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으로 세상을 구한다는 착각 - 우리라는 울타리가 만든 교묘한 차별의 순간들
폴 돌런 지음, 윤효원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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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흑백논리로 보는 것을 심리치료사들은 ‘분열’이라고 부른다. …… 분열은 ‘기본적 귀인 오류’로 설명할 수 있다. 기본적 귀인 오류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의 성격을 바탕으로 설명하면서, 자기 행동에 대해서는 상황적 요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보편적 심리 현상이다. 다른 사람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하면 성격 탓으로 누군가를 흑백논리로 보는 것을 심리치료사들은 ‘분열’이라고 부른다. …… 분열은 ‘기본적 귀인 오류’로 설명할 수 있다. 기본적 귀인 오류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의 성격을 바탕으로 설명하면서, 자기 행동에 대해서는 상황적 요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보편적 심리 현상이다. 다른 사람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하면 성격 탓으로 돌리면거 정작 자신이 같은 행동을 하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리화한다는 의미다. 정작 자신이 같은 행동을 하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리화한다는 의미다. - P38

우리가 속한 집단의 행동과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세가지 경로가 있다. 첫째, 사회적 영향이다. 우리는 또래 집단에서 받는 동조 압력peer pressure 이나 권위자의 영향으로 집단의 규범을 따른다. 당신이 속한 직장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각해보라.
둘째, 공동의 경험이다. 이 경험은 역사적 사건부터 공동의 고난이나 성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영국 윈드러시windrush 세대가 보여주는 연대감을 떠올려보라. 셋째, 문화적 전승이다. 전통은 민속, 의례, 교육 등을 통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 P53

신뢰와 전문성은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자‘가 갖춰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요건이다. 정보 출처를 어느 정도 신뢰하는지, 또 얼마나 믿을 만하다고 여기는지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에 대한 호감도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신념주의의 핵심은 효과적인 정보 전달자가 전하는 단순한 메시지가 다른 소통 채널이나 ‘증거 그 자체‘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오리‘ 혹은 ‘토끼‘로 보이게 만든다는 점이다. - P89

완고한 태도를 고수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어떤 사안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약하거나 심지어 무지하다고 비칠까 하는 걱정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이나 부족한 지식을 인정하면 오히려 설득력과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어린이들은 불확실성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에게서 더 잘 배운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가끔만 작동하는 물체의 인과관계에 관해 배울 때, 이 불확실성도 함께 전달한 어른의 설명을 더 잘 이해했다. 반대로 지나친 자신감은, 특히 틀렸음이 증명될 때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 있게 정보를 제공했지만 때로는 틀린 것으로 드러나는 성인을 덜 믿는 경향이 있다.
지적 겸손함이 높은 사람, 즉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은 더 폭넓은 범위의 생각을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 - P98

신념주의를 줄이려는 모든 시도는 행동, 생각, 감정의 상당 부분을결정하는 ‘상황적 요인‘의 흐름에 몸을 맡기려는 인간의 성향을 반드시 이용해야만 한다. 이 말은 매우 신중하게 우리의 사고방식을바꾸려는 교육 프로그램들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뜻이다. 게다가 효과적인 교육이나 정보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교육수준이 높고 견문이 넓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성과를 내기 마련이다. 따라서 효과적인 교육 프로그램조차 오히려 교육 격차를 벌리는 역할을 할 뿐이다. 다양성과 포용의 중요성을 학생들에게 교육해 조금 더 관용적인 캠퍼스 환경을 만들려는 대학 차원의 시도를 떠올려보자. 이미 다양성에 많이 노출된 학생일수록 대학의 해당프로그램에 더 잘 참여하고 더 큰 혜택을 누린다는 사실은 이미 입증되었다. 내 경험상, 행동을 바꿀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을 때는 보통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다르게 행동하도록 슬며시 유도하는 편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 P114

