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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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떻게 될까, 응?" - p. 7

"그냥 조심만 해. 그게 다야. 알렉스야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는 더 많이 알고 있어." 그리고 그는 매우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의자를 여전히 흔드는 채로 말했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게냐? 우리는 이 문제를 연구하고 있고, 제길, 거의 한 세기 동안 연구해 왔지만, 더 이상 진전시킬 수가 없어. 너는 좋은 집에, 사랑을 주는 부모에, 또 그다지 나쁘지 않은 머리를 가졌는데 말이야. 네 속에는 악마라도 들어앉아 있니?" - p. 50

"착하게 되는 것이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6655321번. 착하게 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일 수도 있어. 말하고 보니 자기모순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번 일 때문에 며칠 동안 잠 못 들어 할 거야. 신은 무엇을 원하시는 걸까? 신은 선 그 자체와 선을 선택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을 원하시는 걸까? 어떤 의미에선 악을 선택하는 사람이 강요된 선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을까? 심오하고 어려운 질문들이구나, 6655321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다. 언젠가 훗날에 네가 지금 이 순간을 되돌아보고 신의 종복 중에서 가장 낮고 미천한 나를 기억하게 되면, 너에게 일어날 일에 내가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되어 있다고 해서 제발 나를 나쁘게는 생각하지는 말아다오. 그리고 기도에 대해서 말하자면, 너를 위한 기도가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슬프게도 깨달았다. 넌 지금 기도의 힘이 닿지 않을 곳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란다. 생각만 해도 아주 끔찍한 일이군.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윤리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제거당하겠다는 선택을 내릴 때, 넌 진짜로 선을 선택한 것이겠지. 난 그렇게 생각하고 싶구나. 신이 우리 모두를 돌보시겠지, 6655321번, 난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 p. 1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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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성
버트란드 러셀 지음, 김영철 옮김 / 간디서원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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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환상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애정이 넘치는 친밀감을 요구한다. 더욱이 로맨틱한 사랑이 결혼에 불가결하다는 견해는 너무나 무정부주의적이며, 성 바울의 견해와 마찬가지로(그 의미는 정반대이지만), 결혼이 중대한 것은 아이들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성에 대한 일체의 제도는 필요 없을 것이다. 자식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감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남편과 아내라면, 부부 상호간의 감정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들의 문제가 제기된 순간에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 p. 90

그리스의 여류시인인 사포는 동성애자였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후일 그녀는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여성추종자들과 함께 레스보스 섬에 정착했는데, 여성 동성애자를 의미하는 `레즈비언`이라는 말은 본래 `레스보스 사람`이라는 뜻이다. - p.127

"매춘부는 가정의 신성함과 우리의 아내와 딸을 순결하게 해주는 보호물이다."라는 렉키의 유명한 문구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감정은 빅토리아 시대적인 것이고 그 표현방법도 낡은 것이지만, 이 사실이 부정될 수는 없다. 도덕주의자들은 렉키의 주장이 그들의 비위를 몹시 상하게 만들었으며, 또 그 까닭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그를 비난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잘못이라는 것을 입증하지는 못했다. 도덕주의자들은 남자들이 자기들의 가르침에만 따른다면 성매매는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럴듯한 소리다. 그러나 남성들이 이러한 가르침에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도덕주의자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만일 남성들이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이라고 [도덕주의자들이] 예상하는 것은 사실과는 무관한 것이다. - pp. 160~161

성매매가 항상(오늘날 그러하듯이) 멸시받고 숨어서 하는 일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 기원은 참으로 고상한 것이었다. 원래 매춘부는 신이나 여신을 모시는 여사제였다. 그녀는 지나가는 낯선 이에게 몸을 맡김으로써 신을 예배하는 행위를 수행하였다. 그러한 시대에 그녀는 존중받았으며, 남성들은 그녀를 이용하는 한편 그녀를 존경하였다. - p. 163

어쨌든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문명은 여성의 모성 감정을 크게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아이를 낳는 일이 돈을 버는 직업이라고 생각될 만큼 여자에게 보수를 주지 읺는 한, 미래의 고도 문명은 유지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모든 여성 또는 대부분의 여성이 이러한 직업에 종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직업이 될 것이며, 전문성을 가지고 도맡아 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무엇보다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금후 페미니즘의 발전이 선사 시대의 여성에 대한 남성의 승리를 나타냈던 가부장제 가족을 파괴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이다. - pp. 232~233

