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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닥터 - 제1회 자음과모음 문학상 수상작
안보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수염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남자인것 같은데 홈드레스를 입고, 매니큐어를 칠하고,
화장을 한 여자모습을 하고 있는 우스꽝스런 표지의 인물.
제목도 그럴듯하게 오즈의 닥터이다.
오즈의 마법사가 떠올라 표지의 독특한 모습이 마법사같은 느낌이 들었다.
억울한 누명 아닌 누명을 쓰고 닥터팽에게 정신 상담을 받는 그 남자.
그의 운명은 참 기구했다.
어떻게 한명도 아닌 온 가족이 그 남자만을 남겨두고, 한 명씩 한 명씩 그렇게 죽을 수가 있는건지.
어렸을때 학대, 협박을 받는 삶을 살고, 커서는 아픈 기억를 갖고 온전히 살 수 없는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억울한 일로 인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닥터팽을 찾아가서 신세한탄, 억울함 호소를 하는 그가 많이 안쓰러웠다.
이런 저런 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바른 옷차림의 곧아 보이는 닥터보다는 표지의 닥터팽처럼 특이해보이고, 황당한 말도 하는 닥터가 더 편하고 좋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계속 그의 말을 믿었고, 그를 이상한 쪽으로 몰아가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점점 읽을수록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의 눈과 말을 통해 내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 현실인지,
그가 바라보는 환상이, 내가 환상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 환상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과연 어느쪽이 진실이고, 어느쪽이 환상인건지.
결국 마지막에 모든 것이 드러나는 순간 나는 할말을 잃었다.
나는 철저히 닥터팽에게 당하고 만 것이다.
책을 처음 시작할 때 표지속 닥터팽의 모습을 보고는 우스꽝스러워보이고, 재밌어보였다.
그런데 마지막 장을 덮고는 표지속의 닥터팽의 눈을, 얼굴을, 모습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닥터팽을 바라보면 내가 알고 있는 진실과 환상을 마구 섞어버릴 것 같아서,
어쩌면 내가 믿고 싶은 환상을 무참히 현실이라고 깨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
제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말이 있을정도로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계속 생기고, 개개인마다 힘든 일이, 참아내야 할 일이 많은 현실에서
우리가 믿고 싶은 적당한 환상마져도 가질 수 없다면 정말 끔찍할 것이다.
닥터팽이 '당신의 기억은 안전합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렇다고 할 것이다.
설사 진실이 아닌 환상이 섞여 있다고 할지라도.
자네가 믿고 싶어 하는 부분까지가 망상이고 나머지는 전부 현실이지.
자네가 버리고 싶어 하는 부분, 그게 바로 진실일세 - 230p
끝까지, 도망치겠다는 겁니까.
그래요, 닥터. 나는 도망칠 거예요.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한다니 그건 너무 끔찍한 형벌이잖아요.
나한테는 이 정도가 어울려요.
죄책감도 책임감도 자부심도 없는 이 정도가. - 2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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