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9. 13. 화

1.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
크게 보면 여성의 사회적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해군 1955년, 해군 대위직에서 불명예제대를 한 박인수가 자신을 해군 대위라고 속이고 몇십명의 여자에게 결혼하자고 하여 잠자리를 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공무원 사칭과 혼인빙자간음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공무원 사칭에 대한 혐의만 인정받고 혼인빙자간음 혐의는 인정받지 못했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그 이유는 박인수와 잠자리를 한 여성들은 문란한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판사는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고 이야기까지 했다. 이 사건을 미루어보았을 때 이 시대에는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중요시하는 사회였다. 그 예시와 사건으로 자유부인, 허벅다리 부인, 메이퀸 호텔 추락사 등을 알려주고 보여준다. 성폭행 사건 때문에 열린 재판에서 이미 이렇게 된 거 서로 결혼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어이없는 사례도 있다.

이 시대는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전쟁 이후 모두가 자유와 평등을 외치게 되는 과도기적인 시대였다.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여기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사회. 2022년 현대에 들어서는 과연 여성은 그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볼 수 있을까? 요즘엔 어쩌면 그때와는 다르게 더 복잡하고 예민하다고 볼 수 있다. 요즘엔 극단적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이 된 성별싸움 때문에 이런 문제에 대해 얘기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사실 어느 집단에나 극단적인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직도 우리는 제대로 된 성평등 인식을 배우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채 단편적으로, 극단적인 주장만을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이러한 현상이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인식 문제는 단순히 몇년에 걸쳐 바뀌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예전보다 평등을 중시하는 현재도 미래에 가서는 후퇴적으로 보일 수 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평등을 중시하는 현재에도 이런 성별 문제는 일어나고 있는데 어째 옛날보다 더 언급을 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되어 안타깝다. 정작 정말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인터넷의 과열 때문에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성은 왜 이렇게 사회적 약자 취급을 받을까? 얕은 내 지식을 이용해 말해보자면 신체적 차이 때문에 생겨난 남성중심사상이 아직까지도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고대에는 사냥을, 중세에는 전쟁을, 우리나라의 과거에는 노동 중심 사회였다. 이때에는 신체적으로 뛰어난 남성이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었다. 그때에는 바깥에는 남성이, 집 안에서는 여성이 담당하는 것이 당연해졌고 전쟁이나 노동은 사람의 생명, 생계와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에 더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 때 생겨난 남성중심사상이 아직까지는 내려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예전처럼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지도 않고 일을 하는 것이 꼭 신체적 노동일 필요는 없어졌다. 또한,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는 인식까지 퍼진 현재 성평등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얘기할 때 여성이라는 범위는 넓다는 것과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였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화두되는 것 같다.
솔직히 나도 이런 문제를 좀 피하는 편이었는데 그래도 성차별적인 발언은 되도록이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요즘 드는 생각은 우리 세대가 진보적인 아랫세대와 보수적인 윗세대에 낀 세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역할에 따라 미래가 달라지지는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문제에 대해 아주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실생활에서 조금이라도 경계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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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9. 02. 금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떻게 회피에서 벗어났나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도 어린 시절 굉장히 예민하고 소극적인 아이였다. 오죽하면 매일 옷을 바꿔입는 것에도 예민하여 매일 똑같은 옷을 입었다고 한다. 또한 어머니의 병 때문에 미야자키의 마음 속 불안도 커져만 갔다. 어머니는 오랜 시간 투병을 했기 때문에 미야자키는 투정이나 불만을 쉽게 터놓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게다가 어머니는 투병 생활 중이었지만 존재감이 강한 여장부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칭찬을 거의 받은 적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안전 기지로써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청년기까지 그는 자신의 주장을 잘 펼치지 못하였다. 만화가라는 자신의 꿈을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가쿠슈인 대학에 진학할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안전 기지 역할을 해주었던 사람은 미야자키의 형과 중학교 시절 은사님이었다. 당시 가쿠슈인 대학에는 만화 동호회가 없어 아동문학 연구회에 드나들었다. 그는 학생운동에 참여하고 나서부터 회피하는 습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당시에는 좌우 이념이 아직 대립하던 시기였는데 대학가에는 좌익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처음에는 정치에 관심없던 미야자키는 서서히 그 분위기에 감염되었다. 미야자키의 친가는 전쟁 중 군수공장을 경영하며 큰 돈을 벌어들인 것에 대한 죄책감도 한 몫했다. 그 시절을 부끄럽게 여겨 어머니와 아버지에세도 반항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그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며 그 지배 속에 있던 자신을 밖으로 내걸고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도에이 동화에 취칙하게 된 미야자키는 춘투 기간에 일어난 사내 노동운동에서도 선두에서 깃발을 휘둘렀다. 그후 정치적 활도을 하지는 않았지만 약자를 위해 싸우려는 마음은 그의 작품 세계에 큰 기조를 이루게 된다. 또한 미야자키는 생텍쥐베리에게 영향을 받아 어린이를 테마로 다루었다.
이처럼 회피적이고 소극적이었던 미야자키는 자신 이외의 존재를 위해 싸우는 공동체 정신으로 자신을 일채화 시켜 가면서 회피와 책임에서 도피하는 행동을 중단하고 전향적인 길을 택한다.

