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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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줄거리(스포일)
한 면의 길이가 수 킬로미터에 이르고 600층이 넘는 초고층, 초대형 빌딩 <빈스토크>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담은 소설집이다.
「동원박사 세 사람: 개를 포함한 경우」는 그 첫 번째 이야기다. 미세권력연구소의 정교수는 건물 내 미세권력 분포도를 알아내기 위해 ‘조그만 정성’의 명목으로 권력자들에게 바쳐지는 값비싼 양주에 전자태그를 부착한다. 약 1년간의 추적 결과 권력관계는 3차원적 지도에 그려지는데,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그건 영화배우 P가 상당한 권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욱이 P는 그냥 인간 영화배우가 아니라 개였던 것이다.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연말까지 권력 지도를 완성해야 했고, 정교수는 작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외부에서 세 명의 박사들을 임시로 고용한다. 세 명은 역시나 개가 권력장(場)에서 상당한 위치를 갖고 있음을 발견하고, 개를 권력장에 포함시켜야 실제의 권력분포와 일치한다는 결론을 얻는다. 그러나 정상적인 - 개가 포함될 경우 - 권력장에서 또 이상한 점이 발견되는데, 그건 시장과 정교수의 아내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정교수의 젊은 아내는 아이를 출산하고 세 명의 동방박사, 아니 동원 박사들은 권력자의 힘에 이끌려 선물을 사들고 병원으로 향한다. 그러나 병실에 도착해보니 정교수가 아내를 끔찍하게 살해한 현장을 목격한다. 정교수는 이미 개를 포함시킨 권력장에서 드러나는 비밀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확정적인 정교수의 파멸을 귀로 하고 박사들은 빈스토크 국경을 넘어 달아난다.
「자연예찬」은 작가 K의 이야기다. 현실비판으로 유명한 그는 갑작스레 자연을 예찬하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출판사 편집직원 D는 K에게 예전의 날카로운 글을 써줄 것을 부탁하지만 K는 요지부동이다. 그는 자신이 그런 글을 쓴다면 이 정권에서 ‘먼지’가 탈탈 털려 몰락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K는 스페인의 프리힐리니아 지방의 별장과 그곳의 가정부 로봇을 ‘조그만 정성’으로 받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로봇의 눈을 통해 본 그곳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특히 로봇을 정비하는 소녀가. K에게는 저소공포증이 있어서 빈스토크를 평생 떠날 수 없었다. 오직 로봇을 통해서만 아름다운 풍경과 순수의 결정체인 소녀를 바라볼 뿐. D는 겨우 K를 설득하고, 마침내 K는 작가로서의 양심을 따라 현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한다. 물론 그 결과는 파멸이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K는 아주 오랜만에 로봇을 작동시켜본다. 로봇의 눈에 비친 것은 중년이 된 소녀의 모습이었다. 둘은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는 빈스토크로 이민간 여자와 주변국에 남겨진 옛 애인의 이야기다. 둘은 사소한 오해로 헤어지고, 그렇게 살아간다. 몇 년 뒤 남자는 시민권을 얻기 위해 빈스토크 해군에 입대해 4년간 조종사로 복무한다. 그러다 말년에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격추를 당한다. 그러나 빈스토크 정부는 외교적 위험 때문에 그를 모른척한다. 그때 둘의 이별의 원인을 제공한 남자가 나선다. 그는 시민들끼리 자발적으로 우편을 배달해주는 ‘푸른우체통’에서 그만 우편물을 깜박하고 자기가방 속에 넣는 바람에 남자의 화해 편지를 여자에게 전달해주지 못했고, 결국 본의 아니게 이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소식을 접한 여자는 타클라마칸의 현재 위성 자신을 구하고, 대발사고를 일으킨 남자는 그걸 웹사이트에 올린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추락한 남자를 찾는 일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 처음에는 얼마 안 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불어나더니 수십만 수백만 명으로 늘어나고, 결국 기계의 도움 없이 수작업만으로 광대한 사막의 지도에서 바늘보다 작은 존재인 남자를 발견하는 데에 성공한다.
「엘리베이터 기동연습」에는 두 가지 사상, 즉 수직주의와 수평주의가 충돌하는 장면이 그려진다(수직주의는 보수, 수평주의는 진보진영이라고 해석하면 된다). 공무원으로서 비상시/전시에 동원훈련 작전을 담당하는 남자는 자의와 무관하게 수직주의자로 세상에 분류된다.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는 반면에 수평주의 이론가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둘은 그런 구분에 아랑곳 않고 우정인지 사랑인지 모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다 양 진영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급기야 폭력시위로까지 사태가 번진다. 둘은 서로의 개인적 감정과 관계없이 각 진영의 명령과 압박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광장의 아미타불」은 파산한 외국남자가 빈스토크의 시위진압대로 취직해서 그의 처제와 편지를 나누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남자는 시위진압대에서 새로 들여온 코끼리를 전담한다. 코끼리의 이름은 아미타브였는데, 인도에서 수행승을 따라다니며 단식과 고행을 하던 이력이 있었다. 그가 코끼리를 몰고 나갈 때면 이상하게 시위대와 진압대 모두 조용해졌고, 시위는 자연스럽게 흐지부지된다. 코끼리는 아미타불이란 별명으로 빈스토크에서 유명해진다. 어느 날 처제와 아내가 남편을 만나러 빈스토크를 방문한다. 그날따라 엄청난 규모의 시위가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아미타브는 혼란의 와중에서 어떤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하지만, 진압대 상관이 휘두른 채찍에 맞아 깨달음에 이르는 데에 실패하고 만다. 남자는 아미타브를 위로해주고 원기를 북돋아주려고 물을 주지만, 최루액이 섞인 줄을 몰랐다. 코끼리는 물을 마시고 괴로움에 날뛰다가 빌딩 바깥으로 떨어져 죽고 만다.