간통의 심리는 종래의 인습적 도덕에 의해서 곡해되어 왔다. 그것은 (일부일처제의 나라들에서) 어떤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끌릴 리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진실이 이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질투심의 영향 때문에 모두가 이 그릇된 이론을 믿고 침소봉대해서 떠들어댈 뿐이다. 그러므로 간통은 이혼의 좋은 사유라고 할 수 없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배우자보다는 다른 사람이 좋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외이다. - p. 247

`간음`으로 번역한 fornication은 부부 아닌 남녀가 성관계를 맺는 경우이고, `간통`으로 번역한 adultery는 배우자 있는 사람이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성관계를 맺는 것을 가리킨다(역주). - p.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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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부엉이
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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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의 체류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한 젊은 여인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부감 다시라고 하는 그 여인은 링감 사원의 무희였다. 사원에 소속된 그녀의 일은 거대한 링감 조각상 앞에서 의식의 춤을 추는 것이었다. 그녀는 올리브색 피부의, 뜨거운 피가 흐르는 여자였다. 가슴이 레몬 모양이었고 커다란 눈은 비스듬히 찢어졌다. 길게 이어진 가느다란 두 눈썹 사이 한가운데에 붉은 미인 점을 찍었다. - p. 72

`코브라의 심판`이란 이런 것이었다. 내 아버지와 삼촌이 코브라 한 마리와 함께 칠흑처럼 어두운 방에 갇힌다. 방 안은 완전히 깜깜하여 마치 고문실과도 같다. 코브라에게 물린 사람은 당연히 비명을 지르게 된다. 그러면 코브라 마법사가 방문을 열고, 물리지 않은 사람을 구출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남자를 부감 다시는 남편으로 맞이할 것이다.
고문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내 아버지는 부감 다시에게 자신을 위해서 한 번만 더 성스러운 사원의 춤을 보여달라고 청했다. 이를 수락한 부감 다시는 코브라 마법사가 부는 피리 소리에 맞춰 아버지 앞에서 춤을 추었다. 펄럭이는 횃불 아래서 그녀는 의미심장한 동작으로 리드미컬하게 춤을 추었고, 마치 코브라처럼 유려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런 다음 아버지와 삼촌은 코브라가 있는 깜깜한 방에 갇혔다. 그런데 안에서는 살려달라는 공포의 외침 대신에 비통한 탄식이 흘러나왔고, 곧이어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리고 미친 듯한 광기의 비명이 커다랗게 들렸다. 문이 열렸고, 내 삼촌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삼촌의 얼굴은 잠깐 사이에 엄청나게 나이가 들어버렸고, 피부는 주름으로 가득했으며, 그의 머리칼은......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쉭쉭거리며 다가오는 코브라가 불러일으킨 공포심, 빤히 쳐다보는 코브라의 동그랗고 반짝거리는 눈동자, 코브라의 무서운 독이빨, 코브라의 몸체와 기다란 목, 숟가락처럼 부풀린 목덜미와 조그만 머리, 이 모든 것이 불러일으킨 공포심이 어찌나 큰지 방에서 나오는 내 삼촌의 머리칼은 완전히 하얗게 백발이 되어 있었다. 부감 다시는 약속을 지켰고, 그날 이후 삼촌의 아내로 살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무서운 사실은, 그날 시험에 통과하여 방에서 나온 사람이 정말로 누구인지, 아버지인지 아니면 삼촌인지, 확실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너무도 지독한 공포 때문에 살아나온 사람은 정신이 온전치 못했고,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삶 전부를 망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심지어 나조차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내 삼촌일 거라고 간주해버렸다. 이 이야기에는 내 인생의 결정적인 어떤 요소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소름 끼치게 울리던 웃음소리의 메아리가, 그 공포스러운 시험의 흔적이 내 안 어딘가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pp.75~77

