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ㅣ 환상문학전집 11
필립 K. 딕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줄거리(스포일)
최후의 세계대전으로 완전히 피폐해진 지구에는 낙진이 끝없이 흩날리고, 아직 식민지 행성으로 이주하지 않은 인간들이 삶을 꾸려가고 있다. 릭 데커드와 그의 아내 아이린도 그런 사람들 중의 일부였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취미생활이자 낙이었다. 그들도 양을 한 마리 기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진짜가 아닌, 실물과 똑같이 생기긴 하지만 전자회로와 각종 부품들로 만들어진 인공 양이었다. 릭은 옆집 남자가 기르는 ‘진짜’ 말이 너무나 부러웠고, 자신도 무언가 진짜 동물을 갖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진짜 동물은 진짜 비쌌다. 방사능으로 인해 거의 모든 동물이 멸종하거나 멸종 위기 상태에 놓인 까닭이다.
릭의 직업은 현상금사냥꾼이었다. 경찰에 소속된 신분으로, 도주한 안드로이드들을 잡아 죽이는 것, 혹은 업계의 표현대로라면 ‘은퇴시키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출근한 릭은 상관으로부터 베테랑 사냥꾼 데이빗이 안드로이드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 전 도주한 최신형 안드로이드 8명 - 혹은 개 - 가운데 둘은 은퇴시켰지만 세 번째 안드로이드에게 당하고 만 것이었다. 이제 남은 6명의 안드로이드 처치는 그의 임무가 되었다. 안드로이드를 은퇴시켜야 월급다운 월급을 인센티브로 받을 수 있었고, 많은 수를 은퇴시킬수록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는 릭은 기꺼이 임무를 수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상관은 일단 안드로이드 제작회사인 로젠연합으로 가서 안드로이드를 식별해내는 심리테스트인 보이그트-캄프 테스트의 유효성을 확인해볼 것을 지시했다. 보이그트-캄프 테스트는, 인간에게만 존재하고 안드로이드에게는 없는 감정이입능력을 측정함으로써 외형상으로는 똑같아 보이는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하는 시험 도구였다.
릭은 로젠연합의 레이첼 로젠을 만났다. 그녀는 본격적인 시험을 하기 전에 자기부터 테스트해볼 것을 요구했다. 릭의 테스트 결과는 그녀를 안드로이드로 지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인간이라고 밝혔다. 릭은 자신의 무기나 다름없는 테스트가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사실에 낭패를 숨기지 못했다. 그것은 곧 자신이 안드로이드를 사냥할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돈을 벌 수 없다는 걸 의미했으니까. 릭은 자신이 로젠연합의 덫에 걸렸음을 깨닫는다. 로젠연합이 제시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패배를 인정하려던 찰나, 그는 무언가를 깨닫고는 다시 레이첼에게 테스트를 시행했다. 릭은 그녀를 안드로이드로 진단한 테스트 결과를 확신했다. 그리고 그가 옳았다. 그녀는 로젠연합의 최신 안드로이드인 넥서스-6의 원형 모델이었던 것이다. 릭은 테스트의 유효성을 확인한 뒤 세 번째 안드로이드를 잡으러 향했다.
