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 두 편

 

 

반딧불 하나가 내 소매위로 기어 오른다, 그래, 나는 풀잎이다. - 이싸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 순간인 것을 모르다니 -바쇼

<마음대로 詩 해독解讀> 간 밤, 세상에서 가장 짧다는 ​시(하이쿠)를 읽었다. 아마 시인은 봇물처럼 쏟아지는 감정을 하이쿠 라는 용기에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게 담느라 수도 없이 언어를 갈무리 했으리라.

스탠드 불빛아래서 읽는 시는 나도 모르게 여백에 갇힌다.반딧불이가 팔로 기어오르는 모양을 상상하고 내가 풀잎이 되는 순간을 떠올리면 이슥한 밤기운이 감도는 듯 하다.

 시는 행간을 읽되 그 사이의 고요까지 읽어야 제 맛이 난다는 어느 시인의 말이 어둠속 반딧불이 빛같다.​ 언어의 쓸데없는 낭비를 줄이고 최대한의 의미를 담아낸 시인처럼 순간을 영원처럼 살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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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축한 땅을 뚫고 나온 버섯이다.
이름은 모르겠다.
나무들 새로 비치는 햇살때문인지 흰 빛깔이 눈부시다.
자제발광하는 것 같다.

잔개미들 이 버섯에 꼬여있다.
먹잇감을 탐색하는 중일까
위 아래로 흩어져 기어다닌다.
 

 

 


바로 그 옆에선 썩어가는 버섯도 있다.
핀 지 한참 됐나보다.
갓 가장자리가 위로 치켜져 있다.
흰 털모자를 뒤집어 쓰고 있다

버섯이지만 죽어가는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어떤 건 사색이 되어 새까맣고
또 어느건 뜨건 물에 넣었다 빼놓는 것처럼 풀어져 있다.

사람사는 세상이 요지경속이라는데
숲 속도 마찬가지다
 

 

 

 
계단 따라 내려오면서 난간대를 잡다 깜짝 놀랐다.
처음엔 벌집인줄 알았는데 뱀허물이다.
거기에 곤충들이 꼬였다.

바로 머리 위 나뭇가지에는 30cm는 족히 되는 허물에 파리 꼬이듯 붙어있다.
 

 

 

 
또 한 구석,
거미는 살기 위해 밤새 줄을 쳤을테고
잠자리도  살기 위해 가다가
거미줄에 걸렸다.

벗어나려고 몸부림 친 걸까.
거미줄이 그쪽만 성글다.
 
 

 

 

 
 
바로 그 아래 걸려든 곤충은
아직 숨이 붙어 있다.
벗어나려고 그러는지 뒷다리늘 모아 비비적댄다
뭘 잘못한 걸까. 그 모양이  한 번 봐 달라고
두 손을 싹싹 비는 것 같다.

저것들은 죽어가고
거미는 어딘가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겠지.
저것들 덕분에  또 하루를 살 것이고
또 어딘가에다 부치런히 줄을 치겠지.
 

 

 

 어제 오후에 내린 비로 숲은 젖어있고 나무들은 싱그럽다.

 

 



숲길에 세워진 길 안내판이다.
초행길인 사람들한테는
세 갈래 길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길 도우미다.

 

 

 

 



한치 앞도 모르는 우리의 삶. 싱겁고 어리석은 줄 알지만
저 안내판처럼 고민할 필요없이 나아갈 길을 알려준다면
아까 잠자리나 곤충처럼 시험에 들지 않고 지름길로 접어들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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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해야 할 일을 깜빡깜빡한다.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고

가스불, 현관문에 집착하는 횟수가 빈번하다.

그럴때마다 혹시? 하고 당혹스러워지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건망증이라고 한다.

 만에 하나 이게 건망증을 넘어 희귀성 알츠 하이머'라는 진단을 받는다면?​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 대학에서 유능한 언어학 교수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앨리스에게 이상징후가 나타난다.

 

강단에서 강의도중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조깅도중 갑자기 기계가 작동을 멈춰버린듯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 버린다.

