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해서 그는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남자가 (또는 어떤 시대가) 여성의 매력을 허벅지에 둔다면 이러한 성적 성향의 특성을 어떻게 묘사하고 정의할 것인가? 그는 즉석에서 답을 만들어 냈다. 허벅지의 길이는 에로스의 성취로 이어지는 매혹적인 긴 여정(허벅지가 길어야 하는 게 바로 그래서다.)의 은유적 이미지다. 실제로 성교 중에도 기다란 허벅지는 여자에게 낭만적인 마법을 일으켜 그 여자를 다가가지 못할 존재로 만들지 읺는가 하고 알랭은 생각했다. 만약 남자가 (또는 한 시대가) 여성의 매력의 중심을 엉덩이에 둔다면 이러한 성적 성향의 특성을 어떻게 묘사하고 정의할 것인가? 그는 즉석에서 답을 만들어 냈다. 난폭함, 쾌활함, 표적을 향한 최단거리의 길, 두 짝인 만큼 더 흥분시키는 표적. 만약 남자가 (또는 한 시대가) 여성의 매력의 중심을 가슴에 둔다면 이러한 성적 성향의 특성을 어떻게 묘사하고 정의할 것인가? 그는 즉석에서 답을 만들어 냈다. 여자의 신성화, 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동정녀 마리아, 여성의 고귀한 사명 앞에 무릎 꿇은 남성. 하지만 몸 한가운데, 배꼽에 여성의 매력이 집중되어 있다고 보는 남자(또는 한 시대)의 에로티시즘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 pp.9~10
잠깐 다시 멈췄다가 그가 말했다. "저기, 지금 의사를 보고 오는 길이에요." 그는 상대방의 얼굴에 어리는 당황한 기색이 마음에 쏙 들었다. 한참을 묵묵히 있으니 라몽은 "그래서요? 문제가 있나요?"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있어요." 또다시 다르델로는 입을 다물었고, 또다시 라몽은 "의사가 뭐라고 했는데요?"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다르델로는 라몽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이미 나이 든 얼굴, 하지만 여전히 잘생기고 슬픔이 어린, 그래서 더 매력적이 된 얼굴. 그는 슬픔에 잠긴 이 잘생긴 남자에게 곧 생일이 다가온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다 보니 병원에 가기 전에 떠올랐던 아이디어, 탄생과 죽음을 동시에 기념하는 이중 축하 파티, 그 멋진 아이디어가 다시 기억났다. 라몽의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을 계속 들여다보다가 그는 아주 차분하고 온화한 목소리로 "암이라네요......" 했다. - p. 17
스탈린은 고단한 긴 하루를 보낸 후 잠시 협력자들과 같이 머물며 소소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길 즐겼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다. 어느 날 그는 사냥에 나서기로 한다. 오래된 파카를 입고, 스키를 신고, 장총을 들고, 13킬로미터를 누빈다. 그때 눈앞에 나무 위에 앉은 자고새들이 보인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새들의 수를 센다. 스물네 마리다. 아, 이런 빌어먹을! 탄창을 열두 개밖에 가져오지 않았다. 그는 총을 쏴 열두 마리를 죽인 다음, 뒤로 돌아 다시 집까지 13킬로미터를 가서 탄창 열두 개를 더 챙긴다. 또 다시 13킬로미터를 가로질러 와서 여전히 같은 나무에 앉아 있는 자고새들 앞에 선다. 그리고 마침내 그 새들을 모두 죽여... "이 이야기 맘에 들어?" 샤를이 묻자 칼리방이 웃으며 말한다. "그 이야기를 나한테 들려준 게 정말로 스탈린이라면 박수를 치겠지!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어?" "벌써 사십몇 년 전에 프랑스에서 출판된 흐루쇼프의 <회고록>을 우리 주인이 나한테 선물로 가져왔어. 거기에서 흐루쇼프가, 작은 회합에서 스탈린이 자고새 이야기를 한 걸 옮겨 놨더라고. 그런데 흐르쇼프가 써 놓은 걸 보면 너처럼 반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아무도 안 웃었다니까.