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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김영 선생님과 독서 모임을 할 때였다.
동시 작가였던 김영 선생님께서 5.18 문학상으로 동화 부분에 상을 받으셨다.
그때 난 '이승만' 운운했고 얼굴이 굳은 언니들 앞에서 나는
"아니, 아니 박정희 시대에 있던 일인가?"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나는 단 한 번도 현대사에 대해 배운 적이 없었다.
물론 내가 공부할 당시 사회탐구 영역에 국사가 포함됐다.
그 유명한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현대사 따위는 출제하지 않으니 가르쳐 줄 리가 없었다. 강남에 있던 학교도 똑같았다.
심지어 지리 과목도 그랬다. 지도와 지역 문제보다는 각 지역에 기후와 특징 등을 달달 외우면 고득점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나는 바닷가 마을인 부산과 목포는 근처라고 생각했다.
대학 때 친했던 친구가 목포에 살아서 조용히 내게 알려줬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정도 거리와 부산에서 목포 가는 거리가 비슷하다고.
아마 다른 아이들은 뒤에서 나를 신나게 놀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무식한 지식을 갖고도 나는 그 유명한 팔학군에서 성적 상위권을 차지했다.
고등학교 3학년 첫 학기 때만 해도 선생님이 내 손을 잡고 "우리 반에서 서울대를 보낼 애를 너로 정했다."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지만 10년도 더 된 옛날에 공부 잘했다고 잘난척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5.18이 뭔지 모르고도 공부 잘하는 애로 분류되는 현실을 고발하고 싶다.
그래도 나는 국사를 배웠다. 그 이후 아이들 중 국사가 선택 사항인 세대도 있다고 알고 있다.
그게 과연 제대로 된 교육인가?
내게 5.18은 내가 무식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치욕으로 기억된다.
나는 다른 방식으로 5.18을 잊지 않고 있다.
동호와 정대라는 중학생 소년이 있다.
그날 동호와 정대는 총을 든 군대가 있음에도 앞으로 전진한다.
그들은 누가 봐도 어린 학생이었다.
설마 어린 학생을 군인이 어떻게 하겠어. 그게 그들이 앞에 선 이유였을 테다.
노동법을 공부한 성희라는 여성 공장 노동자가 있다.
성희는 노동법을 배우고 부조리한 근로 현실을 깨닫는다.
저항하고 주장한다.
그래서 모여 이야기한다.
경찰이 이들을 겁준다.
설마 여자인 우리를 어쩌겠어.
여자 근로자들은 옷을 벗고 건드리지 말라며 항거한다. 설마.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습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95)
\한쪽에서는 죽음이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저항한다.
한쪽에서는 다른 이의 죽음이 개, 돼지를 안락사 시키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명령에 따를 뿐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죽음이란 두려움이 앗아간 후 산 사람 또한 죽은 것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산다.
이에 반해 잔인했던 그들은 그저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 그게 더 분노케 한다.
마지막 시민 군으로 남았다가 항복한 김진수라는 교대 학생이었던 그.
그는 삶 전체가 엉망진창이 된다.
동호 엄마는 나머지 아들을 지키기 위해 뻔히 죽을 동호를 두고 작은 아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동호의 두 형은 서로를 원망하며 분노한다.
도청에서 동호와 같이 일을 했던 은숙.
그녀는 마음대로 말할 자유를 앗아간 시간 안에서 버티고 있다.
같은 글이지만 누가 썼느냐에 따라 글 삭제 부분이 달라진다.
소년은 계속 온다.
같이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날 광주에서 살아남은 자가 외치는 절규는 세월호 유가족 눈물과 같다.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 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러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130)
광주에서 참혹한 일을 당한 시민들, 그리고 세월 호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
자신 영혼이 유리로 만들어졌단 사실을 깨닫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일은 개인 의지로 막을 수 없다. 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항상 소년은 우리에게 온다.
그는 우리 마음에 와서 마음을 울리고 괴롭힌다. 외면하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이 소설을 통해 이야기한다.
이 일은 결코 남이 겪은 일이 아니다.
바로 내가 겪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우린 눈을 뜨고 겪어야 한다.
실제로 겪지 않았음에 우월감을 느끼라는 게 아니다.
같이 이 아픔을 느끼고 나누자는 것이다.
그래야 더 이상 괴물이 나오지 않는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그 작은 오만이 괴물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