환경 안에서 문제를 어떻게 프레이밍framing 하는지는 조망 수용perspective taking 능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안을 경쟁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공동의 목표라고 프레이밍하면, 공유하는 가치와 협력의 이점을 떠올리며 훨씬 더 유연하게 타협에 임하게 된다. 더 나아가, 외집단 구성원들을 더 미묘하고 공감 어린시각으로 묘사하는 이야기나 미디어에 개인을 노출시키는 ‘매개 접촉mediated contact‘과 같은 다양한 개입을 통해 조망 수용과 프레이밍을 강화할 수 있다. 조망 수용을 장려하고 건설적인 프레이밍 기법을 활용하는 구조화된 대화의 자리는 양극화된 태도를 줄이고 타협에 나서려는 의지를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 P116

실패에 관해 솔직하게 대화하도록 장려하고, 실패를 학습 기회로 바라보는 리더는 신뢰와 개방성, 지속적인 개선이 가능한 문화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다. 체크리스트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이미 확인했으니, 조직이 실수 관리를 직장 문화에 정착시키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체크리스트를 살펴보자.

a. 리더십 모범 사례 정착: 리더가 자신의 실수와 그로부터 얻은 교훈을 공개적으로 공유하여 실수가 성장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b. ‘회고 세션‘ 검토 도입: 프로젝트나 중대 결정 후에 체계적인 사후 검토를 통해 잘된 점과 잘못된 점을 점검하되 책임 전가를 피한다.
c. 혁신 공간 조성: 직원들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모든 시도가 성공할 필요는 없음을 이해하는 환경을 만든다.
d. 명확한 소통 채널 구축: 피드백 세션이나 익명 제보 등을 통해 직원들이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피드백을 공유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e. 심리적 안전 보장: 실수를 학습 기회로 받아들이고 비난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고 리더가 이를 지지하고 실천한다.
f. 실수를 통해 학습하는 기회 창출: ‘사후 검토‘ 회의 등을 통해 실수가 발생했을 때 체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한다.
8. 교육 및 개발 과정에 오류 관리 통합: 교육 프로그램에 오류 관리, 회복탄력성, 적응력 관련 모듈을 포함한다.
1h. 지원 체계 구축: 실수 이후에 여파를 수습하는 직원들을 멘토나 동료지원 그룹을 통해 돕는다. - P127

친화적 유머와 자존감을 높이는 유머는 웰빙 수준을 높이지만, 공격적 유머는 웰빙 수준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은 긴장을 완화하고 공감을 형성하며 대화를 장려하는 유머의 고유한 특성을 활용하는 데 있다. 그러면 신념 차이를 메우는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있다. 누군가와 함께 한바탕 웃는 것만큼 유대감 형성에 좋은 것은 없다. - P138

개인의 삶에도 더 좋은 피드백이 더 많이 필요하다. 물론 쉽지 읺은 일이다. 우리가 얻어야 할 진짜 교훈은 의사결정 과정에 서로 다른 신념과 가치관이 반드시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의견 차이로 생기는 불편함을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관점에 대한 피드백을 마주하면 어떤 감정이 드는지 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자극이 장기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오는지 잘 예측하지 못한다는 증거는 이미 대단히 많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대부분의 자극과 상황에 상당히 빠르게 적응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또한 변화의 부정적인 면에 집중하고 긍정적인 면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한 연구에서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라는 요청을 받은 참여자들은 그 아이디어를 싫어했지만, 의외로 그 경험을 꽤 즐겼다. 낯선 사람들 역시 그 경험을 즐겼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른 관점을 두려워할 수 있지만, 직접 마주하면 놀라운 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다. - P144

다양한 의사결정 상황에서 사람들은 보통 투명성이 높을수록 좋은 결과를 얻는다. 누가 바람직한 행동을 하는지가 보이면 자원봉사와 자선활동이 늘어나고 누가 잘못된 행동을 하는지가 보이면 부정행위와 부패가 줄어든다. - P198

이와 더불어 우리는 표현의 자유가 사람들을 괴롭히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상황은 항상 경계해야 한다. 권리와 책임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갖게 된 배경에 어떤 경험과 신념이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표현의 자유를 신중하게 판단하여 행사해야 한다. 말하기 전에 생각해야 하며, 우리가 하려는말이 끼칠 수 있는 피해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자신이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못해서 불필요하게 누군가를 모욕하면 당연히 사회적 제재가 따라야 한다. 어쩌면 여기서 진짜 문제는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비방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신념주의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는 장기적으로 전반적인 고통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접근법을 찾는 과정에서 때로는 어느 정도의 불쾌감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고인이 된 위대한 인지 심리학자 대니얼카너먼의 말대로 나는 뿌리 깊은 낙관주의자이며, 좋은 논증이 나쁜 논증을 이기는 방법은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끌어내는것이라고 생각한다. - P226