몰랐는데 오늘이 책 마지막이엌ㅅ다. 마지막 챕터 자체는 좋은 말이라 통째로 밑줄긋기에 넣는다.

다른 사람과 인연을 맺는 일에는 번민이 동반된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분명히 하려면 자신이 누구인지 밝혀야만 하고, 책임이나 실패의 위험부담도 생겨난다.

그러니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가는 게 더 편하고 안전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어느 경우에도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책임이나 위험부담도 회피하며 살아가는 것만큼 공허한 삶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아가는 것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위험을 피하려고 힘들게 찾아온 기회를 포기하거나 인생의 가능성을 좁혀버리면, 그것으로 정말 위험을 피했다고 할 수 있을까.
   
정말 필요한 것은 불안이나 공포로부터 도망치는 게 아니라, 그것들 앞에 과감히 자신을 드러내고 맞서는 게 아닐까. 불안이나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고 한다면,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것은 자신의 인생으로부터도 도망치는 것과 같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계속 도망쳐봤자 마지막 순간에는 죽음이 쫓아와 당신을 집어삼킨다. 스스로를 관 속에 집어넣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오고 관 속에 들어가게 된다. 마지막은 모두 똑같다. 죽으면 불에 타 재가 된다. 도망쳐도 소용없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즉 마지막은 파멸과 절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과만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모두가 패배자이다. 어떤 도전도 결과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마지막은 실패다. 이것은 불편의 진리이다.
   
우리는 그 결과를 선택할 수 없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도전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 그뿐이다. 도망치며 살 것인가, 불안이나 공포와 맞서며 살 것인가? 상처받는 것을 피하려고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계속 도망칠 수도 있고, 도망치는 것을 그만두고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며 살 수도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당신 자신의 몫이다.
   
거꾸로 말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도전할 수 있다. 결과는 실패라 하더라도 도전할 자유가 있는 것이다.
   
실패라는 결과에만 사로잡혀 살 것인가, 아니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가능성이라는 과정을 음미하며 살아갈 것인가. 결국 인생은 결과에 의미가 있지 않다. 그 묘미는 과정에 있다. 도전에 있는 것이다. 그것을 피하면 인생이라는 과일을 맛보지 못한 채 썩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과일은 어차피 썩게 마련이다. 그러니 썩기 전에 먹는 게 무슨 문제랴.

