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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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살아오면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스스로가 진정으로 하는 질문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어떤 사람이나 책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형식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나는 누구인가 곧 자신의 자아에 대해서 묻는다면 대답할 시간 아니 그 대답을 위한 시간조차 허랍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철학' 이라는 이름 아래 가장 어려운 질문이라는 선입견이 따르기 마련이다. '연금술사' 또한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인 산티아고는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결국 자아를 찾아나서는 모험을 떠난다. 모험을 하는 중간중간 나오는 연금술사나 집시 오아시스의 사람들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 수 있으나 그러한 것은 자아를 설명하기 위한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넘어가자. 형태만 달리할 뿐 그들은 산티아고에 '자아를 찾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종국에는 산티아고가 진정한 자아를 찾는다는 뻔한 내용이지만 독자들이 이 소설에서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간단한 것 같다. 결국 나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 갇혀있게 만드는 갖가지 요소들 (직장 가족 돈 ... ) 때문에 '마음의 소리' 를 듣고도 얻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산티아고의 삶이 위대해 보이고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자아를 찾는다는 거창한 문구와는 달리 책은 쉽게 포장되어 있다. 분명 깊이있는 철학적 주제를 닮고 있으면서도 읽어내려가는 데에는 하등 부담감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코엘료라는 작가의 능력이겠지만 독자는 연신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언제쯤 나는 마음이 이끄는데로 자아를 찾아서 떠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어느정도 재력을 갖춘 후에? 사랑을 성취한 후에? 명예를 얻은 다음? 그 다음은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자아를 찾기 위해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되는 것은 알지만 포기라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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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덫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3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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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사 크리스티는 흔히 셜록홈즈의 작가 코난도일과 비교되곤한다. 그들은 모두 추리소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명성을 가지고 있지만 둘의 작품 세계는 확연히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이런 스타일의 차이 때문에 도일은 단편에 크리스티는 장편에 어울리는 작품을 쓴다고들 한다. 그 말은 반대로 생각해 보면 크리스티는 단편에 있어서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쥐덫을 읽어보면 그러한 생각은 일단 덮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분명 그녀의 여타 유명한 장편 소설보다는 매력이 덜하다 할 수 있겠지만 못지 않게 훌륭한 단편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편이지만 장편 못지 않은 치밀함을 보여주고 있는 쥐덫은 차치하더라도 나머지 수록된 8편의 단편들도 나름대로의 멋을 풍기고 있다. 마플 포와르 퀸 등 크리스티가 만들어낸 유명한 탐정들이 모두 등장한다는 점도 이 책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짧은 소설이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스타일대로 사건을 파헤쳐 나가는 점은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마플의 추리가 제일 마음에 든다. 인간의 심성을 전체적으로 바고 파악하는 그의 추리 기법이 딱딱하기만 한 다른 탐정들보다 더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일까...^^) 하지만 단편이기 때문에 구성의 치밀함이나 사건의 긴박감 등을 느낄 수 없음은 다소 아쉬운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크리스티의 다른 모습을 보고 매력을 느끼는 데에는 충분한 분량이니 걱정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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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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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수는 일단 독특한 소재가 눈에 띈다. 일단 아직 '향' 이라는 개념이 대중에 깊숙히 들어와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향수라는 것 자체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향수라는 것을 다룬다고 해서 독특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으리라. 그 독특함에는 시대적인 배경 또한 그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18세기의 프랑스. 분명 우리는 그 당시에 대해서 막연한 상상을 하곤한다. 향내가 피어나는 거리. 수많은 군중. 왕실에의 동경... 게다가 18세기 프랑스의 향수 제조업자라니... 일단 소재의 독특함에 있어서 놀라울 뿐이다.

 하지만 그저 그 소재의 놀라움에 그친다면 이 소설은 완성형이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소설이 이토록 사랑받는 데에는 작가의 엄청난 노력이 베어있었다는 것은 독자 또한 느낄 수 있다. 동시대의 사람이 아니면서도 그 시대를 정확하게 아니 오히려 그 시대 사람보다 더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 아니면 다른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지 않나 생각한다. 그만큼 쥐스킨트는 (그의 알려진 성격만큼이나) 완벽함을 추구하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렇담 소재의 독특함과 작가의 특출함 그것이 전부일까? 그저 독특한 소재를 쓴 작품일 뿐?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분명 향수에서 쥐스킨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물론 작중 그루누이의 일생은 사실 말이 안 되는 측면이 많다. 아니 그루누이의 일생 뿐 아니라 소설 전반적으로 그런 기류가 흐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향수가 인간 심성의 전반을 반영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향수로 대변되는 인간의 욕심. 그루누이로 대변되는 이상향을 추구하는 인간. 소녀로 대변되는 희생되는 사람들.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죄인. 죄인에 동화되는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이 현대의 어떤 극악한 상황에 대비시킨다고 하더라도 맞아떨어진다는 것은 그가 얼마만큼의 통찰력을 가지고 작품을 써내려갔는지 조금이나마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향수를 처음 소개 받을 때는 일견 추리 소설인 것으로 착각했다. 한창 크리스티의 소설에 빠져있을 때였고, 쥐스킨트의 이름을 어렴풋하게 들었을 뿐이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게다가 향수의 부제가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아니던가. 하지만 향수는 추리소설도 그렇다고 해서 잔인한 살인마가 나오는 이야기도 아니다. 어쩌면 부제가 말하는 것처럼 독자는 그루누이가 살인자임을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하여 이야기를 풀어간다. (살인은 소설 후반부에나 자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 소설은 추리소설에서 살인이 일어난 후의 긴박감 보다는 살인이 일어나기 전의 긴장감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일단 작가가 추구하는 바도 살인에는 있지 않은 것이로 보인다. 

