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커 -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고은규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단숨에 읽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지금 가슴이 먹먹하다.
그리고 곧 점점 따뜻해진다.
멀쩡한 집 놔두고 트렁크에서 자는 사람인 트렁커.
참 기발하고 재밌는 소재라는 생각이 들면서 트렁커들의 유쾌한 에피소드가 담겨 있는 책인줄 알았다.


 

저마다 상처가 있어서 트렁커가 된 온두와 름.
우연히 한 공간에 차를 주차하게 되고, 밤만 되면 차 트렁크에서 자다보니 서로 인사를 하게되면서
온두와 름은 각자의 상처를 조금씩 이야기하게 된다.
기가막히고 엄청난 상처를 안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감히 공감이라고 할수 없을정도로 마음도 아프고, '트렁커가 아니라 더 할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밤마다 귀찮고 불편하고 춥고 답답할텐데 트렁크로 가서 잔다.
모든 것을 감수하고 트렁크로 가서야 비로소 잘 수 있는 그들의 마음과 상황이 참 슬프다.
처음에는 트렁크에서 잘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상처가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웠지만
그렇게라도 위안이 되고, 살아갈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이마에 '금일휴업'이라고 붙이고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싶은 날이 있듯이
누구나 다 트렁커이고 싶을때가 있을 것 같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트렁크에 들어가서 모든것이 잠시 멈춰지길 바라는 마음.
아프고 힘든 상처들을 트렁크에 다 넣고 닫아버리면 괜찮을 것 같은 마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공감할 것 같다.


 

어딘가로 숨고 싶고, 위로 받고 싶은데 그마져도 없는 우리들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우리도 어쩌면 보이지 않는 트렁커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만이 고통받는 것 같고, 자신의 상처가 제일 큰 것 같지만
누구나 비슷하게 상처받고, 상처주고, 그 안에서 위로받고, 위로하고, 나름대로의 해결책도 찾으면서 살아간다.
살면서 트렁커가 되서 아무도 모르게 꼭꼭 숨고 싶을때도 있겠지만
트렁크를 열어놓고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즐기는 때도 분명히 있다.


 

단순히 재미로 푹 빠져서 읽을 책일줄 알았는데 따뜻한 위로와 많은 생각들을 안겨 준 책이라서 참 고맙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트렁커가 되어 트렁크문을 꼭꼭 닫은 채 잠을 자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 사람들이 이제는 따뜻한 집에서 아침 햇살을 맞이 할 수 있기를.
트렁크에서는 한 여름밤을 잠시 즐겨보는 에피소드가 되기를 바란다.


 



 트렁크에 오늘 하루를 밀폐시키면 좋겠어. 어제가 돼버린 기억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그렇다면 내일은 오늘과 다르게 순조로울 것 같아. 나는 속말을 했다.
 나는 트렁크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내 세계가 봉해졌다 - 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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