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부근
정일근 시인
여름내 열어놓은 뒤란 창문을 닫으려니
열린 창틀에 거미 한 마리 집을 지어 살고 있었습니다
거미에게는 옥수수가 익어가고 호박잎이 무성한
뒤뜰 곁이 명당이었나 봅니다
아직 한낮의 햇살에 더위가 묻어나는 요즘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일이나, 새집을 마련하는 일도
사람이나 거미나 힘든 때라는 생각이 들어
거미를 쫓아내고 창문을 닫으려다 그냥 돌아서고 맙니다
가을 바람이 불어오면 여름을 보낸 사람의 마음이 깊어지듯
미물에게도 가을은 예감으로 찾아와
저도 맞는 거처를 찾아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시집<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81쪽의 詩
<시시콜콜> 꽤 오래전에 산 시집인데 이맘때가 되면 꺼내 본다. 시편마다 시인의 맑은 서정이 가을날과도 닮아 있다. 시도 계절을 타는지 모르겠다. 우연히 본 거미집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는 시인을 보고 거기에 마음이 붙잡힌다.
거미를 쫓아내면 다른 곳으로 이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못본 채 돌아서는 구절이 따뜻하면서도 고맙다. 어쩌면 시인도 보따리를 싸 여기저기 거처를 찾아 헤매봤거나 지금도 그리 살고 있지 않을까싶어 거미도 시인도 짠하다.
측은지심이란 머리로 계산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마음이 그리로 가는 것일까. 가을이 깊어가는 아침에 시인과 거미를 걱정하느라 행간에 머물러 있다.
"가을 바람이 불어오면 여름을 보낸 사람의 마음이 깊어지듯
미물에게도 가을은 예감으로 찾아와
저도 맞는 거처를 찾아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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