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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줄거리(스포일)
한 면의 길이가 수 킬로미터에 이르고 600층이 넘는 초고층, 초대형 빌딩 <빈스토크>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담은 소설집이다.
「동원박사 세 사람: 개를 포함한 경우」는 그 첫 번째 이야기다. 미세권력연구소의 정교수는 건물 내 미세권력 분포도를 알아내기 위해 ‘조그만 정성’의 명목으로 권력자들에게 바쳐지는 값비싼 양주에 전자태그를 부착한다. 약 1년간의 추적 결과 권력관계는 3차원적 지도에 그려지는데,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그건 영화배우 P가 상당한 권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욱이 P는 그냥 인간 영화배우가 아니라 개였던 것이다.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연말까지 권력 지도를 완성해야 했고, 정교수는 작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외부에서 세 명의 박사들을 임시로 고용한다. 세 명은 역시나 개가 권력장(場)에서 상당한 위치를 갖고 있음을 발견하고, 개를 권력장에 포함시켜야 실제의 권력분포와 일치한다는 결론을 얻는다. 그러나 정상적인 - 개가 포함될 경우 - 권력장에서 또 이상한 점이 발견되는데, 그건 시장과 정교수의 아내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정교수의 젊은 아내는 아이를 출산하고 세 명의 동방박사, 아니 동원 박사들은 권력자의 힘에 이끌려 선물을 사들고 병원으로 향한다. 그러나 병실에 도착해보니 정교수가 아내를 끔찍하게 살해한 현장을 목격한다. 정교수는 이미 개를 포함시킨 권력장에서 드러나는 비밀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확정적인 정교수의 파멸을 귀로 하고 박사들은 빈스토크 국경을 넘어 달아난다.
「자연예찬」은 작가 K의 이야기다. 현실비판으로 유명한 그는 갑작스레 자연을 예찬하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출판사 편집직원 D는 K에게 예전의 날카로운 글을 써줄 것을 부탁하지만 K는 요지부동이다. 그는 자신이 그런 글을 쓴다면 이 정권에서 ‘먼지’가 탈탈 털려 몰락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K는 스페인의 프리힐리니아 지방의 별장과 그곳의 가정부 로봇을 ‘조그만 정성’으로 받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로봇의 눈을 통해 본 그곳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특히 로봇을 정비하는 소녀가. K에게는 저소공포증이 있어서 빈스토크를 평생 떠날 수 없었다. 오직 로봇을 통해서만 아름다운 풍경과 순수의 결정체인 소녀를 바라볼 뿐. D는 겨우 K를 설득하고, 마침내 K는 작가로서의 양심을 따라 현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한다. 물론 그 결과는 파멸이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K는 아주 오랜만에 로봇을 작동시켜본다. 로봇의 눈에 비친 것은 중년이 된 소녀의 모습이었다. 둘은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는 빈스토크로 이민간 여자와 주변국에 남겨진 옛 애인의 이야기다. 둘은 사소한 오해로 헤어지고, 그렇게 살아간다. 몇 년 뒤 남자는 시민권을 얻기 위해 빈스토크 해군에 입대해 4년간 조종사로 복무한다. 그러다 말년에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격추를 당한다. 그러나 빈스토크 정부는 외교적 위험 때문에 그를 모른척한다. 그때 둘의 이별의 원인을 제공한 남자가 나선다. 그는 시민들끼리 자발적으로 우편을 배달해주는 ‘푸른우체통’에서 그만 우편물을 깜박하고 자기가방 속에 넣는 바람에 남자의 화해 편지를 여자에게 전달해주지 못했고, 결국 본의 아니게 이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소식을 접한 여자는 타클라마칸의 현재 위성 자신을 구하고, 대발사고를 일으킨 남자는 그걸 웹사이트에 올린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추락한 남자를 찾는 일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 처음에는 얼마 안 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불어나더니 수십만 수백만 명으로 늘어나고, 결국 기계의 도움 없이 수작업만으로 광대한 사막의 지도에서 바늘보다 작은 존재인 남자를 발견하는 데에 성공한다.
