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 - 오디 오믈렛

'서양우화집'(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에서 프랑스의 작가 장 지로두가 쓴 '왕의 오믈렛'을 읽었다. 내용은 발터 벤야민의 '오디 오믈렛('얌전한 레슬러')' 또는 '산딸기 오믈렛('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과 같고 - https://blog.aladin.co.kr/790598133/15034637 - 서술방식과 세부사항의 차이가 있다. 벤야민의 글은 제3자인 화자가, 지로두의 글은 요리사가 직접 말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지로두의 오믈렛은 결정적으로(!?) 그냥 오믈렛이다.


올해 번역출간된 '블루베리 오믈렛'이란 프랑스 그림책을 발견했다. 





어느 날 밤늦게 왕의 부름을 받고 침전(寢殿)으로 들게 되었습니다. 한참만에 뵙는 왕의 얼굴은 그날따라 이상하리만큼 쓸쓸해 보였습니다. 한 왕국의 모든 것을 손아귀에 거머쥐고 있는 자의 그런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나는 선친을 따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퇴각을 거듭하고 있었지. 그러다가 우리는 길을 잃어버리고, 어느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게 되었지. 그곳을 이리저리 헤맨 끝에 모두들 배가 고프고 탈진하여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어. 그때 계곡 동편에서 날이 훤하게 터 오고 있었지. 그런 새벽에 그대가 이 오믈렛을 만들어서 내게 바쳤소. 한데 그걸 한입 떠서 먹자마자 이상하리만큼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뭔가 알 수 없는 새로운 희망이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소. 그때 나는 어린 나이에 불과했건만 그런 것들을 모두 또렷하게 기억할 만큼은 되었지. 그래, 어떤가? 그대도 아직 그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가?"

"한데 폐하, 신의 생각은 이러하옵니다. 당시 폐하께선 어린 왕자님의 신분으로서 맨 처음 생명의 존귀함을 접했습니다. 전쟁의 참담함은 물론이며, 적군에 쫓기는 불안한 현재, 더불어 암울하게 닥쳐올 미래 등등 그 모든 것들이 양념처럼 어우러진 그런 음식을 드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오늘의 음식에 그런 것들이 첨가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어찌 폐하께서 지금 이 오믈렛에서 그 새벽의 맛을 찾을 수 있겠나이까?"

"오늘 그대의 말은 전부 맞는 이야기였소. 이젠 그만 물러가 쉬도록 하시오."

그런 며칠 후 나는 왕의 전속요리사에서 해고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쉰다섯 해 만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내게 왕은 남은 생애 동안 풍족하게 쓰고도 남을 만큼의 커다란 은급을 내려주었습니다. (장 지로두, 왕의 오믈렛)

장 지로두(Jean Giraudoux, 1882-1944)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다. 희곡의 인상주의 형식을 새로이 창안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트로이 전쟁은 일어나지 않으리』 등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