마지막 이야기 「샤리아에 부합하는」에서는 빈스토크와 전쟁을 벌이는 코스모마피아가 건물을 파괴하려 시도한다. 코스모마피아의 간첩인 셰흐리반은 지령을 받고 빈스토크가 지어질 당시부터 비밀리에 대형 폭탄이 보관되어 있는 부동산들을 매입한다. 모든 매입과 폭탄 설치가 끝나고 최후의 심판의 순간이 다가온다. 그러나 폭탄은 터지지 않는다. 몇십 년동안 세월이 흐르면서 폭탄을 보관하고 있던 사람들이 몰래 폭탄에 손을 써놓은 것이었다. 그들은 빈스토크가 사라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심판의 날은 미뤄지고, 빈스토크는 다시금 바벨탑적인 삶을 지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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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뻘글)
50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상주하고, 건물인 주제에 하나의 독립적인 국가로 인정받는 <빈스토크>는, 비록 특이한 환경과 특이한 삶을 살아갈지언정 대지 위의 평범한 삶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총 7개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인간사회의 본성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탐구결과를 제시한다.
결국 작가가 염두에 둔 것은 「샤리아에 부합하는」이라는 마지막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이야기를 제일 처음에 쓴 건 아닐지 몰라도, 모든 이야기들을 써나가면서도 빈스토크의 결말을 계속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대체로 추악하고 약간은 아름다운 면도 있기는 하나, 결과적으로는 바벨탑의 복사본에 지나지 않은 우리 사회는, 어쨌거나 그래도 파괴하기보다는 껴안고 보듬어가며 살아야 한다. 비록 전과 다름없이 너저분하게 돌아가더라도 말이다. 소설은 참 재미있었다. 정치적 풍자는 별로였고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에 나오는 익명 집단의 기적 같은 힘 따위의 이야기는 촌스러운 면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긴 했다. 그러나 사회적 주제 말고 배명훈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주제의 축인 존재의 의미에 대한 성찰은 깊었다. 불교적이기까지 한 그의 통찰은 SF라는 환상적 - 허구 중의 허구- 인 장르와도 잘 어울려서 때로 가볍고 때로 유치한 이야기 전반에 깊이를 더해주고 무게중심을 잡아준다. 물론 재미있다는 것이 그 모든 이야기의 전제요소이다.
그런데 어째서 SF는 불교와 그리 잘 어울리는 걸까? SF 뿐만 아니라, 천문학자나 물리학자 같은 사람의 강연을 듣고 있노라면 그들이 과연 과학자인지 불교학자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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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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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스포일)
나폴리의 왕 알론조와 그 일행은 튀니지에서 거행된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길에 폭풍우를 만나 망망대해에서 난파당한다. 사실 폭풍우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근처의 섬에 살고 있는 한 노인이 마술과 정령을 이용해 고의로 일으킨 것이었다. 그 노인은 원래 밀라노의 대공이었으나 지위를 동생에게 억울하게 빼앗긴 푸로스퍼로였다. 푸로스퍼로는 어린 딸과 함께 고향에서 쫓겨나 이 섬에 정착했던 것이다. 그의 딸 미랜더는 이제 어엿한 숙녀로 성장해 있었다. 푸로스퍼로는 자신의 동생 앤토니오와 알론조 일행을 섬의 한쪽에 상륙하게 하고, 또 알론조의 아들 퍼니넌드는 홀로 다른 쪽에 상륙하도록 술수를 부린다.
한편 푸로스퍼로가 섬에 정착하기 전 그 섬에 살던 마녀의 아들인 캘리밴은 푸로스퍼로가 잘 기르려고 했지만 천성적으로 추악하고 욕망만을 추구하는 성격으로 인해 푸로스퍼로의 미움을 받는다. 캘리밴은 섬의 또 다른 곳에 상륙한 다른 조난자들을 만나 푸로스퍼로를 죽이고 그의 딸을 가지라고 유혹한다.
즉 한 섬에 세 가지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왕의 일행은 실종된 아들을 찾으려고 섬을 탐험하지만 푸로스퍼로의 마술에 걸려 집단으로 정신이 나가버린다. 퍼디넌드는 미랜다를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이 두 가지 상황은 모두 푸로스퍼로가 의도한 일이었다. 그러나 캘리밴 일행이 술에 잔뜩 취해서 그를 해하러 오는 것은 푸로스퍼로로서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다행히 그를 섬기는 정령이 그들의 음모를 발각하여 알려주고, 푸로스퍼로는 집 앞에 값비싼 옷가지들을 널어놓아서 술 취한 이들에게 함정을 판다. 술 취한 무리는 푸로스퍼로 따위는 까맣게 잊고 눈앞의 비싼 옷가지에 한눈이 팔린다. 퍼디넌드는 푸로스퍼로가 내린 시련을 이겨내고 미랜다와 약혼하는 데에 성공한다. 왕의 일행에게는 마법을 풀어주고 난파당한 배를 멀쩡한 상태로 되돌려준다. 그리고 예전에 자신에게 지었던 악행을 말끔히 용서해준다.
화해와 용서로 하나가 된 그들 모두는 이제 순풍을 타고 나폴리를 향해 떠나간다. 푸로스퍼로의 딸과 나폴리의 왕자의 결혼식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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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뻘글)
셰익스피어의 희극들은 대체로 요란하고 허무하다시피 한 소동을 그리곤 하는데, 「템페스트」 역시 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책을 읽기 전에는 자못 장중해보이는 제목 때문에 「햄릿」이나 「맥베스」 등의 비극인줄 알았는데 오히려 「한여름 밤의 꿈」처럼 ‘경쾌하고 아무도 다치는 사람이 없는’ 희극이었다.
