에도 혈압이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가여럿 나왔다. 차별적인 환경은 삶의 모든 시간에 악영향을 줄 수있다. - P73

장애인과 같은 소수자가 외부인과 만날 때, 어떤 조건이 갖추어져야 서로의 삶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는지 연구했습니다. 어떤 만남은 편견과 혐오의 재생산으로 이어지기도 하니까요. 만남이 상호 이해로 이어지기 위한 네 가지 조건 중 하나는 그 만남이 위로부터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흑인과 백인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더라도 인종차별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교장이, 기업주가, 대통령이 없다면 그 만남은 다른 인종에 대한 편견의 확대로 이어집니다. 저는 한국의 정치가 지난 2년 동안 이동권 투쟁의 목소리를 방관했다는 몇몇 사람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가장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싸우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악화시킨 적극적 개입이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 P96

사회적 약자들의 싸움에 연대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당사자들의 투쟁을 함부로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연구자는 이미 존재하는 사실관계에 따라서, 그 데이터에 기반해 세상을 이해한다. 그런 합리성은 종종 보수적인 현실 인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역사는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아니라, 현실의 질서에 도전하며 판에 균열을 만들어 낸 이들이 열어왔다. 많은 경우, 연구자의 언어는 그 변화를 사후적으로 따라갈 뿐이다. - P108

현실을 바꾸고 싶다면 과거와 어떻게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우리가 무엇을 놓쳤는지 들여다보아야 한다. - P155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낳지 않는다. 세상은 복잡하다. 사회문제 해결은 그 복잡함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시작한다.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푸는 대신, 큰 칼을 휘둘러 자르는 것은 칼을 휘두른 이를 영웅처럼 보이게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영웅적 결정은 종종 상황을 악화시킨다. 면세점 노동자였던 홍 씨는 과거 회사의 엄격한 ‘꾸밈 지침‘과 관련해 "면세점 직원들은 상품보다 빛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고 한다. 상품을 빛나게 하기 위해 인간이 희생되어선 안 되듯이, 정책을 돋보이게 하려고 주거취약지에 머무는이들의 삶을 지워서는 안 된다.
재난 속에서 죽음의 그림자는 약자를 먼저 덮친다. 가장 약한 이들이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나는 비극의 연쇄를 막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언적이고 성급한 대책 발표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정책으로 생겨날 영향력을 면밀히 검토하고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지난한 협의 과정이고, 그 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의지와 인내이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이들은 그 지난한 조율 과정 없이도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할 힘이 있다.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 있어 ‘합리적‘이라고 인정받기 쉬우니까. 면밀한 검토와 협의 없이 선포되는 정책은 약자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투정이나 무능함으로 치부하기 쉽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참사 대책이 결국 미래의 또 다른 참사를 만드는 시작이 아니라고 우리는 확신할 수 있는가. - P161

첫째, 학제의 차이입니다. 제 부족한 이해가 맞는다면 교수님의 공부는 사회를 관찰하고 그 변화의 동력과 과정을 기술하는 학문인 반면에, 제 공부는 어떻게든 아픈 사람을 치료해야 하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는 사람을 살려내야 하는 실용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응용과학입니다. 저는 의학을 공부한 보건학자이니까요. 그런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는 당장 예방할수 있는 이유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항상 앞에 있다보니, 마음이 많이 급합니다.
둘째로, 저는 연구자이지만 제가 비평가가 아니라 무대위에 올라와 있는 플레이어라고 생각합니다. 제 학문에서도 거리를 두고 시스템을 관찰하고 보다 냉정하게 분석하는 일은 필수적입니다. 세상을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려면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내놓는 과정이 과학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생산되지 않은 지식을 생산하는 일은 누군가가 매우 의도적으로 준비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나와 내 동료들이 변화가 시급하다고 생각하며 당장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현실이 변화할 가능성은 요원합니다. 일반화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과학의 자정능력도 실은 그 구체적인 과정을 바라보면 누군가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안간힘을 쓰며 노력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P177

리 배지트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분노가 세상을 바꾸는 에너지인 것은 맞지만, 정말로 변화를 원한다면 전략이 필요하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미국에서 연구년을 보내던 2019년리 배지트를 만나 반동성애 운동이 점점 더 세력을 키워가는 한국의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었을 때, 그녀는 "반동성애자들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뛰어넘어 그 뒤에서 작동하는 힘을 분석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 P232

