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해야 할 일을 깜빡깜빡한다.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고

가스불, 현관문에 집착하는 횟수가 빈번하다.

그럴때마다 혹시? 하고 당혹스러워지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건망증이라고 한다.

 만에 하나 이게 건망증을 넘어 희귀성 알츠 하이머'라는 진단을 받는다면?​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 대학에서 유능한 언어학 교수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앨리스에게 이상징후가 나타난다.

 

강단에서 강의도중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조깅도중 갑자기 기계가 작동을 멈춰버린듯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 버린다.

 

원에서 내린 진단은 '희귀성 알츠 하이머'라는 병이다.

그것도 자식들에게 유전된다는 의사의 말에 그녀는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나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그녀.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아야 하는 그녀의 표정에 숨이 멎는 듯했다.

사랑하는 아이들, 평생을 함께 해온 다정한 남편 존, 그동안 열심히 일궈온 자신의 일과 삶, 앞에서

 

그녀는 말한다. "기억은 사라져도 나는 여전히 살아갑니다."

기억은 점점 흐려지지만 가족들과 함께 꿋꿋하게 자신을 지켜 나가는 앨리스는

아이들의 이름도 점점 집안의 동선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을 절망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 마저 머릿속의 지우개가 다 지워버리는 일은 비극이다.

살아가면서 기억은 때로는 살아갈 용기를 주고 힘들 때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뇌가 죽어가고 나를 '나'이게 해주는 기억들이 하나 둘 지워진다는 건

암흑을 넘어선 공포가 아닐까.

 

"지금이 내가 나일 수있는 마지막 시간일 거야."

 

고통스러움을 견디며 그저 애쓰고 있을뿐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여전히 앨리스였다.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영화속 '앨리스' 상황을 나와 동일시했다. 공교롭게도 쉰이라는 나이가 같고 제대로 늙어보지도 못한 나이때문이었을까. 삶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기에 삶인 것 같다.

 

이 영화를 본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기억 속에서 줄리안 무어가 아닌 앨리스가 여진히 남아 있는  무서운 병을 앓고 있는 그녀가 안간힘을 버티며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루게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과 '희귀성 알츠 하이머'에 걸린 주인공이 느끼는 고통과 두려움을 이해해 이 영화를 완성시킨 리처드 글랫저 감독의 열정에 숙연해진다. 줄리안 무어의 열연때문일까 '기억'과 '기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건강하며 아무렇지 않게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게 참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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