-알라딘 eBook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오카다 다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중에서 - P295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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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8. 25. 목
-행복한 결혼생활
톨킨이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에 두 사람은 결혼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톨킨은 곧바로 병사로 전선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그는 참호열(이가 옮기는 열성 전염병)에 걸려 후방으로 후송되어 다시 전선으로 복귀하지 않고 제대하였다.
그동안 장남이 태어나있었고, 돈을 벌기 위해 톨킨은 연구뿐만 아니라 생계를 위한 일에도 정성을 쏟았다. 이윽고 리즈 대학의 초빙을 받고 4년 후 32살의 젊은 나이에 교수로 승진한다.
그리고 다시 반년 후, 옥스퍼드 대학 교수로 선발되었다. 이디스와 어렵게 이룬 가정을 지켜야겠다는 톨킨의 결심 덕분이었다.
또한, 톨킨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아주 잘 대해주었다. 아무리 바빠도 매년 아이들을 위해 그림엽서로 된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어, 산타클로스가 보낸 것처럼 전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돈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톨킨은 시험관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수많은 강의도 다녔다.
원래 회피형 인간은 아이를 갖거나 가정을 꾸리는 일에 소극적인 경향을 보이지만 톨킨의 경우는 이디스에 대한 사랑과 그녀와 이룬 가정이 오히려 일에 대한 원동력과 삶에 대한 의욕을 제공해주었다.
이디스는 소극적인 성격이어서 별로 사교 모임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의 출신이나 교육 수준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교수 부인들의 모임에 섞이지 못했다.
하지만 밖에서 활동하지 않는 만큼 가정생활을 소중히 여겨 남편이 편히 직업에 매달릴 수 있도록 내조를 철저히 했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가정생활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남편과 아이들만이 그녀의 세계였던 것이 오히려 장점으로 발휘한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도망치지 않고 성가신 일에도 자신이 먼저 뛰어드는 적극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회피하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결정적인 열쇠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은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의지와 결단으로 살아가려고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주체성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을 위해서 첫 단계로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해야할 것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최근의 심리요법에서는 코미트먼트라는 것을 중시한다. 코미트먼트란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표명하는 것이다. 이것이 중시되는 것은 그것이 변화를 강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목표는 구체적일수록
강한 힘을 갖는다. 생각을 입 밖으로 내는 편이 행동을 유발하는 데 좋다.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결심을 명확히 해둬야만 변화가 찾아온다. 그리고 결심이란 타인에게 말함으로써 더욱 긴장감을 느껴 자신을 갈고 닦게 되어 강건해지게 마련이다.
심리 상담 같은 요법이 변화를 촉구하는 것도 이해받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면서 그것이 더욱 강한 결심과 각오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코미트먼트 효과이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바로 이 코미트먼트를 통해 명확한 의사 결정과 강인한 각오를 다져보면 인생이 전혀 새롭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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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8. 18. 목

-운명의 목소리에 따라라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대부분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우연하게 발생한다. 우리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위기는 찾아오기 마련이고 이는 기회도 마찬가지이다.
기회 또한 우리가 예상치 못한 곳, 사람에게서 나온다. 차이점은 그 기회가 왔을 때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을 것인가, 그 기회를 잡느냐이다.
이 챕터에서는 마리 퀴리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경제적인 이유로 공부를 포기하고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언니와 동생들의 학비를 마련하던 마리 퀴리는 그 집 장남과 사랑에 빠지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결혼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가 의사와 결혼한 언니가 파리로 올 것으로 권유했음에도, 그녀는 처음엔 거절하였다. 하지만 그 장남의 우유부단한 태도에 진절머리를 느끼던 마리는 그와의 사랑을 접고 파리를 건너가게 된다. 이것은 그녀가 기회를 잡은 것이다. 만약 그녀가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제안을 거절했다면 오늘날의 위대한 마리 퀴리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회피형 인간은 지금의 상황을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다는 교착 상태에 빠지기 쉽지만 외부에서 손을 잡아당겨 주면 의외로 움직인다. 만약 누군가가 손을 내민다면 그것에 순순히 매달려보자. 꼼짝도 않고, 아무것도 바꿔보려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회복된 애착 관계가 미치는 영향
에릭 에슨과 조안나 사손은 ‘속도위반‘으로 결혼했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에게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처음 에릭슨은 불안정한 자신이 결혼을 해도 되나 의심했지만 친구의 설득으로 결혼을 하게 된다. 조안나는 아이들을 보살피는 동시에 ‘제일 손이 많이 가는 아이‘인 남편을 보살펴주고, 원고를 읽은 후 정확한 지적을 해주는 등 남편의 지원자가 되어주었다. 조안나의 헌신은 불안형 애착을 가진 여성의 ‘강박적 보살핌‘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 조안나도 역시 어머니와는 원만치 못하여 불안정한 면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안나의 헌신에 의해 에릭의 위축된 자기애는 회복되었고, 자신감을 가지고 사회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에릭의 애착 상처는 치유되어 일에만 매진할 수 있었고, 동시에 아버지와의 관계도 개선되었다. 한편 조안나도 자신의 가족이라는 새로운 애착 상대를 손에 넣고, 그것에 헌신함으로써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상처를 공유한 사람들의 만남
회피형이든 불안형이든, 애착 장애를 가진 사라밍 결혼하는 경향을 보면 가장 흔한 것이 비슷한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공감을 느껴 결합하는 경우이다. 아동문학가 톨킨과 그의 아내인 이디스 커플도 마찬가지였다.
톨킨형제는 12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어머니의 후견인이었던 모건 신부는 한 하숙집에 톨킨형제를 맡기지만 그들은 거기서 불안한 생활을 보내게 된다. 그들의 사정을 알게 된 모건 신부는 다른 하숙집으로 그들을 보내고, 그 하숙집에는 소극적인 성격의 소녀 하나가 하숙하고 있었는데 그녀 역시 고아였고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가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그녀가 바로 이디스이다. 처지가 비슷한 둘은 서로에게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싶어하던 와중, 톨킨은 대학 진학 조건인 장학금 시험에서 떨어지자 모건 신부는 둘의 연애를 금지한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하숙집으로 옮겼고, 톨킨은 장학금 시험과 대학 입학시험에만 매진하여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톨킨은 대학 생활을 즐기며 언어학 연구에 매달린 채 이디스에게 편지도 보내지 않고 3년이란 시간이 흐른다.
하지만 그는 이디스를 포기한 게 아니라 무사히 대학에 진학하고 성인이 되면 이디스에게 정식으로 청혼하려고 결심했던 것이다. 편지를 쓰지 않은 것은 모건 신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비로소 성인이 된 톨킨은 이디스에게 편지로 청혼하지만 이디스는 그 당시 다른 남자와 약혼한 상태였다. 하지만 톨킨은 물러서지 않고 이디스를 설득했고
이디스는 큰 결심을 하여 약혼을 파기한다.
그 결과 이디스는 그때까지 의지했던 사람들을 배신했다는 비난을 받으며 절연당한 후 살고 있던 집에서도 쫓겨나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가 지불한 약혼 파기에 대한 엄청난 대가 앞에서 톨킨은 왠지 남 일 구경하듯 행동했다. 같은 회피형 스타일의 소유자라도 톨킨은 좋게 말하면 낙관적, 나쁘게 말하면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있었다.
아무튼 두 사람이 운명적으로 만나고,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맺어진 것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은 우리 스스로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무수한 인과의 사슬과 우연의 결과에 불과하다. - P334

