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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줄거리(스포일)
외삼촌 에니시테의 요청으로 12년 만에 이스탄불로 돌아온 카라는 감회에 젖어 도시의 곳곳을 돌아본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그리웠던 고향의 추억은, 바로 에니시테의 딸인 세큐레였다. 12년 전 자신의 딸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외삼촌은 카라를 고향에서 쫓아내고, 카라는 타지에서 방황했던 것이다. 외국의 군주와 지방 영주들의 서기관이나 비서를 하고 그들을 위해 책을 만드는 일을 생업으로 삼으며 방랑하던 그는 이제는 그 원형으르 기억할 수조차 없을 만큼 가물가물한 세큐레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리며 살아왔다. 이제 그는 자신의 사랑이 살고 있는 에니시테의 집으로 향한다.
카라가 이스탄불에 도착하기 며칠 전, 이스탄불에는 잔인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물론 이스탄불 같은 대도시에서 잔인한 살인 사건이란 것은 하루에도 수차례나 발생하고도 남았겠지만, 이번 살인 사건은 중대한 의미를 띤 것이었다. 살해당한 사람이 바로 술탄의 화원에 소속되어 있는 한 세밀화가였기 때문이다. 그 세밀화가는 에니시테와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었고, 그러므로 카라와도 깊은 관련이 있었다. 에니시테는 술탄의 명으로 비밀리에 책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가 비밀리에 고용해서 책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게 한 세밀화가들 가운데 한 명이 죽임을 당한 것이었고, 한편 책의 그림들에 어울릴 만한 이야기를 써내기 위해 에니시테는 외지에서 떠돌던 카라를 불러들인 것이었다. 살해된 사람은 금박을 입히는 데에 뛰어난 재주를 지닌 장인 엘레강스였다. 그가 비밀리에 참여한 책은 술탄이 베네치아 총독에게 선물로 줄 예정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그의 죽음으로 책의 완성에 차질이 빚어짐은 물론, 책을 완성하는 데에 격렬히 반대하고 위협하는 적이 비로소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 에니시테는 카라에게 속히 책을 완성시켜 줄 것을 당부한다.
원래 카라는 책보다는 세큐레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 이스탄불로 흔쾌히 돌아온 것도, 베네치아 화가들이 그리는 사실적인 화풍의 초상화에 대한 에니시테의 찬미를 주의 깊게 들어준 것도 사실은 세큐레 때문이었다. 12년 사이에 세큐레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카라가 쫓겨나다시피 이스탄불을 떠나고 몇 년 후, 세큐레는 잘생긴 기마병과 결혼했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던 어느 날 전쟁에 나간 남편이 실종되었고, 세큐레는 시아버지의 집에서 남편을 기다렸었다. 그러나 남편의 동생 하산이 자꾸만 형수인 자신을 범하려 하자 위협을 느낀 세큐레는 짐을 꾸려 친정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은 지도 4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세큐레는 남편이 살아있으리라는 기대를 차츰 접고 자신의 새로운 남편감을 은밀히 찾고 있던 참에 카라가 돌아왔음을 알았다. 재회한 둘은 불꽃처럼 사랑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시동생의 방해 공작과 구애를 피해 세큐레는 카라와 밀회하는 데에 성공하지만, 둘이 사랑을 맹세하고 결혼을 약속하는 동안 집 안에 혼자 남겨진 에니시테는 죽임을 당한다. 엘레강스를 살해한 사람과 동일인물의 소행이었다. 에니시테가 고용한 세밀화의 장인들 가운데 한 명인 살인범은 책의 마지막 장에 들어갈 그림을 훔쳐간다. 세밀화가와 에니시테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던 이유는 책 속 그림들의 화풍 때문이었다. 그 그림들은 이슬람교에서는 불경하고 이교도적인 것이라고 비난받고 있는 서양화의 원근법을 적용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살해범은 자신이 제작에 참여한 그 책이 신성모독적이라면 자신도 불경죄를 저지른 셈이므로 소문의 진상을 확인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에니시테가 죽자 세큐레와 카라는 자신들의 사랑 또한 직접적인 위협에 처함을 깨닫는다. 친정아버지의 사망으로 보호자가 없어진 세큐레는 도로 시댁으로 끌려가게 될 것을 두려워했고, 그렇게 되면 카라로서는 세큐레와 혼인할 기회가 영영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에니시테가 죽은 것을 숨기고 남편의 오랜 부재를 사유로 이혼 절차를 마친 뒤 조용히 결혼식을 올린다.
