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삶 살아온 이산자…재일교포 서경식 명예교수를 기억하다] https://www.jjan.kr/article/20240521580304 작년 12월 18일에 서경식 선생이 별세했다. 당시 읽은 '내 서재 속 고전'(서경식 저 / 한승동 역) 중 '참극의 유대인 거리에 남은 것과 변한 것: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어느 가족의 대화』, 가와시마 히데아키의 『이탈리아 유대인의 풍경』'으로부터 옮긴다.

이탈리아 토리노(2024년 12월) - 사진: UnsplashRoberta Piana






낡은 노면전차를 타고 레 움베르토 가에 가보았다. 거기에는 예전에 찾아갔던 프리모 레비의 자택 아파트가 있다. 가보니 전혀 변함없는 모습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지금은 아들 일가가 살고 있다. 레 움베르토 가에는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일가도 살았던 적이 있다.

『어느 가족의 대화』에 생생하게 묘사된 토리노 지식인들, 레오네 긴츠부르그, 아드리아노 올리베티, 체사레 파베세 등이 오가던 거리. 전쟁 중에는 반파시즘 운동의 거점이었고, 전후에는 공화제를 실현한 진보적 운동의 지적·문화적 기반이 된 곳이다. 그 넓은 거리에 서서 고개를 약간 드니 파르티잔들이 활동했고 망명자들이 오갔던 알프스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반파시즘 투쟁을 떠맡았던 전후 이탈리아의 풍요로운 지적 문화를 형성했던 세대는 거의 퇴장했다. "가장 뛰어났던最良 인간들"은 거의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조야하고 천박한 포퓰리스트들의 거칠고 사나운 목소리들이 사회를 휘어잡으려 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이민 배척을 외치는 극우 세력이 대두하고 있다. 그런 현상은 이탈리아에 국한된 게 아니다. 일본에서도 심각하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와 프리모 레비가 지금 살아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

원고 출처: 참극의 유대인 거리에 남은 것과 변한 것: 《한겨레》, 2014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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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4-12-19 23: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벌써 1년이 지난거군요.

서곡 2024-12-21 15:48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시간이......페이퍼의 내용과 관련된 책과 더불어 올해 나온 신간들을 담아 보았습니다

거리의화가 2024-12-20 07: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년 전 타계하셨을 때 유작을 읽어보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여전히 진행하지 못했네요. 덕분에 저도 미뤄둔 결심을 이행해야겠다 싶습니다.

서곡 2024-12-21 15:49   좋아요 0 | URL
네 시간이 정말 훌쩍 가네요 살아 계셔서 한국의 현 상황을 보신다면 어떤 글을 쓰실지...
 

'플랜더스의 개'를 쓴 위다의 또 다른 동화 '뉘른베르크의 난로'에 도자기 인형 등 각종 골동품이 살아 움직이는 상황이 나온다. '호두까기 인형'과 '토이 스토리' 같은 설정. (영화 '미녀와 야수'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봤다.) 시공주니어판으로부터 옮긴다. 생동감 넘치는 성대한 장관이다.


Porcelain in the Historisches Museum Bern By Adolf de Meyer


Nymphenburg Tafelaufsatz Garten By User:FA2010


님펜부르크 자기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4n1341a


The Nymphenburg Figure Camera Work 1912 By Sailko







날씬한 베네치아 검과 뚱뚱한 페라라(베네치아 인근에 있는 유서 깊은 도시:옮긴이) 검은 서로 치고받고 싸우고 있었는데, 몸집이 조그맣고 얼굴빛이 창백한 님펜부르크(독일 뮌헨의 님펜부르크 궁에 있는 도자기 제작소:옮긴이) 백자 아가씨를 두고 다투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프랑켄 지방(뉘른베르크가 있는 독일 바이에른주 북부:옮긴이)의 풍채 좋은 잿빛 사기 주전자가 크게 소리쳤다. "아이고, 아무튼 이탈리아 것들이란! 만날 싸움질이야!"

엄청나게 많은 수의 앙증맞은 드레스덴 찻잔과 찻잔 받침은 모두 깡충깡충 뛰며 왈츠를 추고, 둥글넓적한 얼굴을 한 찻주전자들은 저마다 머리에 얹힌 뚜껑을 팽이처럼 빙빙 돌리고 있었다. (중략) 한편 그 모든 광경을 비추는 눈부신 빛은 양초가 하나도 꽂혀 있지 않은 은 촛대 세 개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신기한 일은 아우구스트가 그런 입이 딱 벌어지는 광경을 보고도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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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은 '뉘른베르크의 난로'를 다시 펼친다. '플랜더스의 개'로 유명한 위다가 썼다. 아래 옮긴 글의 출처는 시공주니어의 '플랜더스의 개'에 수록된 역본이다. (함께 담은 딴 출판사의 책들에도 실려 있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 남았는데 곤궁한 아버지가 가보인 뉘른베르크의 난로를 팔아버리자 티롤 소년 아우구스트는 몰래 난로 아궁이 안에 숨어 들어가 난로를 실은 기차를 타고 집으로부터 멀리 떠나게 된다. 소년이 도착한 곳은 뮌헨의 골동품 가게.




