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오 팔코네 - 메리메 단편선
프로스페르 메리메 지음, 정장진 옮김, 최수연 그림 / 두레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저 욕심에 서평단 지원을 했다가 어느날, 책이 배달되어 버렸다. 한 일주일, 책을 묵혀 두었다. 생각보다 책의 크기는 아담했으나 표지 그림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너무, 무거웠다, 고 하면 내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을까.  그리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날짜가 다가와서야 책을 펼쳐 들었다. 다행히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그만큼 문장이나 문체가 간결하기도 했고 또 속도감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읽고 난 기분은, 세 편을 읽었는데 세 편 다 참, 허무하고 낯설었다.

마테오 팔코네-코르시카의 유지로, 사수로 이름이 높으며 또한 남자다움의 상징이기도 하고,  하여간 그 이름 하나로도 모든 사람을 벌벌 떨게 하는 힘이 있다. 딸 셋은 모두 키워 좋은 곳으로 시집 보내고, 늦게 본 아들 하나를 애지중지 키우고 있었다. 그 아들이 열살 되던 해, 혼자 집을 보게 하고 부부가 일을 보러 간 사이 사건이 발생한다. 도망가던 산적의 숨겨 달라는 애원에 건초 더미 사이에 숨겨주었던 아들은, 뒤쫓아 온 경찰의 협박에는 비웃으며 여유를 보이다가 그가 내 보이는 은시계의 유혹에 넘어가 산적을 넘겨주게 된다. 때마침 돌아온 마테오 팔코네가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되고, 분노에 찬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다가 총을 메고 아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그의 아내는 매달려 울다가 곧 체념하고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올린다.  마테오 팔코네는 아들에게 알고 있는 기도문을 모두 외우게 한 다음,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아들에게 총을 겨눈다.  40쪽에 불과한 이 책에서, 마테오 팔코네의 감정은 분노 말고는 안 보인다. 아들에 대한 연민이나 사랑, 망설임 그런 것은 전혀 없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인 내가 이 글을 이해하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뭐 이런 황당한 책이 다 있나,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고 책 뒤편의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서야 겨우 아주 조금,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글로 쓰여진 것은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있는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는 나에게는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거리가 필요했다. 글이라는 것은,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생각하기 전에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메리메는 마테오 팔코네를 통해, 코르시카의 비정한 아버지를 고발한 것이 아니라 코르시카의 오랜 전통과 가치관을 알려 주는 것이다.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이 글은, 어쨌거나 하나의 상징으로 봐야할 것 같다. 지금은 이미 고루해지고 잊혀져가는 유물이 되고 있는 ’도덕성’이라는 가치에 대한 상징 말이다. 자식에 대한 애착이나 사랑보다도 신의와 의리가 더 큰 가치라는 것을 믿고 실천하는 한 사람의 과격한(!) 믿음에 대한 상징. 약속과 신의를 져버리는 한이 있어도 손해보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요즘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믿음일 것이다.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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