누군가 우리를 불쾌하게 했다면 사과할 시간을 줘야 한다. 다시 말해, 즉각적으로 항의하고 달려들지 말아야 한다. 자신 또한 때때로 상당히 서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보여야 한다. 또한 모욕당했을 때 공개적으로 반응하기 전에 자신을 성찰하고 전후 맥락
을 파악하여 더욱 관대한 태도를 길러야 한다. 대화 내용을 되돌아보며 다른 의견을 무시하거나 지나치게 비판하여 대화를 차단해버린 순간이 있는지 확인해보기 바란다. 이러한 접근법은 신념주의를줄이고 더불어 표현의 자유와 건설적인 대화라는 근본 원칙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 나는 신념주의를 줄이는 방법이 쉽다는 주장을 입증해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념주의를 줄여야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며, 이는 때때로 우리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 P229

내가 선호하고, 동의하는 정보만 보여주는 필터버블의 시대
확증편향과 집단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7가지 체크리스트 ‘EMBRACE‘

환경 Environment 상황적 요인을 강조한다.
실수 Mistakes 실수를 허용하고, 그로부터 배울 수 있다.
유대 Bonding 우리는 많은 면에서 서로 닮았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이성 Reason 더 확실한 증거와 일관된 서사를 갖춘다.
정서 Affect 다른 관점이나 사람을 향한 정서적 반응을 다듬는다.
결합 Collection 의사결정 과정에 다양한 관점과 사람을 포함시킨다.
노출 Exposure 생각이 다른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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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앞에서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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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내 발로 그 관계에서 걸어나왔을 때 나는 다짐했다. 다시는 외로움에 나 자신을 속이지 않기로 내가 그런 관계 안에서 피해자였다고 주장하는 것도, 상대를 탓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어떤 관계였든 나의 선택이었고 관계를 깰 자신이 없어서 눈감고 있던 건 그 누구도 아닌 나였으니까. 다만 이 글을 쓰면서 그런 나의 마음을 돌아볼 뿐이다. 그토록 취약하고 수동적이었던 모습 뒤에 숨겨진 내 두려움을.
두려움. 더 정확히 말해 버려지리라는 두려움. 당신이 나를 더는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 내 가슴에 차오르던 감정. 그런 상황을 겪을 때마다 두려움은 커져갔다. 버림받으리라는 두려움은 오랜 시간 동안 내 의식의 뒤에만 있었다. - P56

나는 내가 행복하기보다는 덜 상처받기를 바랐고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그 기쁨이 사라질 순간의 고통을 피할 궁리를 했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기대치를 바닥까지 낮추고자 했고 언제나 덜 다치고 빠져나갈 수 있는 퇴로를 확보하려 했다. 사람들 앞에서 쉽게 경직됐고 그때그때 가면을 썼다. 진짜 내모습은 철저히 가려야만 그나마 덜 거절당할 것 같아서였다. 타인이 싫어할 만한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데 에너지를 썼다. 그런 노력을 해도 떠날 사람은 떠난다는 걸 알면서도.
관계의 문제를 모두 나의 문제로 치환하여 해석했던 건 자기 파괴적인 습관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합리적이지 않은 생각이었다. 관계는 무의식의 얽힘이다. 상대의 문제였을 수도 있고, 그저 서로 잘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 P61

당신이 나를 떠나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더라도 나는 받아들일 것이다. 당신이 내게 준 마음과 우리가 나눈 시간에 대한 감사를 나는 버리지 않을 거니까. 당신이 내게 준 반짝이는 순간은 내게 영원히 남아 있을 테니까. 그후에도 나는 여기에 남아 여전히 나인 채로, 나를 끝까지 버리지 않는 내가 되어 살아갈 것을 안다. - P65