Exhibit in the Germanisches Nationalmuseum - Nuremberg, Germany. By Daderot



Winter Afternoon Old Munich, 1883 - T. C. Steele - WikiArt.org








어둠 속에 갇혀 있으니 크리스마스 때 암파스 마을의 자상한 외할아버지 집에서 불가에 둘러앉아 들었던 온갖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흙의 정령, 요정, 땅속의 괴물들, 검은 밤의 말을 타고 달리는 요정의 왕…… 그리고…… 그리고……. 아우구스트는 다시 훌쩍훌쩍 흐느끼며 몸을 덜덜 떨었다. 이번에는 소리를 죽이지도 않고 목 놓아 울었다. 하지만 기차가 증기를 내뿜는 소리가 워낙 커서 누가 옆에 있었더라도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자, 여보게들, 힘들겠지만 이제 3킬로미터도 안 남았어! 이번 일만 잘하면 크리스마스 때 술을 사 주겠네." 아무리 건장하고 힘센 짐꾼들이라지만 무거운 짐을 짊어질 생각에 푸념이 새어 나오자, 상인 한 명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상인의 거창한 다짐에 힘을 얻은 짐꾼들은 느릿느릿 뉘른베르크 난로를 어깨에 짊어졌다.


이내 아우구스트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이들은 곧잘 울다가 잠이 들곤 하는데, 산골 출신의 씩씩한 사내아이라면 더더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잠들 수 있다. 골동품 가게 안은 그리 춥지 않았다. 문과 창문이 꼭꼭 닫혀 있고, 실내는 물건으로 가득차 있었으며, 뒷벽은 불을 후끈하게 때는 이웃집의 따뜻한 굴뚝과 맞닿아 있었다. 게다가 아우구스트는 옷을 따뜻하게 입고 있었고, 기운이 팔팔한 어린아이였다. 덕분에 아우구스트는 사무치게 추운 뮌헨의 12월 겨울밤을 떨지 않고 보낼 수 있었다. 아우구스트는 곤히 잠들었다. 잠들어 있는 동안만은 슬픔도 위험도 배고픔도 다 잊고 편안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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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4-12-19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궁금하네요 이 책 인용부분 너무 끌려요.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서곡 2024-12-19 20:18   좋아요 1 | URL
앗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동화랍니다
 

보물창고 세계명작전집 '호두까기 인형'(E.T.A. 호프만 글/함미라 역)으로부터 옮긴다. 우리도 우리의 도시를 초콜릿 판으로 보호해야 할 판이다.

Chocolate Painting (Schokoladenbild), 1964 - Sigmar Polke - WikiArt.org






그 순간 마리는 작은 도시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알록달록 속이 다 보이는 투명한 집들로 이루어져 보기에도 정말 예쁜 도시였다. (중략) 사람들이 짐에서 끄집어낸 것들은 색색으로 물들인 색종이와 납작한 초콜릿 판 같아 보였다.

"우리는 사탕 마을에 와 있습니다." 호두까기 인형이 말했다. "지금 막 종이 나라와 초콜릿 왕이 보낸 소포가 도착하였습니다. 최근 사탕 마을이 안쓰럽게도 모기 제독이 이끄는 군대에게 격심한 위협을 받고 있답니다. 그래서 사탕 마을주민들이 종이 나라에서 보낸 하사품으로 집들을 덮어 싸고, 또 초콜릿 왕이 보내온 튼튼한 초콜릿 판으로 보루를 세우려는 거랍니다. (하략)" - 인형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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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환상동화 '호두까기 인형'으로부터



사진: UnsplashThamara Maura







크락카툭 호두는 48파운드짜리 대포가 호두를 깔고 지나가도 깨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껍질이 단단한 호두란다. 그런데 이 단단한 호두를 아직 한 번도 수염을 깎은 적이 없고, 한 번도 장화를 신은 적이 없는 남자가 공주가 보는 앞에서 깨물어야 했어. 그런 다음 이 남자는 눈을 가리고 공주에게 이 호두의 속살을 바치고, 계속 눈을 가린 채 어디에도 걸려 넘어지지 않고 뒷걸음질로 일곱 걸음을 간 후 눈을 떠야 했단다. - 단단한 호두에 관한 동화 : 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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