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동사,라고 어느글에 쓴 적 있고. 덧붙이자면 일렁이다는 여름 동사의 일종. 겨울의 동사는 속삭이다. 봄의 동사는 어른거리다. 가을의 동사는 흘러가다. 어른거리고 일렁이고 흘러가 속삭이는 마음의 사계절. 동사를 활용해 마음의 사계절을 그려보세요. 그것이 바로 당신을 설명하는 일. - P26
고요히 한 생각 머물면 앞 강물도 지워지고 앞산 숲도 지워진다
너는 말없이 말하고 나는 들리지 않게 듣는다
-강상기 묵언(默言) 부분 - P66
폭력 피해 여성 없는 세상을 꿈꿨던 (여성인권운동가) 이문자님의 자취에 마음이 동하여 그가 일흔살에 남긴 이런 말을 몇번씩 되뇌어보는 하루. 아무것도 모르고 발을 디뎠고, 지금까지 한눈팔지 않았다. - P83
언젠가 내 얼굴이 나의 얼굴을 내려다보게 될 때 나는 내게 묻게 되리
봄이 저 멀리 아득해지는 이유를 여름이 콸콸 쏟아지는 이유를 가을은 어디까지 떨어져 내리는가 겨울은 왜 마음을 쌓아 올리는가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하리
나는 살아왔으므로 이유도 모르고 살아왔으므로
(…)
살아 있다는 것 신이 결코 알 수 없는 것
신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 그것이 인간의 가장 불행한 것 그것이 인간의 가장 행복한 것
친구들 그대들이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빛을 채워주는 날 작고 따뜻한 손으로 내게 말 걸어주시오
우리는 평화로운 영혼임을 우리는 확신에 찬 신념임을 우리는 다정한 우정임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음을
그리하여 언젠가 내 얼굴이 나의 얼굴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우리들의 곁에서 다시 첫 우정의 말을 시작할 것이니
고맙소, 친구들이여 - P85
어쩌면 많은 작가들이 조장하고 있는 것은 빛나는 미래에 대해 꿈꾸기일 것이다. 전진하지 않고 후퇴하는 현실의 이야기를 바꿔 쓰는 사람. 그 행동하는 몽상가를 작가라 달리 부르는 것이기도 하리라. 오랫동안 성소수자 해방에 헌신한 운동가 피터 태철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당신이 원하는세상을 꿈꾸라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꿈이 생겼으니, 이제 나아가자고. - P120
언젠가 한번 한 책방에서 열린 문학 행사의 진행자가 되어 작가와의 만남을 이끈 적이 있다. 참여 인원이 적어서 행사라기보다는 정모 같은 분위기가 되었는데,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던 중에 한 여성이 말했다. -저는 마음에 병이 있습니다. 듣자 하니 그이 마음의 병은 말을 살아지 해서 생긴 것이었다. 그날 그 말하지 못하는 마음을 헤아려 적은 글에서 나는 마음에 말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라고 물었다. 그지. 나도, 너도 마음에 말이 있지. 다 말해버릴까, 하는 고민을 최근에 꽤 여러번 했다. 그 가운데 한번은 말했다. -내가 받은 고통을 생각해봤어? 그러나 그러니까 누군들 할 말이 없겠는가. - P180
오드리 로드Audre Lorde는 시는 사치가 아니라고 썼습니다. 1977년에 백인 아버지들은 생각하므로 존재한다 말하지만, 흑인 어머니는 느끼므로 자유롭다 (꿈속에서) 속삭인다. 시는 그 꿈의 실행을(혁명적 요구를) 선언하는 새 언어를 만들어낸다. 시를 사치라고 폄하한다면 그것은(여성됨이라는 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시인은 얘기하지요. 오드리 로드의 ‘행동을 위한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 <시스터 아웃사이더>(후마니타스 2018)는 1984년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34년이 지나서야 한국에서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삶을 성찰할 때,라는 말로 시작해 우리가 진실을 말한다면,이라는 말로 끝납니다. 삶을 성찰해야만 진실을 말할 수 있다. 울화의 불씨가 진실의 불씨가 된다는 말. - P206
밤 창 별 숨 잠 그리고 어깨
강아솔의 노래를 들으며 사랑을 달리 부를 수 있는 말이 이렇게나 많구나, 하고 고개를 먼저 끄덕였다. 봄. 정말 봄이구나. 창밖을 내다보니 마침 회갈색 직박구리 한마리가 날개를 펴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생명의 몸짓에서 사랑을 보았다고 한다면 믿으실지 손님이 한명도 없는 카페에 앉아 실로 오랜만에 말갛게 미소 지었다. 식은 사과차에 미지근한 물을 넣어 마셨는데도 제법 따스한 기운이 몸에 돌았다. 몸이 따뜻해지는 일도 역시 사랑이고, 들키는지도 모르고 혼자 웃는 일도 사랑이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말없이 어깨를 낮추는 것은 각각 아름다운 일이지만, 역시 엇갈리지 않고 동시에 이루어질 때 더 사랑스럽다. 나란히 숨을 고르는 일. 사랑은 모쪼록 그런 일. …… 빛과 내가(그림자가) 정말 좋아하는 ‘우리의 일’은 잠이 들기 전에 서로의 이마를 짚어주거나 새끼손가락을 살짝 잡아주었다 놓는 일. 먼저 잠든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거나 발등을 쓰다듬어주는 것이다. 그런 사랑의 일상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으니 문득 궁금했다. 강아솔은 우리가 우리의 일을 그토록 아끼는 까닭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마음이 순해지는 일, 사랑.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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