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본즈 모중석 스릴러 클럽 16
캐시 라익스 지음, 강대은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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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즈: 죽은 자의 증언'이 이미 출간되어 있고 나는 아직 접해보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는 철저하게 법의학을 기초로 하였다면 '본즈 시리즈'의 여덟번째 소설인 크로스 본즈는 법의학과 고고학을 접목시킨 팩션 스릴러를 표방한다. 법의학의 사전적 의미는 법률상 문제되는 의학적 ·과학적 사항을 연구하여 이를 해결함으로써 법운영에 도움을 주고 인권옹호에 이바지하는 학문이며 고고학은 유적 ·유물과 같은 물질 증거와 그 상관관계를 통해 과거의 문화와 역사 및 생활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언뜻 보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두 학문을 가지고 케시라익스는 <크로스 본즈>를 만들어 내었다. 

나는 이책이 모중석 스릴러 라인이다 보니 당연히 스릴러를 기대하였건만 스릴러라기 보다는 팩션에 가깝다고 할수 있다. 한 유대인의 죽음과 연관된 열쇠를 찾아나선다는 스릴러를 밑바탕에 두고 마사다 유적과 예수의 유골을 다루는 고고학을 얹어놓았다고 할까. 그래서 인지 그 방면에 지식이 부족한 독자를 위해 설명하는 부분에 많은 할애를 하다보니 긴장감을 고조시켜야 할 부분이 맥없이 흘러가버리게 되어 책의 흡인력에 방해요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CSI도 너무 전문성만 내세우고 드라마적인 요소가 살짝 배제될때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크로스 본즈 읽는 독자라면 <다빈치 코드>가 자연스레 연상되어 질것이다. 처음 다빈치 코드를 접했을때는 나의 짧은 지식으로 알고 있던 예수에 대한 사실에 반론을 제기한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고 오로지 빠져들었고 그 진실이 진실이 아닌것만 같은 혼란을 겪기도 하였다. <크로스 본즈>도 마찬가지였다. 예수의 유골로 추정된 해골을 파헤치는 과정은 또다시 흥미롭고 가벼운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역시 예수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비화는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수많은 가설과 의견들이 쏟아져 나올것이며 수많은 소설의 소재거리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에는 반대의견을 내놓는 이는 없을 것이다. 

 
케시 라익스는 종교학자 타보르박사와의 대화중에 영감을 얻어 자신의 전공인 법의학에 고고학적 음모를 가미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소설로 옮기기 위해 꼬박 일년 동안 사본, 편람, 신문기사들과 씨름하였을 케시라익스의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수 있었다. 그러나 그 노력에 비해 허무하게 결론이 지어져서 인지 타국에서 고생하고 결과적으로 뒷북만 친 브레넌 박사와 라이언, 제이크가 안쓰럽다는 생각과 함께 그녀의 주종목인 이전의 브레넌과 케시라익스로 돌아가는게 나을듯 싶기도 하다. (물론 이점은 나는 본즈를 한번도 접해보지 않았지만 작품이 나올때마다 '북 리포트 올해의 책'리스트에 올릴 정도면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았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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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에게 완벽한 여자는 없다
시노다 세쓰코 지음, 이영미 옮김 / 디오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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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결혼이라는 게 존재할까 ? 남들이 부러워 하는 결혼? 아님 남들 눈에는 그저 그런 평범한 결혼의 모습이지만 자신이 완벽하다고 느끼면 10점 만점에 10점짜리 결혼이 되는 것일까? 여기에 완벽한 여자와의 결혼이라고 착각에 빠진 남자가 있다. 소위 3고(고신장, 고학력,고수입)라 불리우는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 리카코 연 수입은 800만엔에다 키크고 남들의 시선을 한꺼번에 사로잡아버리는 미모에 완벽한 몸매, 어디하나 흠잡을때 없는 거기에 교만하지 않고 천박하지 않은 교양까지 갖춘 그야말로 완벽한 여성의 표본이 되성 여성이다. 그에 반해 결혼조건에서 완벽하게 기피된다는 3저(저신장, 저학력, 저수입)에 해당하는 신이치. 