하늘의 뜻이라는 순간이 평생 몇 번인가는 있다. 그때는 일단 해보는 것이다. 해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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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8. 13. 토
-치료가 고통을 수반할 때
인지요법과 인지행동 요법 같은 치료법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의 개선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인격 장애나 대인 관계 문제 기괴한 핼동 교정 등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어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치료법은 인지, 즉 사물의 수용 방식이 한쪽으로 편중되어 있는 상태를 수정함으로써 사회생활이나 조직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치료법이다.
인지요법이나 인지행동 요법은 이 경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좀 더 낙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이 방법은 누군가에게는 효과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상태를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
특히 애착이 불안정하고 인간에 대한 불신감이나 자기부정이 강한 경우에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 아무래도 이 치료법은 ‘당신의 사고방식은 편중되어 있다‘거나 ‘당신은 현상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라는 부정적인 견해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자기부정이 인간에 대한 불신이 강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면 옳은 지적이라고 해도 반발과 실망을 불러일으켜 치료를 받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되어 중도에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많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심리요법
이런 문제점 때문에 대안으로 제시된 방안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이 바로 마인드풀니스라는 심리 상담법이다. 이것은 모든 것을 가치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풍요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풍요롭게 느끼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이 기법은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심리적 접근이며 그 기원은 명상에 있다.
이 기법은 얼핏 듣기에는 비과학적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과학적으로도 그 효과가 입증되어 실제 치료법으로도 쓰이고 있다. 마인드풀니스 치료법은 우울증이나 불안, 분노에 상당히 효과적이다.