은퇴를 암시하는 대사의 반복 때문이었을까, 말년에 집필한 작품이라 그런지 푸로스퍼로와 셰익스피어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었으며, 나는 개인적으로 정령과 마법, 환상과 환각, 착각과 오해 따위가 뒤범벅된 스토리야말로 가장 셰익스피어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의 작품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 즉 인생은 한바탕 꿈 또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일종의 허무주의적이면서도 달관적인 세계관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캘리밴이라는 캐릭터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누가 보아도 그는 인간의 육체적 욕망만을 한데 뭉뚱그려서 빚어낸 괴물이다. 그전에도 이런 인물이 창조되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순수한 악(惡)이라기보단 순수한 욕정이 실체화된 인물이다. 나 같으면 캘리밴에 대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시도했을 텐데, 작가는 작품 본연의 주제인 ‘용서’에 집중하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할 뿐이었다. 용서하기 위해서 이 모든 일을 저질렀다면, 그러니까 배를 난파시키고 딸과 왕자를 결혼시키고 하는 등의 일들이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용서하기 위해서라면, 과연 이 모든 소동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냥 아무 일도 벌이지 말고 용서해버리면 그만 아닌가. 아마 정령 에어리얼의 탄원(?)에 마음을 움직인 푸로스퍼로가 복수에서 용서로 태도를 전환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정황이 살짝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연결고리가 너무 약했다. 내가 보기엔 푸로스퍼로야말로 가장 이기적인 캐릭터로 보인다. 자기가 계획한 대로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야 모두를 용서하고 정령을 풀어준 그는, 만약 계획이 조금만 어긋나기라도 했다면 용서 따위는 절대 없었으리라는 걸 암시하기 때문이다. 결국 섬에서 오랜 시간 겪었던 그의 고난은 흘러간 세월만큼의 이자(왕의 사돈이라는)를 붙여서 고스란히 이익으로 되돌아온, 성공적인 투자에 불과한 셈이다.
마지막의 포용적 자세는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과거인 동생과 자신의 미래인 딸을 모두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욕망의 덩어리인 캘리밴마저도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십 년 넘게 복수의 기회만을 필사적으로 노리던 극의 초반부와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다. 이런 깨달음이 조금 더 설득력 있게 그려졌더라면, 혹은 푸로스퍼로의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면을 깊게 파고들었다면, 아마 셰익스피어 최고의 작품 가운데 하나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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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줄거리(스포일)
외삼촌 에니시테의 요청으로 12년 만에 이스탄불로 돌아온 카라는 감회에 젖어 도시의 곳곳을 돌아본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그리웠던 고향의 추억은, 바로 에니시테의 딸인 세큐레였다. 12년 전 자신의 딸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외삼촌은 카라를 고향에서 쫓아내고, 카라는 타지에서 방황했던 것이다. 외국의 군주와 지방 영주들의 서기관이나 비서를 하고 그들을 위해 책을 만드는 일을 생업으로 삼으며 방랑하던 그는 이제는 그 원형으르 기억할 수조차 없을 만큼 가물가물한 세큐레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리며 살아왔다. 이제 그는 자신의 사랑이 살고 있는 에니시테의 집으로 향한다.
카라가 이스탄불에 도착하기 며칠 전, 이스탄불에는 잔인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물론 이스탄불 같은 대도시에서 잔인한 살인 사건이란 것은 하루에도 수차례나 발생하고도 남았겠지만, 이번 살인 사건은 중대한 의미를 띤 것이었다. 살해당한 사람이 바로 술탄의 화원에 소속되어 있는 한 세밀화가였기 때문이다. 그 세밀화가는 에니시테와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었고, 그러므로 카라와도 깊은 관련이 있었다. 에니시테는 술탄의 명으로 비밀리에 책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가 비밀리에 고용해서 책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게 한 세밀화가들 가운데 한 명이 죽임을 당한 것이었고, 한편 책의 그림들에 어울릴 만한 이야기를 써내기 위해 에니시테는 외지에서 떠돌던 카라를 불러들인 것이었다. 살해된 사람은 금박을 입히는 데에 뛰어난 재주를 지닌 장인 엘레강스였다. 그가 비밀리에 참여한 책은 술탄이 베네치아 총독에게 선물로 줄 예정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그의 죽음으로 책의 완성에 차질이 빚어짐은 물론, 책을 완성하는 데에 격렬히 반대하고 위협하는 적이 비로소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 에니시테는 카라에게 속히 책을 완성시켜 줄 것을 당부한다.
원래 카라는 책보다는 세큐레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 이스탄불로 흔쾌히 돌아온 것도, 베네치아 화가들이 그리는 사실적인 화풍의 초상화에 대한 에니시테의 찬미를 주의 깊게 들어준 것도 사실은 세큐레 때문이었다. 12년 사이에 세큐레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카라가 쫓겨나다시피 이스탄불을 떠나고 몇 년 후, 세큐레는 잘생긴 기마병과 결혼했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던 어느 날 전쟁에 나간 남편이 실종되었고, 세큐레는 시아버지의 집에서 남편을 기다렸었다. 그러나 남편의 동생 하산이 자꾸만 형수인 자신을 범하려 하자 위협을 느낀 세큐레는 짐을 꾸려 친정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은 지도 4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세큐레는 남편이 살아있으리라는 기대를 차츰 접고 자신의 새로운 남편감을 은밀히 찾고 있던 참에 카라가 돌아왔음을 알았다. 재회한 둘은 불꽃처럼 사랑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시동생의 방해 공작과 구애를 피해 세큐레는 카라와 밀회하는 데에 성공하지만, 둘이 사랑을 맹세하고 결혼을 약속하는 동안 집 안에 혼자 남겨진 에니시테는 죽임을 당한다. 엘레강스를 살해한 사람과 동일인물의 소행이었다. 에니시테가 고용한 세밀화의 장인들 가운데 한 명인 살인범은 책의 마지막 장에 들어갈 그림을 훔쳐간다. 세밀화가와 에니시테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던 이유는 책 속 그림들의 화풍 때문이었다. 그 그림들은 이슬람교에서는 불경하고 이교도적인 것이라고 비난받고 있는 서양화의 원근법을 적용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살해범은 자신이 제작에 참여한 그 책이 신성모독적이라면 자신도 불경죄를 저지른 셈이므로 소문의 진상을 확인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에니시테가 죽자 세큐레와 카라는 자신들의 사랑 또한 직접적인 위협에 처함을 깨닫는다. 친정아버지의 사망으로 보호자가 없어진 세큐레는 도로 시댁으로 끌려가게 될 것을 두려워했고, 그렇게 되면 카라로서는 세큐레와 혼인할 기회가 영영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에니시테가 죽은 것을 숨기고 남편의 오랜 부재를 사유로 이혼 절차를 마친 뒤 조용히 결혼식을 올린다.
