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전한 레슬러'(김재혁 옮김)에 수록된 발터 벤야민의 '오디-오믈렛'을 읽었다. 

원어 Maulbeer-Omelette: https://www.degruyter.com/document/doi/10.1515/9783110938951.vii/html?lang=en 참고.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에서는 '산딸기 오믈렛'이다.





나는 이 옛날 이야기를 무화과나 팔레르노산(産) 포도주, 러시아식 수프 또는 카프리섬의 농갓집 식사를 맛보려고 하는 사람들한테 들려주려 한다. 옛날에 한 왕이 살았다. 그는 지상의 모든 권력과 모든 보물들을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즐겁기는커녕 해가 갈수록 침울해지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의 전속요리사를 불러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오랜 세월 동안 나를 위해 충실히 봉사하여 나의 식탁을 가장 훌륭한 음식으로 차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대를 좋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그대의 요리솜씨를 마지막으로 음미해보고 싶구나. 그대는 50년 전 내가 아주 어릴 적에 맛보았던 것과 똑같은 오디-오믈렛을 나를 위해 만들어야 한다. 당시에 나의 부친은 동쪽에 있는 나쁜 이웃나라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웃나라가 승리하여 우리는 도망쳐야 했지. 그래서 아버지와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망쳤어. 그러다가 우리는 어느 어두운 숲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 숲 속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우리는 배가 고프고 탈진하여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어. 그때 우리는 마침내 한 오두막을 만났다. 키가 자그마한 노파가 그 집에 살고 있었어. 그녀는 우리에게 상냥하게 편히 쉬라고 하고는, 자신은 화덕 앞에서 분주하게 움직였어. 오래지 않아서 우리 앞에는 오디-오믈렛이 나타났지. 그것을 한 입 물어 먹자 나는 이상하리 만큼 마음이 편해지고, 새로운 희망이 가슴속에서 일어났어. 그때 나는 아직 나이가 어린 소년이었어. 그리고 오랫동안 나는 더 이상 그 소중한 음식의 은혜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지. 그러나 나중에 왕국 곳곳을 뒤져 그녀의 거취를 수소문해 보았지만, 노파뿐만 아니라 오디-오믈렛을 조리할 줄 아는 그 누구도 발견할 수 없었다. 만약에 그대가 나의 이 마지막 소망을 들어준다면, 나는 그대를 나의 사위로 만들어 이 왕국의 후계자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대가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그대는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폐하, 그렇다면 당장 형리를 불러주소서. 물론 저는 오디-오믈렛의 비밀과, 비밀스런 겨자로부터 고상한 백리향에 이르기까지 모든 양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오믈렛을 저으면서 읊는 시구까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노력의 대가가 헛되지 않도록 회양목으로 된 교반봉을 언제나 오른쪽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폐하, 저는 죽을 도리밖에 없겠습니다. 제가 만든 오믈렛은 폐하의 입에 맞지 않을 테니까요. 왜냐하면 제가 어떻게 그 오믈렛에다가 폐하께서 당시에 그 오믈렛 속에서 맛보았던 것을 양념으로 만들어 칠 수 있겠습니까? 전투의 위험, 쫓기는 자의 경계심, 화덕의 따스함 그리고 휴식의 달콤함, 낯선 현재와 어두운 미래 등의 양념을 말입니다."

그렇게 요리사는 말했다. 그러나 왕은 잠시 말이 없다가, 이윽고 그 요리사에게 많은 선물을 주고 그를 전속요리사의 직책에서 해고시켰다고 한다. (발터 벤야민, 오디-오믈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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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 지로두 - 왕의 오믈렛
    from 에그몬트 서곡 2023-11-05 13:28 
    '서양우화집'(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에서 '왕의 오믈렛'(장 지로두)을 읽었다. 내용은 발터 벤야민의 '오디 오믈렛' 또는 '산딸기 오믈렛과 같고 - https://blog.aladin.co.kr/790598133/15034637 - 서술방식과 세부사항의 차이가 있다. 벤야민은 제3자인 화자가 이야기를 전하는 형식으로, 지로두는 요리사의 1인칭 시점으로 썼다. 그리고 지로두의 오믈렛은 그냥 오믈렛이다. 지로두 - Daum 백과 https://100.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