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 빈, 내게 너무 완벽한



빈 도시계획도 1858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즈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2'에서 읽은 오스트리아 빈의 대성벽 해체와 근대화가 재미있어서 https://blog.aladin.co.kr/790598133/14951749 살림지식총서 '빈 - 예술을 사랑하는 영원한 중세 도시'(인성기 지음) 중 '프란츠 요제프 1세 시대의 빈' 편으로부터 '건축: 링의 역사주의 건축 양식'의 내용을 발췌한다. 유시민 작가가 그의 책에서 언급한 쇼르스케의 책 '세기말 빈'이 여기에도 인용되고 있다. 인성기 교수의 저서 '빈 모더니즘'도 올려둔다. 


아래 발췌글 처음에 황제가 성곽 해체 명령을 내리는 해가 1865년이라고 나오지만 오기인 것으로 보인다. https://en.wikipedia.org/wiki/Vienna_Ring_Road 1857년이다. 





1865년 황제 요제프 1세는 유서 깊은 중세 도시 빈47)을 에워싸고 있던 성곽을 해체하라고 명령했다. 이미 세계적 대도시로 성장한 빈에서 약 4km 길이의 성곽은 교통의 흐름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1848년에 일어난 시민혁명도 웅장한 성곽의 해체를 촉진했다. 봉건 왕조 타도를 외치는 시민혁명군이 성곽 뒤에 숨어서 저항했던 것이 황제의 기억 속에 불쾌하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19세기 초만 해도 빈은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여전히 중세 도시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슈테판 대성당을 중심으로,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성장한 유기체 도시였다. 왕궁과 귀족 그리고 성직자들의 궁전이 구시가지(1구)에 몰려 있었으며, 그 외곽 지역(2‒9구)에는 돈 많은 부르주아들이, 그리고 외곽 순환도로 ‘귀어텔Gürtel’48) 바깥 쪽(10‒23구)에는 도시 노동자들이 모여 살았다. 그러나 19세기 말 부르주아들은 오히려 쇤브룬 궁 바깥 14구 히칭이나 19구의 그린칭 등, 빈 숲의 고급 주택가로 빠져나가 도심은 오히려 저렴한 호텔과 상점들이 모여 있는 상업 지구가 되었다.



이런 추세에 따라 빈 당국은 성곽이 해체된 자리에 현대적 불바르(번화가)를 건설하기로 계획했다. 빈은 중세 도시에서 국제도시로 탈바꿈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유태계 부르주아들이 투자했으며, 유명한 건축가들이 건물을 설계했다. 그 결과, 성곽을 따라 극장, 의회, 오페라하우스, 중앙우체국, 은행, 증권거래소 등 현대적 건축물들이 잇달아 건설되었다. 오스만 투르크 군대가 진격해 와 빈을 에워싸고 막사를 설치했던 넓은 공터에는 대학, 시청, 박물관들을 세웠다.


그러나 새롭게 건설된 빈의 모습은 현대 도시와는 거리가 먼 구식 바로크 도시의 형상이었다. 오토 바그너가 설계한 우체국 은행의 청년 양식 빌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다양한 전통 양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부르크 극장은 바로크 양식, 시청은 신고딕 양식, 의회당은 그리스 고전주의 양식, 자연사 박물관과 예술사 박물관 그리고 대학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다. 건축사학자들은 이런 다양한 양식들의 공존을 ‘역사주의 양식’이라고 부른다. 일반인들도 그 모습을 ‘링 스타일’이라 부르며 조롱했다. 미국의 역사학자 쇼르스케는 그 모습이 빈 시민계급, 특히 건축 기부금을 많이 제공한 유태인 갑부들의 정체성 부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49) 그들은 빈 귀족의 바로크적 탐미주의를 흉내 냈다는 것이다.


47) 오늘날의 1구(1Bezirk), 즉 구시가지에 해당하는 지역.

48) ‘허리띠’라는 뜻임.

49) Carl E. Schorske, Wien. Geist und Gesellschaft im Fin de Siécle. Aus dem Amerikanischen von Horst Günther 2, S.Fischer, 1982,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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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빈의 역사주의 건축
    from 에그몬트 서곡 2023-10-02 21:47 
    [정태남의 TRAVEL & CULTURE | 오스트리아 빈(WIEN) ‘음악의 성지’에서 환희를 맛보다]http://jmagazine.joins.com/forbes/view/337948: 유시민 작가가 쓴 '유럽 도시 기행2'의 빈 항목에서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성벽 해체가 빈 근대화의 분수령이라는 대목을 읽고 관련 사항을 찾다가 이 기사를 발견하고 읽은 후, 이 필자가 쓴 책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의 빈(비엔나)과 도시 건설 부분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