혼인식을 무사히 마치고 카라는 술탄의 궁전으로 향한다. 에니시테의 죽음을 알리고 정식으로 뒤늦게 장례를 치른 뒤, 카라는 화원장 오스만과 함께 사흘 안에 범인을 잡아내라는 술탄의 명을 받게 된다. 유일한 단서는 엘레강스가 죽을 당시에 주머니에 들어 있던 말 그림이었다. 모든 사물을 예 장인들과 대가들의 수법 그대로 그리는 것이 미덕인 이슬람 화풍 때문에 말 그림은 누가 그리든 똑같아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화원장 오스만은 범인이 그렸음에 틀림없는 말 그림에 특이한 점을 발견한다. 그건 말의 콧구멍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그린 특이한 말의 콧구멍은 그 화가만의 독특한 특징이며, 그런 식으로 콧구멍을 그린 건 화가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승계한 화풍에 따른 것이므로 그 기원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알면 자신의 세밀화가 제자들 가운데 누가 그린 것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카라와 화원장은 술탄의 국고에 들어가 하룻밤 하루 낮을 머무르며 모든 그림들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국고 안에 틀어박혀 전설적인 책과 그림들을 보다가 황홀경에 빠진 화원장은 문득 자기들이 추구하던 화풍의 시대가 끝날 것임을 예감한다. 그리고 오스만제국의 전통적 화풍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그는 스스로 바늘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말 그림을 그린 화가를 밝혀내는 한편, 개인적으로 염두에 둔 살인용의자의 이름을 카라에게 말하고 위대한 장인 오스만 화원장은 축복스러운 어둠이 눈앞에 내림을 느끼며 국고 안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계속해서 들여다본다.
국고에서 나온 카라는 집에 세큐레가 없음을 깨닫고 세큐레의 시댁으로 가서 아이들과 세큐레를 되찾아 온다. 그녀와 두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킨 뒤, 그는 세밀화가들이 즐겨 찾는 커피숍이 과격하고 엄격한 에르주름파 무리들의 습격을 받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에니시테가 고용한 나머지 세 명의 세밀화가 중 한 명인 ‘나비’와 마주친다. 함께 나비의 집으로 가서 집을 수색하고 심문한 뒤 그에게는 혐의가 없음을 확인한 카라는 다른 세밀화가 ‘황새’의 집으로 가지만, 그 역시도 살해범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 세밀화가 ‘올리브’는 집에 없었다. 올리브는 자신이 믿고 있는 한 몰락한 종파의 수도원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를 찾아 카라 일행이 수도원으로 들이닥치고, 수도원 곳곳을 뒤져보지만 마지막 그림을 찾지는 못한다. 말 그림을 그린 것은 올리브였다. 함께 수도원의 옛 시절을 추억하며 이야기하던 중 올리브는 자신이 범인임을 무의식중에 실토하고 만다. 카라 일행은 그를 결박하고 마지막 그림을 찾아낸다. 마지막 그림은 원근법을 사용하여 그려진 술탄의 초상화였다. 아니, 이제 그것은 올리브 자신의 초상화로 변해 있었다. 초상화의 매력에 빠진 올리브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고, 그래서 술탄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로 고쳐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영 어색한 그림이었다. 올리브는 서양화가들의 이 원근기법이 한순간에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 세기에 걸쳐 배워야만 하는 것이며, 앞으로 화가들은 이런 서양의 기예를 좇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올리브는 눈을 찔려서 눈이 멀어가기 시작하지만 결국은 카라를 부상 입히고 탈출하는 데에 성공한다. 인도로 가는 배를 타러 가려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인생을 바쳤던 화원에 들러보기로 작정한다. 하지만 하원앞에서 분노에 찬 하산을 맞닥뜨린다. 올리브의 손에 쥐어진 자신의 단검을 본 하산은 검을 들어 그의 목을 내리친다. 올리브가 손에 쥔 단검은 카라에게서 빼앗은 것이었는데, 그 단검은 사실 세큐레의 시아버지집에서 아이들이 들고 나온 것을 카라가 가져온 것이었고, 하산은 자신의 단검을 쥔 사내가 분명 세큐레와 아이들을 자기 집에서 빼낸 카라의 하수인일 거라고 단정짓고 분노에 차서 그를 죽인 것이었다.
