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한 해를 달별로 서술한 책 '1913년 세기의 여름' 중 11월 편이다.

Portrait of Rainer Maria Rilke, 1906 - Paula Modersohn-Becker - WikiArt.org






파리에서 릴케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독일에서 보낸 여름과 가을을 생각한다. 아직은 아내인 클라라, 전 애인 시도니와 루, 여름의 사랑 엘렌 델프, 어머니, 자기를 찬미하는 부인들인 에바 카시러, 헬레네 폰 노스티츠, 마리 폰 투른 운트 탁시스 사이를 불안하게 오가며 여행했던 일을 생각한다. 모든 것을 열어두기, 그 길이 어디에 이르든 그 어떤 분명한 길도 가지 않기. 릴케는 11월 1일에 이런 생각을 한다. 생활방식으로서는 파국이고, 시로서는 하나의 계시다.

열려 있는 길

네 앞에 남은 생이 길지 않기에,
나는 그 길을 거부하고, 뒤로 고삐를 잡네
열려 있는 길, 하늘, 순결한 언덕들,
그 어떤 사랑스러운 얼굴도 그냥 스쳐가지 않네.

아, 가능한 사랑의 고통을
나는 낮이고 밤이고 느끼네
서로에게 도피하고, 서로 어긋나며,
그 어떤 기쁨에도 이르지 못하는 사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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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1-18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릴케는 오래전 말테의 수기, 로 처음 만났지요. 작가 지망생들이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그 어떤 분명한 길도 가지 않기˝ - 멋지군요. 저는 제가 가고 싶은 분명한 길이 있어요. 거길 못 가서 항상 숙제처럼 달고 살지요. 그렇다고 치열하게, 는 아니고 느긋하게요. 너무 느긋해서 탈이지요.

서곡 2023-11-18 12:41   좋아요 1 | URL
가고 싶은 분명한 길이 있다니 든든하시겠습니다 분명한 길을 가지 않기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멋지고요 계속 그 길 따라 잘 가시길 기원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오늘 토요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