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서점의 오월 - 80년 광주, 항쟁의 기억' 중 '3부 항쟁은 끝나지 않았다'로부터 옮긴다.



'녹두서점의 오월' 3인 공저자 중 한 사람인 김상집이 지은 '윤상원 평전'도 담아둔다.


1981년 2월 대통령이 된 전두환이 광주를 방문한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전두환이 미국을 방문한 직후 ‘전남 초도 순시와 영광 원자력발전소 기공식에 참석하려고 광주에 온다’는 것이다. 전두환에게 우리의 의사를 알리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광주학살의 총책임자인 전두환에게 우리 가족들이 구속자들의 사형이 집행될까 봐 얼마나 애태우고 있는지 보여 주기로 했다. 우리는 ‘사형수를 없애 주세요’, ‘광주 구속자 석방’이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만들어 전두환이 지나가는 연도에서 기습 시위를 할 계획이었다.

전두환이 광주에 오는 2월 18일, 나는 오전 수업만 하고 조퇴를 했다. 남편 면회를 마치자마자 약속 장소인 YMCA 앞으로 갔다. 오후 6시경부터 도청 앞에 제복을 입은 사람이 드문드문 보이더니, 어느새 경호원들로 보이는 사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도로 주변을 가득 채웠다. 우리 가족들은 20명 정도 모였으나 눈에 띄지 않게 서로 떨어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왔다.

전두환과 직접 마주친다고 생각하니 항쟁 기간에 느꼈던 공포가 다시 엄습했다.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저 멀리 전두환과 이순자가 탄 차가 나타났다. 앞뒤로 경호하는 차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연도에는 동원된 공무원들이 서 있었으나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고,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전두환이 탄 차가 YMCA 앞을 통과하는 순간, 나는 소리쳤다.

"가자!"

그러고는 차도로 뛰어들었다. 플래카드를 든 어머니들도 모두 뛰어왔다. 그때 전두환은 뛰어나오면서 소리치는 우리를 환영 인파로 알았을까? 그는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고 흔들었다. 전두환의 손이 내 앞으로 다가오자 나는 전두환의 손을 부여잡고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사형수를 없애 주세요, 구속자를 풀어 주세요!"

그 순간 일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머니들이 든 플래카드는 순식간에 경호원들의 손에 찢어졌으나, 어머니들은 온몸으로 대통령이 탄 차를 막았다.

잘 훈련된 경호원들은 권총을 빼 들고 우리 가족들을 겨누며 밀쳐냈다. 철커덕 철커덕 총알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한순간이었다. 전두환이 탄 차는 도청 안으로 사라졌다. 우리 주변으로 순식간에 경호원과 시민들이 몇 겹으로 모여들었다. 많은 시민이 몰려드는 것을 본 경호원들은 감히 총을 쏘지 못했다. - 2장 살아남은 자 2: 폭도 (정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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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잇고 2024-05-18 17: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아.. 짧은 글만 읽어도 그 긴장감과 안타까움이 느껴지네요....ㅠㅠ

서곡 2024-05-18 18:10   좋아요 2 | URL
1981년에 감히 광주를 방문한 전**......차창 밖으로 선뜻 손 내미는 만용을 좀 보세요

서곡 2024-05-18 18:11   좋아요 2 | URL
죽음을 각오하고 그 앞으로 돌진한 분들의 용기가 정말 대단합니다

서곡 2024-05-18 18:15   좋아요 2 | URL
멈추지 않고 서울 명동성당에서 단식농성까지 하여 결국 특별사면을 이끌어내십니다

렛잇고 2024-05-18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ㅠㅠ 하아... 뭐라 말할 수 없는 갑갑함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