그런 과정을 겪으며 우파의 반동성애 진영 싱크 탱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그들을 보며 배운 점도 있다.
더 나은 내용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어떻게 그 내용을 사람들과나눌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두고 경쟁하지만 대중과의 소통은 다르다. 과학적으로 튼튼한 언어와 대중에게 설득력 있는 언어는 다를 수 있다. 내 연구는 동성 커플이 어떻게 차별을받고 복지 혜택을 빼앗기는지 보여주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연구 결과는 크게 호응을 얻지 못했다. "내가 결혼한 것은 복지 혜택 때문이 아니다"라는 반응이 많았다. 사람들에게 결혼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 봤다. 결론은 사랑이고 헌신이었다. 그래서 동성 커플의 사랑과 헌신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려 애썼고, 이 주장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었다. - P238

사람이 나아가는 건 답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질문을 잃지 않아서 나아가는 거예요. 중요한 질문들을 놓지 않고 있어서, 삶에 답이 있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갖고 있어서 그 긴장으로 나아가는 거거든요.
자신의 정치적 진영을 옹호하는 수준에서 천안함 사건을 이해하면 그 긴장이 ‘정리‘가 되어버려요. 안심이 되고 편안해지거든요. 그럼 이 책은 더 이상 우리에게 질문이 되지 못해요. 그렇게되면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걱정되지요. ‘과연 이 책을 어떤 사람이 읽어줄 것인가‘, 혹은 ‘이 책을 읽고 나서 남는 이 찜찜함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자기만족을 위한 글을 쓸 수는 없잖아요. 그 긴장을 잃지 않도록 좋은 질문을 집요하게 하는 글을 써서, 우리 모두 시스템의 일부였기에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 하지만 동시에 미래도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 P303

만약에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게 100인데 10밖에 못 왔어요. 그럼 90만큼 남았다고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10만큼 견디고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세상이 나아가는 건 항상 힘겹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이루어 낸 작은 성과들, 어렵지만 겨우겨우 버텨낸 무언가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지 않으면 우린 항상 져요. 내내 초라해지고, 내내 지쳐요.
또 하나, 저는 역사의 일부 특별한 순간을 빼놓고는 객관적인 조건이나 정세에서 뚜렷한 희망이 있었던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래요. 그렇다고 "희망이 없다"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지요. 희망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정세나 조건에서 나오는 게 아니에요. 희망은어떤 에너지이고 의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다 열심히 해봤는데도 세상이 바뀌지 않고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 같을때, "세상에는 희망이 없어"라고 말할게 아니라 "나는 지쳤어"
라고 말하는 게 정확한 것 같고 그러면 이다음에, 아직 에너지가남아 있고 아직 그만큼의 좌절을 겪지 않은 다음 세대가 바통을이어받아서 또 다른 싸움을 해줄 거라고 믿거든요. 그렇게 역사는 이어달리기처럼 연결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미래의 피해자들은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서 이기는 것이 아니에요. 그 막막한 싸움을 견뎌내 준 피해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했던 사람들로 인해서 미세해 보일지 모르지만 변화는 축적되고 있고, 미래의 피해자들은 그 변화된 무대 위에서 살아가기에 조금은 다른 싸움을 할 수 있으니까요. 미래의 사람들도 분명여전히 상처를 받고 고통을 겪겠지만, 그 무대는 오늘을 견뎌낸사람들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거든요. 희망은 실은 그런 의미라고 생각해요. 천안함 생존 장병들의 싸움으로 인해 근무 중 생겨난 사건으로 PTSD를 겪는 군인들이 국가유공자가 되는 길이 조금은 더 넓어진 것처럼요.
그리고 피해자분들에게는 자신의 고통을 보상받고 위로받고자하는 마음도 있지만, 이분들 마음속에는 동시에 ‘이 고통을 다음세대의 누군가가 또 겪으면 안 된다‘는 바람도 있거든요. 그런 마음을 기억해 주는 것, 그리고 정확한 언어로 사건을 보려고 애쓰는 것이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내 준 사람에 대한 가장 나은 형태의 예의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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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산책 말들의 흐름 4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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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영혼의 상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면 불행이 닥치는 순간 절망에 빠지게 된다."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이것은 사랑에 관한 기록이지만, 나는 ‘사랑‘의 자리에 ‘행복‘을 넣어 다시 읽는다. "행복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영혼의 상태가 아니다."
행복이 내가 가져야 하는 영혼의 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토록 자주 절망한다.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피동적으로 얻어지고 잃는 게 행불행이라고 규정하고 말면, 영영 그 얽매임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가지지 못한 것이 많고 훼손되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생에서도, 노래를 부르기로 선택하면 그 가슴에는 노래가 산다. 노래는 긍정적인 사람에게 깃드는 것이라기보다는, 필요하여 자꾸 불러들이는 사람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매 순간 ‘방향‘을 선택한다. 행복을 목표로 삼는 방향이 아니라, 앞에 펼쳐진 모든 가능성 중에 가장 선한 길을 가리키는 화살표를 따른다. 그 둘은 처음에는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끝내 행복은 선에 속할 것이다.
그러니 역시 ‘행복‘이라는 낱말은 없어도 될 것 같다. 나의 최선과 당신의 최선이 마주하면, 나의 최선과 나의 최선이 마주하면, 우리는 더는 ‘행복‘에 기댈 필요가 없다.
에른스트 얀들의 시에 "낱말들이 네게 행하는 것이 아닌 네가 낱말에 행하는 것, 그것이 무엇인가 된다"는 구절이 있다. ‘행복‘이 우리에게 가하는 영향력에 휘둘리는 대신, 우리가 ‘행복‘에 무언가를 행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무언가가 바로 망각이기를 바란다. 그 낱말은 죽은 조상에게 맡기고 그만 잊자고. 할 수 있다면 ‘불행‘도 잊자고.
기쁘고 슬플 것이나 다만 노래하자고. - P34