 

원에서 내린 진단은 '희귀성 알츠 하이머'라는 병이다.

그것도 자식들에게 유전된다는 의사의 말에 그녀는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나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그녀.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아야 하는 그녀의 표정에 숨이 멎는 듯했다.

사랑하는 아이들, 평생을 함께 해온 다정한 남편 존, 그동안 열심히 일궈온 자신의 일과 삶, 앞에서

 

그녀는 말한다. "기억은 사라져도 나는 여전히 살아갑니다."

기억은 점점 흐려지지만 가족들과 함께 꿋꿋하게 자신을 지켜 나가는 앨리스는

아이들의 이름도 점점 집안의 동선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을 절망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 마저 머릿속의 지우개가 다 지워버리는 일은 비극이다.

살아가면서 기억은 때로는 살아갈 용기를 주고 힘들 때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뇌가 죽어가고 나를 '나'이게 해주는 기억들이 하나 둘 지워진다는 건

암흑을 넘어선 공포가 아닐까.

 

"지금이 내가 나일 수있는 마지막 시간일 거야."

 

고통스러움을 견디며 그저 애쓰고 있을뿐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여전히 앨리스였다.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영화속 '앨리스' 상황을 나와 동일시했다. 공교롭게도 쉰이라는 나이가 같고 제대로 늙어보지도 못한 나이때문이었을까. 삶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기에 삶인 것 같다.

 

이 영화를 본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기억 속에서 줄리안 무어가 아닌 앨리스가 여진히 남아 있는  무서운 병을 앓고 있는 그녀가 안간힘을 버티며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루게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과 '희귀성 알츠 하이머'에 걸린 주인공이 느끼는 고통과 두려움을 이해해 이 영화를 완성시킨 리처드 글랫저 감독의 열정에 숙연해진다. 줄리안 무어의 열연때문일까 '기억'과 '기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건강하며 아무렇지 않게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게 참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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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깻잎을 묶으며

 

             유홍준 시인

 

추석날 오후, 어머니의 밭에서

동생네 식구들이랑 깻잎을 딴다

이것이 돈이라면 좋겠제 아우야 다발

또 다시 시퍼런 깻잎 묶으며 쓴 웃음 날려 보낸다

오늘은 철없는 어린것들이 밭고랑을 뛰어다니며

들깨 가지를 분질러도 야단치지 않으리라

가난에 찌들어 한 숨 깨나 짓던 아내도

바구니 가득 차 오르는 깻이파리처럼 부풀고

무슨 할 말 그리 많은지

맞다맞어, 소쿠리처럼 찌그러진 입술로

아랫고랑 동서를 향해 거푸거푸 웃음을 날린다

말 안해도 뻔한 너희네 생활,

저금통같은 항아리에 이 깻잎을 담가

겨울이 오면 아우야

흰쌀밥에 시퍼펀 지폐를 척척 얹어 먹자 우리

들깨 냄새 짙은 어머니의 밭 위엔 흰구름이 몇 덩이 머물다 가는 추석날

동생네 식구들이랑 어울려 한나절 푸른 지폐를 따고

돈다발을 묶는, 이 얼마 만의 기쁨

시집<2004 좋은시>.206쪽의 詩

<마음대로 詩 해독解讀> ​신은 세상을 다 돌아볼 수 없어 집집마다 어머니를 보냈다는 말이 있다. 이 시를 보면 어머니가 계시기때문에 고향도 존재한다. 어머니가 가꾼 들깨밭에 형제들이 모여 깻잎을 따는 풍경이 동화같다. 깻잎을 켜켜이 바구니에 따 담으며 돈이었으면 좋겠다는 행간에서 가난이 읽혀 짠하다.

그러면서도 평화로이 입꼬리가 올라간다. 어머니의 들깨밭에서 어린것들이 뛰어다니다 들깨 가지를 분질러도 야단치지 않고 오랜만에 환하게 웃는 아내를 보는 화자의 마음은 어머니의 영토안에 들어와 있는 편안함이 엿보인다.