사건은 해결됐고, 살인자를 죽인 하산은 이제 살인범이 되어 외국으로 도망간다. 카라와 세큐레는 평화롭고 행복하게 가정을 꾸린다. 그러나 카라는 죽을 때까지도 깊은 슬픔을 영혼에 지니게 되고 세큐레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아름다움을 잃고 늙어버린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세큐레의 입에서 아이들에게로, 아이들에게서 또 다른 이들에게로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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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뻘글)
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사를 배운 한국 사람들은 보통 이슬람 문화를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단 한 구절로 기억해버리고 만다. 엄격한 종교 규율을 충실히 따르고 자신들이 이교도로 간주한 적을 무참히 살해하는,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무슬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서구권과 허구한 날 전쟁을 일삼고 테러를 가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의 활약상(?) 때문에 이슬람 문화에 대한 한국인들의 고정관념은 한층 더 굳어진 듯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슬람이라는 단어에서 왠지 모를 슬픔을 느낀다. 기도 시간이면 사원 첨탑에서 울려 퍼지는 애수 띤 기도음악,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도 음악에 맞춰서 서서히 어둠 속으로 잠긴다. 귀청을 따갑게 할 정도로 최대한 볼륨을 키워 멀리까지 퍼져 나가는 그 음악 속에는 어딘지 모를 적막이 섞여 있다. 그 이슬람 언어들의 슬픔과 애수 띤 음악의 적막을 나는 ‘한(恨)’이라 부르고 싶다. 이상하게도 ‘한국인만의 특유한 정서’라는 한을, 나는 쭉쭉 뻗은 다리를 내보이면서 경쾌한 노래를 부르는 소녀시대를 볼 때보다 이슬람 국가의 그런 일상을 되새길 때 더욱 절실하게 가슴으로 느낀다.
이 소설은 이슬람 문화의 슬픔에 관한 것이다. 아니,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슬픔에 관한 이야기다. 배경이 이슬람인 것은, 이슬람의 전통 또한 어느샌가 사그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종종 장님이 된 세밀화가들처럼 내 기억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지금은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해 뜨기 전의 완벽한 어둠 속에서 부엌에 들어앉아 부산히 차례상을 준비하던, 재래식 아궁이 앞에 쭈그려 앉은 할머니의 뒷모습이며 불기운에 발그레해진 옆얼굴, 아버지와 함께 슈퍼 앞 파라솔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던 한여름 밤, 고등학생 때 엄마와 함께 읽을 만한 책을 골랐던 동네 서점의 정경, 뭐 이런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은 아련하면서도 어딘지 모를 고요함과 애수가 깃들어 있다. 오래된 것이 어쩔 수 없이 모래바람에 부스러지고 난 자리에 자라는 슬픔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추리소설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K팝’에서 과연 한의 정서를 찾을 수 있는가?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속속 내놓는 소설들에서는? 세계인의 입맛을 잡기 위해 예쁘고 깔끔하게들 차려놓은 요즘의 한식들에서는? 광화문의 그 넓고 웅대한 광장에서는? 최신 유행과 초고층 빌딩들이 거리를 꽉 메운 강남 한복판에서는? 차라리 나는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터키의 국민가수 세젠 아쿠스(Sezen Aksu)의 노래 <이스탄불 올랄러(Istanbul Olali)>에서 한을 발견한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들 속에서 상실의 한을 찾는다. 한국의 특유한 ‘한’이라는 정서는 이제 한국에서 모습을 감춘 듯하다. ‘한’을 상실했다는 한의 감정을 느끼며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누군가는 우리의 ‘한을 잃어버린 한’에 대한 이야기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카라가 세큐레에게, 세큐레가 아들 오르한에게, 그리고 오르한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줬듯이 말이다.
이 책은, 비록 글로만 이루어졌지만, 한 권의 세밀화집이다. 각각의 챕터마다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는 한 장의 그림을 상상해보는 재미도 이 책의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온다. <휘스레브와 쉬린>에서 쉬린이 휘스레브의 그림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 장면을 그린 그림을 감상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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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환상문학전집 11
필립 K. 딕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줄거리(스포일)
최후의 세계대전으로 완전히 피폐해진 지구에는 낙진이 끝없이 흩날리고, 아직 식민지 행성으로 이주하지 않은 인간들이 삶을 꾸려가고 있다. 릭 데커드와 그의 아내 아이린도 그런 사람들 중의 일부였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취미생활이자 낙이었다. 그들도 양을 한 마리 기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진짜가 아닌, 실물과 똑같이 생기긴 하지만 전자회로와 각종 부품들로 만들어진 인공 양이었다. 릭은 옆집 남자가 기르는 ‘진짜’ 말이 너무나 부러웠고, 자신도 무언가 진짜 동물을 갖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진짜 동물은 진짜 비쌌다. 방사능으로 인해 거의 모든 동물이 멸종하거나 멸종 위기 상태에 놓인 까닭이다.
릭의 직업은 현상금사냥꾼이었다. 경찰에 소속된 신분으로, 도주한 안드로이드들을 잡아 죽이는 것, 혹은 업계의 표현대로라면 ‘은퇴시키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출근한 릭은 상관으로부터 베테랑 사냥꾼 데이빗이 안드로이드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 전 도주한 최신형 안드로이드 8명 - 혹은 개 - 가운데 둘은 은퇴시켰지만 세 번째 안드로이드에게 당하고 만 것이었다. 이제 남은 6명의 안드로이드 처치는 그의 임무가 되었다. 안드로이드를 은퇴시켜야 월급다운 월급을 인센티브로 받을 수 있었고, 많은 수를 은퇴시킬수록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는 릭은 기꺼이 임무를 수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상관은 일단 안드로이드 제작회사인 로젠연합으로 가서 안드로이드를 식별해내는 심리테스트인 보이그트-캄프 테스트의 유효성을 확인해볼 것을 지시했다. 보이그트-캄프 테스트는, 인간에게만 존재하고 안드로이드에게는 없는 감정이입능력을 측정함으로써 외형상으로는 똑같아 보이는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하는 시험 도구였다.