죽은 후 피는 혈관 속에서 굳어가고 어떤 신체 부위는 죽은 지 하루 만에 부패를 시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카락과 손발톱은 사망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해서 자라난다. 그렇다면 감정과 인식은 어떠할까? 심장이 멈추면 그것들도 함께 완전히 정지하는 걸까? 아니면 아직도 남아 있는 피가 혈관을 타고 흐르는 동안은, 감정과 인식도 잠시 동안이나마 자율적인 삶을 영위하는 걸까? 죽음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이미 죽은 이들은 얼마나 더 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공포와 두려움에 직면하면서 죽어갔겠는가! 입가에 미소를 띤 채로 죽어가는 노인들이 있다. 마치 하나의 꿈에서 다른 꿈속으로 넘어가듯이 자연스럽게, 혹은 기름 램프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말끔히 타버린 후 미련 없이 생을 마감하듯이.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젊어서 죽은 자들, 젊고 힘 있는 신체를 가지고 모든 기력을 다해 오랫동안 죽음과 사투를 벌이다가 죽어가는 자들은 최후에 어떤 감정일까? - pp. 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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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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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그는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남자가 (또는 어떤 시대가) 여성의 매력을 허벅지에 둔다면 이러한 성적 성향의 특성을 어떻게 묘사하고 정의할 것인가? 그는 즉석에서 답을 만들어 냈다. 허벅지의 길이는 에로스의 성취로 이어지는 매혹적인 긴 여정(허벅지가 길어야 하는 게 바로 그래서다.)의 은유적 이미지다. 실제로 성교 중에도 기다란 허벅지는 여자에게 낭만적인 마법을 일으켜 그 여자를 다가가지 못할 존재로 만들지 읺는가 하고 알랭은 생각했다.
만약 남자가 (또는 한 시대가) 여성의 매력의 중심을 엉덩이에 둔다면 이러한 성적 성향의 특성을 어떻게 묘사하고 정의할 것인가? 그는 즉석에서 답을 만들어 냈다. 난폭함, 쾌활함, 표적을 향한 최단거리의 길, 두 짝인 만큼 더 흥분시키는 표적.
만약 남자가 (또는 한 시대가) 여성의 매력의 중심을 가슴에 둔다면 이러한 성적 성향의 특성을 어떻게 묘사하고 정의할 것인가? 그는 즉석에서 답을 만들어 냈다. 여자의 신성화, 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동정녀 마리아, 여성의 고귀한 사명 앞에 무릎 꿇은 남성.
하지만 몸 한가운데, 배꼽에 여성의 매력이 집중되어 있다고 보는 남자(또는 한 시대)의 에로티시즘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 pp.9~10

잠깐 다시 멈췄다가 그가 말했다. "저기, 지금 의사를 보고 오는 길이에요."
그는 상대방의 얼굴에 어리는 당황한 기색이 마음에 쏙 들었다. 한참을 묵묵히 있으니 라몽은 "그래서요? 문제가 있나요?"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있어요."
또다시 다르델로는 입을 다물었고, 또다시 라몽은 "의사가 뭐라고 했는데요?"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다르델로는 라몽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이미 나이 든 얼굴, 하지만 여전히 잘생기고 슬픔이 어린, 그래서 더 매력적이 된 얼굴. 그는 슬픔에 잠긴 이 잘생긴 남자에게 곧 생일이 다가온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다 보니 병원에 가기 전에 떠올랐던 아이디어, 탄생과 죽음을 동시에 기념하는 이중 축하 파티, 그 멋진 아이디어가 다시 기억났다. 라몽의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을 계속 들여다보다가 그는 아주 차분하고 온화한 목소리로 "암이라네요......" 했다. - p. 17