첫만남 부터 결혼까지 그야말로 어려움없이 풀려나가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순탄한데 뭐가 오타쿠에게 완벽한 여자는 없다라고 할까라는 의구심도 잠시 잠깐. 역시나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에서는 완벽한 그녀이지만 집안일에서는 그야말로 처절할 정도로 게으름에 극치를 달리고 타인의 시선 밖에서는 히스테리 또한 장난 아니라 환상을 품고 결혼한 신이치가 느끼는 당연하다 싶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신이치 본인도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월주이에 빠져 살아온 한마디로 남자였다. 남자는 밖. 여자는 안이라는 틀이 깨어진지는 오래이다. 맞벌이가 늘어나는 세상으로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힘든 현대사회에서 서로 도와가며 가정생활을 유지해야함은 당연한 일인 것을 왜 그렇게도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면서 불만을 표출하는지...., 이야기는 그렇게 신이치의 관점에서 시종일관 자기 중심으로 리카코를 판단하고 몰아가다 결국은 이혼까지 생각을 하지만 그것 또한 리카코의 임신으로 끝이나고 이제 이야기는 신이치의 육아일기로 방향을 전환한다.

갑작스레 이야기를 아이를 내세워 '자식때문에 참고 산다'는 우리네 부모님의 방식을 고수하려는 의도에서 결론을 너무 쉽고 허무하게 끝맺을려는건 아닌가 하는 서투른 판단에서 나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신이치의 육아일기는 이전 이야기와 연장선상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아이를 키우것 또한 아내의 몫이라는 전통적인 세습속에서 남편의 육아일기는 가부장적인 전통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실제로 현대사회에서 남편들이 육아를 담당하는 모습은 특별한 일도 아니게 되었다. 

<오타쿠에게 완벽한 여자는 없다>는 신이치와 리카코의 역할을 바꿈으로써 가부장적인 고정관념속에 결혼이라는 제도안에서 남녀역할 분담, 결혼, 출산, 육아, 맞벌이와 같은 문제점을 제시하였다. 그 과정에서 다소 과장되고 극단적이며 코믹하게 그려내어 거부감이 들기도 하였지만 한마디로 통쾌하였고 우리의 의식구조가 바뀔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멀었구나 하는 현실에 씁쓸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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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애무
에릭 포토리노 지음, 이상해 옮김 / 아르테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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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어머니가 될수 있는가?
 
저자는 붉은애무를 통해 아버지는 무엇이며, 어머니는 무엇인지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될수 있는가 라고 질문을 던진다.
나는 먼저 질문에 답을 하고 시작하려한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혹은 어머니가 아버지의 역할을  부재에 따른 보충일뿐 완벽하게 채운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된다.  특히나 서로가 서로의 존재자체가 될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신문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말들처럼 '어머니가 아버지 역할까지 하느라 고생하셨다고 이제는 그 고생에 보답할 차례라고'
이렇듯 대신일 뿐이다. 
 
<붉은 애무>는 바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시에 되려했던 한 사내의 비극을 그려내었다.
펠릭스는 자신의 전부였던 아들 콜랭을 뺑소니 사고로 인해 잃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의 고통을 가슴을 뭍어두고 일에만 열중하던 그에게 화재가 났다는 전화한통으로 현장으로 달려간 그가 접한 사실은 모자의 실종뿐이었다.
이일은 계기가 되어 가라앉아 있던 아들에 대한 기억이 다시금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고, 이야기는 아들을 잃은 상실감으로 하루하루를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펠릭스의 행보를 통해 과거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의 아들과의 추억을 상기시키는 과정을  서로 교차시켜가면서 진행한다.
 