나는 어디까지가 내 영역인지도 모르면서 경계를 존중받지못한 후에 씁쓸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상대가 그 경계를 넘도록 ‘허용‘한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내가 경계 설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울 수 없어.‘ ‘아니, 그건 네 문제야.‘ ‘지금은 혼자 있고 싶어.‘ ‘약속을 어기지 마.‘ 그 말 한마디를 할 자신이 없어서 타인의 욕구에 휩쓸리듯 내 경계를 흐린 것은 나였다. ‘누군가의 괴로움을 나서서 해결해주지 않는 한 나는 뻔뻔하고 나쁜 사람‘이라는 왜곡된 자기 인식 또한 문제였다. ‘착한‘ 사람, 희생하는 사람이라도 되지 않는다면 나는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근본적인 자기부정이 그 밑바닥에 있었음은 물론이다.
나 스스로 상대가 경계를 넘도록 허용해놓고서 나는 절망했다. 왜 미안해하지 않아? 어떻게 이렇게 뻔뻔해? 어떻게 이렇게 나를 존중하지 않을 수 있어? 그 절망감은 내 마음을 부식시켰지만 나는 그 감정마저도 억압하여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경계 설정에 어려움을 겪다보니 모든 관계가 결국에는 같은 방식으로 어그러질까봐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기가 힘들어졌다. 예전부터 어렴풋이 느끼던 문제였지만 가까웠던 사람과의 관계가 그런 식으로 깨진 후에야 나는 내 패턴을 대면하게 됐다. 경계를 흐리고 상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나, 경계를 침해당하고 분노하는 나, 그 분노를 다시금 마음 깊숙이 억압하는 나. - P121

언제쯤 삶은 결코 통제할 수 없으며 삶의 사건들은 인과관계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언제쯤 모든 규칙을 깨고 펼쳐지는 삶의 불규칙성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연약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을까. 언제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이 모든 일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 P125

「씬짜오, 씬짜오」에서 ‘나‘가 투이에게 "아무것도 몰랐던거, 미안해"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그 대사 후에 "그 말이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라고 썼다. 우리가 사과한다고 해서 죽은 사람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아니다. 그러나 잘못을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않는다면, 최소한의 회복조차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 P210

우리는 죄악이 우리를 무너뜨렸다는 사실을 똑바로 바라봐야만 하고 또 알려야만 한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우리가—또는 다른 사람들이 다시 희생자가 되는 일을 막을 수 있게 해준다. 어쩌면 우리를 가장 지치게 만드는 후 기억은 침묵에 의해 주입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를 해방시켜주는 이야기를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데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이야기 속에 담아 말하는 것, 자신이 겪은 일들을 말하고 다른 이들이 겪은 일들을 듣는 것이다. 이것은 제한된 과거 속에 우리를 구속하는 대신, 자유롭게 상상하는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미래가 드러날 수 있게 하는 바탕을 만든다.

과거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이야기 속에 담아 말하는 것, 그리고 다른 이들의 경험을 듣는 것. 그런 일들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감지한다.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낙인을 찍고 경멸하고 조롱하는 정서가 어느 때보다도 만연한 요즘인 것 같다. 프리모 레비는 어떤 사회라도 대화를 포기하고 파시즘으로 흐를 때 언제든 수용소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더 대화해야 한다. 우리의 과거에 대해서, 우리가 겪어온 시간에 대해서 말하고 들을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기를 바란다. 과거를 바로 세울 때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무책임한 비관주의로 기우는 것을 경계하면서.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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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용기있게 살고 싶다면 나는 변화해야 했다. 나의 뿌리깊은 의존성, 나의 가치는 타인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믿음, 나의 필요와 요구를 존중하는 건 나쁘다는 생각, 내 ‘진짜’ 마음을 표현하는 건 위험하다는 느낌 같은 것을 그대로 대면해야 했다. 그것이 아무리 불편한 일일지라도.

