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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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좋아하는 한사람으로써 책과 관련된 제목만으로도 새삼 설레이는 것은 당연한 감정이 아닐까 싶다. 더구나 이번에는 책을 읽어주는 남자란다. 더욱더 궁금하지 않을수 없다. 문득 어릴적 침대맡에 아버지가 읽어주시던 동화책과 낮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곤 하던  아스라한 추억을 떠오르게 하니 말이다. 물론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책을 읽어주어야 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주 가끔은 어릴적 아버지가 읽어주시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는데 지금 아버지께 책 읽어달라고 부탁한다면 나를 이상한 애 취급할것은 자명할것이기에 참기로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책 읽어달라고 부탁을 한다면 꽁무늬부터 빼느라 바쁠 것이다. 내 목소리가 타인의 귀에 쏙쏙 들어가는 낭낭한 목소리도 아닐뿐더러 괜시리 부끄러워서 제대로 읽질 못하는데 학창시절 교과서는 어떻게 읽었을까나. 물론 그때와는 입장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간혹 어머니께서 책이 아니더라도 간단한 광고문구나 성경몇구절을 낭독하라고 할때도 부모님인데도 쑥쓰러워하는 나를 보면서 후에 나에 아이들에게는 과연 책 한권이라도 읽어줄수 있을런지........,

15살 소년 미하엘은 어느날 간염으로  인해 갑작스런 구토로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되고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여인은 한나라는 36살의 중년 여성이었다. 다음날 감사인사를 하기 위해 한나를 찾아가게 되고 같은 또래에서는 볼수 없는 원숙미와 신비로움을 간직한 한나에게 강하게 끌리게 되면서 그들의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나누기, 그리고 나란히 누워있기라는 의식은 시작된다. 

그러나 영원할것만 같던 의식은 홀연히 자취를 감추어버린 한나로 인해 종지부를 찍었고 미하엘에게는 한나를 향한 육체적 그리움과 더불어 그녀를 외면한것에 죄책감만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다시만난 미하엘과 한나. 하필 그곳은 법대생이 되어  나치 강제수용소와 관련된 사건을 참관하기 위해 찾아간 법정이었다. 그곳에서 한나는 수용소의 감시원이었던 과거사에 대한 피의자 신분으로 재판을 받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필사적으로 숨겨온 비밀을 눈치채게 되는데 그것은 왜 자신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했는지 왜 여행지에서 그의 뺨을 때렸는지 그녀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그 비밀을 필사적으로 감추기 위해 끝끝내 모든 죄를 뒤집어 쓰고  종신형을 살게되고 여기에서 미하엘은 또 한가지의 자신 스스로에게 죄를 씌운다. 그 죄는 재판과정에서 한나를 위해 사실을 말할수 있었으나 침묵한 죄이다. 

그후 미하엘은 한번의 방문도 편지도 쓰지 않고 한나에게 수감생활내내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보냄으로써  '책 읽어주기'를 계속하였다. 그렇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멀어지지도 한발짝 다가서지도 않고 자신이 정한 테두리안에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그녀를 사랑하려 한다. 과연 사랑이라고 할수 있을까?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가져간 그녀를 향한 도피는 아니었을까? 아니면 스스로에게 씌워진 죄에 대한 속죄는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제 갓 성에 눈을뜬 15세 소년을 제어하지는 못할망정 그와 동조하는 한나의 행동은 무책임하고 무절제한 모습이 아닐수 없었다. 차라리 15살이 아닌 25살과 46살이라면 속된말로 "능력좋다"라고나 할수 있지. 최근 미드SUV에 빠져있어서 더욱더 한나의 행동에 동조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작품의 밑바탕에는 남녀간의 사랑, 독일 나치의 시대사, 인간 내면의 근간이 자리잡고 있다. 한남자는 배반이라는 원죄를 덜기위해 , 한여인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한 나라는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감추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복잡 미묘한 양상으로 전개되어진다. 