아끼는 영화에, 단짝인 두 소년이 밤에 만나 유성우를 기다리는 장면이 있다. 한참 만에 창밖으로 별이 끝없이 떨어졌고, 둘은 번갈아 감탄하며 지켜봤다. 그런데 나중에 한 소년이 다른 소년을 잃고 추모사를 읽는 중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보이는 척하며 웃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어깨에 온통 눈을 쓴 채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그 말을 가져다 허공에 건넨다.
‘혼자 걸었지만 같이 걷는 척 웃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환등기를 끈다. - P13

반대로 어떤 이의 목소리를 아무래도 떠올릴 수 없어서 괴로울 때도 있다. 전화를 걸거나 다시 만나면 해결될 마음이지만,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형편도 있으니까. 그럴 때 목소리에 대한 그리움은 얼굴에 비해 결코 사소하지 않다. 목소리는 눈동자와 입술과 손가락을 다 가진, 사무치게 쓰다듬고 싶은 몸이 된다. - P17

내가 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을 만든다. 내 몸, 내 걸음걸이, 내 눈빛을 빚는다(외면이란 사실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인간은 내면과 내면과 내면이 파문처럼 퍼지는 형상이고, 가장 바깥에 있는 내면이 외면이 되는 것일뿐. 외모에 관한 칭찬이 곧잘 허무해지며 진실로 칭찬이 될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려면 이렇게. 네 귓바퀴는 아주 작은 소리도 담을 줄 아는구나, 네 눈빛은 나를 되비추는구나, 네 걸음은 벌레를 놀라게 하지 않을 만큼 사뿐하구나).
그런 다음 나의 내면이 다시금 바깥을 가만히 보는 것이다. 작고 무르지만, 일단 눈에 담고 나면 한없이 부풀어 오르는 단단한 세계를. - P25

행복은 그렇게 빤하고 획일적이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고 설명하기도 어려우며 저마다 손금처럼 달라야한다. 행복을 말하는 것은 서로에게 손바닥을 보여주는 일처럼 은밀해야 한다.
내 손을 오래 바라본다. 나는 언제 행복했던가. 불안도 외로움도 없이, 성취도 자부심도 없이, 기쁨으로만 기뻤던 때가 있었던가. - P30

누군가의 삶을 에워싸고 떠도는 소문들을, 나는 언제나 냉담하게 듣는다. 슈니츨러의 소설 문장을 빌려와 말하자면, "한 인생 전체의 현실조차 바로 그 인간의 가장 내적인 진실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실의 나열에 솔깃해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 P101