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들 스탈린이 한 이야기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 거짓말이 역겨웠지. 그렇지만 그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오로지 흐루쇼프만 스탈린한테 대담하게 자기 생각을 말한 거야. 알겠어?" 샤를은 그 책을 펼쳐 천천히 큰 소리로 읽었다. "`뭐라고요? 정말 나뭇가지에 자고새들이 그대로 앉아 있더란 말이에요? 흐루쇼프가 말했다. 물론이지. 똑같은 곳에 그대로 앉아 있더라고. 스탈린이 대답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이게 끝이 아니고 이걸 알아야 해. 그러니까 모두들 일과가 끝나면 목욕탕으로 갔는데 화장실로도 쓰이는 커다란 욕실이었어. 상상해 봐. 벽에 소변기가 한 줄로 죽 늘어서 있는 거야, 세면대 맞은편 벽에. 조개껍질 모양 도자기 소변기들이, 갖가지 색깔에다 꽃무늬로 장식된 소변기들이 말이지. 스탈린 일파에겐 각자 개인 소변기가 있었는데, 하나하나 다 다른 작가 사인이 들어간 작품이었다는군. 스탈린만 그게 없었대." "그럼 스탈린은 어디다 오줌을 눴대?" "그 건물 다른 쪽에 있는 독실에서. 그리고 혼자 오줌을 누지 절대 협력자들하고 같이 누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화장실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웠고, 대장 앞에서는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말을 마침내 큰 소리로 내뱉을 수 있었어. 스탈린이 자고새 스물네 마리 이야기를 했던 그날은 특히. 흐루쇼프가 한 말을 더 읽어 봐 줄게. `욕실에서 손을 씻으면서 우리는 입에 거품을 물고 욕을 해 댔다. 그의 말은 거짓이었다. 거짓말!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 흐루쇼프란 사람은 누군데?" "스탈린이 죽고 몇 년 후에 소비에트 제국의 최고 우두머리가 됐지." 칼리방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이 이야기에서 딱 하나 믿기지가 않는 건 스탈린 말이 농담이라는 걸 아무도 몰랐다는 거야." "그렇지." 샤를이 이렇게 말하며 탁자 위에 책을 내려놓았다. "왜냐하면 그 주위 누구도 농담이란 게 뭔지 알지 못하게 됐으니까. 나는 바로 여기서부터 새로운 역사의 위대한 시기가 도래한 거라고 봐." - pp. 29~31
"나 자신한테 화가 나서 그래. 나는 왜 틈만 나면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괜찮아." "죄책감을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 모든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 같아. 삶이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지. 다들 알아. 하지만 어느 정도 문명화된 사회에서 그 투쟁은 어떻게 펼쳐지지? 보자마자 사람들이 서로 달려들 수는 없잖아. 그 대신 다른 사람한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거야. 다른 이를 죄인으로 만드는 자는 승리하리라. 자기 잘못이라 고백하는 자는 패하리라. 네가 생각에 푹 빠져서 길을 걷고 있어. 어떤 여자가 맞은편에서 오는데 마치 세상에 저 혼자인 것처럼 왼쪽도 오른쪽도 안 보고 그대로 전진하는 거야. 둘이 서로 부딪쳐. 자, 이제 진실의 순간이야. 상대방한테 욕을 퍼부을 사람이 누구고, 미안하다고 할 사람이 누굴까? 전형적인 상황이야. 사실 둘 다 서로에게 부딪힌 사람이면서 동시에 서로 부딪친 사람이지. 그런데 즉각, 자발적으로, 자기가 부딪쳤다고, 그러니까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면서 대뜸 상대방을 비난하고 응징하려 드는 사람들도 있지. 이런 경우 너라면 사과할 것 같아 아니면 비난할 것 같아?" "나라면 분명 사과하겠지." "아이고, 이 친구야, 너도 사과쟁이 부대에 속한다는 거네. 사과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 p.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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