나에게 결코 쉬운 작품이 아니었다. 쉽다고 생각하고 읽다보면 어느새 그들의 내면심리를 이해할수가 없다가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하고 철학적인 문제를 맞닥들이게 되면 마치 눈앞에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답답함을 동반하기도 하는 둥 완독을 하였지만 결코 다 읽었다고 할수 없는 개운치 않음을 동반한 작품이라고 할까. 그런데 기회가 되면 다시한번 읽어보고 싶기도 한 작품이기한 묘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를 완독할즈음에 동명 영화인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영화에서 여우주연상 수상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책에서는 한나의 감정을 나로써는 이해될듯 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했던 예민하면서 신비롭고 복잡한 사연을 지닌 한나라는 캐릭터를 케이특 윈슬렛이 어떠한 표현했을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탁월하였기에 오스카상을 받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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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독살사건 1 - 문종에서 소현세자까지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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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국사라는 과목은 역사에 대한 이해와 지식의 습득하기 위함이 아닌 단지 시험때문에 시험점수를 잘 나오게 하기 위한 암기과목일 뿐이었다. 시험에 출제 빈도율이 높은 부분은 그저 달달 외울뿐인 국사였다. 그나마 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역사드라마는 좋아했기에 아무리 드라마가 왜곡되었거나 가상인물이나 허위사실을 더했거나 옆에서 누군가가 옆구리 콕 찔러 잘못되었다고 지적을 할지라도 나에게 역사는 드라마속의 역사가 진실이었고 그것이 진실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최근에 역사 드라미 붐이 다시금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같은 시대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드라마라도 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첨예하게 바뀐다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관심은 거기에서 시작되었고 귀는 팔랑귀다 보니 만인의 존경을 받는 임금의 비화던가 야사들을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보니 어릴적 보아왔고 배워왔던 역사는 전부가 아닌 일부분에 불과하였고  그 진실 또한 이긴자에 의해 씌여진 역사라는 것이었다.  그러던 차에 호기심에 선택한 이 한권의 책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렸다. 과연 이책에 씌여진 글을 고지곧대로 믿어도 되는것인지 궁금증과 혼란만 궁금증만 가중시켰다. 2005년에 발표된 저자의 <조선왕 독살사건>의 책에서 이미 조선왕 3명중 1명은 독살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그리 놀랄일도 아니겠지만  다시금 나온 개정판을 처음 접한 나에게는 그야말로 놀라 노자가 아닐수 없다.  대체 권력이 무엇이간데 자식을 죽이고 형제를 죽이고 부모를 죽이는지 어찌 이리도 잔인하고 이기적일수 있는지 ......, 

피의 숙청으로 세워진 나라 조선, 피비린내가 채 가시기도 전에 그 자국의에 또 피를 덧칠해 나갔던 조선.                                                                                                                                                           1권의 서두는 문종의 죽음으로 시작되어 소현세자의 죽음까지 피의 조선의 역사를 이야기 한다.  이제껏 문종이 독살? 알지도 못했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그야말로  아버지 세종에 빛에 가리고 단종과 세조 사이에 존재감이 없었던 왕,  아들을 동생에 의해 비명횡사 할밖에 없게끔 빌미를 제공하였던 왕으로 기억된 뿐이었는데 인데  저자는 문종의 죽음이야 말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죽음이었고  조선사 전체를 관통하는 독살이라는 코드의 시초가 되는 죽음이라고 서두를 장식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야말로 사육신, 생육신등 사대부들의 한으로 남은 어린왕 단종의 죽음,  거대한 음모의 희생자가 된 예종, 너무나 잘 알려진 연산군 그 또한 쿠데타와 폭군만들기의 희생양이었다.  문종 다음으로 나에게 있어 존재감이 없는 인종 그렇지만 알고난 지금 너무나 가련한 왕 그는 대윤과 소윤  그리고 사림파 사이에서 그리고 조선의 여왕이라 불리는 악녀 문정왕후속에서 1년도 채 되지 않는 재위기간을 보낸 임금으로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였고, 방계승통이라는 콤플렉스와 임진왜란속에서 횡설수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폐륜을 남긴 선조, 그리고 읽는내내 그어떤 죽음보다도 안타까운 죽음 소현세자였다. 자신을 대신해 볼모로 끌려가 고생하였을 아들을 위로하기는 커녕 왕좌를 잃을까 이기심끝에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에 터져나오는 울분을 잠재우느라 참을 인자를 몇번이나 세었는지 모를 지경이다.  조선을 개혁의 나라로 개방의 나라로 만들려던 선진적인 꿈을 꾼 소현세자의 좌절은 조선의 좌절이었고 조선이 개혁하기까지는 이후에도  수천 수만의 피가 더 흐른뒤에야 이루어 진다. 물론 왕의 피도 포함되어서 말이다. 