떠나가는 원고의 등을 두드리며 말을 건네본다. 따뜻한 곳보다는 차가운 곳으로, 웃음이 있는 곳보다는 눈물이 있는 곳으로, 함께인 곳보다는 홀로인 곳으로, 충만한 곳보다는 메마른 곳으로 있는 힘껏 나아갈 수 있기를. 네가 필요한 곳으로 자유롭게 날아가기를. 마침내 도착한 그곳에서 너의 삶을 시작하기를.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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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리는 끝내,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지, 어떤 삶을 살게 될지를 온전히 선택하지 못할 터다. 우리의 전기는 대개 시간과 공간의 질서 속에 미리 마련된 자리들을 차례로 점유해가는 과정으로 요약된다. 여러 틀이 우리에게 부과되고, 여러 역할이 우리의 몸과 정신을 사로잡으며 우리에게 깊은 흔적을 남기고, 앞으로 우리가 누구와 함께 삶을 살아가게 될지를 결정하는 만남들이 우리 운명을 빚어낸다. 인간의 삶은 대체로 단조로운 궤적을 따른다. 그것은 통과의례를 포함한 제도적 의례가 경계 지어놓은 리듬과 주기에 종속되며, 학업과 청춘, 부부로서의 삶과 부모 됨, 직업 활동과 은퇴, 노년에 이르기까지, 국면마다 특정한 생활 양식과 존재 방식이 거의 필연처럼 따라붙는다. 옷차림과 거주 형태, 정동affect, 일과와 습관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이렇게 부여된 사회적 지위를 뒤따라가며 그에 걸맞은 정체성을 놀라우리만큼 손쉽게 수용한다. 마치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거나 피할 수 없는 필연인듯, 우리는 세계와 맺는 관계를 재정렬하고 말투를 바꾸며, 옷차림과 몸가짐마저 어느 순간 단숨에 바꾸어버린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개별 삶을 규정하는 사회적 결정 요인을 재구성하는 사회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누구나 자기만의 전기를 살아간다는 관념은 근본적으로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고까지 주장했다. 내가 ‘나‘라고 부르는 나란, 삶의 주기 속 서로 다른 순간마다 사회적 세계의 여러 공간에 흩어져 있는 위치들이 일정한 결로 엮이며 생겨난 산물일 뿐이다. 내가 나의 것이라 여기는 행위들 또한 대개 그 사회적 공간들과 삶의 주기 속에서 특정 시점에 내가 점유한 위치가 낳은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생물학적 소멸 이후에도, 또 다른 이들이 차례로 등장해 나와 비슷한 행위를 되풀이하고 비슷한 정동을 경험할 것이다. 그들 역시 그것을, 나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환상적인 방식으로, ‘자기 고유의 정체성‘에 귀속된 것으로 믿을 것이다. - P7

"가족 체계"는 바르트가 열망하는 유토피아와 정확히 대척점에 놓인다. 그것은 자기 리듬에 타자의 리듬이 맞춰지기를 요구하는 체제다. 이 삶의 형식은 구조적으로 훼손적일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개별자들에게 하나의 공동 거주 공간 안에서 삶을 전개하도록 강제하는 순간, 그 공간은 필연적으로 강력한 집단적 제약을 산출하기 때문이다. 바르트의 말대로, 가족은 "모든 자기 고립의 순간과 자기리듬적 삶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차단한다". - P50

그렇다면 다른 삶, 더 자유로운 삶을 발명한다는 문제는 관계를 줄이고 폐쇄적인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관계의 증식과 경계의 해체, 그리고 틈의 확장을 중심으로 다시 사유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세상의 과도한 무게가 아니다. 실제로 우리를 훼손하는 것은, 우리 삶이 몇 가지 틀에 박힌 관계들, 곧 서로 대체 가능하고 단조롭기까지 한 관계들로 축소되어버리는 현실이다.
….
우정을 삶의 양식으로 다듬어가는 일은, 여느 유토피아적 기획과 마찬가지로, 바깥을 향한 열망이 끝내 관류하는 실존적 실천이다. 곧 사회적 삶을 규정해온 규범적 형식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다. - P54