혼인식을 무사히 마치고 카라는 술탄의 궁전으로 향한다. 에니시테의 죽음을 알리고 정식으로 뒤늦게 장례를 치른 뒤, 카라는 화원장 오스만과 함께 사흘 안에 범인을 잡아내라는 술탄의 명을 받게 된다. 유일한 단서는 엘레강스가 죽을 당시에 주머니에 들어 있던 말 그림이었다. 모든 사물을 예 장인들과 대가들의 수법 그대로 그리는 것이 미덕인 이슬람 화풍 때문에 말 그림은 누가 그리든 똑같아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화원장 오스만은 범인이 그렸음에 틀림없는 말 그림에 특이한 점을 발견한다. 그건 말의 콧구멍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그린 특이한 말의 콧구멍은 그 화가만의 독특한 특징이며, 그런 식으로 콧구멍을 그린 건 화가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승계한 화풍에 따른 것이므로 그 기원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알면 자신의 세밀화가 제자들 가운데 누가 그린 것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카라와 화원장은 술탄의 국고에 들어가 하룻밤 하루 낮을 머무르며 모든 그림들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국고 안에 틀어박혀 전설적인 책과 그림들을 보다가 황홀경에 빠진 화원장은 문득 자기들이 추구하던 화풍의 시대가 끝날 것임을 예감한다. 그리고 오스만제국의 전통적 화풍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그는 스스로 바늘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말 그림을 그린 화가를 밝혀내는 한편, 개인적으로 염두에 둔 살인용의자의 이름을 카라에게 말하고 위대한 장인 오스만 화원장은 축복스러운 어둠이 눈앞에 내림을 느끼며 국고 안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계속해서 들여다본다.
국고에서 나온 카라는 집에 세큐레가 없음을 깨닫고 세큐레의 시댁으로 가서 아이들과 세큐레를 되찾아 온다. 그녀와 두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킨 뒤, 그는 세밀화가들이 즐겨 찾는 커피숍이 과격하고 엄격한 에르주름파 무리들의 습격을 받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에니시테가 고용한 나머지 세 명의 세밀화가 중 한 명인 ‘나비’와 마주친다. 함께 나비의 집으로 가서 집을 수색하고 심문한 뒤 그에게는 혐의가 없음을 확인한 카라는 다른 세밀화가 ‘황새’의 집으로 가지만, 그 역시도 살해범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 세밀화가 ‘올리브’는 집에 없었다. 올리브는 자신이 믿고 있는 한 몰락한 종파의 수도원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를 찾아 카라 일행이 수도원으로 들이닥치고, 수도원 곳곳을 뒤져보지만 마지막 그림을 찾지는 못한다. 말 그림을 그린 것은 올리브였다. 함께 수도원의 옛 시절을 추억하며 이야기하던 중 올리브는 자신이 범인임을 무의식중에 실토하고 만다. 카라 일행은 그를 결박하고 마지막 그림을 찾아낸다. 마지막 그림은 원근법을 사용하여 그려진 술탄의 초상화였다. 아니, 이제 그것은 올리브 자신의 초상화로 변해 있었다. 초상화의 매력에 빠진 올리브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고, 그래서 술탄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로 고쳐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영 어색한 그림이었다. 올리브는 서양화가들의 이 원근기법이 한순간에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 세기에 걸쳐 배워야만 하는 것이며, 앞으로 화가들은 이런 서양의 기예를 좇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올리브는 눈을 찔려서 눈이 멀어가기 시작하지만 결국은 카라를 부상 입히고 탈출하는 데에 성공한다. 인도로 가는 배를 타러 가려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인생을 바쳤던 화원에 들러보기로 작정한다. 하지만 하원앞에서 분노에 찬 하산을 맞닥뜨린다. 올리브의 손에 쥐어진 자신의 단검을 본 하산은 검을 들어 그의 목을 내리친다. 올리브가 손에 쥔 단검은 카라에게서 빼앗은 것이었는데, 그 단검은 사실 세큐레의 시아버지집에서 아이들이 들고 나온 것을 카라가 가져온 것이었고, 하산은 자신의 단검을 쥔 사내가 분명 세큐레와 아이들을 자기 집에서 빼낸 카라의 하수인일 거라고 단정짓고 분노에 차서 그를 죽인 것이었다.
