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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평점 :
줄거리(스포일)
벨몬테의 부자 상속녀인 포셔를 흠모하는 바사니오는 베니스의 거상 안토니오를 찾아온다. 막역한 친구인 그에게 돈을 꿔서 포셔에게 청혼하러 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마침 안토니오는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무역 투자에 써버린 뒤였다. 안토니오의 물건들을 잔뜩 실은 배들은 한 달이 지나야 돌아올 예정이었다. 안토니오는 바사니오에게 자신의 신용을 담보로 시내에서 돈을 빌릴 것을 제안하고,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을 찾는다. 샤일록은 평소 자신을 비난하던 안토니오가 막상 급한 상황이 되어 자신을 찾아오자 분노하며 대부를 거절하려 한다. 그러나 복수심에 불타던 샤일록은 마음을 고쳐먹고, 돈을 정해진 기한 내에 갚지 못하면 안초니오의 살 1파운드를 가지기로 계약을 맺는다.
그날 밤, 샤일록의 딸 제시카는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집안의 재물을 몽땅 들고 바사니오의 친구 로렌초와 사랑의 도피를 한다. 샤일록은 노발대발하며 딸에 대한 배반감만큼의 복수심을 안토니오에게 겨눈다.
포셔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청혼자들에게 금, 은, 납으로 만들어진 궤 가운데 하나를 골라서 거기에 나오는 메시지에 따라 결혼을 하든가 묵묵히 돌아가든가 해야 한다고 말한다. 청혼자들은 금과 은으로 된 겉모양을 보고 자신의 운을 시험하지만 결과는 실패다. 그들은 낙담하여 돌아가고, 마침내 어렵사리 돈을 구한 바사니오가 찾아온다. 바사니오는 납 궤를 고르고, 포셔와의 혼인에 성공한다. 포셔는 그에게 반지를 주며 어떤 경우에도 빼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을 것을 당부한다. 바사니오는 죽을 때까지 반지를 빼지 않겠노라 맹세한다. 바사니오를 따라온 친구 그라티아노는 포셔의 하녀 네라사와 눈이 맞고, 그 둘도 사랑의 서약을 하며 반지를 징표로 준다.
기쁨이 가득한 이때에 뜻밖의 소식이 그들에게 날아든다. 안토니오의 배가 모두 난파당해 샤일록의 돈을 갚지 못했고, 그 때문에 살을 베일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바사니오 일행은 여자들을 남겨두고 안토니오를 구하러 베니스로 향한다.
법정에서 샤일록은 안토니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고 계약대로 살을 베어가겠노라고 주장하고, 만약 계약대로 진행되지 않도록 판결을 내린다면 베니스에서 법이란 유명무실한 것이라고 말한다. 베니스의 공작은 난감해한다. 인품이 두터운 안토니오를 살리자면 베니스의 명성에 누가 되고, 결국 베니스의 번성에도 치명타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작은 판결을 위해 법학자를 초빙하는데, 법학자는 자기 대신 젊은 두 청년을 보낸다. 사실 두 청년이란 포셔와 네리사가 남장을 한 것이었다. 포셔는 샤일록의 계약이 정당하며 안토니오의 살을 취할 것을 판결한다. 환호하는 샤일록이 안토니오를 칼로 찌르려 할 때, 포셔는 샤일록이 취할 것은 오로지 살에 한정할 것이며, 만일 한 방울의 피라도 흘릴 시에는 샤일록에게 중죄를 적용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샤일록은 복수의 바로 앞에서 좌절한다. 법대로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는 샤일록은 반대로 법을 어긴 셈이 되어 재산을 몰수당한다. 현명한 판결에 바사니오 일행은 포셔와 네리사에게 돈을 주려 하지만, 그들은 돈을 거절하는 대신 바사니오와 그라티아노가 낀 반지를 달라고 청한다. 바사니오와 그라티아노는망설인 끝에 결국 반지를 내준다.
안토니오의 생명을 구하고 함께 벨몬테의 저택으로 돌아온 바사니오 일행은, 먼저 돌아와 있던 포셔 들에게 반지의 행방을 추궁 받는다. 바사니오는 친구와의 우정을 위해 약속을 깨버린 것에 대해 용서를 빌며, 평생 두 번 다시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 맹세한다. 커플들은 용서를 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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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뻘글)
물론 남장을 하고 남편을 시험하는 등등의 플롯은 막장이다. 점 하나 붙이고 나타났더니 전부인을 몰라본다는 드라마 설정 보고 뭐라고 할 게 아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심오한 캐릭터와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특유의 오락가락하는 주제의식으로 조명을 받곤 한다. 그의 작품을 읽을 때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스토리 전개라든지 인종차별적 설정 따위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이유로 「베니스의 상인」 역시 샤일록이라는 악역과 현모양처 포셔의 캐릭터에 대해 다양한 재해석들이 숱하게 난무한다. 샤일록은 과연 악당인가? 그 행동의 잔인성만으로 따지자면 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분노와 복수심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것이다. 성폭행 범죄자는 성기를 잘라내고 사형을 시켜야한다며 열에 들떠 주장하는 사람들과 샤일록이 뭐가 다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물론 샤일록이 착한 인물이라고 주장하겠다는 건 아니다.
안토니오 역시 독특한 캐릭터다. 친구를 위해 헌신하는, 인품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은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희생을 내색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가 진심으로 친구를 사랑했을까? 마치 며느리가 속으로는 유산을 노리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효심이 깊은 척 시부모를 공양하며 자신의 효행을 하루가 멀다 하고 떠든 끝에 효녀상이라도 하나 타고는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 연상된다.
포셔야말로 무서운 고리대금업자다.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대가로, 평생 동안 남편이 눈치보며 살도록 만드는 것은 엄청난 이자가 아니고 무엇인가? 게다가 약속을 어기게끔 상황을 만들어놓은 장본인이기까지 하다. 이자의 이자의 이자를 내놓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이자의 이자의 이자의 이자를 또 물어내라고 협박하는 일수꾼에 다름없다.
이런 의미에서, 희곡의 제목이 「베니스의 상인」 또는 「베니스의 샤일록」이라는 것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듯하다. 셰익스피어는 권선징악인 척하는 희극으로 대중들을 속이고는 참의미를 자기만 되새기며 즐거워했을 것이다.
한편, 포셔와 관련한 약속들에 대해서는 어쩐지 좀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금궤와 은궤를 선택한 구혼자들은 가차 없이 낙오하지만, 납궤를 선택해서 일단 구애에 성공한 바사니오는 반지의 맹세를 깨뜨리는 중대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용서받는다. 잔인한 현실이다. 또 샤일록의 계약도 잔인하다. 살을 취하는 게 잔인하다는 것이 아니다. 계약에 대한 해석이 잔인하다. 살을 베어가되 피를 흘리게 하면 살인죄를 적용할 것이며, 판결대로 살을 베어가지 않으면 법정모독죄로 전재산을 몰수하겠다니. 잔인한 현실 앞에 샤일록은 나약한 피해자일 뿐이다.
소설을 주로 읽다가 희곡을 읽으니, 너무나도 짧고 가파른 호흡에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희곡의 빠른 호흡은, 대중들 앞에서 실시간으로 상연되면서 흥미를 계속해서 유발해야 하기 때문에 형성되었을 것이다. 소설의 호흡도 빨리한다면 단숨에 읽히는 흡입력을 가질 것이다. 희곡의 호흡을 자연스럽게 이식한 소설이 어디 없을까? 후딱후딱 읽어치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