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 내 발바닥 - 김곰치 르포. 산문집
김곰치 지음 / 녹색평론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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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곰치, <발바닥 내 발바닥>, 2005, 녹색평론사




그의 글을 읽으며 기가 죽는다. 어쩜 표현이 저리도 초봄 돋아난 싹과 같을까. 섬세하다.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촉수가 발달해 있다. 그걸 풀어내는 글 맛도 예민하다. 이래저래 나는 기가 죽는다. 김곰치처럼 글 잘쓰고 싶다.

얼마 전부터 <녹색평론> 내외 표지엔 김곰치의 이 책이 소개되어 있다.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인가 하는 책으로 한겨레 문학상을 받았다는 정도의 정보는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그를 모른다. 그의 글을 읽어 본 적이 없다. 이 책을 보니까 <녹색평론>에도 그리고 <한겨레>에도 제법 글을 실었던 모양인데, 내겐 그 기억이 없다. 그와의 감수성 차이 때문에 그의 간지러운(?) 감수성이 별로 와 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과거 투박했던 나의 감수성을 생각해 볼 때, 충분히 그랬을 거라고 본다. 내가 <녹새평론>이나 <한겨레>는 제법 꼬박꼬박 읽었지 않는가. 근데도 그의 글을 본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분명 예전엔 그의 글이 내 코드와 화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다.

근데 이번에 읽어보니 그의 글에서 맛을 느낀다. 그 섬세한 맛을. 내가 달라진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연약하군" 아니면 "대책 없이 근본적 감성만 플어 놓으면 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라며 그냥 넘겼을 ,그런 취향이다. 책 이리 저리 뒤져 보니 부산 출생 학번은 88인덴 나이는 그보다 하나 더 작은 것 같다. 그러니 나보다는 4-5년 후배인 셈인데, 어디선가 섬세하고 여린 인텔리 냄새가 짙게 묻어난다 싶다. 아닌 게 아니라 서울대 출신이다. 글에서 짐작이 되었다.

어쨌거나 그는 나를 기죽게 만든다. 사물을 대하는 그의 태도도 그렇지만 거기서 잡아내는 예리한 통찰력, 그리고 플어내는 글 재주.

난 그냥 팍팍한 글을 쓴다. 나도 저런 표현을 해 보고 싶다.

물론 글 재주만이 전부는 아니다. 속에 담긴 메시지가 더 중요하긴 하다. 생태 환경문제를 대하는 자세가 근본적이다. 물론 그는 생태환경운동보다는 생명운동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맞다. 근본은 생명이다.

그를 근본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환경문제에 있어서 비타협적 자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사패산도, 천성산도, 새만금도 그렇다. 지율 스님이 이야기한 '대안은 없다'라는 말을 신뢰한다. '대체 노선'이라는 건 주류(서울, 가진자 등)를 중심으로 또 다른 비주류에게 피해를 끼치며 비본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비겁한 행위에 불과하단다. 그런 점에서 그는 대화와 타협을 모색하는 소위 메이저 환경운동 단체에 강한 불신을 보인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좀 무대책이라는 생각도 없지는 않다.

천성산 우회가 아니라 무조건적 공사중단이다. 고속전철 자체에 대한 반대다. 물론 정서적으로는 그 말이 맞다. 그러나 그것으로 어느 만큼 설득력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세상을 너무 무시하고 있다는 우려도 조금은 있다. 지식인의 관념에서 나온 게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인가 그는 더욱 더 현장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책 제목도 '발바닥'이다. 그 만큼 머리 굴리기가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고 썼다는 이야기겠다. 근본적 생태주의를 표방한다면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는 그에게서 영감은 얻지만 감동까지는 얻지 못한다. 현실을 너무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문제의식을 절대로 놓치면 안 되겠다.

사북사태를 진단한 시선도 그렇다. 그것이 운동이 되지 못하고 사태로 남아있는 건 너무도 즉자적인 사건이라서 그랬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분노가 너무(?) 험하게 표출되었다. 어용 노조 위원장의 처가 집단 린치를 당하고 거의 살해 위협까지 당했었다. 그래서 대국민 설득력을 갖기가 어려웠던 사건이다. 그러나 그 노동자들의 진정성 만큼은 이해 되어야 한다. 김곰치는 그 '폭도(?)'들의 행동을 '전율스런 생명운동'이라고 묘사했다. 본질을 보는 눈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그걸 보듬고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그의 입장에도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들의 과격한 행위가 그대로 정당성을 얻을지는 의문이다.

그냥 재미있었던 표현 몇을 옮긴다. 그의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에 부러움을 느끼며.

"언뜻 모든 것을 용서한 사람의 평온 같기도 하고, 용서하고 또 용서했는데 왜 아직 이리 용서할 게 많이 남았나, 하는 탈진의 표정 같기도 하다."
"불치병 환자들의 방자한 기세가 놀랍다."
"장내에 팽팽히 흐르는 기운은 돈독이 잔뜩 오른 사악한 종류의 것이었다."
"방금 카지노에서 아줌마의 이 싹싹한 친철 수십 그릇을 날리고 왔다."
"상투적 운동방식이 아니라 전존재적 결단"
"사랑에 대안이 없는 것처럼 생명에도 대안이 없다."
"축 발전, 발전이란 무엇인가, 언제까지 발전이 '축'하기만 하면 되는 일일까"
"사람만 놓고 볼 땐 성실하고 선량해 보이는"
"달님, 해님 말고 비님도"
"생명의 눈으로 이 문제에 답해 달라"
"토론이라는 이름의 끊임없는 회의는 말에 대한 건강한 감각을 잃게 하며 정신을 지치게 합니다."
"조직에도 이기주의가 흐르면서 조직이 활동가들의 생명 에너지와 감성을 탕진하며 조직 자신만 강해지는 경우는 없는지..."
"뭔가 음산한 고요는 더럽다는 느낌이 들기보다 알 길 없이 끔찍하다는 기분이 더 강하게 들던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들은 똥과는 관계 없다며 깔끔떨며 똥을 잊고 사는 별종의 존재로 안전할 수 있을까."
"권부의 귀하신 분들도, 어여쁜 여자 탤런트도, 목사님도 스님도 너도 나도 이 우리 모두가 누는 똥, 그것은 단지 한줌의 똥이 아니고 그 수백배 되는 엄청난 양이 똥물로 부풀려 버려지고 있다. 똥 누는 곳에서 똥냄새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인데 .."
"정보 속도전에 밀쳐지는 나"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 첫걸음은 내딛어져 버렸다. 첫걸음은 다음 걸음을 간절히 기다린다는 것을 나는 안다."
"세상의 주류에 대한 반감"
"진정한 독자는 작가 자신뿐이로구나"

마지막 인용문, 진정한 독자는 작가 자신 뿐이라는 말에 공감과 비애와 위안과 냉소가 같이 일어난다. 대가마저 저렇게 생각하는데, 나야 당연하다 그러니 더 매진할 뿐이다. 내 글의 가치를 못 알아보는 세태를 통탄할 게 아니라.

그리고 뒤에 붙이는 글 하나. 김곰치의 글보이 아니라 그 글의 표사원고를 쓴 김종철의 글에서 인용한다.
"나는 인도 국가와 엘리트들에 의해 사랑받는 작가가 아니라, 인도의 강과 계곡의 기억 속에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인도의 작가 아룬다티 로의의 말이라고 한다. 나는 어떤 글쟁이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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