펠릭스는 홀어머니 밑에서 아버지의 존재를 모르고 자라났고. 홀연히 떠나버린 마리로 인해 콜랭은 어머니의 존재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였을까 . 콜랭이 겪게될 고통을 대물림해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엄마의 빈자리를 메우고자 결심하면서 낮에는 아버지로써 밤에는 어머니로의 영역을 교대하면서 급기야는  아빠인지 엄마인지 모를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면서 위태롭게 한편으로 만족스럽게 경계를 넘나들게 되지만
갑작스럽게 귀환한 마리로 인해 한순간 제자리를 찾게되고 엄마였던 펠릭스는  이세상에서 없어져야할 존재가 되어버린다. 
아빠로 50%, 엄마로 50%, 100%의 사랑을 콜랭에게 주었던 펠릭스로써는 엄마의 사랑 50%의 상실감은 회복이 불가능하게 되어버린 상태였고 콜랭의 거부는 촉매제일 뿐이었다.
" 너무 큰 사랑이 아이를 죽일수도 있다는 거 아세요, 마레스코씨?
펠릭스는 사랑을 하는 방법에서 사랑을 주는 방법에서 미숙아였던 것이다. 결국은 콜랭에 대한 과도한 사랑이 재앙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이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은 대단한 반전이라고들  하지만 이미 내용의 줄거리를 알고 있던 나에게 새삼스레 반전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단순히 반전의 대단함만을 생각한다면 괜찮은 한편의 미스터리 소설이다. 그러나 반전속에 숨겨진 부재로 인한 결핍, 상실로 인한 허무함, 정체성의 혼란등 인간의 내면 또한 섬세하면서 탁월하게 그려내었다는 것이다.
저자 에릭 포토리노는 이 소설에서 기존질서에 대한 위반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슬프고 허무하다. 
철저하게 작가의 의도대로 등장인물 한사람 한사람이 결핍된 자들만으로 응집되어 있을 뿐인지라 한사람이라도 펠릭스 옆에서 제대로 된 사랑을 보여주었다면 비극은 없었을테니 말이다.
너무나 화창한 날씨의 그날이면 따스한을 맛보았을텐데 스산한 초겨울 참바람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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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미 일족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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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의 영화와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이누가미 일족>. 국내에 여러편의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지만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은 이누가미 일족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처음이지만 긴다이치 쿄스케라는 인물이 왠지 친숙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소년탐정 김전일> 때문일 것이다. 전일군이 외치지 않던가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라고, 이 말의 영향력 때문인지 책을 읽기전 나름대로 인물에 이미지를 상상해보았는데 책에서 만난 긴다이치 쿄스케는 상상하던 이미지와는 많은 차이를 보여서 인지 처음에는 좀 실망스러웠다. 결코 말을 더듬거나 긴장하면 머리를 벅벅 긁어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추리장르를 좋아하기에 별별 캐릭터를 다보았지만 왜인지 긴다이치 하면 중후한 맛과 깔끔한 신사적일 거라는 연상은 완전 착각이었다.    
그러나 <이누가미 일족>을 통해 확실한 긴다이치 쿄스케라는 인물 스타일이 완전히 정착하였다니 기존에는 어떤 스타일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누가미 일족>은 재벌 이누가미 사헤의 죽음과 함께 공개된 유언장으로 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자식과 손자들에게 유산을 남긴것이 아닌 젊은시절 은인인 노노미야 다이니에 대한 보은인지 다이니의 손녀인 다마요에게 모든 권한을 넘긴다는 것이다. 자신의 세 손자중 한명을 선택해 결혼하면 부부가 그 유산을 다 갖는다는 황당한 유언장.
유언장은 단지 시초에 불과하였다. 유언장에 숨겨진 가족사와 사리사욕과 탐욕 , 저마다 지니고 있는 슬픈 운명과 복수라는 비극. 얽키고 설킨 관계속에서 어쩌면 살인은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누가미 일족>의 서술구조는 긴다이치 쿄스케 본인이 아닌 제 삼자의 눈을 통해 현재시점이 아닌 과거의 시점으로 전개되어지는데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읽는 것같다고 할까. 셜록홈즈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이 홈즈가 아닌 왓슨인것처럼 탐정 본인이 아닌 제 삼자의 눈을 통해 서술되어 지는데  긴다이치 시리즈의 작품들 대부분이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구조적 유사성 속에서 매 작품마다 새로움을 창조해 내는 것이 작가의 역량이 아닐까 싶다. 바로 그점에서 <이누가미 일족>은 탁월하였다. 유사한 구조속에 변칙성을 가미한 트릭은 자칫 단조로워 질수있었던 소설을 혼란야기시키고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공포스러움을 맛보게 하니 날고긴다는 명탐정 긴다이치도 쿄스케도 헤맬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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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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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보잘것 없는 것들에 바치는 아름다운 생명의 기록!!!

