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리커버 특별판)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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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은 6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이다. 처음 책을 받았을 때는 묵직한 책의 두께에 놀랐다. 하지만 펼쳐서 읽기 시작하고 부터는 나에게 책의 두께나 무게는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손에 든 순간부터 절대 놓을 수가 없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새벽이 오는 줄도 모르고 눈이 뻑뻑해지도록 읽었다.

[작은 땅의 야수들]은 일제 강점기 1917년에서 1964년까지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너무나 가난해서 권번에 기생이 되어야만 했던 옥희를 중심으로 그녀와 관계했던 인물들의 인생이 펼쳐진다. 조국이 자신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바쳐 독립을 위해 희생했던 민초들, 그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이 작은 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지도층인 지주들도 있었지만 하층민에 속하는 사냥군, 농민, 거리의 건달, 손가락질 받는 기생 등이었다.

1300년 이상 독립된 나라를 이어온 우리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6·25를 겪으면서 둘로 나눠지는 고통속에 있지만 난관을 헤쳐나와 오늘의 번영을 이루었다. 세계10대 강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이 소설이 잘 보여주고 있다. 강철같은 생명력으로 고난의 시절을 살아낸 것이다. 옥희처럼!

기생에서 출발해서 칼춤을 멋지게 추는 예술가로 다시 배우로 그리고 예술학교 교사로 마지막에는 제주도 해녀써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내는 옥희의 생명력에 찬사를 보낸다.

우리나라에는 섬나라 일본과 다르게 호랑이, 표범, 곰, 여우, 늑대 등 맹수들이 많았다고 한다. 백두대간을 등뼈로 하여 중국, 러시아로 이어지는 국토의 70%가 산이라서 그런 것 같다. 시베리아의 맹수들이 추위를 피해 남하하면서 기후 조건이 좋은 한반도로 찾아왔을 것이다. 맹수들의 기질을 닮은 민족성은 끊임없이 저항하고 독립하려는 노력으로 일제 강점기 내내 야수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일제 강점기때 호랑이는 독립운동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 옥희의 지인들은 한 때의 불행을 극복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나라를 위해서 몸바치고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인물들도 많았다. 특히 독립운동을 하고도 이데올로기 때문에 처형되는 정호는 참 안타까웠다. 성수처럼 원래 지주의 아들이었다가 일제때 권력에 아부해서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도 있었다.

김주혜 작가는 미국 이민자로 이 소설도 영문으로 출간 된 것을 번역해서 출판했다. 처음 읽을 때 우리 정서와 살짝 맞지 않는곳이 간혹 보였다. 예를 들면 P60에 권번의 풍경을 설명한 글이다. 한편에서는 아주 어린 소녀들 열두어 명이 나이 든 기생의 선창을 따라 한 줄씩 반복해서 노래를 부르며 전통 가요를 배우는 중이었고

이 부분은 창을 배우고 있는 장면인 것 같다. 물론 시조를 읊었을 수도 있다. 이 부분을 전통가요라고 번역한 점이 좀 아쉬웠다. 그리고 p102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 나오는 것보다 신나는 것은 없거든 여기서 터널이라는 말을 일제시대의 대화에 사용했을까? 하고 좀 의아했다. 사실 몇 군데 더 있지만 번역한 사람도 이민자였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글의 재미에 빠져서 충분히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정서와 맞지 않은 표현이라 뜨악했던 부분도 있었다. p179 단이와 명보와 성수가 만나서 고종 황제의 죽음을 애도하며 술을 마시는 장면이 있다. 세 사람은 동시에 중얼거렸다. "폐하를 위하여" 솔직히 이 구절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는 술 잔을 부딪히며 건배를 한다. 하지만 장례식장이나 애도하는 자리에서는 아무도 건배를 하지 않는다. 금기시 하고 있는 것이다. 건배는 축하하거나 즐겁거나 할때 한다. 차라리 이 구절이 없었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작가에게 권고해서 재판을 인쇄할때는 이 구절은 없앴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땅의 야수들]에 푹 빠질 수 있었던 것은 감동적인 좋은 구절이 훨씬 많기 때문이었다.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특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땅의 젊은 야수들에 게꼭 읽히고 싶다.

p250 인생이란 무엇이 나를 지켜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며 그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겠다.

6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본 내가 젊은 김주혜 작가에게 한 수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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