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띠아고에서의 마지막 왈츠
당신이 춤춘 그 모든 것을 그들은 당신에게서 앗아간다오 그것을 그냥 앗아간다오 그냥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들은 당신 안의 춤꾼을 죽여버린다오 그녀를 서서히 뭉개버린다오, 해골로 만들고, 연기로 만들어버린다오, 그녀가 이 춤을 당신과 함께 추기 전에.
그들은 당신의 룸바와 탱고를 부숴버리고, 당신을 부숴버리고, 당신의 사육제를 오줌 속에 녹여버리고, 당신 음반의 피막에 바늘을 찔러 넣는다오. 그들은 트럼펫을 칼처럼 쓰고 당신의 바이올린을 산산이 부숴버린다오 그냥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들은 당신을 번호 없는 벽 속에 가둔다오,
재로 덮인 거울과 노래 사이에, 그들은 당신의 손에, 당신의 발에, 당신의 쇄골에 자물쇠를 채우고 자 춤춰봐 이 병신아 춤춰 이 니미씹할, 자, 춤춰라고 말한다오. 그들은 당신을 무덤형에 처하고, 당신을 모래로 문지른다오.
그러니 춤을 춥시다 내 사랑하는 이여, 그들이 우리가 춤춘 그 모든 것을 앗아가고 있으니 -바로 지금,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어보라 누군가가 반짝이는 군화를 신어보고 있다 바로 지금- 바로 지금. - P94
우리는 모두 반향이다. 원형적이고 발단적인 어떤 것의 그림자다, 물림옷이고, 잔여물이며, 앞으로 나타날 유토피아적인 어떤 것에 대한 예감이다. - P118
이 시편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가 통역하고자 하는 것도 피해당사자들에 의한 직접적인 증언이 아니다. 당연한 일이다. 그의 증인들은 억류되었고, 증발되었고, 살해당했으며, 그들이 당한 피해의 경험은 침묵 속에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삐노체뜨가 1973년 9월 11일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후 흔적도 없이 청소해버린 그 수천명의 "억류되고 사라진 사람들" (losdetenidos desaparecidos)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증언은 그들이 뒤에 남긴 빈자리를 통해, 남겨진 사람들이 느끼는 상실의 고통과 그리움, 슬픔과 분노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되고, 시인은 그렇게 전달된 이야기를 다시 한번 통역하는 임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가 잡혀가고 사라지고 고문당하고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뿐 상세한 정황 설명은 듣지 못한다. 보고되고 통역되는 것은 사건 그 자체보다는 그것이 만들어내는 (주로 감정적인) 파장이다. 사건은 거의 언제나 그 반향에 의해 반향을 타고 전달된다. - P123
이 시편이 증언하는 바 고통으로 연대된 칠레의 안과 밖은 (잔인하게도) 정치가 개인적 삶의 내밀한 구석구석까지 후비고 들어올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냥 내버려뒀으면 계속 평화로웠을 일상이 어느날 갑자기 찢겨져나가고, "살아 움직이는 비명처럼/목구멍을 걷어차는 발길질처럼"(「나는 가끔 ...」) 충격적인 방식으로 정치와 사적인 삶의 연속성이 드러나면서 개인의 목소리는 정치의 세계로 끌려나오게 된다. "그들은" "내"가 눈을 뜨고 있을 때만 내 세계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내 꿈 속에서" "그대"를 죽인다(「혼례식」). 그리하여 이들의 얘기 하나하나에 담긴 개별적 슬픔은 그 자체로서 국가권력의 횡포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 되고 칠레 역사의 기록이 된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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