흐린 날에는 모든 것이 떨어진다. 새는 날개를 떨어뜨리고(낮게 날고), 구름은 빗방울을 떨어뜨리고, 사람은 기분을 떨어뜨린다. 흔히 그보다 조금 부드러운 단어인 ‘가라앉다‘를 선택하지만 말이다.
나는 흐린 날을 다정히 맞는 편이다. 침침한 빛, 자욱한 사물들, 묵직하게 흩어지는 향. 흐린 날에는 모든 존재가 자신을 잠잠히 드러낸다. 내 안의 언어와 비언어들조차 소란스럽지 않다. 그 세계가 몹시 안온하고 충만해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는 햇빛은 온기를 주는 동시에 대상을 퇴색시킨다. 지나친 빛 속에서는 노출과다 사진 속 피사체가 그러하듯, 내가 배경 속에 희석되거나 본디와 다른 모습이 되고 만다.
그러니 진심이나 맹세는 흐린 날에 건네져야 할 것 같다. 햇빛은 사랑스럽지만 구름과 비는 믿음직스럽다. - P136

침잠은 표면적인 것과 멀어지므로 필연적으로 깊이를 얻는다(그것은 힘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동시에 무게도 얻는다. 내가 무게를 느낄 때를 곰곰이 따져보면, 거기에는 늘 지나친 자애와 자만이 숨어 있었다. 나를 크게 만들려고 하다 보니 우울해지는 것이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 나의 느낌이나 존재를 스스로 부풀리고싶어 하지 않는지 잘 살펴야 한다.
체스터튼은 『정통』에서 그러한 무게의 해악을 설명하며, "자신을 중시하는 쪽으로 가라앉지 말고 "자기를 잊어버리는 쾌활함 쪽으로 올라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숙함은 인간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지만, 웃음은 일종의 도약이기 때문이다. 무거워지는 것은 쉽고 가벼워지는 것은 어렵다."
결국 발목에 추를 달 줄도, 손목에 풍선을 달 줄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양극을 번갈아 오가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두 겹의 감정을 포용하라는 것이다. 추를 달 때 풍선을 기억하고, 풍선을 달 때 추를 잊지 않기.
삶의 마디마다 기꺼이 가라앉거나 떠오르는 선택이 필요하다면, 여기에서 방점은 ‘기꺼이‘라는 말 위에 찍혀야 할 것이다. 기꺼이 떨어지고 기꺼이 태어날 것. 무게에 지지 않은 채 깊이를 획득하는 일은 그렇게 해서 가능해지지 않을까. - P136

저녁이 안뜰에서 고요할 때,
그대의 책갈피로부터 아침이 떠오를 것이다.
그대의 겨울은 내 여름의 그늘이 될 것이고
그대의 빛은 내 그늘의 영광이 될 것이다.
그래도 우리 함께 계속해 나아가자.

보르헤스, 「라파엘 칸시노스-아센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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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물이다 - 어느 뜻깊은 행사에서 전한 깨어 있는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한 생각들, 개정판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재희 옮김 / 나무생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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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이 ‘사고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인문학의 만트라(mantra, 呪文)에 담긴 진정한 의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은 덜 교만하고, 자기 자신과 자기의 확신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약간은 소유하고 있는 것 말입니다.... 나 자신도 모르게 확신하기 쉬운 것들이 사실은 대부분 완전히 잘못 알고 있거나 착각하고 있었다는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 P39

이것은 미덕의 문제가 아닙니다-이는 우리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디폴트세팅, 즉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자기중심적인 본성과 자신이라는 렌즈로 만물을 보며 해석하도록 되어 있는 경향을 무슨 수로든 개조하든가 지워버리든가 하는 작업을 자기 과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태생적인 디폴트세팅을 이처럼 조절(adjust)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흔히 ‘잘 적응한(well-adjusted)‘, 즉 정신적·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이라고 묘사합니다. 이런 표현이 결코 우연히 생긴 묘사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 P50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말이 진정으로 뜻하는 바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대해 선택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 P59

나 자신이 바로 이 세상의 중심이며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진 욕구와 감정만이 세상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기준이어야 한다고 믿는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인 모드가 작동하고 있을 때, 나는 일상의 권태롭고 불만족스럽고 다사다난한 부분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이는 자동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P91

