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 / 여름의 시간들

프루스트의 '존속살해범의 편지: 그리고 그 밖의 짧은 글들'에 수록된 '폴 모랑의 『연한 새순』 서문'(1920)으로부터, 그가 멘토라 부른 아나톨 프랑스의 문체론을 반박하는 대목의 일부를 옮긴다. 

아나톨 프랑스(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커먼즈)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23p4343a (아나톨 프랑스)


보들레르(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커먼즈)







애석하게도 이미 뵌 지가 20년이 넘은 나의 멘토인 아나톨 프랑스가 최근 《르뷔 드 파리》에 문체에서 개성은 모두 피해야 한다고 주장한 칼럼을 발표했다. 그러나 폴 모랑의 문체가 개성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내게 여전히 호감을 간직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프랑스 씨를 만약 다시 뵐 수 있다면 사람들이 느끼는 방식이 모두 다른데 어떻게 하나의 문체만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을 수 있는지 여쭙고 싶다. 문체의 아름다움은 생각이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이자, 사물들 사이에 존재하지만 여러 우연에 의해서 잊혔던 필연적인 관계를 발견하고 맺어준 또 다른 증거인데 말이다.

"18세기 말 이후 우리는 제대로 쓰는 법을 잊었다." 그의 이 주장에 대해서는 무한대로 논쟁할 수 있겠다. 19세기에 엉터리 글을 쓴 작가들이 많았던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아나톨 프랑스 씨가 승리를 자축하기에는 이르다. 문체에 대한 내 생각은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그런데 정말로 19세기는 그가 믿는 것처럼 엉터리로 쓴 작가밖에는 없는 것일까?

보들레르의 문체는 객관적이며 오랜 충격을 남긴다. 그보다 더 강렬한 문체를 선보였던 작가가 있었던가? - 폴 모랑의 『연한 새순』 서문 (1920년 《르뷔 드 파리》) * 폴 모랑의 『연한 새순』은 「클라리스」, 「오로르」, 「델핀」이라는 세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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