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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줄거리(스포일)
나폴리의 왕 알론조와 그 일행은 튀니지에서 거행된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길에 폭풍우를 만나 망망대해에서 난파당한다. 사실 폭풍우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근처의 섬에 살고 있는 한 노인이 마술과 정령을 이용해 고의로 일으킨 것이었다. 그 노인은 원래 밀라노의 대공이었으나 지위를 동생에게 억울하게 빼앗긴 푸로스퍼로였다. 푸로스퍼로는 어린 딸과 함께 고향에서 쫓겨나 이 섬에 정착했던 것이다. 그의 딸 미랜더는 이제 어엿한 숙녀로 성장해 있었다. 푸로스퍼로는 자신의 동생 앤토니오와 알론조 일행을 섬의 한쪽에 상륙하게 하고, 또 알론조의 아들 퍼니넌드는 홀로 다른 쪽에 상륙하도록 술수를 부린다.
한편 푸로스퍼로가 섬에 정착하기 전 그 섬에 살던 마녀의 아들인 캘리밴은 푸로스퍼로가 잘 기르려고 했지만 천성적으로 추악하고 욕망만을 추구하는 성격으로 인해 푸로스퍼로의 미움을 받는다. 캘리밴은 섬의 또 다른 곳에 상륙한 다른 조난자들을 만나 푸로스퍼로를 죽이고 그의 딸을 가지라고 유혹한다.
즉 한 섬에 세 가지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왕의 일행은 실종된 아들을 찾으려고 섬을 탐험하지만 푸로스퍼로의 마술에 걸려 집단으로 정신이 나가버린다. 퍼디넌드는 미랜다를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이 두 가지 상황은 모두 푸로스퍼로가 의도한 일이었다. 그러나 캘리밴 일행이 술에 잔뜩 취해서 그를 해하러 오는 것은 푸로스퍼로로서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다행히 그를 섬기는 정령이 그들의 음모를 발각하여 알려주고, 푸로스퍼로는 집 앞에 값비싼 옷가지들을 널어놓아서 술 취한 이들에게 함정을 판다. 술 취한 무리는 푸로스퍼로 따위는 까맣게 잊고 눈앞의 비싼 옷가지에 한눈이 팔린다. 퍼디넌드는 푸로스퍼로가 내린 시련을 이겨내고 미랜다와 약혼하는 데에 성공한다. 왕의 일행에게는 마법을 풀어주고 난파당한 배를 멀쩡한 상태로 되돌려준다. 그리고 예전에 자신에게 지었던 악행을 말끔히 용서해준다.
화해와 용서로 하나가 된 그들 모두는 이제 순풍을 타고 나폴리를 향해 떠나간다. 푸로스퍼로의 딸과 나폴리의 왕자의 결혼식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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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뻘글)
셰익스피어의 희극들은 대체로 요란하고 허무하다시피 한 소동을 그리곤 하는데, 「템페스트」 역시 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책을 읽기 전에는 자못 장중해보이는 제목 때문에 「햄릿」이나 「맥베스」 등의 비극인줄 알았는데 오히려 「한여름 밤의 꿈」처럼 ‘경쾌하고 아무도 다치는 사람이 없는’ 희극이었다.
은퇴를 암시하는 대사의 반복 때문이었을까, 말년에 집필한 작품이라 그런지 푸로스퍼로와 셰익스피어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었으며, 나는 개인적으로 정령과 마법, 환상과 환각, 착각과 오해 따위가 뒤범벅된 스토리야말로 가장 셰익스피어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의 작품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 즉 인생은 한바탕 꿈 또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일종의 허무주의적이면서도 달관적인 세계관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캘리밴이라는 캐릭터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누가 보아도 그는 인간의 육체적 욕망만을 한데 뭉뚱그려서 빚어낸 괴물이다. 그전에도 이런 인물이 창조되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순수한 악(惡)이라기보단 순수한 욕정이 실체화된 인물이다. 나 같으면 캘리밴에 대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시도했을 텐데, 작가는 작품 본연의 주제인 ‘용서’에 집중하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할 뿐이었다. 용서하기 위해서 이 모든 일을 저질렀다면, 그러니까 배를 난파시키고 딸과 왕자를 결혼시키고 하는 등의 일들이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용서하기 위해서라면, 과연 이 모든 소동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냥 아무 일도 벌이지 말고 용서해버리면 그만 아닌가. 아마 정령 에어리얼의 탄원(?)에 마음을 움직인 푸로스퍼로가 복수에서 용서로 태도를 전환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정황이 살짝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연결고리가 너무 약했다. 내가 보기엔 푸로스퍼로야말로 가장 이기적인 캐릭터로 보인다. 자기가 계획한 대로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야 모두를 용서하고 정령을 풀어준 그는, 만약 계획이 조금만 어긋나기라도 했다면 용서 따위는 절대 없었으리라는 걸 암시하기 때문이다. 결국 섬에서 오랜 시간 겪었던 그의 고난은 흘러간 세월만큼의 이자(왕의 사돈이라는)를 붙여서 고스란히 이익으로 되돌아온, 성공적인 투자에 불과한 셈이다.
마지막의 포용적 자세는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과거인 동생과 자신의 미래인 딸을 모두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욕망의 덩어리인 캘리밴마저도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십 년 넘게 복수의 기회만을 필사적으로 노리던 극의 초반부와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다. 이런 깨달음이 조금 더 설득력 있게 그려졌더라면, 혹은 푸로스퍼로의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면을 깊게 파고들었다면, 아마 셰익스피어 최고의 작품 가운데 하나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