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복종에 관하여 범우사상신서 38
에리히 프롬 지음, 문국주 옮김 / 범우사 / 1996년 12월
평점 :
품절


에리히 프롬, <불복종에 관하여>, 범우사, 1987.




프롬, 그 사람 이름을 들은 건 대학시절이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교과서 이외의 책을 별로 읽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대학생활이라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게 없었다. 최소한 1학년 땐.

어찌어찌 동아리 생활을 하며 사회과학 서적을 보기 시작했지만, 천성적 게으름에 익숙치 않은 책보기라 쉽진 않았다. 그 시절 처음 프롬이라는 이름을 접했다. 그러나 그건 형의 책장에 꽂혀 있는 제목이었을 뿐, 정작 내가 그 책을 읽은 건 아니었다.

그리고 잊혀졌던 이름. 근데 강준만에 의해 프롬의 글은 내게 다가왔다. 강준만 왈, 지금이야말로 프롬을 읽을 때라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구입했는데, 아니게 아니라 이 책도 1987년에 나온 것이다. 내가 대학시절에 해당할 그 때 말이다. 그러니 나는 항상 뒷북 인생이다. 남들이 다 떠들고 지나간 뒤에라야 찾아보는 그런 인생이다.

이 책엔 불복종 문제 외에도 기독교 사상이라든지, 노인 문제라든지, 여러 에세이적 사회비평적 글이 실려 있다. 물론 핵심은 제목 그대로 '불복종'이다.

제목으로 뽑은 '왜 인간은 그다지도 쉽게 복종하는가' 역시 예전에 강준만이 뽑았던 제목이다. 새삼 그의 선별력에 감탄한다. 핵심이다. 왜 사람들이 쉽게 복종하고 마는지.

사실, 기대를 했던 건 아니지만, 역시 이번에도 우리 교무실의 복종 문화는 나를 기겁하게 만들었다. 차등성과급, 장차 교사 정리해고의 신호탄인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고 논의하고 반대의견을 모으자는 서명에 우리 교사의 1/5인 11명만이 서명을 했다. 전교조 교사 5명을 빼면 고작 6명의 교사가 동참했을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복종'했다. 권력에.

참담했다. 전혀 예상치 않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건 자신들의 신분 불안 문제와 직결된 것이기에, 이렇게까지 처첨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프롬은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 국가나 교회 혹은 일반적인 여론에 복종하고 있는 동안에는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사실 내가 복종하는 힘이 어떤 것이든 간에 이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제도 혹은 인간은 언제나 여러 가지 형태의 강제를 사용하고 있으며 스스로 전지전능하다고 거짓된 주장을 한다. 나는 복종을 통해 내가 경배하는 힘의 일부가 되고, 그리하여 스스로 강해진다고 느낀다."

쉽게 말해 옳고 그름에 대한 주체적 판단보다, 내게 이로우냐 불리하냐 하는 생존본능적 영악함이 주로 작동한다는 말이다.
"또 그 힘이 나를 대신해서 결정해 주므로 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느낀다. 또한 그 힘이 나를 지켜주기 때문에 결코 외로울 수 없으며 이 권위가 나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며...". 이것이다. 자기 합리화는 이렇게 일어난다.
그래서 "조직화된 인간은 불복종의 능력을 잃게 되고 심지어 자신이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된다."

하지만 "역사상 이 시점에서 회의하고 비판하고 불복종하는 능력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종말을 막을 수 있는 모든 것이리라"

사실 인간은 아담과 이브의 불복종에 의해, 프로메테우스의 불복종에 의해 역사를 만들어갔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현장은 맹목적 성실함을 가장 훌륭한 미덕으로 여긴다. 창의력이 없어진다. 생명이 없다. 그게 모범생이다.

결국 이것을 이겨내는 것은 '로봇처럼 배부른 노예'임을 벗어나 '자유에 따른 책임을 두려워 하지 않는' 그런 주체적 인간이 되는 길밖에 없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가 우선인 것이다. 이걸 잃어버릴 때 지금처럼 "사람들은 더욱 많은 교육을 받고 있지만, 이성, 판단력, 신념은 더욱 쇠퇴하고 있다. 기껏해야 그들의 지식이 축적될 뿐, 사물의 심층을 꿰뚫어 보는 능력과 개인이나 사회의 삶의 근저에 흐르고 있는 힘을 이해하는 능력은 점점 고갈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의 상품성에만 신경을 쓴다. 자신에 대한 가치감이 스스로의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남의 판단에 의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남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그의 안전은 순종하는데 있고, 무리 속의 한 마리로 존재하는 데 있다."

그건 인간이 아니다. 무리 속의 한 마리일 뿐이다. 복종의 대가로 얻어지는 그 안락감의 실체는 사실 바로 이것이다. 하긴 그러면 어떠랴, 스스로 한 마리가 됨을 스스럼없이 선택하는 마당인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