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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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우리집 막내가 유럽 12개국을 도보여행하고 돌아왔다. 물론 혼자한 여행은 아니었다. 당시 대안 학교 2학년이었던 아들은 학교 고2 프로그램에 들어 있던 여행을 갔다 온 것이었다. 고2과정 아이들이 최소의 경비를 지니고 풍물패를 만들어 도보 여행했다. 풍물 공연이 잘 되어 돈을 많이 버는 날이면 유스호스텔급 숙소에서 잠을 자고 먹거리도 좀더 질높은 것을 사먹었다. 하지만 풍물 공연이 여의치 않을때는 캠핑장에서 야영을 하며 73일 동안 여행했다.

그때 우리 집에는 우리 부부 둘만 남아 있었다. 첫째와 둘째는 아르바이트로 여비를 모아서 방학을 맞아 뉴욕에 있는 친척집에 갔고, 막내는 유럽 도보여행을 떠났다. 막내가 매우 소심하고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터라 우리부부는 엄청 걱정했다. 혹여라도 친구들이나 선생님께 폐를 끼치면 어쩌나하고. 그런데 의외로 아이는 자기보다 더 힘든 아이를 돌보며 73일을 잘 견디고 돌아왔다. 그런데 아이가 유럽여행을 떠올릴때 엄청 신기했던 경험으로 베를린에서 사먹은 노란 수박을 이야기하곤 한다. 수박은 속이 빨간데 베를린 수박은 속이 노랗다고 말이다. 아이에게 남아 있는 독일은 노란 수박으로 떠오르고,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가 여행간뒤 한참 연락이 안 되어서 걱정을 하다가 독일에서 소식이 왔다. 근 2주 만에 연락이 와서 눈물을 흘리며 통화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여고 시절 나는 헤르만 헷세와 전혜린의[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고, 독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1,2차 세계대전을 독일이 일으켰다는 것에대해서 항상 의문이었다. 철학과 문학을 사랑하는 지적인 민족이 양대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6백만인가 7백만인가의 유태인을 학살하다니 놀랍고도 놀라운 나라라고 생각했다.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는 철의 제상 비스마르크 시대부터 히틀러가 장악하기까지 독일에는 어떤일이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실 나는 군주국이었던 독일이 어떻게 공화국이 되었는지 몰랐다. 독일이 1차세계대전까지도 군주국이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독일에서도 혁명이 일어났었다니 정말 새로운 발견이었다. 영국에서는 명예혁명이,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이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있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맑스가 탄생한 독일에서는 아무런 혁명도 일어나지 않은 줄 알았다.

도이치 혁명은 정부에 아무 보고도 하지 않은 채로 영국 함대에 맞서 한 번 더 일전을 감행하겠노라는 해군 지휘부의 단호한 결정을 통해 촉발 되었다. - p154~155

도이치 함대 병사 일부가 이 계획에 반대해 폭동을 일으켰고, 폭동은 진압되는 과정에서 폭동을 일으킨 수많은 해병등이 체포되고, 그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겠다고 위협하면서 촉발 된것이다. 폭도들이 배를 접수하고 내쳐서 킬 시를 장악했다. 그들이 전국에 퍼지면서 도이치 전역에 들불처럼 일어났다. 더 웃기는 일은 이 혁명에는 지도자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 뒤 황제가 스스로 물러나고 독일은 공화정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은 정말 무모한 전쟁이었고, 전쟁후의 모든 상황이 독일 국민으로 하여금 히틀러라는 괴물을 지도자로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하는과정에서 제 때에 단행하지 않은 화폐계혁으로 인플레이션이 극에 달하고 돈의 가치는 땅에 떨어진다. 거기에다 전쟁배상금을 물지 않으려는 국가 지도자는 나라 경제 상황을 의도적으로 최빈국으로 만든다. 굶주림에 지친 국민들은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려하다가 히틀러라는 최악의 지도자를 선택하고 마는 것이다.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를 읽으면서 국가 지도자들의 역할이 얼마나 막중한지, 강대국에 둘러 싸인 나라의 운명이라는 게 힘이 있을때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그리고 잘 못 사용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같이 힘이 없을 때에는 얼마나 처참할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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