스탈린은 고단한 긴 하루를 보낸 후 잠시 협력자들과 같이 머물며 소소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길 즐겼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다.
어느 날 그는 사냥에 나서기로 한다. 오래된 파카를 입고, 스키를 신고, 장총을 들고, 13킬로미터를 누빈다. 그때 눈앞에 나무 위에 앉은 자고새들이 보인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새들의 수를 센다. 스물네 마리다. 아, 이런 빌어먹을! 탄창을 열두 개밖에 가져오지 않았다. 그는 총을 쏴 열두 마리를 죽인 다음, 뒤로 돌아 다시 집까지 13킬로미터를 가서 탄창 열두 개를 더 챙긴다. 또 다시 13킬로미터를 가로질러 와서 여전히 같은 나무에 앉아 있는 자고새들 앞에 선다. 그리고 마침내 그 새들을 모두 죽여...
"이 이야기 맘에 들어?" 샤를이 묻자 칼리방이 웃으며 말한다. "그 이야기를 나한테 들려준 게 정말로 스탈린이라면 박수를 치겠지!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어?"
"벌써 사십몇 년 전에 프랑스에서 출판된 흐루쇼프의 <회고록>을 우리 주인이 나한테 선물로 가져왔어. 거기에서 흐루쇼프가, 작은 회합에서 스탈린이 자고새 이야기를 한 걸 옮겨 놨더라고. 그런데 흐르쇼프가 써 놓은 걸 보면 너처럼 반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아무도 안 웃었다니까.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들 스탈린이 한 이야기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 거짓말이 역겨웠지. 그렇지만 그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오로지 흐루쇼프만 스탈린한테 대담하게 자기 생각을 말한 거야. 알겠어?"
샤를은 그 책을 펼쳐 천천히 큰 소리로 읽었다. "`뭐라고요? 정말 나뭇가지에 자고새들이 그대로 앉아 있더란 말이에요? 흐루쇼프가 말했다.
물론이지. 똑같은 곳에 그대로 앉아 있더라고. 스탈린이 대답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이게 끝이 아니고 이걸 알아야 해. 그러니까 모두들 일과가 끝나면 목욕탕으로 갔는데 화장실로도 쓰이는 커다란 욕실이었어. 상상해 봐. 벽에 소변기가 한 줄로 죽 늘어서 있는 거야, 세면대 맞은편 벽에. 조개껍질 모양 도자기 소변기들이, 갖가지 색깔에다 꽃무늬로 장식된 소변기들이 말이지. 스탈린 일파에겐 각자 개인 소변기가 있었는데, 하나하나 다 다른 작가 사인이 들어간 작품이었다는군. 스탈린만 그게 없었대."
"그럼 스탈린은 어디다 오줌을 눴대?"
"그 건물 다른 쪽에 있는 독실에서. 그리고 혼자 오줌을 누지 절대 협력자들하고 같이 누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화장실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웠고, 대장 앞에서는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말을 마침내 큰 소리로 내뱉을 수 있었어. 스탈린이 자고새 스물네 마리 이야기를 했던 그날은 특히. 흐루쇼프가 한 말을 더 읽어 봐 줄게. `욕실에서 손을 씻으면서 우리는 입에 거품을 물고 욕을 해 댔다. 그의 말은 거짓이었다. 거짓말!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 흐루쇼프란 사람은 누군데?"
"스탈린이 죽고 몇 년 후에 소비에트 제국의 최고 우두머리가 됐지."
칼리방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이 이야기에서 딱 하나 믿기지가 않는 건 스탈린 말이 농담이라는 걸 아무도 몰랐다는 거야."
"그렇지." 샤를이 이렇게 말하며 탁자 위에 책을 내려놓았다. "왜냐하면 그 주위 누구도 농담이란 게 뭔지 알지 못하게 됐으니까. 나는 바로 여기서부터 새로운 역사의 위대한 시기가 도래한 거라고 봐." - pp. 29~31