들여볼수록 애잔해지는 풍경은 마치 어머니가 차려놓은 밥상 앞에서 둘레둘레 앉은 자식들이 밥을 먹는 것 같다.​ 앞으로 이런 풍경을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어머니가 늙어 가고 땅도 묵정밭이 돼가는 더 이상 차려낼 수 없는 따끈한 밥상앞에 도란도란 모일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일까. 이 시는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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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 b판시선 5
하종오 지음 / 비(도서출판b)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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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것은 시밖에 없다고 말 할 수 있기를 바랐던 저 청년 시절부터 내가 이웃들보다 더 가진 것이 있다면 시뿐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지금까지 나는 줄곧 시만 써 왔다. 이 시들을 그 모든 시의 대상들에게 바친다."- 시인의 말 

리얼리즘 시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시대에 시인으로 40년동안 오롯이 ​삶의 구석구석을 찾아내어 리얼리즘 시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어온 시인이 있다. 28 번째 시집<초저녁> (도서출판b.2014)을 펴낸 하종오 시인이다. 시집의 제목에서 느껴지듯 생의 '초저녁'에 접어든 시인의 시세계는 따듯한 시선과 사유로 삶의 이모저모를 돌아보게 하는 시편들로 가득하다.

시인이 서울의 변두리 골목에서 강화도로 거쳐를 옮긴 후 그곳의 들녁을 거닐면서 쓴 시다. 이번 시편들은 진정한 리얼리즘 시의 전형을 보여줬다 할 수 있다.​

시집은 총 5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초가을 초저녁', 초겨울 초저녁','초봄 초저녁'등 과 같은 연작​에 가족과 풍경을 담은 서정이 남다르다. 2부는 시인의 시쓰기와 시의 역할에 대한 반성을, 3부는 민족과 국가를 뛰어넘는 인간의 문제, 4부는 인간관계의 삶의 문제, 5부는 삶의 애틋함을 산문시에 담아 놓았다.

 

 

"사람에게 온 초여름 저녁은/ 한참동안 눈시울에 머물면서/ 산과 나무를 바라보다가/ 잠자리에 드는 사람과 함께/ 밤 깊도록 뒤척이라는 걸 안다/ 그러한 초여름 초저녁에는/ 산이나 나무나 사람이/ 서로 더 친하고 싶은 상대를 정하고 싶어도/ 산과 나무와 사람이/ 서로 골고루 친하고 싶어도/ 아무 관계가 성사되지 않아 편안하다."(초여름 초저녁)부분

40년 시력에서 비롯된 평안은 이런 모습일까. "서로 골고루 친하고 싶어도 관계가 성사되지 않아 편안하다"에서처럼 무언가를 애써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고 좋아 보인다. 홍승진 신예평론가에 의하면 이번 시집은 연민이나 동정쪽이 아니라 비정함"쪽이라고 했다. 인간의 삶을 둘러싼 문제들을 비정하게 바라볼 때 삶을 가짜로 꾸미지않고 사실적으로 인식할수있다고 말했다.

"시의 다작도 자본주의적/ 다작하는 나는 자본주의자​/ 자본주의적 시를/ 자본주의화 해 버리는 나의 행위를/ 열정이라는 말로 설명해 보려 하지만/ 시인이기를 포기하는 욕망일 것이다."(반성)부분

시인은 시에서 자신의 시에 대한 반성이라면서 한국 시단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도 잊지 않는다.

"시인들이 거대 출판사에 시집을 내려 하고 거대 출판사는 다 자본화된 출판사다. 비자본주의인 시인이 시집은 자본주의 회사에 내려고 하는 그점부터 반성해야 한다" 

올해로 등단 39년째를 맞은 시인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에 말을 아껴 시를 쓴다. 그것이 다작(多作)의 비법이며 "내가 가진 건 시(詩)뿐​"이라 말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싶다.

기사올린 곳:​http://www.book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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