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즈케 왕국
마이클 모퍼고 글.그림, 김난령 옮김 / 풀빛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범상치 않은 가족이 있다. 배타기를 좋아하는 이 가족은 어느 날 아빠엄마의 실직을 계기로 퇴직금으로 배를 사서 세계 일주를 하게 된다.(특이하게도 선장은 엄마이다.) 어느 밤, 조종실의 키를 혼자 잡고 있던 소년은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게 되고 낯선 이의 도움으로 생명을 구하게 된다. 바야흐로 무인도 표류기가 시작된다.
‘무인도에서 살아남기’에 대한 책이라면 벌써 여러 가지가 출판되었다. ‘로빈슨 크루소’나 ‘십오 소년 표류기’는 고전이고, 서바이벌 만화 시리즈도 있고, 무인도는 아니지만 '마지막 거인' 같은 책도 있고... 그런데 아직도 할 이야기들이 남았나 보다. 켄즈케 왕국이라는 특이한 제목을 보고는 전혀 내용을 짐작할 수 없었다. 첫 장을 펼치고는 또 표류기네... 했다.

또 표류기이긴 하지만 이건 다른 표류기이다. 이전에 보았던 어떤 책보다도 더 따뜻하고 인간적이고 명예로운 이야기이다. 이전의 무인도들은 모두 반드시 탈출해야만 하는 감옥과 같았다면 이 섬은 지키고 보살펴야 할 소중한 작은 왕국과 같다. 신중한 노인 켄즈케와 천상 어린이인 열두 살 소년의 밀고 당기는 길들이기 과정에서 생략된 말과 오랜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들려주는 듯하다. 처음부터 두 사람이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면 틀림없이, 이 책은 시끄러운 책이 되었을 것이다. 가만히 내면을 들여다보며‘내가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살았구나, 이렇게 정적이고 서정적인 표류기도 다 있네.’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노인과 소년의 세대와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는 소통과 사랑은 감격스러울 지경이다. (사실 세대고 문화고 필요가 없는 공간이 무인도이기는 하다.) 새끼 거북을 돌보고 오랑우탄 가족을 지키며 소년까지 말없이 거두어 주는 노인의 사려 깊음은 말만 많은 내 모습을 부끄럽게 한다. 보여줄 사람 없어도 혼자 그리는 그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주어진 삶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떠나고 싶으나 떠나지 않고 끝내 자신의 왕국을 지키는 노인의 모습에서 보이는 영예로운 책임감이 엄숙하기까지 하다.
켄즈케의 마지막 약속을 읽으면서 내 머리가 픽션이라고 판단하기 전에 눈물이 쏟아졌다. 후기를 읽으면서, 이건 분명 사실이 아닐텐데, 사실이었나 하고 젖은 눈으로 책을 다시 들쳐보았다.  다 큰 어른이 깜빡 속을 만큼 감동적인 책이다. 정말로 켄즈케 왕국이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절대 가지는 말아야 할 것 같다. 나는 시끄럽고 부산스러워 방해가 될테니. 그러나 켄즈케같은 사람은 어디선가 만나고 싶다. 내가 소년만큼 용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족인가. 몇 개의 오타를 발견했다. 혹시 내가 잘못 안 걸지도 모르지만..
171쪽 10째줄-토모타치토모다치
184쪽 6째줄-그렇지 못하게 했다그러지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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