"나 자신한테 화가 나서 그래. 나는 왜 틈만 나면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괜찮아."
"죄책감을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 모든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 같아. 삶이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지. 다들 알아. 하지만 어느 정도 문명화된 사회에서 그 투쟁은 어떻게 펼쳐지지? 보자마자 사람들이 서로 달려들 수는 없잖아. 그 대신 다른 사람한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거야. 다른 이를 죄인으로 만드는 자는 승리하리라. 자기 잘못이라 고백하는 자는 패하리라. 네가 생각에 푹 빠져서 길을 걷고 있어. 어떤 여자가 맞은편에서 오는데 마치 세상에 저 혼자인 것처럼 왼쪽도 오른쪽도 안 보고 그대로 전진하는 거야. 둘이 서로 부딪쳐. 자, 이제 진실의 순간이야. 상대방한테 욕을 퍼부을 사람이 누구고, 미안하다고 할 사람이 누굴까? 전형적인 상황이야. 사실 둘 다 서로에게 부딪힌 사람이면서 동시에 서로 부딪친 사람이지. 그런데 즉각, 자발적으로, 자기가 부딪쳤다고, 그러니까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면서 대뜸 상대방을 비난하고 응징하려 드는 사람들도 있지. 이런 경우 너라면 사과할 것 같아 아니면 비난할 것 같아?"
"나라면 분명 사과하겠지."
"아이고, 이 친구야, 너도 사과쟁이 부대에 속한다는 거네. 사과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 p.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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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드 - 빅뱅 직전의 우주
프랭크 클로우스 지음, 이충환 옮김 / Mid(엠아이디)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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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천진난만하게 자문했던 질문은, 빅뱅이 일어난 이래 우주가 약 140억 년 동안 팽창해 왔다는 사실(빅뱅이론)을 그 당시에 아무도 몰랐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훨씬 더 불가사의하다. 태양계나 지구도 팽창하고 있지 않으며, 우리를 구성하는 원자들도 팽창하고 있지 않지만, 일반적인 통념에 따르면 커지고 있는 것이 바로 `공간 자체`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감안하면, `공간이 무엇(어디)으로 팽창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나중으로 미뤄두고라도, 나의 원래 질문(모든 것을 제거하면 무엇이 남는가)에 `모든 것을 제거한다면, 공간은 아직도 팽창하고 있을까?`라는 종별부가 더해지게 된다. - pp.9~10

회전부가 빙빙 돌 수 있는 의자에 앉아 보라. 당신이 야외에서 맑은 밤에 이렇게 한다면 별들을 포함해 당신 위의 모든 것은 빙빙 돌 것이다. 자전하는 지구에서 볼 때 24시간 걸리던 것이 이번에는 단지 1초만 걸렸다. 은하들의 회전 속력은 당신이 재빨리 밀고 나가는지, 또는 더 강력하게 차는지에 달렸겠지만, 당신 근육의 강도가 전체 은하들을 움직이게 만들 수 있을까? 분명히 그럴 수 없다. 또한 당신이 원심력을 느낄 때 회전하고 있는 것은 별들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징후가 그렇게 즉각적으로 분명하지 않긴 하지만, 지구의 자전 또한 원심력을 경험한다. 지구는 그 지름이 극에서 극까지보다 적도를 통한 것이 더 클 만큼 적도 쪽으로 툭 튀어 나와 있다. 기상 시스템의 회전과, 코리올리 효과로 알려져 있는, `저절로` 동쪽으로 향하려는 운동의 경향성은 (지구 자전을 증명하는) 다른 예들이다.
푸코의 진자는 항성들이 상대적으로 자전과 가속을 드러내는 좌표계를 진짜 창조한다는 사실을 아마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다. 많은 과학박물관에서 지붕에 매달린 진자가 가령 북쪽에서 남쪽으로 흔들리는 광경을 볼 것이다. 몇 시간 뒤에 박물관을 떠날 때쯤에는, 누구도 그 방향을 바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진자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 pp. 97~98

당신이 휘어진 표면에 살 때 다른 놀라움이 있다. 즉 모든 선들이 적어도 1차원에서 휘어져 있음에 틀림없을 때 직선이란 무엇인가?

평면에서 두 점 사이의 가장 짧은 거리, 즉 최단 거리는 직선이다. 아인슈타인은 근본적인 것이 바로 최단 거리의 개념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중력에 의해 휘어진 시공간에서 빛은 어떤 두 점 사이의 최단 경로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지구 표면에서 이 최단 경로는 대원(대권, great circles)으로 알려져 있다. 북위 55도의 런던에서 더 가까운 북위 30도의 로스앤젤레스까지 날아가기 위해 당신은 순진하게 남서 방향으로 향할 것이라고 예상할지도 모르지만, 대원을 따르는 당신의 항공기는 그린란드를 거쳐 북서쪽으로 떠날 것이다. 대원은 더 공신적으로는 축지선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지구 디바이더`를 뜻한다. 삼각형 주변의 거리와 관련된 공식은 피타고라스 정리보다 더 복잡하고, 표면이 어떻게 휘어진 것인지, `미터` 길이는 어떻게 각도와 연관되는지, 즉 전문 용어로 `계량` 또는 `메트릭`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 pp.15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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