진실로 중요한 자유는 집중하고 자각하고 있는 상태, 자제심과 노력, 그리고 타인에 대하여 진심으로 걱정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능력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매일매일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사소하고 하찮은 대단치 않은 방법으로 말입니다. - P128

자각 있게, 어른스럽게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 이것은 상상도 못할 만큼 힘든 일입니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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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정원 - 몽크스 하우스의 정원 이야기
캐럴라인 줍 지음, 메이 옮김, 캐럴라인 아버 사진 / 봄날의책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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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9월에 버지니아는 이렇게 적을 수 있었다. "일기에 쓸, 대단히 심오한 관심사가 너무도 많다. 영혼과 영혼 사이의 대화라든지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그냥 흘려보낸다. 왜? 금붕어에게 먹이를 주고, 새 연못을 바라보고, 잔디볼링을 하느라. (...) 행복." - P104

1939년 7월, 다른 종류의 전쟁이 있었다. 바로 ‘온실 사건‘이다. 레너드는 온실에 꽤나 열정적이었고, 이미 과수원 서쪽 벽 옆에 커다란 온실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위 왼쪽 사진은 담이 있는 정원의 사진인데, 한 귀퉁이에 온실이 보인다. 7월에 레너드는 버지니아에게 의견을 구하지도 않고 분홍색이 도는 벽돌로 새 온실의 기초 부분을 쌓기 시작했다. 온실이 모습을 갖춰갈수록 "버지니아는 기분이 안 좋아졌다. "두통. 죄책감. 후회・・・・・・ " 버지니아는 일기에 썼다. 두 사람이 싸우는 일은 드물었지만 이번엔 충돌이 있었다. "그 추한 건물대(對) L의 바람. 이렇게 괴로워할 가치가 있는 일일까? 아침에 목욕하던 중에 레너드가 왔을 때 그냥 공사를 계속하라고 했어야 했나? 버지니아는 그러지 않았고, 온실은 헐린다. 둘의 관계는 껄끄러워진다. 버지니아는 그 아침에 썼다.
"(우중충하고 맘이 몹시 불편한 오늘- 온실 사건의 아침, 나는 기분이 처지지 않게 휘파람을 불고 있다.) 이제 점심시간을 잘 넘겨야 한다. 짜증나는 점은, L이 내가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데 능숙하다는 것이다. 그의 독단. 그렇게 행동하면 편하겠지. ‘오, 당신은 그게 싫다고요. 그렇다면 당신 말을 따르기로 하죠." 이런 일이 있고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약간 성이 난 채로 볼링 시합을 한다. 저녁 늦게 버지니아는 레너드에게 묻는다.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나요?" 레너드는 답한다. "그 누구보다 아름다워요." 10 다음 날이 되자 "온실 대사건"은 마무리된다. - P143