릭은 로젠연합의 레이첼 로젠을 만났다. 그녀는 본격적인 시험을 하기 전에 자기부터 테스트해볼 것을 요구했다. 릭의 테스트 결과는 그녀를 안드로이드로 지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인간이라고 밝혔다. 릭은 자신의 무기나 다름없는 테스트가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사실에 낭패를 숨기지 못했다. 그것은 곧 자신이 안드로이드를 사냥할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돈을 벌 수 없다는 걸 의미했으니까. 릭은 자신이 로젠연합의 덫에 걸렸음을 깨닫는다. 로젠연합이 제시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패배를 인정하려던 찰나, 그는 무언가를 깨닫고는 다시 레이첼에게 테스트를 시행했다. 릭은 그녀를 안드로이드로 진단한 테스트 결과를 확신했다. 그리고 그가 옳았다. 그녀는 로젠연합의 최신 안드로이드인 넥서스-6의 원형 모델이었던 것이다. 릭은 테스트의 유효성을 확인한 뒤 세 번째 안드로이드를 잡으러 향했다.
넥서스-6 안드로이드들은 과연 똑똑했다. 러시아 경찰로 위장해 접근한 안드로이드에게 릭은 하마터면 당할 뻔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을 은퇴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다음 목표는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는 안드로이드였다. 그녀는 매력적인 외모와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릭은 그녀가 부르는 노래들을 감상하다가 리허설이 끝나자 그녀에게 테스트를 시행했다. 독일에서 온 것으로 되어 있는 그녀는 영어 단어들의 의미를 모르는 척하며 테스트 진행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릭이 성적인 상황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그것도 테스트의 일부였다) 그녀는 성추행으로 경찰에 신고했다. 릭은 경관들에게 체포되고, 자신의 신분을 알라지만 소용없이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그런데 경찰서란 곳은 조금 수상했다. 아침에 출근했던 경찰서와는 전혀 다른 곳에 완전히 다른 경찰 조직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릭의 신분은 그 새롭고 낯선 경찰서에서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의 도시인 샌프란시스코에 완전히 독립적인 경찰이 존재하는 셈이었다. 사실 그곳은 안드로이드가 만든 가짜 경찰서였다. 릭은 그곳에 소속된 다른 현상금사냥꾼의 도움을 받아 안드로이드를 은퇴시키는 데에 겨우 성공했다. 그 현상금사냥꾼은 자신이 안드로이드에게 속아서 고용되었다는 사실에 매우 분개했다. 릭과 그는 다시 오페라 가수에게로 갔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의 복사본을 사달라고 하고, 존재의 최후의 순간에 대한 애처로움을 느낀 릭은 사비를 털어 그녀의 청을 들어주었다. 다른 현상금사냥꾼은 그런 릭을 이해하지 못했다. 스스로가 인간이라고 믿고 있던 그는 사실 감정이입능력이 없는 안드로이드였던 것이다. 그리고 릭은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건 바로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에게 자신이 감정이입, 즉 ‘동정’이나 ‘매력’ 따위를 느꼈다는 사실이었다. 이 깨달음은 곧 안드로이드를 ‘은퇴’시키는 게 아니라 ‘죽인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지막 남은 세 안드로이드들은 도피 장소를 찾아 존 이지도어의 아파트로 숨어 들어갔다. 이지도어는 방사능 피해로 두뇌에 장애가 생겨 멍청해진, ‘특수자’로 분류된 사람이었다. 그는 정상인들의 경멸을 받으며 가짜 동물을 수리해주는 동물병원의 트럭 기사로 일했고, ‘머서주의’로 알려진 종교를 신실하게 믿으며 ‘머서 감정이입기’를 사용해 마음의 평화를 얻는 소박한 삶을 살고 있었다. 감정이입기라는 장치는, 머서라는 사람이 누군가가 던지는 돌에 맞아가며 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영적 장면을 실제처럼 체험할 수 있는 기계였다. 그런 체험을 통해 일종의 공동체적 의식을 고양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여자 안드로이드에게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또 이지도어는 다른 두 명의 안드로이드들을 친구로 여기고 극진히 대접했다. 그들이 안드로이드든 인간이든 관계없이, 자신에게 적대감을 갖지 않는 존재들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안드로이드들은 이지어도를 친구로 대한다기보다 숫제 부려먹는 수준이었지만. 이지도어는 그러나 그런 것에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다른 누군가들과 한데 어울려 사는 것에서 기쁨을 느꼈던 것이다.
릭은 낮에 처치한 세 명의 안드로이드를 처치하고 포상금을 두둑하게 받았다. 그는 퇴근 후 곧바로 동물가게로 가서는 포상금을 선금으로 걸고, 그리고 어마어마한 할부금을 매달 내는 조건으로 진짜 염소를 샀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이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안드로이드들을 ‘죽여야’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염소를 들고 집에 돌아온 그는 상관의 전화를 받았다. 안드로이드 잔당의 위치가 파악됐으니 바로 출동하라는 명령이었다. 릭은 내키지가 않았지만 차를 몰고 나갔다. 그리고 레이첼에게 전화를 걸었다.
릭은 호텔방으로 레이첼을 불렀다. 그곳에서 레이첼과 릭은, 그러니까 안드로이드와 릭은 섹스를 한다. 레이첼은 릭에게 현상금사냥꾼 일을 그만두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안드로이드와 섹스를 한 인간에게 있어서 안드로이드를 처치한다는 것은 곧 생명을 죽이는 일과 다름이 없게 되니까. 그러나 릭은 안드로이드 잔당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아파트에 진입한 릭은 안드로이드들을 처리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리고 차를 몰아 쓰레기 밖에는 없는 황무지로 갔다. 거기서 그는 감정이입기도 없이 ‘머서의 고난’ - 돌팔매를 맞으며 산의 정상에 올라가는 일 - 을 체험했다. 누구와도 함께가 아닌, 완전한 고독 속에서 말이다. 그리고 먼지뿐인 그곳에서 살아있는 두꺼비를 발견했다. 전쟁 후 완전히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동물이었다.