기차가 지나가는 마을이 있습니다.  매일아침 기적소리로 부모님께 안부를 전하는 기관사가 태어나고 자란 양지마을입니다. 오늘 아침도  수탉이 우는 소리가 아닌 기적소리로 여지없이 아침을 맞이합니다. 양지마을 박씨는 이른 아침 임신 8개월된 암소를 끌고 논을 갈고있습니다. 그런데 임신때문에 예민해져서 인지 기적소리에 화들짝 놀라 뛰어가는 바람에 논두렁 옆 봇도랑의 20년된 백양나무의 옹이에서 2년전 곁가지로 태어난 가지의 평온한 일상은 끝이나 버립니다. 어미나무인 백양나무 곁가지에서 나무막대기로, 다시 회초리에서 결국 똥친막대기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자리의 뿌리내릴 곳을 찾아가는 어린 가지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비극을 맞이할 준비만 갖추고 있는 꼴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운명의 길에 나를 내맡긴 채 어떤 기적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기적만이 나를 희생 시킬수 있다는 믿음도 가치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 P48 >

'길 위의 작가' 라고 불리우는 김주영 작가의 첫 그림소설입니다.  이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길위, 자연과 얼마나 공감을 하며 생활을 하였나 고스란히 느낄수 있는데요. 띠지의 "작고 보잘것 없는 것들에 바치는 아름다운 생명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졸지에 똥친 막대기가 되어버린 곁가지의 모습에서 우리가 자연 속 미물들을 얼마나 하찮게 생각했는지, 무심코 꺾어버린 가지에도 분명히 길가의 돌멩이에도 , 아무곳에나 자라난다고 미움받는 잡초 조차도 인간만이 느낄수 없을 뿐이지 분명 그들에게도 생명이 존재하고 그들만의 언어가 존재할터인데 인간이 얼마나 하찮게 생각하였는지 작가는 바로 생명의 중요성을 우리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한편으로 저자는 그 시절이 그리웠는지도 모릅니다.  섬세하면서도 깨끗한 언어와 책속에 삽입된 그림들은 그때의 그시절 겪은 이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상상력을 키워주니 말입니다.  소가  논을 갈고 밭을 가는 모습, 연기가 피어오르는 굴뚝, 싸리로 만든 담장이나 대문,  사람들이 줄지어 엎드려 모심는 정경은  대량생산에 따른 기계화로 인해 이제는 시골에서 조차 찾아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이제는 똥친막대기도  추억이 되어버렸답니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우리의 생활도 윤택하게 변화되는 것은 당연할터인데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리워 지는 것은 이웃간의 정 그리고 아무런 근심없이 들판을 마구 뛰놀던 어린시절 함박웃음이 그립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지금 가장 그리운것은 한겨울 아궁이 장작불 속에서 구워먹던 군고구마와 눈썰매장이 아닌 동무들과 비닐푸대를 썰매삼아 미끄럼타고 눈싸움하던 그 겨울이랍니다.  오랫만에 <똥친 막대기>를 읽고 말괄량이 였던 그때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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