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9월9일 - 그러고 보니 9가 둘인 날인데 아직 덥다. 이번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정리하려고 마음먹었던 일을 하자. 백수린 작품집 '여름의 빌라'에 수록된 단편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에 관한 사항이다. 저자는 외국 여성 작가들이 쓴 두 개의 단편을 읽고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를 썼다고 '여름의 빌라' 작가의 말에 적었다. 그 두 소설의 제목을 저자는 나중에 구체적으로 밝히는데 그 중 하나가 소설집 '달걀과 닭'(배수아 역)에 실린 브라질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장미를 본받아'이다. https://wuman.co.kr/program202101 참고. 





Pixabay로부터 입수된 Oberholster Venita님의 이미지




라우라는 화장대를 정리하다가 문득 동작을 멈추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녀 자신 또한, 도대체 얼마 만인가? 가정적인 매력이 있는 얼굴, 머리카락은 커다랗고 창백한 귀 뒤로 넘겼다. 갈색 눈동자, 갈색 머리카락, 황갈색의 매끈한 피부. 이 모두가 더 이상 아주 젊다고는 할 수 없는 그녀의 얼굴에 소박한 여인이라는 인상을 선사했다.

아, 그렇다, 그녀가 하려던 일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녀는 크림빛 레이스 칼라가 달린 갈색 드레스를 입을 것이다. 목욕을 마친 뒤에. 성심 학교에 다니던 무렵 그녀는 정리정돈과 청결에 신경을 썼으며 위생을 중시하고 무질서에 대해 모종의 공포심을 가졌다.

의사가 "식사와 식사 사이에 우유를 마시세요, 절대 위장이 비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불안감이 생기니까요"라고 말한 이후로, 그녀는 불안에 대한 그 어떤 염려도 없는데도, 불평 한 마디 없이, 한 모금 한 모금, 매일매일, 한 번도 잊지 않고, 두눈을 꼭 감은 채, 살짝 열정적으로, 자신 안에서 그 어떤 불신의 흔적도 발각되지 않도록, 지시를 그대로 지켰다.

돌아오니 얼마나 좋은가. 정말로 돌아오니. 그녀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실 그녀는 하루 종일 한 순간도 편히 쉬지 않았다. 다시금 피곤해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가.

화성의 완벽한 종족이 지구로 온다면 인간들이 피곤에 지쳐 늙어가는 걸 보고 놀라면서 동정할 것이다. 인간으로 살기, 피곤을 느끼기, 매일매일 좌절하기, 그 안에 좋은 점이 얼마나 많은지 상상도 못 하면서 말이다. 오직 비법을 아는 자만이 악덕의 미묘함과 그로 인한 삶의 정화를 이해할 것이다. - 장미를 본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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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란 (누런) 벽지와 백수린
    from 에그몬트 서곡 2023-09-11 13:47 
    백수린은 외국 여성 작가들이 쓴 두 개의 단편을 읽고 '아직은 집에 가지 않을래요'를 썼다고 '여름의 빌라' 작가의 말에 적었다. 그 두 소설의 제목을 저자는 나중에 구체적으로 밝히는데 그 중 하나는 소설집 '달걀과 닭'(배수아 역)에 실린 브라질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장미를 본받아'이고 나머지 하나가 샬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노란) 벽지’다. https://wuman.co.kr/program202101 참고. ('장미를 본받아'는 이미 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