그는 집으로 두꺼비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아이린에게 그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두꺼비는 진짜가 아닌, 제어판과 회로가 달린 가짜 두꺼비였다. 릭은 실망하기는커녕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는 피곤한 하루를 뒤로 하고 깊은 잠에 들었다. 아내는 남편의 전기 두꺼비를 위해 먹일 인공 파리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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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뻘글)
소설의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안드로이드들을 ‘은퇴’시키는 공식적 이유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중반부 이후에 접어들면서는, 나 또한 릭 데커드가 빠졌던 혼란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도대체 안드로이드는 생명일까 아닐까? 원래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어야한 한다. 기계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살아 있었다. 피와 살 대신 인조가죽과 전기회로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생명체라고 할 수 없단 말인가? 감정이입능력이 없다고 해서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단 말인가? 그리고 안드로이드들이 감정이입능력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야기 속에서 안드로이드끼리는 감정이입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물론 인간의 관점에서 봤을 때의 공동체 의식이라든지 도덕관념 따위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감정을 갖고 타인(안드로이드든 인간이든)과 소통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프로그래밍되지 않은 성적 유혹을 인간에게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정이입능력이 있음을 입증한다고 볼 수 있겠다.
전자 양을 극도로 혐오하던 릭 데커드가 마지막에는 전자 두꺼비를 끔찍히 아끼게 됐듯이, 나 또한 처음에는 안드로이드를 인정하지 않았다가 마지막에 와서는 그들의 존엄성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즉, 안드로이드와 섹스를 해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탄력있는 가슴을 가진 젊은 여자 안드로이드와, 길거리에 유모차를 끌고 출몰하는 노숙자 할머니 가운데 섹스 상대를 골라야 한다면, 과연 당신은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당신의 대답이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당신도 결국 안드로이드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를 인정한다는 것은, 나와 다른 모든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우리’와 다르다고 배척하고 혐오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아닌 자들’은 소설 속의 안드로이드 같은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추격자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 거칠고 난폭해지고 사악해지지 않을 도리는 없다. 일상생활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 해본다면, 자신의 성을 바꾼 트렌스젠더에 대한 많은 남자들의 혐오감이 대표적일 것이다. 다시 한 번 물어보자. 하리수와 노숙자 할머니 가운데 누구를 당신의 침대로 끌어들일 텐가?
그리고 나를 한없이 우울하게 만든 장면이 있다. 릭이 포상금을 들고 염소를 구입할 때였다. 그는 자신의 일을 계속하기 위해 빚을 진다. 한때 나는 자동차를 살까 말까 엄청나게 고민했었다. 자동차 할부금을 갚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일을 하고 월급을 타먹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사회에 속한 구성원임을 포기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여전히 내가 일을 때려치우지 않는 이유는, 갚아야 할 빚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악순환을 작가는 인류에게 내려진 영원한 저주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우울했다. 결국 나는 내가 속하기 싫은 곳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결코. 아마 릭 데커드도 계속해서 현상금사냥꾼 일을 계속할 것이다. 적어도 염소 할부금을 다 갚을 때까지는(불행하게도 염소는 사오자마자 죽어버렸다).
나 또한 적어도 빚을 다 갚을 때까지는 일을 계속할 것 같다. 그렇게 견디며 살아갈 것이다. 나를 괴롭히는 것들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그러나 내가 너무 많이 깨달은 것인지 아니면 아직 덜 깨우친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모든 걸 내던질 날이 오리란 것을 예감한다. 모든 생명이 결국은 죽음에 이르듯, 사력을 다해 산 정상에 오른 머서를 기다리는 것은 오직 하나, 죽음뿐이듯, 내 삶의 방향도 어떤 하나의 귀결점을 향해 고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우울한 소설인 것 같다. 소설 결말 이후의 릭 데커드의 삶이 눈에 보이는 듯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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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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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스포일)
벨몬테의 부자 상속녀인 포셔를 흠모하는 바사니오는 베니스의 거상 안토니오를 찾아온다. 막역한 친구인 그에게 돈을 꿔서 포셔에게 청혼하러 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마침 안토니오는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무역 투자에 써버린 뒤였다. 안토니오의 물건들을 잔뜩 실은 배들은 한 달이 지나야 돌아올 예정이었다. 안토니오는 바사니오에게 자신의 신용을 담보로 시내에서 돈을 빌릴 것을 제안하고,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을 찾는다. 샤일록은 평소 자신을 비난하던 안토니오가 막상 급한 상황이 되어 자신을 찾아오자 분노하며 대부를 거절하려 한다. 그러나 복수심에 불타던 샤일록은 마음을 고쳐먹고, 돈을 정해진 기한 내에 갚지 못하면 안초니오의 살 1파운드를 가지기로 계약을 맺는다.
그날 밤, 샤일록의 딸 제시카는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집안의 재물을 몽땅 들고 바사니오의 친구 로렌초와 사랑의 도피를 한다. 샤일록은 노발대발하며 딸에 대한 배반감만큼의 복수심을 안토니오에게 겨눈다.
포셔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청혼자들에게 금, 은, 납으로 만들어진 궤 가운데 하나를 골라서 거기에 나오는 메시지에 따라 결혼을 하든가 묵묵히 돌아가든가 해야 한다고 말한다. 청혼자들은 금과 은으로 된 겉모양을 보고 자신의 운을 시험하지만 결과는 실패다. 그들은 낙담하여 돌아가고, 마침내 어렵사리 돈을 구한 바사니오가 찾아온다. 바사니오는 납 궤를 고르고, 포셔와의 혼인에 성공한다. 포셔는 그에게 반지를 주며 어떤 경우에도 빼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을 것을 당부한다. 바사니오는 죽을 때까지 반지를 빼지 않겠노라 맹세한다. 바사니오를 따라온 친구 그라티아노는 포셔의 하녀 네라사와 눈이 맞고, 그 둘도 사랑의 서약을 하며 반지를 징표로 준다.