사건은 해결됐고, 살인자를 죽인 하산은 이제 살인범이 되어 외국으로 도망간다. 카라와 세큐레는 평화롭고 행복하게 가정을 꾸린다. 그러나 카라는 죽을 때까지도 깊은 슬픔을 영혼에 지니게 되고 세큐레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아름다움을 잃고 늙어버린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세큐레의 입에서 아이들에게로, 아이들에게서 또 다른 이들에게로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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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뻘글)
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사를 배운 한국 사람들은 보통 이슬람 문화를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단 한 구절로 기억해버리고 만다. 엄격한 종교 규율을 충실히 따르고 자신들이 이교도로 간주한 적을 무참히 살해하는,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무슬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서구권과 허구한 날 전쟁을 일삼고 테러를 가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의 활약상(?) 때문에 이슬람 문화에 대한 한국인들의 고정관념은 한층 더 굳어진 듯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슬람이라는 단어에서 왠지 모를 슬픔을 느낀다. 기도 시간이면 사원 첨탑에서 울려 퍼지는 애수 띤 기도음악,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도 음악에 맞춰서 서서히 어둠 속으로 잠긴다. 귀청을 따갑게 할 정도로 최대한 볼륨을 키워 멀리까지 퍼져 나가는 그 음악 속에는 어딘지 모를 적막이 섞여 있다. 그 이슬람 언어들의 슬픔과 애수 띤 음악의 적막을 나는 ‘한(恨)’이라 부르고 싶다. 이상하게도 ‘한국인만의 특유한 정서’라는 한을, 나는 쭉쭉 뻗은 다리를 내보이면서 경쾌한 노래를 부르는 소녀시대를 볼 때보다 이슬람 국가의 그런 일상을 되새길 때 더욱 절실하게 가슴으로 느낀다.
이 소설은 이슬람 문화의 슬픔에 관한 것이다. 아니,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슬픔에 관한 이야기다. 배경이 이슬람인 것은, 이슬람의 전통 또한 어느샌가 사그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종종 장님이 된 세밀화가들처럼 내 기억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지금은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해 뜨기 전의 완벽한 어둠 속에서 부엌에 들어앉아 부산히 차례상을 준비하던, 재래식 아궁이 앞에 쭈그려 앉은 할머니의 뒷모습이며 불기운에 발그레해진 옆얼굴, 아버지와 함께 슈퍼 앞 파라솔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던 한여름 밤, 고등학생 때 엄마와 함께 읽을 만한 책을 골랐던 동네 서점의 정경, 뭐 이런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은 아련하면서도 어딘지 모를 고요함과 애수가 깃들어 있다. 오래된 것이 어쩔 수 없이 모래바람에 부스러지고 난 자리에 자라는 슬픔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추리소설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K팝’에서 과연 한의 정서를 찾을 수 있는가?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속속 내놓는 소설들에서는? 세계인의 입맛을 잡기 위해 예쁘고 깔끔하게들 차려놓은 요즘의 한식들에서는? 광화문의 그 넓고 웅대한 광장에서는? 최신 유행과 초고층 빌딩들이 거리를 꽉 메운 강남 한복판에서는? 차라리 나는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터키의 국민가수 세젠 아쿠스(Sezen Aksu)의 노래 <이스탄불 올랄러(Istanbul Olali)>에서 한을 발견한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들 속에서 상실의 한을 찾는다. 한국의 특유한 ‘한’이라는 정서는 이제 한국에서 모습을 감춘 듯하다. ‘한’을 상실했다는 한의 감정을 느끼며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누군가는 우리의 ‘한을 잃어버린 한’에 대한 이야기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카라가 세큐레에게, 세큐레가 아들 오르한에게, 그리고 오르한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줬듯이 말이다.
이 책은, 비록 글로만 이루어졌지만, 한 권의 세밀화집이다. 각각의 챕터마다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는 한 장의 그림을 상상해보는 재미도 이 책의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온다. <휘스레브와 쉬린>에서 쉬린이 휘스레브의 그림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 장면을 그린 그림을 감상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