 향수는 작게는 독일문학 크게는 독일이라는 나라의 문화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주는 데 크게 일조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독일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의 느낌은 강목 같은 강인함 내지는 돌 같은 차가움이다. 하지만 향수를 접하면서 그러한 단어는 이내 사라지고 쥐스킨트라는 단어가 맨 앞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의 소설은 섬세하지만 분명한 맺고 끊음이 있어보인다. (그래서 읽기도 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향수를 금방 읽었다는 것에 동의하리라.) 아직 현존하는 작가 쥐스킨트. 앞으로 그의 작품이 기대되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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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2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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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명'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대부분의 (혹은 잘 알려진 다른) 크리스티의 소설과는 사뭇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이다. 여타 크리스티의 소설들이 사건 자체에 무게를 두고 사건을 풀어가는 것에 소설의 흐름을 맞췄다면 이 소설은 그보다는 사건으로 인한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파헤쳐지는가에 그 초점이 맞춰진다. 소설의 주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첫번째 사건은 이미 일어난 지 2년이나 지난 상태였고, 그에 따르는 부속 사건 또한 책의 말미에서나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 누명에서 크리스티가 택한 심리전의 소재는 무엇일까? 바로 가족이다. 물론 소설 속의 가족이 양부모와 입양된 자식들로 이뤄진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신경전이라는 소재는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할 수 있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끼리의 알 수 없는 의심과 그에 따른 의혹들.... 이러한 것들은 가족이라는 소재가 아니라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소재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러한 심리전에 비해서 추리소설 특유의 박진감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분량에 의한 부담이 있었겠지만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보다는 그 이면에 담긴 인간의 심리적인 면을 담다보니 이렇게 이렇게 해서 사건이 풀리더라는 내용의 설명은 부족하다. 오히려 어찌어찌하다보니 단서가 주어지고 그 단서를 바탕으로 스쳐가는 영감을 이용해 사건을 풀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러한 점이 이 소설의 옥의 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추리소설 본연의 재미는 반감되었을지언정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크리스티의 또다른 모습을 보았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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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11-25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것 참.. 제가 쓰려던 내용을 거의 똑같이, 그것도 이미 6개월 전에 올려놓으셨군요. 어쩜 이리도 제 감상과 비슷한지... ㅎㅎㅎ 대략 난감..(난 뭘 쓰나.. ^_^; )
 
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9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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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몇 년 사이 체게바라 라는 이름이 대학생을 중심으로 하나의 상징적인 단어로 자리잡은 것 같다. 심지어는 고등학생들도 체게바라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보이곤 한다. 아무래도 그러한 신드롬적인 현상에는 사상의 자유의 보장이라는 것과 함께 출판된 수많은 체게바라 관련 서적들이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 중심에는 이 책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필자의 주위에도 체게바라 평전을 읽고 혁명을 이루겠다는 고등학생이나 세상을 뒤집겠다는 대학생들을 많이 보았다. 사실 그러한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호기심으로 이 책을 사봤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책을 접하기 전 게바라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은 과격 혁명주의자 정도였고, 나는 그런 것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도 그러한 생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는 분명 과격 혁명주의자일 뿐인 것 같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 이라는 조건이 있지만, 그의 사상을 그대로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위에서 100% 그의 것을 따라하려는 사람들을 볼 때 그에대한 재해석의 부족함을 새삼 느끼곤한다.

 하지만 그러한 현상은 이 책의 서술 방식에 기인하는 것 같다. 체게바라 관련 책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힌다고 할 수 있는 이 책이지만 그에 대한 설명은 예찬 뿐이다. 물론 작가가 게바라의 행적을 좇아가기 위해 노력한 모습은 충분히 보이지만, 그가 왜 혁명이라는 것을 택했고, 왜 그러한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 당연히 그는 혁명이라는 것을 해야 됐고 혁명을 성공했으니 그는 당연히 예우해 줘야 한다는 논조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게바라를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다만 그 당시의 상황이 정확이 어땠는지, 그가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더 많은 설명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한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이나 비판없는 글은 평전이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에는 이러한 일이 가능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같지 않은 현실에서 같은 방식을 적용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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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rike 2005-01-02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격한 혁명가이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지독한 낭만주의자로 느껴지더군요.

한방블르스 2007-12-03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게바라가 과연 혁명을 위하여 쿠바를 떠났을까? 혁명이 그를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게바라가 혁명을 필요로 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곤 합니다.
게바라를 상업적으로 내몬 자유주의자들에 의하여 새롭게 부할하였다고 봅니다. 물론 체는 존경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神적으로는 아니고 인간 게바라를 보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