기쁨이 가득한 이때에 뜻밖의 소식이 그들에게 날아든다. 안토니오의 배가 모두 난파당해 샤일록의 돈을 갚지 못했고, 그 때문에 살을 베일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바사니오 일행은 여자들을 남겨두고 안토니오를 구하러 베니스로 향한다.
법정에서 샤일록은 안토니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고 계약대로 살을 베어가겠노라고 주장하고, 만약 계약대로 진행되지 않도록 판결을 내린다면 베니스에서 법이란 유명무실한 것이라고 말한다. 베니스의 공작은 난감해한다. 인품이 두터운 안토니오를 살리자면 베니스의 명성에 누가 되고, 결국 베니스의 번성에도 치명타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작은 판결을 위해 법학자를 초빙하는데, 법학자는 자기 대신 젊은 두 청년을 보낸다. 사실 두 청년이란 포셔와 네리사가 남장을 한 것이었다. 포셔는 샤일록의 계약이 정당하며 안토니오의 살을 취할 것을 판결한다. 환호하는 샤일록이 안토니오를 칼로 찌르려 할 때, 포셔는 샤일록이 취할 것은 오로지 살에 한정할 것이며, 만일 한 방울의 피라도 흘릴 시에는 샤일록에게 중죄를 적용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샤일록은 복수의 바로 앞에서 좌절한다. 법대로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는 샤일록은 반대로 법을 어긴 셈이 되어 재산을 몰수당한다. 현명한 판결에 바사니오 일행은 포셔와 네리사에게 돈을 주려 하지만, 그들은 돈을 거절하는 대신 바사니오와 그라티아노가 낀 반지를 달라고 청한다. 바사니오와 그라티아노는망설인 끝에 결국 반지를 내준다.
안토니오의 생명을 구하고 함께 벨몬테의 저택으로 돌아온 바사니오 일행은, 먼저 돌아와 있던 포셔 들에게 반지의 행방을 추궁 받는다. 바사니오는 친구와의 우정을 위해 약속을 깨버린 것에 대해 용서를 빌며, 평생 두 번 다시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 맹세한다. 커플들은 용서를 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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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뻘글)
물론 남장을 하고 남편을 시험하는 등등의 플롯은 막장이다. 점 하나 붙이고 나타났더니 전부인을 몰라본다는 드라마 설정 보고 뭐라고 할 게 아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심오한 캐릭터와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특유의 오락가락하는 주제의식으로 조명을 받곤 한다. 그의 작품을 읽을 때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스토리 전개라든지 인종차별적 설정 따위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이유로 「베니스의 상인」 역시 샤일록이라는 악역과 현모양처 포셔의 캐릭터에 대해 다양한 재해석들이 숱하게 난무한다. 샤일록은 과연 악당인가? 그 행동의 잔인성만으로 따지자면 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분노와 복수심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것이다. 성폭행 범죄자는 성기를 잘라내고 사형을 시켜야한다며 열에 들떠 주장하는 사람들과 샤일록이 뭐가 다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물론 샤일록이 착한 인물이라고 주장하겠다는 건 아니다.
안토니오 역시 독특한 캐릭터다. 친구를 위해 헌신하는, 인품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은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희생을 내색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가 진심으로 친구를 사랑했을까? 마치 며느리가 속으로는 유산을 노리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효심이 깊은 척 시부모를 공양하며 자신의 효행을 하루가 멀다 하고 떠든 끝에 효녀상이라도 하나 타고는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 연상된다.
포셔야말로 무서운 고리대금업자다.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대가로, 평생 동안 남편이 눈치보며 살도록 만드는 것은 엄청난 이자가 아니고 무엇인가? 게다가 약속을 어기게끔 상황을 만들어놓은 장본인이기까지 하다. 이자의 이자의 이자를 내놓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이자의 이자의 이자의 이자를 또 물어내라고 협박하는 일수꾼에 다름없다.
이런 의미에서, 희곡의 제목이 「베니스의 상인」 또는 「베니스의 샤일록」이라는 것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듯하다. 셰익스피어는 권선징악인 척하는 희극으로 대중들을 속이고는 참의미를 자기만 되새기며 즐거워했을 것이다.
한편, 포셔와 관련한 약속들에 대해서는 어쩐지 좀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금궤와 은궤를 선택한 구혼자들은 가차 없이 낙오하지만, 납궤를 선택해서 일단 구애에 성공한 바사니오는 반지의 맹세를 깨뜨리는 중대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용서받는다. 잔인한 현실이다. 또 샤일록의 계약도 잔인하다. 살을 취하는 게 잔인하다는 것이 아니다. 계약에 대한 해석이 잔인하다. 살을 베어가되 피를 흘리게 하면 살인죄를 적용할 것이며, 판결대로 살을 베어가지 않으면 법정모독죄로 전재산을 몰수하겠다니. 잔인한 현실 앞에 샤일록은 나약한 피해자일 뿐이다.
소설을 주로 읽다가 희곡을 읽으니, 너무나도 짧고 가파른 호흡에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희곡의 빠른 호흡은, 대중들 앞에서 실시간으로 상연되면서 흥미를 계속해서 유발해야 하기 때문에 형성되었을 것이다. 소설의 호흡도 빨리한다면 단숨에 읽히는 흡입력을 가질 것이다. 희곡의 호흡을 자연스럽게 이식한 소설이 어디 없을까? 후딱후딱 읽어치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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