방금 나는 숨기고 싶은 어두운 역사를 보았다. 비단 우리의 조선사가 어두움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찬란한 업적을 이루었고 역사에 길이남을 위대한 왕들도 존재하였다. 그렇지만 저자는 부정의 극에서 반성을 통한 최상의 긍정의 역사를 찾고자 감추고 싶은 속살을 보여주었다.            '반성없는 역사에는 미래가 없다. 미래가 없는 역사를 어디에 쓰겠는가?'라는 물음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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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비지 가든
마크 밀스 지음, 강수정 옮김 / 비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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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간 잠들어 있던 정원, 영원히 봉인된 문이 열린다" 

표지 한가득 녹색 빛깔을 띈 어딘지 모르게 묘한 분위기를 간직한 새비지 가든.전적으로 광고 카피를 신뢰하는 편은 아니지만 예수의 성서와 더불어 미스터리와 추리적 요소의 단골메뉴인 단테의 신곡과 그리스 신화까지 그 둘이 만나 우아하고도 유혹적인 한 폭의 퍼즐을 만들어 냈다. 라는 광고 문구는 개인적으로 미스터리와 그리스 신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그냥 지나칠수 없는 달콤한 유혹과도 같다.

애덤은 지도교수로 부터 여름방학 프로젝트로 이탈리아의 대저택을 연구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아들이며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으로 출발한다. 15세기 부유한 영주가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놓았다는 정원. 그러나 막상 그의 눈에 보이는 정원은 단순한 추모정원과는 다른 퇴폐적인 인상과 함께 곳곳에 배치된 조각상과 벽화의 구도는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 마치 누군가를 향한 고해성사와도 같은 수수께끼를 간직한 정원이었다. 실연도 하였겠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 시작된 프로젝트는 애덤으로 하여금 자신과의 뜻과는 상관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저택의 주인 도치여사와 그 집안에 얽힌 비극적인 가족사에까지 발을 들여놓게 된다.

마크밀스의 소설은 처음이지만 그의 영화는 한번쯤은 보았던 작품으로 그와도 한번쯤은 만나보았던 작가였다. 그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정원이라는 배경에다 단테의 신곡과 그리스 신화를 적절하게 배합하여 그 속에 숨겨진 진실과 탐욕으로인 비극, 배신등을  적지도 넘치지도 않게 새비지 가든을 만들어 내었다. 

장르를 떠나 소설을 읽을때 간혹 영상으로 표현이 된다면 참 좋을것 같은 소설을 만나게 되는데 새비지 가든이 그러하다.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의 아름다운 정경과 대저택의 비밀스러운 정원이라는 공간적인 배경의 세밀한 묘사는 머리속의 상상력만으로 표현하기란 한계에 다다르기에 그 신비로움과 정적이면서 아름다움을 영상으로 감상한다면 더할나위 없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가 제작된다는 가정하에 내맘대로 가상 캐스팅을 해보자면 유약한듯 하면서 강인함을 지닌 애덤은 주드로가 제격일것 같고 극은 애덤이 이끌어 가지만 극의 중심에 서있는 도치여사는 카리스마 짱 주디 덴치, 자유분방하면서 나름대로의 소신을 지닌 애덤형은 올랜도 블룸이 어떨까 싶다. 마지막으로  아름답고 당당한 안토넬라는  007 카지노 로얄에 출연했던 애바그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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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레이철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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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링턴파크의 위기의 주부들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그녀들은 과연 어떤 완벽한 삶을 살기에 완벽이란 단어를 전면에 내세웠을까.   

런던 근교의 알링턴파크. 전형적인 중산층가정이 한데 어울려사는 곳으로 영국의 날씨하면 연상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하루의 이야기이다. 

줄리엣은 뭐든지 우수했던 학생으로 어릴적 자신의 미래에는 대학교수나 글을쓰는 직업을 가질것으로 기대했고 결코 고등학교 시간제 교사라는 직업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그녀는 결혼후 알링턴 파크에 정착했고 평범한 여교사로써의 삶과 아내로서 엄마로써의 삶만 강요당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알링턴 파크내에 가장 좋은 주거지역에서 이상적인 가정을 만들고 싶어했던 어맨다는 정작 그 꿈은 이루었지만 자신이 꿈꾸었던 삶과는 다른 불안감과 당황스러운 감정의 연속이다. 크리스틴에게 있어서 알링턴파크는 어린시절 불우했던 과거로의 보상으로 알링턴파크야 말로 그녀가 꿈꾸었던 이상이다.라는 강박관념속에 있다. 벌써 네번째 아이를 가진 솔리는 남는 방에 외국인들을 들이면서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한다. 런던에 살다 최근에 이사온 메이지에게는 알링턴파크는 도약이 아닌 마감이란 것을 깨닫고 후회한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나이, 아내로써, 어머니로써, 며느리로써 자리만 존재할뿐 여자로써의 본연의 모습은 어느새 퇴색되어버린 삶속에 놓인 5명의 여인. 알링턴파크라는 같은공간속에서 공존하는 그녀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다른듯 하면서 같다. 자신의 꿈과는 다른삶에 대한 불만과 좌절감, 정작 자신의 꿈은 이루었지만 만족보다는 만족에서 오는 회의감,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스러움등 그녀들의 삶에는 상실감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하지만 더불어 서로를 보듬어주고 함께하는 유대감도 보여주지 않는다.   

