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아찔한 경성 - 여섯 가지 풍경에서 찾아낸 근대 조선인들의 욕망과 사생활
김병희 외 지음, 한성환 외 엮음 / 꿈결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얼마전 [갑신년의 세친구]를 쓴 안소영 작가가 우리동네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에 와서 강연을 했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세 주역인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를 모델로 하는 청소년 소설이었다.

그들의 계획이 3일만에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조선은 망국의 길을 걷게 된다.

개화기의 조선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라리다.

[이토록 아찔한 경성]은 한일 강제병합 후 서울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었다.

개화에 눈 뜨기 시작한 조선의 근대 풍경 소묘라고 부제를 붙일만한 책.

신문에 난 점잖은 광고(이 물감은 빗도 곱고 드리기도 쉬운 상등 물감이니 사다드려보시오-염료광고)를 보고 그 시대에 광고고 있었다는 점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감동을 느낀 부분은 간송 전형필 선생님이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서 전 재산을 쏟아부은 것이었다.

때로는 이미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중 소재 파악이 되면 그곳까지 가서라도 되찾아 오기도 했다고 한다.

집 몇십채 값을 호가하더라도 반드시 찾아와야한다고 생각되면 돈에 구애되지 않고 거금을 들여서라도 찾아왓다고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아주 잘 실천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차가 조선에 놓여지면서 시간 개념이 없었던 우리 민족에게 하루 24시간에 대한 시간개념이 념이 자리잡으면서 좀더 생활이 타이트 해졌을 거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그 시대의 대중문화들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대중문화가 아니다.

가요나 영화, 기차, 신문등 모두 일부 상류층에서나 향유할 수 있는 귀족 문화였지 일반 서민 대중들은 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일본 순사는 인권 유린의 최첨단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흘렀지만 우리 문화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은 뭐니뭐니 해도 일본 순사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어릴때 부모님들이 자식들이 말을 안들으면 위협하는 농담이 " 순사가 잡아간다." 였다.

지금도 아기들이 조그마한 잘못을 하거나 때를 쓰면 "경찰아저씨가 잡아간다"라고 아기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문화가 남아있다. 일제의 잔재가 가장 심하게 남아있는 부분이 사법권에 있다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힘들 수 밖에!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은 1577년 선조대 민간에서 만들었던 조보였다고 한다.

'민간조보' 다. 이 신문의 생명은 고작 3개월에 그치고 만다. 만약 이 '민간조보'가 계속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프랑스나 영국처럼 혁명이 일어나 조선 왕조가 빨리 무너지고 공화국이 되었을까?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외세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문이나 언론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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