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를 재미있게 공부하기 위해 선택한 책인데 흡족합니다.
수많은 일본 음식 문화 책 중에서 비교적 최근의 책 중에서 독자들의 리뷰를 참고했고, 무엇보다 음식 사진까지 실려 있는 책이어야 했습니다. 최근의 핫한 가게를 알고자 했던 건 아니라서 비록 10년 전의 책이지만 저같이 일본 음식 문화에 초보인 분들에게 바이블로써 추천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도쿄에서 근무하던 한국의 외교관이 2년(2010~2012)동안 일본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음식을 만나려 애썼고, 그런 식당에서 배운 것들을 습관처럼 적어둬 책으로 발간했습니다.
이 책을 쓰는 방향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글을 쓰면서 가급적 삼가려고 애쓴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우선, "한 입 먹었더니 봄바람에 교태를 부리는 사쿠라 꽃잎처럼 싱그러운 맛이 침샘을 자극했다"는 식의 음식 포르노그래피는 피하고 싶었다. 내가 자극하고 싶은 부위는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관장하는 대뇌 전두엽이지 침샘이 아니었다.
둘째로, 나는 "간사이식 장어구이가 간토식보다 낫다"거나 "우에노 돈가스가 아사쿠사보다 뛰어나다"는 식의 주관적 인상비평은 삼가려 애썼다. 관광 안내서를 쓸 생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 책이 제공하는 즐거움이나 쓸모가 적다고 느낄 분들께는 미리 양해를 구한다. - 8~9쪽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음식의 어원과 발생지의 역사로부터 조리법과 현지 식당의 특징까지 간결한 문체로 산뜻한 지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 만큼 잘 쓰여져 있습니다. 외교관인데도 이렇게 글을 깔끔하게 잘 써?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네요.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서 "일본 음식의 특징"편에서 읽은 부분을 밑줄긋기합니다.
일본인들과 서구인들은 서로를 비교하면서 그 차이점으로 일본 문화를 설명하려는 오류를 자주 범했다.
롤랑 바르트[기호의 제국], 루이스 프로이스 [일구 문화 비교론],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의 저서들은 일본론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지만, 공통적으로 동아시아 전체의 문화를 일본 특유의 것으로 설명하는 오류를 많이 담고 있다. - 18쪽
일본인들은 요리의 결과가 "무엇"이냐를 가지고 일본 음식을 정의하는 대신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를 기준으로 일본 음식을 정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고로케, 돈가스, 오므라이스, 카레라이스, 라멘 같은 음식이 일식의 범주에 포함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인이 "무엇"이 아닌 "어떻게"로 요리를 구분한다는 것을 좀 더 뚜렷이 보여주는 다른 예도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라. 한식당 중에서 뎃판야키(번철 위에 다양한 재료를 요리하는 것), 로바다야키(손님이 보는 앞에서 화로에 다양한 재료를 구워내는 요리), 구시야키(꼬챙이에 끼운 다양한 재료를 구운 것)처럼 재료나 결과물을 묻지 않고 조리 방식으로만 정체를 규정하는 식당이 과연 있는가. 만일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일반적인가. -21쪽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라는 것이 있다. 혼네는 속마음을, 다테마에는 겉모습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다테마에를 "거짓된(그러므로 가증스러운) 행동" 정도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일본 사회에서 다테마에란 규약을 벗어나지 않는 예측가능한 행동을 의미한다. 예측가능성은 신뢰를 의미하므로, 그것은 일본의 큰 자산인 사회적 신뢰의 바탕을 이룬다.
따지고 보면 그리 이상하달 것도 없다. 우리도 말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거짓이라고 부르고,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예의범절이라고 부르지 않던가? - 24쪽
양식화의 목적이 주객일체에 있다는 사실은 다도(茶道)를 살펴보면 좀 더 뚜렷이 나타난다.
16세기 후반 센노리큐가 완성한 것으로 전해지는 일본의 다도는 주인과 손님이 함께 연출하는 고도로 양식화된 한 편의 연극이다.(....중략....) 다도가 규격화된 의식을 통해 만들어내려는 것은 주객이 일체가 되는 다삼매(茶三昧)의 황홀경이다. 이러한 일본적 엑스터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다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서로를 일평생 단 한번 만나는 귀한 사람인 것처럼 예법을 지켜야 한다. 이런 만남을 이치고이치에(一期一會)라고 표현한다. - 25쪽
일본에서 이치자(一座), 또는 자(座)라고 표현되는 일체감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요리도 이치자의 예술이다. 일본에서는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식당의 주방이 노출되는 '오픈 키친'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무대의 배우들이 관객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또는 가부키 배우들이 객석을 가로지르는 하나미치 위로 등장하는 것처럼, 다회의 주인과 손님들이 차 끓이는 행위를 철저히 공유하는 것처럼, 일본 식당의 오픈 키친은 이치자를 이루기 위한 무대장치다.(....중략....)
"잘 보세요. 일본에는 주방이 이렇게 노출된 식당들이 대부분인데,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잠시도 앉아서 쉬는 법이 없어요. 손님이 뜸할 때도 재료를 정리하거나 조리기구를 닦고, 좌우간 뭘 하는 건지 몰라도 계속 뭔가를 해요. 일본에 오래 근무했지만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손님 보는 앞에서 쉬는 걸 본 적은 없어요." - 27쪽
* 동인동 "새참"에서 교카이 츠케멘과 교카이라멘 경험하고 왔습니다.
(정통일본라멘 새참은 일본 東京都品川区東中延2-7-18丸ちゃん에서 하던 그대로 면에서 육수까지 100% 직접 만들고 있습니다)
교카이(魚介). 어패류 특유의 개운하고 시원한 맛. 가다랭이포나 멸치와 같은 말린 생선을 기본으로 다시마, 조개 등을 첨가해 끓여낸 국물이다. 특히 뼈 계열 육수에 모자라기 쉬운 글루타민산이 함유된 경우가 많아, 뼈 육수와 블렌드해서 서로의 감칠맛을 증폭시키는 용도로 자주 쓰인다. 어패류 자체를 중심으로 삼은 육수는 다소 마이너한 편. 국내에서도 몇몇 가게가 시도했다가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폐점한 사례가 있다.
- 출처 나무위키
둘다 어패류 육수라 흔히들 말하는 고수의 영역이더군요. 게다가 교카이라멘은 염분의 농도도 강합니다.
리뷰에 달린 "고수만 입장, 한국아재 입장 불가"란 말이 떠오르더군요. 아하~ 이 말이었구나 했네요
그래도 일본까지 가지 않고 제대로 된 원조를 먹어봐서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 교카이 츠케멘
* 교카이 라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