우리의 우정은 언제나 서로의 어려움과 고통을 자연스럽게 떠맡는 자리였고, 끊임없이 서로를 돌보는 관계이자 도움의 공간으로 기능해왔다.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면, 갑자기 일을 멈추거나 생활의 리듬과 일정 전체를 몇 시간, 며칠, 혹은 그보다 더 긴 기간 동안 조정하는 일은 무척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우리가 이러한 요구를 거의 극한까지 밀어붙여왔다고 느낀다. 아마 우리의 공유된 현재를 규정하는 핵심 가운데 하나는, 세사람 모두가 언제나 서로를 위해 예민하게 깨어 있으며, 어떤 일이 생기면 즉시 달려갈 수 있는 상태로 살아왔다는 사실일 것이다. 응급실에 함께 가는 일, 나쁜 소식을 들은 친구를 곁에서 지지하는 일, 건강에 대한 염려가 생겼을 때 곁을 지키는 일, 더 나아가 상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돕기 위해 해외로 떠나는 일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러한 경험을 이미 여러 차례 공유해왔다. - P66

우정의 삶을 떠받치는 충동은 아직 충분히 언어화되지 않았다. 나는 우정의 고유한 정동 내부에, 자신을 증대하고 배우며 다른 기획들을 구상하려는 욕망이 자리한다고 말하고자 한다. - P115

우정은 세계를 새롭게 조합하고 다른 선들을 그리며, 한 작가의 삶을 다른 삶과 연결하고, 그렇게 이어진 삶들을 다시 또 다른 관계로 확장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방식으로, 사회라 불리는 지나치게 규범화된 공간 속에 약간의 새로움과 움직임이 돌연히 스며들게 만들지도 모른다. - P121

몇 해의 시차를 두고 에두아르와 내가 모두 대학에서 불편함을 느꼈고 끝내 그곳과 거리를 두게 된 데에는 주요한 공통 이유가 있다. 디디에와 가까이 지낸다는 것은 곧 다른 방식의 글쓰기 개념과 마주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디디에가 몸소 보여준 지적 실천과 우리에게 하나의 모델로 자리했던 글쓰기 방식은 언제나 이른바 공리주의적 윤리 위에 놓여 있었다. 글쓰기는 무엇인가에 실제로 기여해야 하며 그 필요성은 글 자체가 아니라 글의 바깥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반대로 학문 장은 연구를 목적 없는 활동으로 보는 관념 위에서 작동하는 듯하다. 문학 장과 더 일반적으로는 문화 장 역시 예술작품의 내재적 가치를 끊임없이 선언한다는 점에서 같은 구조를 공유한다. 그리고 연구의 무용함은 실제로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들 자신에게조차 무용한 것으로 체감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 셋은 모두 롤랑바르트의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에서 학계의 관행적 틀을 풍자한 구절을 무척 좋아한다. "참담=학술 강연, 지루함=원탁 토론." 대학이 사고에 미치는 영향에는 이러한 지루함과 공허함, 우울함이 함께 얽혀 있다. 어떤 목적도 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말들이 반복되고 사실상 독자조차 존재하지 않는 담론이 생산되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 P163

어쩌면 부르디외가 남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다음의 사실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인정이 곧 신비화라는 점을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더 나아가, 인정은 언제나 그리고 필연적으로 배제를 동반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사회적 세계 위에 드리운 저주는 상징권력이 본질적으로 대조를 세우고 차이를 새기며 구별을 생산한다는 데 있다. 모든 성스러움에는 그에 상응하는 세속성이 있고, 모든 구별은 그에 따르는 속됨을 낳는다. 그러므로 "구별된계급이 존재Étre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보완적 계급이 무Néant, 혹은 덜한 존재로 추락하는 것"을 그 대가로 치르게 만든다. 모든 공인 행위와 인정의 작동은 특정한 규범이나 기준에 따라 이루어진다. 따라서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필연적으로 배제의 효과와 지위상의 비참함이 발생한다. 우리가 제도에 우리를 인정할 권능을 부여하고 그 안에서 존재할 이유를 찾고자 하는 한, 우리는 하나의 배제적 체계를 안정화하게 된다. 이 체계에서는 어떤이들의 상징적 삶이 다른 이들의 상징적 죽음을 낳는 구조, 존재와 저주가 대립하는 구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죽음에 대한 불안과 존재의 부조리에서 벗어나려던 형이상학적 필요성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이러한 체계에 협력하도록 만드는 근본적 동력이다. 그 결과 우리는 타인의 배제와 격하를 통해서만 자신으로 존재하고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 속에서, 불순함과 슬픔, 그리고 일종의 악함에 놓이도록 운명지어진 듯 보인다. - P203

