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은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이나, 장 아메리의 '체념과 저항사이에서'라는 문구가 어울릴 법한 책입니다.
마치 학창시절 신학기가 새로 시작되는 3월 의욕적으로 교과서 앞 부분만 새까맣게 공부하고 스믈스믈 뒷 부분으로 갈수록 책이 깨끗해지는..394쪽..그리 벽돌책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완독에 몇번 실패했네요.
짧게 나눠서 읽어야겠다. 다짐하면 어느새 다른 책에 눈이 가 있고, 한꺼번에 많은 양을 읽겠노라 덤벼들면 마치 [무진기행]속의 주인공처럼 안개 속에 파묻힌 몽롱한 독서가 되고 맙니다.
다시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를 생각해보니 한나아렌트의 주저를 완독했다는 뿌듯함 혹은 허영심의 발로가 가장 컸겠지만, "가능한 모든 것을 만들고 또 불가능한 것은 가능하게 만들고자 하는" 또 다른 형태의 전체주의적 실험이 작금의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은연 중의 분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지독히 고통 받은 경험때문에 상대적으로 쉬워 보여 덤벼들었다가 초,중반 부분으로 넘어가면서 집중력을 읽어버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모든 일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책도 "제대로" 읽지 않으면 "읽었다!"라고 할 수 없겠죠.
제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어렵고 반의 반도 이해되지 않았던 책이 푸코의 [광기의 역사]였는데, 완독의 기쁨보다는 뭔가 모를 찝찝함으로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다시 한번 주어진 이번 기회에는 옆으로 새지 말고 챕터별로 조금씩 깊이 읽어서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소마'알약을 삼킨듯한 쾌감을 느껴보겠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읽겠습니다.
다나까상~! 지명하니 도와주세요!
한나 아렌트는 유태인으로서 근대적 근본악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철학자로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인간조건을 철저하게 사유한 삶을 살았다. 그녀는 철저하게 자신의 삶을 사유하였고, 동시에 자신의 사상을 살고자 노력하였다. 그 철저함에 있어서는 로자 룩셈부르크만이 한나 아렌트를 능가할 수 있을 지 모른다. - 24쪽
그녀는 열여섯에 이미 [순수이성비판],[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그리고 야스퍼스의 [세계관의 심리학]을 읽었다. - 26쪽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아렌트는 열여덟에서 스물한 살까지 마르부르크 기간 동안 하이데거와 애정관계를 가졌다. 20년 뒤에 하이데거는 한나 아렌트에게 "이 시기에 그녀는 자신의 활동의 영감이었으며, 열정적 사유의 자극이었다"고 고백하였다.이 시기가 한나 아렌트에게도 철학적 사유의 싹이 트는 시기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밖에도 마르부르크에서 아렌트는 많은 사유의 동반자들을 만난다. 그녀는 이곳에서 평생 친구 ‘한스 요나스‘를 알게 되고 첫번째 남편 ‘귄터 슈테른‘과 만나게 된다. - 27쪽
박사학위는 하이데거의 권유와 추천으로 당시 하이델베르크에 있던 카를 야스퍼스에게서 받는다.야스퍼스와의 만남은 아렌트의 철학적 사유에 있어 하나의 전기가 되었다. 그는 아렌트로 하여금 하이데거와 그의 은둔적이고 신비적인 철학함으로부터 벗어나 정치적 사유의 영역을 발견하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 28쪽
아렌트의 주저인 [인간의 조건]이 ‘노동‘,‘작업‘,‘행위‘의 삼중 구조로 이루어졌으며 또 순수활동으로서의 사유를 다루고 있는 그녀의 유고작 [정신의 삶] 역시 ‘사유‘,‘의지‘,‘판단‘의 삼중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야스퍼스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렌트는 1928년 마침내 하이델베르크에서 [아우구스티누스에 나타난 사랑의 개념]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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