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의 하노이 여행
https://blog.aladin.co.kr/790598133/15027764 '터프 이너프'(데보라 넬슨 지음, 김선형 옮김)의 수전 손택 편에서 손택의 에세이 '하노이 여행'에 대해 읽고 포스팅했는데 '수전 손택의 말 : 파리와 뉴욕, 마흔 중반의 인터뷰'(수전 손택,조너선 콧 지음, 김선형 옮김)에 관련 내용이 있어 추가한다.
1968년 그녀는 미국의 반전운동가 대표단의 일원으로 북부 베트남 정권의 초대를 받아 하노이로 갔다. 일기에 썼듯이 그 경험은 "그녀의 정체성, 의식의 형태들, 그녀가 속한 문화의 영적 양상들, ‘진지성’이라는 말의 의미, 언어, 도덕적 결정, 심리학적인 표현성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에 선생님의 에세이 「하노이 여행Trip to Hanoi」을 다시 읽다가 이런 글을 봤습니다. "여기서는 누군가 점잖지 못하게 굴면 정말 좋겠다. 자기 사생활과 감정에 대해 말하면 좋겠다. ‘감정’에 휩쓸리면 좋겠다." 그리고 에세이의 2부에서 선생님께서는 북베트남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하시죠. 마치 예전에는 난해했지만 이제는 투명하게 의미를 드러내는 예술 작품처럼 말입니다. 심지어 예술 작품보다 북베트남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요.
- 그런 얘기를 2부까지 기다렸다가 썼던 이유는 베트남 사람들이 우리와 다르다는 걸 인지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전 우리가 다 똑같은 인간이며 가족이라는 자유주의적 생각을 좋아하지 않아요. 문화적 차이는 실제로 존재하고, 그런 차이에 민감한 건 대단히 중요하다고 여기죠. 그래서 제가 인지할 수 있는 관용을 보여주기를 바라며 그들과 소통하려고 버둥거리기를 이젠 그만두었습니다. 그들이 관용을 표현하는 방식은 제 방식과 다르니까요. 그들도 물려받은 언행의 전통이 있고, 친밀함의 의미 역시 우리와 달라요. 세계에 대한 일종의 경의를 배우는 것 같았어요. 세계는 복잡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당위로 환원될 수는 없습니다.
제게 진정한 전환점은 그 베트남 에세이였어요. 그게 제 자신에 대해 쓴 첫 번째 글이거든요. 아주 소심하게 쓰긴 했지만 말이지요. 그 글을 쓰는데 엄청난 희생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세상에, 난 이 전쟁이 정말 싫어, 그러니까 내 이 작은 수고를 바치려면 이 정도는 달갑게 할 수 있다고. 생각은 그랬지만 사실 의식적인 희생이었어요. 나 자신에 대해 글을 쓰고 싶지 않아, 그냥 ‘저들’에 대해서만 쓰고 싶어. 그러나 ‘저로서는’ 저들에 대해 글을 쓰는 최선의 방법이 나 자신을 포함시키는 것임을 깨닫고 희생을 하게 된 거예요. 그 일로 전 달라졌어요. 작가로서 소정의 자유를 얻었다는 걸 깨달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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