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펙토르 - 장미를 본받아 ft.백수린

백수린은 외국 여성 작가들이 쓴 두 개의 단편을 읽고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를 썼다고 '여름의 빌라' 작가의 말에 적었다. 그 두 소설의 제목을 저자는 나중에 구체적으로 밝히는데 그 중 하나는 소설집 '달걀과 닭'(배수아 역)에 실린 브라질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장미를 본받아'이고 나머지 하나가 샬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노란) 벽지’다. https://wuman.co.kr/program202101 참고. ('장미를 본받아'는 이미 따로 포스팅했다.) 길먼의 소설집 '내가 마녀였을 때'(장지원 역)에 수록된 저자의 ‘내가 누런 벽지를 쓴 이유’는 '누런 벽지'의 탄생담을 담고 있다. 이 글로부터 일부 발췌한다.  


[억압 받는 여성의 자아를 들춰낸 연극 - 2014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케이티 미첼 연출의 '노란 벽지(Die gelbe Tapete)']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11869


* 샬롯 퍼킨스 길먼 Charlotte Anna Perkins (Stetson) Gilman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3g1383a


배해선 배우가 읽은 오디오북 '노란 벽지'를 들었다. 낭독극 또는 모노드라마 느낌이 들어 흥미롭다.

The Yellow Wallpaper (1899 edition cover)PD-US, https://en.wikipedia.org/w/index.php?curid=13257718

여러 해 동안 나는 우울증과 그 이상의 증세로 발전하는 중증 신경쇠약을 꾸준히 앓았다. 이러한 증상을 겪은 지 3년쯤 되자, 간절한 믿음과 약간의 희미한 희망을 품고 전국 최고라는 저명한 신경 질환 전문가를 찾아갔다. 그 현명한 남자 의사는 나를 침대에 눕히고 휴식 요법을 처방해주었다. 아직 신체 상태가 좋아 즉각 반응이 나타나자 문제가 그다지 없다고 결론을 내리더니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며 근엄하게 조언했다. ‘최대한 가정적인 삶을 살라’, ‘지적인 삶은 2시간만 가져라’, ‘펜이나 붓, 연필에는 평생 절대 손도 대지 마라’고. 그때가 1887년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3개월 정도 의사의 지시를 따랐고, 내가 볼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완전히 폐허가 되기 일보 직전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아직 존재하는 지성의 나머지를 이용하고 현명한 친구의 도움을 받아, 저명한 전문가의 조언은 바람에 날려버리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 아슬아슬한 탈출에 당연히 기뻐하며, 뜻을 담고자 이야기를 윤색하고 살을 붙여(나는 실제로 환각을 보거나 벽지에 반감을 품은 적이 전혀 없다) <누런 벽지>를 썼고, 나를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던 의사에게 한 부를 보냈다. 그 의사는 전혀 알은척하지 않았다.

여러 해가 지나고 나는 훌륭한 전문가가 <누런 벽지>를 읽고 신경쇠약 치료법을 바꿨다며 자신의 친구들에게 그동안의 잘못된 처방을 인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내가 <누런 벽지>를 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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