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향수는 일단 독특한 소재가 눈에 띈다. 일단 아직 '향' 이라는 개념이 대중에 깊숙히 들어와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향수라는 것 자체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향수라는 것을 다룬다고 해서 독특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으리라. 그 독특함에는 시대적인 배경 또한 그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18세기의 프랑스. 분명 우리는 그 당시에 대해서 막연한 상상을 하곤한다. 향내가 피어나는 거리. 수많은 군중. 왕실에의 동경... 게다가 18세기 프랑스의 향수 제조업자라니... 일단 소재의 독특함에 있어서 놀라울 뿐이다.

 하지만 그저 그 소재의 놀라움에 그친다면 이 소설은 완성형이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소설이 이토록 사랑받는 데에는 작가의 엄청난 노력이 베어있었다는 것은 독자 또한 느낄 수 있다. 동시대의 사람이 아니면서도 그 시대를 정확하게 아니 오히려 그 시대 사람보다 더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 아니면 다른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지 않나 생각한다. 그만큼 쥐스킨트는 (그의 알려진 성격만큼이나) 완벽함을 추구하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렇담 소재의 독특함과 작가의 특출함 그것이 전부일까? 그저 독특한 소재를 쓴 작품일 뿐?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분명 향수에서 쥐스킨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물론 작중 그루누이의 일생은 사실 말이 안 되는 측면이 많다. 아니 그루누이의 일생 뿐 아니라 소설 전반적으로 그런 기류가 흐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향수가 인간 심성의 전반을 반영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향수로 대변되는 인간의 욕심. 그루누이로 대변되는 이상향을 추구하는 인간. 소녀로 대변되는 희생되는 사람들.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죄인. 죄인에 동화되는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이 현대의 어떤 극악한 상황에 대비시킨다고 하더라도 맞아떨어진다는 것은 그가 얼마만큼의 통찰력을 가지고 작품을 써내려갔는지 조금이나마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향수를 처음 소개 받을 때는 일견 추리 소설인 것으로 착각했다. 한창 크리스티의 소설에 빠져있을 때였고, 쥐스킨트의 이름을 어렴풋하게 들었을 뿐이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게다가 향수의 부제가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아니던가. 하지만 향수는 추리소설도 그렇다고 해서 잔인한 살인마가 나오는 이야기도 아니다. 어쩌면 부제가 말하는 것처럼 독자는 그루누이가 살인자임을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하여 이야기를 풀어간다. (살인은 소설 후반부에나 자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 소설은 추리소설에서 살인이 일어난 후의 긴박감 보다는 살인이 일어나기 전의 긴장감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일단 작가가 추구하는 바도 살인에는 있지 않은 것이로 보인다. 

 향수는 작게는 독일문학 크게는 독일이라는 나라의 문화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주는 데 크게 일조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독일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의 느낌은 강목 같은 강인함 내지는 돌 같은 차가움이다. 하지만 향수를 접하면서 그러한 단어는 이내 사라지고 쥐스킨트라는 단어가 맨 앞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의 소설은 섬세하지만 분명한 맺고 끊음이 있어보인다. (그래서 읽기도 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향수를 금방 읽었다는 것에 동의하리라.) 아직 현존하는 작가 쥐스킨트. 앞으로 그의 작품이 기대되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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