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로 보는 한국근현대사 - 한국과 독일 일상사의 새로운 만남
이상록 외 지음 / 책과함께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이상록 외, <일상사로 보는 한국근현대사>, 책과함께, 2006.




한양대 임지현 교수의 흐름에 한 때 나는 크게 반발했다. 그의 민족주의 비판에 대해서다. 운동권으로부터 입은 상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 역시 이제는 임지현의 입장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의 성향과는 무관하게 그의 논지는 옳다. 민족은 근대의 산물이며, 그의 민대로 '민족주의는 반역'일 뿐이다.

아마 그의 후학들이지 싶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사람들 말이다. 그들이 독일 에어푸르트 대학교 역사인류학연구소와 함께 했던 워크숍 '일상사, 그 가능성과 한계'에서 발표했던 글들을 모은 책이다.

일상사, 솔직히 아직은 어렵다. 나도 어렵지만 이 책을 쓴 사람들 역시 아직은 어려워하는 것 같다. 주류 실증주의 역사학의 눈치를 보는 게 너무 강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들 역시 기본적으로는 한국적 논문 시스템 밑에서 들을 썼었다. 그런 사람들이라 일상사로의 전환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글을 풀어내는 방식을 보면 과거의 글쓰기와 별 차이가 없다. 그래도 시도 그 자체만으로도 큰 발전이다.

나 역시 고민한다. 박사 논문을 써야 하는데, 이런 일상사의 방법을 적용해 보고 싶긴 하나 두렵다. 아직까지 그런 방법에 익숙치도 않고 또 그런 방법을 썼을 때, 기존 학계의 심사과정을 통과할 수 있을지도, 그리고 그런 일상사적인 방법을 쓰기 위한 자료 수집에도 자신이 없다. 그래서 여전히 망설여진다. 하지만 매력적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무엇 때문에 매력적인가? 거대 담론이 놓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민족이라는 코드 외에 그들이 개인, 가족, 친족, 지역, 공사조직, 젠더와 같은 다양한 차원에서 경험하고 실천했던 삶과 행위는 오랫동안 역사가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결국 식민지 민중들은 민족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겪은 수난과 저항의 역사는 회복할 수 있었으만 일상적 삶의 조체로서는 자신들의 역사를 회복하지 못했다"

쉽게 말해 일제 강점기의 경우, 수난과 저항의 역사만 교과서에 실려있을 뿐, 그들이 무엇을 주로 먹었는지, 화장실의 구조는 어땠는지, 그때의 침구류는 어땠는지, 놀이는 무엇이었고, 각종 의례는 어떠했는지, 그 속에서 그들이 무슨 애환을 느끼며 살았는지에 대한 연구는 부족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일상을 이제라도 보듬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도 많다. "반이성주의, 계몽에 대한 부정, 값싼 패배주의, 파시즘에 대한 책임 면제" 따위가 비판의 핵심이다. 모두 맞는 지적이다. 일상사가 자칫 호기심 채우기 수준에 머무르고 만다면, 그리하여 구조와의 결합을 시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위에서 염려하는 비판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쟁터는 뻔하다. 그러나 그 전장에서도 일상은 있다. 이런 것에 주목하려는 독일 학자의 시선이 감탄스럽다. 폭력 그 자체에 대한 깊은 고민도 있다.

반면 학국학자들의 연구는 모두 사례 연구다. 이론 그 자체로 들어가고 있지는 못하다. 그리고 그 시기는 대부분 일제 강점기이다. 나름대로 충분히 소화하고 쓴 글도 있지만, 무늬만 일상사인 경우도 더러 보인다.

여성 잡지 상담란을 분석한 연구는 흥미롭다. 그 속에서 당시 여성들의 고민을 잡아낸 것이다. 여기서 첩 제도문제는 현재 생각하는 것과 달리 상당한 비중을 가졌던 당시 사회현상이었음을 보게 된다. 일전에 가계부를 모아 둔 것을 가지고 분석을 시도하겠다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것도 괜찮은 시도라고 여겨진다.

계속 논란이 되는 시대 중 하나는 박정희 때다. 그가 한국현대사에 끼친 해악이야 말할 바 없겠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일상에선 그 시대를 풍요롭게 기억한다. 긍정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재단되지 않은 역사, 민중들 스스로 기억하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의미부여할 것인가. 이게 민중들 이야기를 그대로 일상사로 여기지 않고, 제대로 된 분석과 의미 부여를 통한 일상사일 것이다.

어쨌거나 나 역시 빨리 활로를 마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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