마인드풀니스 요법은 인지요법처럼 어떤 사안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편중되어 있다‘거나 ‘옳다‘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편중된 수용 방식은 잘못된 것이므로, 그것을 올바른 수용 방식으로 바꾸려는 일도 없다. 왜냐하면 그런 것이 이상적인 상태를 향해 노력해야만 한다거나, 이상적인 상태여야만 한다는 사고방식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치료해야 하는 상태를 또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요법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느끼는 것이 목표이다. 부연하자면 좋거나 나쁘다는 가치 판단으로부터 자요로워지는 것이 목표다. 이상적인 상태여야 한다는 것에 사로잡혀서 우울증이나 불안 같은 증상을 만들어낸다.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증상을 치료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라져간다. 그것은 과거의 방법처럼 증상을 제거하거나 조절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증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조절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기묘하게도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회복하는 것과 연결된다. 증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증상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고, 마침내는 그리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편안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마인드풀니스 요법의 큰 특징을 머리로는 알아봤자 쓸모없다는 것이다. 마음과 몸을 통해 그것을 체험하고, 몸에 익힐 필요가 있다. 일단 체험하면 모든 것을 느끼는 방식이 180도 변한다.
하루하루가 좀 더 생생하고 풍요로울 뿐 아니라 지금까지는 지루하고 평범했던 일상이나, 힘들고 상처투성이였던 일상도 온갖 환희와 풍요로운 느낌으로 가득 찬 보물로 재탄생하게 된다. 우울증이나 불안, 초조에 사로잡혀도 그것이 생활이나 인생을 부패시키는 것이 아닌, 열심히 살아온 증거로써 소중하게 느껴진다. 뭔가를 한다기보다 여기에 있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맛보고 느낄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힘들게 살아가는 와중에 이상적인 나의 모습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금이라는 순간을 소중하게 음미할 수 없다면 이상적인 상태를 손에 얻는다 해도 색이 바래 시시한 것으로 변하고 만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이렇게 존재하는 것,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음미하자. 그것이 가능해지면 생명이라는 것이 본래 가지고 있는 빛을 되찾게 된다.
마인드풀니스 요법은 살아 있다는 것의 원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호흡과 몸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여,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음미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힘든 체험이나 괴로운 느낌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음미함으로써 거기에서 흔들림 없는 마음과 풍요로운 깨달을 얻어간다. 그럼 의미에서 이 체험은 가장 고차원적인 체험임과 동시에 가장 원초적인 체험이기도 하다. 이것이 단순히 심리 요법이라기보다는 몸의 체험을 동반하기 때문에 기존의 심리 치유를 초월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이 점이 효과의 비밀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살핌과 애착 시스템
애착은 생물학적인 구조이기도 하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물로서, 포유류로서 생물학적인 체험이 중요하다. 특히 회피형 인간은 기능이 저하된 애착 시스템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안전 기지가 되어주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이 누군가를 지탱해주거나 보살펴주는 체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애착이란 상호 작용이며 보살핌을 받거나 보살핌을 주는 행위로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동물과의 접촉은 애착을 활성화시키고, 살아가는 기쁨을 되찾기 위한 힘을 갖고 있다. 오갈 데 없는 작은 생물의 생명에 책임감을 갖고 필사적으로 보살피면, 똑같은 생물인 사람의 몸에도 애착이라는 본능적인 구조가 활성화된다. 그것이 자신의 아이라면 막중한 책임감에 주출할 수 있지만 보살피다 보면 애착이 생기고 어떤 힘든 일이라도 참아내려는 마음이 샘솟는다.
하지만, 부모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와 접촉하고 보살피는 행위는 물론 중요하다. 그 행위는 아이와의 유대가 강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불안이 억제되고, 긍정적인 활력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이 높아져, 타인에 대한 배려나 사회생활의 활력소가 되는 것이다.
보살핌에 따른 효과를 아이를 상대로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려할 때, 애착 시스템이 활성화된다. 그러한 관계를 일이나 학교생활 속에서 찾아내도 좋고, 봉사 활동 같은 과외 활동에서 발견하는 것도 좋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나 노인을 돌보는 일도 역시 애착 시스템을 활성화시키는 일이다.
다만, 회피형 인간은 기본적으로 보살핌이나 타인과의 관계가 서툴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수도 있다. 허용범위를 초과해서 부담이 되어버리면 애착 시스템일 활성화되기는 커녕 회피하는 행동이 더욱 강화될 뿐이다.
그럴 경우 키우는 동물을 방치하기도 한다. 그런 일이 자녀를 상대로 벌어지는 비극도 적지 않다. 관계가 시작된 이상 나름대로 책임지려는 각오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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