버지니아의 편지와 일기에서 나는 대단히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본다. 침실에서 훨씬 성공적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한 부부라도 그런 정도의 친밀함을 누리기는 어려울 수 있다. 29년 동안의 결혼 생활에서 레너드와 버지니아는 떨어져 있은 적이 거의 없다. 혹시라도 떨어져 있을 때 둘의 편지엔 장난기와 애정이 넘친다. 편지에서 둘은 서로를 애태우며 시시덕거린다. 상대를 동물 이름으로 부르고, 다시 만나면 ‘코를 비비고‘ ‘물어뜯고 싶다는 말을 한다. 둘에게 서로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버지니아는 언젠가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라고 생각해?" 그러고는 혼자 대답하길, "나는 이런 순간이라고 생각해. 자기 집 정원을 걸으며 시든 꽃 몇 송이를 꺾다가 문득 생각하는 거야. 나의 남편이 저 집에 산다. 그리고 그는 나를 사랑한다." 비타의 롱반 자택을 다녀와서 버지니아는 쓴다. "집에 돌아오니 정말 좋다. (...) 전혀 따분하지 않았어. 내 결혼은 말이지. 전혀." 버지니아 사후 그의 일기를 읽기 전까지는 버지니아와 비타의 관계가 얼마나 깊었는지 레너드가 전부 알지는 못했을 수도 있다고 빅토리아 글렌디닝은 말한다. 내 생각으론, 버지니아가 다른 누구와도 성적인 관계를 성공적으로 갖기 어려울 것임을(비타가 그런 관계를 가져볼최선의 기회이긴 했다) 레너드는 누구보다 잘 알았고, 따라서 비타와의 관계가 결혼생활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버지니아 자신도 일기에 이렇게 적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계속한다. 생기 넘치며 훌륭한 관계, (영적으로) 순수하고내 생각엔 좋은 점만 있는 관계를. 레너드에게는 약간 싫은 일이지만 그를 걱정시킬 정도는 아닌 관계. 한 사람에겐 여러 관계를 위한 공간이 있다. 그게 진실이다."
그럼에도 분명 레너드는 버지니아에게 존재의 중심이었다. 버지니아는 그의 판단을 완전히 신뢰했다. 파티라든지 너무 큰 자극이 될 만한 일들을 레너드의 뜻대로 삼가야 해서 실망하고 때로 격분했을 때조차 그랬다. 레너드가 아플 때 버지니아는 여느 때와 반대로 자신이 그를 돌본다는 걸 즐거워했다. 페미니스트로서 신념을 지녔지만 결혼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을 좋아했고, 가정생활도 즐겼다. 병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은 일에 관해 남긴 일기들은 가슴 아프다. 1937년 10월 버지니아는 파리에머물던 버네사를 방문하려고 한다. 그 얼마 전 아들 줄리언이 죽은 후 침묵 속에 있던 버네사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레너드는 버지니아가 가지 않길 바란다. 버지니아는 일기에 쓴다. "나는 행복에 휩싸였다. (...) 그러고 나서 우리는 다정히 공원 주위를걸었다. [결혼한 지 25년이 지난 우리는 떨어지는 걸 견딜 수 없어한다. (...) 그가 나를 원한다는 게, 아내라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우리의 결혼은 너무도 완전하다."
서로의 뛰어난 지성에 대한 존경이 두 사람의 행복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호가스 출판사에서의 공동 작업, 정치적 공감, 그리고 무엇보다 버지니아가 아플 때 레너드의 헌신적인 돌봄도 그들이 누린 행복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버지니아는 레너드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 쓴다. "우리만큼 행복했던 두 사람은 없을 거예요." - P184

글 쓰는 여성이자 아픈 사람으로 산 울프를 불운의 집합으로 제시하는 이 같은 초상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뭔가 갑갑하다고 느꼈고, 이 갑갑하다는 감정에 모욕감과 분노가 섞여 있다는 걸 점점 자각하던 차에 너무도 산뜻하게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 책<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을 만났다. 버지니아 울프가 22년간 살았던 몽크스 하우스와 그곳 정원을 주제로 한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은 그의 인생을 불행의 목록으로, 나아가 죽음으로 치환하는 이야기들의 반대쪽에 있다. 이 책은 몽크스 하우스를 배경으로 위대한 작가의 평범하고도 특별한 하루를 보여주고, 생활과 생계와 작업과 사교와 놀이의 나날을 따라가면서 울프의 다른 초상을 담아낸다. 공들인 자료조사, 애정과 즐거운 상상력과 위트가 담긴 서술 을통해 이 책이 그려내는 버지니아 울프는 비극의 정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소환되고 소비되는 아이콘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성실하고 치열하게 매일 노동한 작가이고, 욕실을 마련하기 위해 글쓰기로 돈을 벌자고 결심하는 생활인, 정열적인 산책가, 수다와 농담과 가십을 사랑하고 시가와 음악과 스포츠를 즐긴 사람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몽크스 하우스를 구입한 직후에 쓴 편지의 말처럼 그곳은 정말로 그가 죽은 곳(우즈강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이자 묻힌 곳이 되었다. 그러나 그 편지의 무덤이라는 단어는 죽음을 향한 충동이 담긴 말이라든지 죽음을 예감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정박할 자리를 마련한 사람의 흡족함과 그곳에서 펼쳐질 날들에 대한 기대가 담뿍 담긴 말이었다. 버지니아울프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는 죽음 이야기, ‘무덤‘이야기가 될 때가 많지만, 이 책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이 풀어내는 건 삶 이야기다. 우리는 ‘그곳에서 펼쳐진 날들‘을 본다. 고통과 고난도 분명 거기에 있지만 그럼에도 책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것은 아름다움, 기쁨, 유머, 관능, 열정, 욕망으로 찰랑대는 삶이다.