관계 창조의 실존적 의미는, 자기 삶의 근거를 스스로 마련함으로써 우연성. 자의성에 휘둘리지 않는 자율적 삶의 형식을 모색하는 데 있다. 제도적 공인을 둘러싼 투쟁에 가담하지도, 그 투쟁이 불러오는 지배의 유혹에 빠지지도 않으면서 인간 조건의 비참함과 우연성, 자의성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자기 삶을 정당화할 수단을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기준을 발전시키고, 자기만의 세계를 발명하는 일이 요구된다. 이 때문에 관계의 발명은 자율적 예술가, 자율적 지식인, 자율적 작가의 노력을 지탱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장소가 된다. 그들은 외적인 제도와 규칙은 물론 내면화된 규칙에 대해서도 반항적이고 완강한 존재로서, 그 모든 것으로부터의 급진적 독립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을 자기 삶의 기준으로 세우는 지점에 이른다.
우정은 인정을 넘어선 삶이라는 관념을 그 자체 안에 품고 있다. 우정은 자기 자신을 향한 하나의 실천의 이름이며, 긍정의 정치, 행위와 능동성을 중시하는 니체적 도덕의 형식을 취한다. 이때의 도덕은 인정에 대한 집착과 타인의 판단을 최후의 심판으로 삼아 스스로를 재단하는 태도가 필연적으로 낳는 적대감과 반동성에 맞선다. 그리고 바로 그 판단, 곧 타인의 판단으로 이루어진 최후의 심판으로부터 나는 디디에와 에두아르와 함께, 우리의 관계와 그 관계가산출하는 것들을 통해, 매 순간 벗어나고자 애쓰고 있다. - P207

3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에서 ‘바깥‘은 사회 밖으로 달아나는 장소가 아니라 사회 안에서 제도적 궤도와 관계 위계로부터 거리를 생산하는 실천의 방향으로 나타나며, 이단성은 고립이 아니라 접속의 증식으로 증명된다. 이때 관계는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늘려가는 것이고, 경계는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느슨해지며, 틈은 축소가 아니라 확장으로 유지된다. 그래서 가용성의 윤리는 미덕이 아니라 기술이 되어, 타자에게 열려 있기 위해 시간을 비워두고 필요하면 일상의 흐름을 멈추는 결단으로 반복되며, 만남은 사적 내부에 봉인되지 않고 카페 같은 공적 장소를 거점으 로삼아 지속의 형태를 얻는다. 결국 3이란 2의 폐쇄가 강제하는 세계 안에서 다른 사회성을 만들어내는 바깥의 구성, 곧 관계의 배치로 출구를 설계하는 일로 요약된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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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그녀에게 열정은 한순간 사람을 사로잡는 무엇이었다. 그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고,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변화가 찾아왔다. 열정보다 중요한 건 그것을 일깨우고 유지하는 의지라는 것. 그것이 향하는 곳은 따로 있었다는 것. 그 시절, 석주의 열정은 사람을 단번에 압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만히 길들이는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일에 집중되고 있었다. - P87

그날, 석주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냉정하게 돌아보았다. 그것은 닮은 꼴의 하루가 반복되는 진부한 이야기 같았다. 극적인 사건도, 놀라운 반전도 없는 서사. 개성도 매력도 없는 주인공이 완성해나가고 있는 그 스토리는 어떤 독자에게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먹먹함이 밀려왔다.
시시하고 평범한 그 이야기는 다름 아닌 자신의 삶이었다. 석주가 미약하게나마 감동을 느낀 건 쓰지 않은 것과 쓸 수 없는 것까지 모두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대단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그 여정은 오직 석주에게 속한 것이었고 그녀만의 것이었다. - P263

석주는 알고 있었다. 이야기가 향하는 곳이 자신의 내면이라는 것을. 허구의 서사가 불러일으키는 것은 내밀한 기억과 감정이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이 실은 읽는 행위의 전부라는 것 또한.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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