「엘리베이터 기동연습」에는 두 가지 사상, 즉 수직주의와 수평주의가 충돌하는 장면이 그려진다(수직주의는 보수, 수평주의는 진보진영이라고 해석하면 된다). 공무원으로서 비상시/전시에 동원훈련 작전을 담당하는 남자는 자의와 무관하게 수직주의자로 세상에 분류된다.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는 반면에 수평주의 이론가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둘은 그런 구분에 아랑곳 않고 우정인지 사랑인지 모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다 양 진영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급기야 폭력시위로까지 사태가 번진다. 둘은 서로의 개인적 감정과 관계없이 각 진영의 명령과 압박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광장의 아미타불」은 파산한 외국남자가 빈스토크의 시위진압대로 취직해서 그의 처제와 편지를 나누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남자는 시위진압대에서 새로 들여온 코끼리를 전담한다. 코끼리의 이름은 아미타브였는데, 인도에서 수행승을 따라다니며 단식과 고행을 하던 이력이 있었다. 그가 코끼리를 몰고 나갈 때면 이상하게 시위대와 진압대 모두 조용해졌고, 시위는 자연스럽게 흐지부지된다. 코끼리는 아미타불이란 별명으로 빈스토크에서 유명해진다. 어느 날 처제와 아내가 남편을 만나러 빈스토크를 방문한다. 그날따라 엄청난 규모의 시위가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아미타브는 혼란의 와중에서 어떤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하지만, 진압대 상관이 휘두른 채찍에 맞아 깨달음에 이르는 데에 실패하고 만다. 남자는 아미타브를 위로해주고 원기를 북돋아주려고 물을 주지만, 최루액이 섞인 줄을 몰랐다. 코끼리는 물을 마시고 괴로움에 날뛰다가 빌딩 바깥으로 떨어져 죽고 만다.
마지막 이야기 「샤리아에 부합하는」에서는 빈스토크와 전쟁을 벌이는 코스모마피아가 건물을 파괴하려 시도한다. 코스모마피아의 간첩인 셰흐리반은 지령을 받고 빈스토크가 지어질 당시부터 비밀리에 대형 폭탄이 보관되어 있는 부동산들을 매입한다. 모든 매입과 폭탄 설치가 끝나고 최후의 심판의 순간이 다가온다. 그러나 폭탄은 터지지 않는다. 몇십 년동안 세월이 흐르면서 폭탄을 보관하고 있던 사람들이 몰래 폭탄에 손을 써놓은 것이었다. 그들은 빈스토크가 사라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심판의 날은 미뤄지고, 빈스토크는 다시금 바벨탑적인 삶을 지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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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뻘글)
50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상주하고, 건물인 주제에 하나의 독립적인 국가로 인정받는 <빈스토크>는, 비록 특이한 환경과 특이한 삶을 살아갈지언정 대지 위의 평범한 삶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총 7개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인간사회의 본성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탐구결과를 제시한다.
결국 작가가 염두에 둔 것은 「샤리아에 부합하는」이라는 마지막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이야기를 제일 처음에 쓴 건 아닐지 몰라도, 모든 이야기들을 써나가면서도 빈스토크의 결말을 계속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대체로 추악하고 약간은 아름다운 면도 있기는 하나, 결과적으로는 바벨탑의 복사본에 지나지 않은 우리 사회는, 어쨌거나 그래도 파괴하기보다는 껴안고 보듬어가며 살아야 한다. 비록 전과 다름없이 너저분하게 돌아가더라도 말이다. 소설은 참 재미있었다. 정치적 풍자는 별로였고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에 나오는 익명 집단의 기적 같은 힘 따위의 이야기는 촌스러운 면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긴 했다. 그러나 사회적 주제 말고 배명훈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주제의 축인 존재의 의미에 대한 성찰은 깊었다. 불교적이기까지 한 그의 통찰은 SF라는 환상적 - 허구 중의 허구- 인 장르와도 잘 어울려서 때로 가볍고 때로 유치한 이야기 전반에 깊이를 더해주고 무게중심을 잡아준다. 물론 재미있다는 것이 그 모든 이야기의 전제요소이다.
그런데 어째서 SF는 불교와 그리 잘 어울리는 걸까? SF 뿐만 아니라, 천문학자나 물리학자 같은 사람의 강연을 듣고 있노라면 그들이 과연 과학자인지 불교학자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