넥서스-6 안드로이드들은 과연 똑똑했다. 러시아 경찰로 위장해 접근한 안드로이드에게 릭은 하마터면 당할 뻔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을 은퇴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다음 목표는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는 안드로이드였다. 그녀는 매력적인 외모와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릭은 그녀가 부르는 노래들을 감상하다가 리허설이 끝나자 그녀에게 테스트를 시행했다. 독일에서 온 것으로 되어 있는 그녀는 영어 단어들의 의미를 모르는 척하며 테스트 진행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릭이 성적인 상황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그것도 테스트의 일부였다) 그녀는 성추행으로 경찰에 신고했다. 릭은 경관들에게 체포되고, 자신의 신분을 알라지만 소용없이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그런데 경찰서란 곳은 조금 수상했다. 아침에 출근했던 경찰서와는 전혀 다른 곳에 완전히 다른 경찰 조직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릭의 신분은 그 새롭고 낯선 경찰서에서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의 도시인 샌프란시스코에 완전히 독립적인 경찰이 존재하는 셈이었다. 사실 그곳은 안드로이드가 만든 가짜 경찰서였다. 릭은 그곳에 소속된 다른 현상금사냥꾼의 도움을 받아 안드로이드를 은퇴시키는 데에 겨우 성공했다. 그 현상금사냥꾼은 자신이 안드로이드에게 속아서 고용되었다는 사실에 매우 분개했다. 릭과 그는 다시 오페라 가수에게로 갔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의 복사본을 사달라고 하고, 존재의 최후의 순간에 대한 애처로움을 느낀 릭은 사비를 털어 그녀의 청을 들어주었다. 다른 현상금사냥꾼은 그런 릭을 이해하지 못했다. 스스로가 인간이라고 믿고 있던 그는 사실 감정이입능력이 없는 안드로이드였던 것이다. 그리고 릭은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건 바로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에게 자신이 감정이입, 즉 ‘동정’이나 ‘매력’ 따위를 느꼈다는 사실이었다. 이 깨달음은 곧 안드로이드를 ‘은퇴’시키는 게 아니라 ‘죽인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지막 남은 세 안드로이드들은 도피 장소를 찾아 존 이지도어의 아파트로 숨어 들어갔다. 이지도어는 방사능 피해로 두뇌에 장애가 생겨 멍청해진, ‘특수자’로 분류된 사람이었다. 그는 정상인들의 경멸을 받으며 가짜 동물을 수리해주는 동물병원의 트럭 기사로 일했고, ‘머서주의’로 알려진 종교를 신실하게 믿으며 ‘머서 감정이입기’를 사용해 마음의 평화를 얻는 소박한 삶을 살고 있었다. 감정이입기라는 장치는, 머서라는 사람이 누군가가 던지는 돌에 맞아가며 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영적 장면을 실제처럼 체험할 수 있는 기계였다. 그런 체험을 통해 일종의 공동체적 의식을 고양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여자 안드로이드에게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또 이지도어는 다른 두 명의 안드로이드들을 친구로 여기고 극진히 대접했다. 그들이 안드로이드든 인간이든 관계없이, 자신에게 적대감을 갖지 않는 존재들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안드로이드들은 이지어도를 친구로 대한다기보다 숫제 부려먹는 수준이었지만. 이지도어는 그러나 그런 것에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다른 누군가들과 한데 어울려 사는 것에서 기쁨을 느꼈던 것이다.
릭은 낮에 처치한 세 명의 안드로이드를 처치하고 포상금을 두둑하게 받았다. 그는 퇴근 후 곧바로 동물가게로 가서는 포상금을 선금으로 걸고, 그리고 어마어마한 할부금을 매달 내는 조건으로 진짜 염소를 샀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이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안드로이드들을 ‘죽여야’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염소를 들고 집에 돌아온 그는 상관의 전화를 받았다. 안드로이드 잔당의 위치가 파악됐으니 바로 출동하라는 명령이었다. 릭은 내키지가 않았지만 차를 몰고 나갔다. 그리고 레이첼에게 전화를 걸었다.
릭은 호텔방으로 레이첼을 불렀다. 그곳에서 레이첼과 릭은, 그러니까 안드로이드와 릭은 섹스를 한다. 레이첼은 릭에게 현상금사냥꾼 일을 그만두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안드로이드와 섹스를 한 인간에게 있어서 안드로이드를 처치한다는 것은 곧 생명을 죽이는 일과 다름이 없게 되니까. 그러나 릭은 안드로이드 잔당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아파트에 진입한 릭은 안드로이드들을 처리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리고 차를 몰아 쓰레기 밖에는 없는 황무지로 갔다. 거기서 그는 감정이입기도 없이 ‘머서의 고난’ - 돌팔매를 맞으며 산의 정상에 올라가는 일 - 을 체험했다. 누구와도 함께가 아닌, 완전한 고독 속에서 말이다. 그리고 먼지뿐인 그곳에서 살아있는 두꺼비를 발견했다. 전쟁 후 완전히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동물이었다.