픽션은 거미줄과도 같습니다. 네 모서리가 삶에 아주 살짝 붙어 있는 그런 거미줄과도 같지요. 그 부착 부분이 눈에 띄는 때는 드뭅니다. (...) 이 거미줄은 육체를 지니지 않은 어떤 존재가 공기 중에 짜놓은 것이아니라 고통받는 인간이 만든 작품이며, 건강, 돈, 사는 집처럼 지극히 물질적인 것들에 부착되어 있습니다.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 P199

<자기만의 방>을 출판하기에 이르는 1928년부터 1929년까지의 기간이, 이전 책들의 몇 배에 달하는 상업적 성공을 거둔 <올랜도>의 인세로 울프가 몽크스 하우스에 ‘자기만의 방‘을 증축할 계획을 세우고 공사하는 기간과 겹친다는 사실을 짚고 싶다(《자기만의 방>은 1929년 10월에 출간되고,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같은 해 12월에 완성된다). 이시기에 울프의 일기와 편지엔 ‘방‘ 이야기가 빈번한데, <자기만의 방> 작업과 관련된 언급일 때도 있지만 몽크스 하우스에 새로 만드는 실제 ‘자기만의 방‘일 때가 많다. "돈을 벌면 집에 한 층을 더 올려야지." "<올랜도> 판매가 아주 잘됐어요. (...) 방을 더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답니다." "다음 주에 필콕스를 불러서 방을 설계할 것이다. 방을 짓고 가구를 들여놓을 돈이 내겐 있다." "기사 네 개를 더 쓰기로 했다. 얼마가 들든 나의 새 방을 가질 수 있다." "언제나 갖 고 싶어 한 사랑스럽고 멋진 방". "나의 완벽한 방". 전망 좋은 새 방이 생겼다는 흥분과 기쁨뿐아 니라 자신의 노동으로 원하는 공간을 마련하고 꾸밀 수 있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자부심과 자신감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몽크스 하우스의 ‘자기만의 방‘에 대해 알고 나면 <자기만의 방>에 담긴 울프의 통찰이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예술작품은 공중에 홀로 떠서 영롱하게 반짝이는 거미줄처럼 보이곤 하지만 사실 몸을 지닌 인간이 만든 것이며 어딘가-건강, 돈, 사는 집에ㅡ에 붙어 있는 것이라는 통찰. <자기만의 방>의 전면에선여성에게 박탈된 것들이 주로 이야기되지만, 그 배경엔 젊은 시절의 경제적 순진함에서 벗어나 이렇게 (특히 여성이 작가로 사는데) 물질적 조건의 중요성을 배워가고 경제적 능력과 자신감을 획득해간 울프 자신의 역사와 변화가 있다.
몽크스 하우스는 울프가 엮고 지은 거미줄의 네모서리가 붙어 있는 곳이었다. 아프거나 건강하거나 우울하거나 즐거운 몸으로 그 특정 장소에서 보낸 ‘모든 것이 아름답게 딱 맞물리는‘ 하루와 앓기와 휴식의 나날들에서 그의 작품의 씨줄과 날줄이 뽑혀 나왔다. 점심을 먹으러 글쓰기 오두막에서 돌아오는 버지니아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는지 여부로 그가 오전에 쓴 글이 소설인지 아니면 비평인지를 알수 있었다고 레너드는 말한다. 때로 고통스럽지만 그렇게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환희에 찬 비상을 할 수 있게 해준 단단한 지반, 아픈 사람으로 살면서도 방대한 양의 글을 남길 수 있게 한 토양, 버지니아 울프가 몇번이나 딛고 다시 삶으로 떠오른 기반암, 그곳이 바로 몽크스 하우스였다.

로드멜에서 좋은 주말을 보내고 돌아오다 -침묵, 책 속으로 깊고 안전하게 가라앉기, 그러곤 밖에서 산사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마치 파도가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를 들으면서 맑고 투명한 낮잠, 정원의 모든 초록 터널과 둔덕들. 깨어나니 덥고 고요한 낮. 보이는 사람도 없고, 방해가 되는 것도 없다. 우리만의 장소. 천천히 가는 시간.
-1932년 6월 13일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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