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김금숙 지음 / 딸기책방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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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산가족", "통일", "피난" 이런 말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고,

관심도 없어지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텔레비젼에서 이산가족 찾는 영상이 자료화면으로 나온다던지

전쟁, 피난 관련 다큐멘터리나 영상이 나오기도 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잘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은 과연 "통일"을 원할까? 

"전쟁"이란 역사에 대해서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별 관심 없는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아픔이고 기다림일 수도 있다. 


소설가 "진아"의 엄마는 잃어버린 큰아들을 찾고자 "진아"에게 적십자에 알아보라고 했지만

"진아"는 자신의 삶을 살아내느라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못한다.

아마 내가 "진아"였어도 당장 내 앞에 놓인 삶이 빡빡해서

찾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에 신경을 쓰지 못했을 것 같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고, 당장 나의 기다림이 아니니 덜 중요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아"의 엄마 "귀자"의 인생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내가 얼마나 그 기다림을 제대로 알지 못했는지,

내가 얼마나 그 기다림을 헤아리지 못했는지 부끄럽고 마음이 아팠다.


"귀자"는 함경남도에서 태어났고, 

그 시절 대부분 그랬듯 딸이라는 이유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집안일을 하며 자랐고, 처녀를 끌고간다는 일본군 때문에 얼굴도 모른 채 결혼을 했다.

아들, 딸 낳고 열심히 살았지만 전쟁이 터져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피난길에 둘째 딸의 기저귀를 갈아주기 위해 남편과 아들과 잠시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금방 돌아온다고 아들에게 말한 그 말이 아들과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

남편에게 안겨 슬픈 표정을 짓고 있던 아들의 얼굴이 그녀가 본 마지막 얼굴이 된 것이다.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그 잠깐의 떨어짐이 평생의 떨어짐이 되고, 평생의 기약없는 기다림이 될 줄은.

이 부분을 읽다가 책 표지를 바라보니 바로 그 순간이다.

아들과 평생 헤어지게 된 바로 그 순간 아들의 얼굴과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

이 한 컷이 얼마나 마음을 아리게 만드는지, 

실제 그 아픔을 상상할 수도 없겠지만 아픔이 느껴졌다.


그렇게 그녀는 남한으로 피난을 와서 힘들게 살아갔고,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소설가 "진아"를 막내로 낳고, 어느덧 세월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힘들고 고되게 산 인생이지만 평생 잊어본 적 없는 아들의 얼굴.

어쩌면 그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어서 평생을 버티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자료화면이나 영상속에서 나오는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볼 때 

찰나의 목소리를 듣고 바로 대성통곡을 하거나

얼굴을 보자마자 오열을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수십년 떨어져 살았는데 어색하지 않을까?',

'아주 어린시절 헤어졌는데 낯설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한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들의 잘못이 아닌 것으로 강제로 떨어져 생사도 모른채 살았는데

그 한맺힘이 오죽할까 싶고, 평생의 기다림이 이루어졌으니 그 절절함이 얼마나 깊을까 싶다. 

그 아픔이 얼마나 클지 감히 상상도 못하겠다.


그 짧은 "남북이산가족 상봉"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한 명은 북으로, 한 명은 남으로 헤어지면서

그저 서로 건강하기만을 비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들은 어쩌면 알고 있을 것이다.

살아서는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전쟁"이란 마치 오래전 역사책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고,

"남북이산가족"에 대해서 큰 의미를 두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불과 몇십년 전의 일이고, 여전히 아픔을 가지고, 오랜 기다림으로 살아가시는 분들이 많다.

"통일"은 안되더라도 가족들을 좀 만나게 해주자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딸 "진아"가 화자가 되어 현재의 이야기를 하고,

엄마 "귀자"가 화자가 되어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성이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빠지면서 더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었다.

흑백 그림이 글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더 먹먹하게 만들고, 더 힘있게 보였는데 그 또한 이 책의 매력이다.

이렇게 만화로 역사를 풀어내고, 인생사를 풀어내니 

확실히 글자만 읽는것보다는 더 감정이 풍부해지고, 천천히 여러 생각들을 하며 읽게 된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는 가치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다양성만화 제작 지원사업"을 진행하는데

이 책도 "다양성만화 제작 지원사업"으로 선정된 책이라고 한다.

이렇게 계속 우리나라 역사를 이야기하고,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야기들을

책으로 담아내는 것을 지원한다니 너무 좋은 거 같다.

그저 역사 시험에 필요한 정보를 아는 것에서 끝나면 안된다.

책으로 만들어서 남기고, 그 책을 읽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노력하고, 알아야한다.

이 "기다림" 책도 그 중의 한 권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이유이건 떨어지게 된 "이산가족"들이 하루빨리 긴 기다림이 끝나고

서로의 품에 안기기를 바란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으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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