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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 - 고종석의 언어학 강의
고종석 지음 / 로고폴리스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언어가 우리 삶이나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우리의 지적 의무다."
고종석 작가의 신간 <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 (2015. 로고 폴리스)에 있는 내용이다. 책은 지난 3월 한 달간 대학로 벙커에서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된 언어학 강의‘말하는 인간 Homo loquens'의 녹취를 풀어 책에 담았다. 강의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쉽고 친근한 구어체로 실려 있다. 작가이자 신문기자의 이력은 언어와 각별했던 정분을 혼자만 간직하거나 종그리지 않고 매만지고 뒤틀어 언어학자 특유의 사유와 성찰을 풀어 놓았다.
책은 소쉬르에서 촘스키로 이어지는 현대 언어학의 흐름 속 언어학적 사고와 삶, 언어와 세계, 섞임과 스밈','언어와 역사','번역이라는 모험' 네 개의 장으로 분류하여 언어 철학, 언어사회학, 역사언어학, 번역학에 대하여 인류 언어를 탐색한다. 그중 언어와 언어와의 밀접한 관계, 번역을 통해 감염된 문화를 얘기하는 장이 인상 깊다.
"한국어는 약 2천 년 가까이 중국의 간섭을 받았는데 19세기 말을 계기로 완전히 역전이 됩니다. 역전이라는 게 한국어가 중국어에 영향을 주었다는 게 아니라 이제 중국 대신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어가 한국어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107쪽)
저자는'섞임과 스밈'이라는 장에서 영어나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각 언어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언어 간의 접촉과 간섭의 사례를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우리말에 주변국의 언어가 미친 영향에 주목하면서 단일 언어라 믿고 있던 생각을 여지없이 흔들어 놓는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건 이거예요. 우리는 흔히 영어, 한국어, 프랑스어, 독일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존재하는 건 영어들, 한국어들, 프랑스어들, 독일어들이라는 겁니다. 존재하는 건 한국어들이에요. 한국어라는 단수는 없어요. 단수의 한국어는 없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몇 개의 한국어가 있을까요? 그건 아무도 모르죠? 왜 아무도 모르냐 하면 언어의 변화라는 건 아주 급격히, 단절적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거든요. 조금씩 조금씩 일어나죠."(138쪽)
저자는 이장에서 언어와 역사를 다룬다. 여러 언어가 시간과 공간을 거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 변화한 과정을 설명하며 언어 연합설, 물결설을 소개한다. 낯설지만 듣다 보면 설득력이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삶 속 언어와 문화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장 정확하고 아름다운 한국어를 사용하는 언어학자가 절필 후 두 차례의 언어 강의를 책에 실은 건 마지막 이 말을 들려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모든 언어와 문화가 감염되어 있고 우리 존재 자체가 감염되어 있음을 기꺼이 인정한다면, 속죄양 만들거나 호모 사케르 만들기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스스로를 순수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어떤 불순한 것을 찾아서 뽑아내버릴 거예요. 속죄양을 찾을 거고, 호모 사케르를 찾을 거예요. 그러나 우리 스스로 모두가 불순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모두가 감염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세상에 대해 조금은 더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그래서 정말 위험한 것은 불순한 게 아니라 순수한 것이다."(225쪽)
*이글은 책을 제공받아 읽고 썼다.
"언어가 우리 삶이나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우리의 지적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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