처음 느낀 감정은 기대와는 다른 전개에 대한 당혹스러움이었다. 좀더 유쾌하거나 혹은 미국드라마인 <위기의 주부들>처럼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가미될것이라고 예상했건만 정작 알링턴파크의 여자들의 삶은 완벽함과는 동떨어진 불안함이었고 미드 <위기에 주부들>과는 다른 차원의 <위기에 주부들>의 모습이었다. 

현재 나는 여자로써만 존재할뿐 아내,어머니,며느리라는 자리를 갖지 않은 상황에 있다. 그러나 이소설은 내가 겪게될 과정이었고 느끼게 될 감정의 예고편인것 마냥 두렵기도 하였다.


그래서일까. 책을 놓을까도 생각했지만 너무나 현실감 넘치는 묘사는 나로하여금 불편함과 답답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끝까지 읽을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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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1
츠츠미 미카 지음, 고정아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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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유주의 정책의 폐해와 실상에 대한 경고


세계가 휘청이고 있다. 날로 치솟는 물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주가, 하루가 다르게 폭등하게 외화, 도무지 요지부동인 실물경제등 전세계의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 불안한 상황은 세계 최강의 경제력을 지닌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거기에 시발점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사회적 신용도가 비교적 낮은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담보대출로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부유층에서는 더이상의 수요는 존재하지 않기에 눈을 돌려 불법이민자나 저소득층을 내집마련이라는 달콤한 유혹으로 올가미에 가두어 옴싹달싹 하지 못하게 가두어 버렸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내집마련은 가정을 이루어가는데 최우선 과제이고 저소득층으로 갈수록 내집마련의 꿈은 클수밖에 없다. 자기집을 갖겠다는 소망이 그렇게 크나큰 욕심이었나?

누구를 위한 경제 정책이란 말인가
경쟁을 통한 서비스와 질적 향상이라는 명목하에 나라의 책임을 민영화라는 거창한 포장지에 싸여 마치 국민에게 멋진 선물인것 마냥 제공된 신자유주의 정책.
급속도로 확산된 민영화라는 시장원리의 도입은 국가의 책임회피와 공공서비스보다는 철저히 이익만을 추구는 기업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결과 중산층이 무너짐으로써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빈부격차를 양극화 시키고 빈곤층이 늘어남에 따라  경제상황은 악화일로에 놓이게 되었고 빈민구제 정책의 일환인 푸드스탬프로 연명하는 빈곤층의 아동들의 비만을 초래하였고,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민영화로 인해 늦장 대처는 수많은 이재민과 재산피해를 남겼으며, 비싼 의료비로 인해 파산하는 중류층, 과도한 학비로 인해 부채를 떠안게 되는 학생들은 사회로의 출구가 차단되고, 빈곤을 탈피하기 위해 어쩔수 없는 선택을 하게 만드는 징병문제와 이라크 전쟁문제등 신자유주의의 물결속에서 날로 힘든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미국의 현실을 고발한다. 
기회의 땅 미국, 노력 여하에 따라 삶이 풍요롭다고 믿었던 아메리칸 드림은 옛날 얘기가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이라는 미명아래 들어나는 문제점들은 충격 그 자체였다.
지금의 미국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누군가 나에게 꾸며낸 얘기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더군다나 강건너 불구경하듯 넋놓고 있다가는 넋놓고 있다가는 세계 10위라는 경제대국 대한민국은 속빈 강정이 되어버리는것은 아닐까? 걱정스럽다.

"국가가 우리를 버렸다" <p57>  
민영화가 결과를 알리는 문장으로 카트리나로 인해 버려진 이재민중에 한사람의 외침이었다.   

여담이지만 얼마전 한밤중에 급성 장염으로 인해 동생을 데리고 응급실에 간적이 있다. 수액한병 맞고 피검사에 하루치 약을 들고 나오는데 예상외의 병원비에 깜짝놀랐다. "왜이렇게 청구액이 많냐"고 물었더니 병원측은 이런저런 이유를 설명하였드랬다. 만약 이 상황과 똑같이 의료보험이 민영화가 되었다면 몇만원에서 그치는것이 아니라 몇십만원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될것은 자명한일. 그때는 병원가자는 소리는 입밖에도 내지못하고 죽어라 참는 수밖에 길이 없는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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