그는 집으로 두꺼비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아이린에게 그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두꺼비는 진짜가 아닌, 제어판과 회로가 달린 가짜 두꺼비였다. 릭은 실망하기는커녕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는 피곤한 하루를 뒤로 하고 깊은 잠에 들었다. 아내는 남편의 전기 두꺼비를 위해 먹일 인공 파리를 주문한다.
---------------------------------------------------
감상(뻘글)
소설의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안드로이드들을 ‘은퇴’시키는 공식적 이유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중반부 이후에 접어들면서는, 나 또한 릭 데커드가 빠졌던 혼란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도대체 안드로이드는 생명일까 아닐까? 원래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어야한 한다. 기계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살아 있었다. 피와 살 대신 인조가죽과 전기회로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생명체라고 할 수 없단 말인가? 감정이입능력이 없다고 해서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단 말인가? 그리고 안드로이드들이 감정이입능력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야기 속에서 안드로이드끼리는 감정이입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물론 인간의 관점에서 봤을 때의 공동체 의식이라든지 도덕관념 따위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감정을 갖고 타인(안드로이드든 인간이든)과 소통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프로그래밍되지 않은 성적 유혹을 인간에게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정이입능력이 있음을 입증한다고 볼 수 있겠다.
전자 양을 극도로 혐오하던 릭 데커드가 마지막에는 전자 두꺼비를 끔찍히 아끼게 됐듯이, 나 또한 처음에는 안드로이드를 인정하지 않았다가 마지막에 와서는 그들의 존엄성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즉, 안드로이드와 섹스를 해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탄력있는 가슴을 가진 젊은 여자 안드로이드와, 길거리에 유모차를 끌고 출몰하는 노숙자 할머니 가운데 섹스 상대를 골라야 한다면, 과연 당신은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당신의 대답이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당신도 결국 안드로이드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를 인정한다는 것은, 나와 다른 모든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우리’와 다르다고 배척하고 혐오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아닌 자들’은 소설 속의 안드로이드 같은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추격자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 거칠고 난폭해지고 사악해지지 않을 도리는 없다. 일상생활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 해본다면, 자신의 성을 바꾼 트렌스젠더에 대한 많은 남자들의 혐오감이 대표적일 것이다. 다시 한 번 물어보자. 하리수와 노숙자 할머니 가운데 누구를 당신의 침대로 끌어들일 텐가?
그리고 나를 한없이 우울하게 만든 장면이 있다. 릭이 포상금을 들고 염소를 구입할 때였다. 그는 자신의 일을 계속하기 위해 빚을 진다. 한때 나는 자동차를 살까 말까 엄청나게 고민했었다. 자동차 할부금을 갚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일을 하고 월급을 타먹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사회에 속한 구성원임을 포기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여전히 내가 일을 때려치우지 않는 이유는, 갚아야 할 빚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악순환을 작가는 인류에게 내려진 영원한 저주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우울했다. 결국 나는 내가 속하기 싫은 곳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결코. 아마 릭 데커드도 계속해서 현상금사냥꾼 일을 계속할 것이다. 적어도 염소 할부금을 다 갚을 때까지는(불행하게도 염소는 사오자마자 죽어버렸다).
나 또한 적어도 빚을 다 갚을 때까지는 일을 계속할 것 같다. 그렇게 견디며 살아갈 것이다. 나를 괴롭히는 것들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그러나 내가 너무 많이 깨달은 것인지 아니면 아직 덜 깨우친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모든 걸 내던질 날이 오리란 것을 예감한다. 모든 생명이 결국은 죽음에 이르듯, 사력을 다해 산 정상에 오른 머서를 기다리는 것은 오직 하나, 죽음뿐이듯, 내 삶의 방향도 어떤 하나의 귀결점을 향해 고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우울한 소설인 것 같다. 소설 결말 이후의 릭 데커드의 삶이 눈에 보이는 듯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