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읽히는 에세이다. 작가는 심혈을 기울여서 썼을테지만 덕분에 호흡이 편하다. 공지영 작가의 따끈따끈한 책<딸에게 주는 레시피>(한겨레출판.2015)이다. 전 책<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가 청소년인 딸에게 삶을 들려주는 얘기라면 이 책은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딸에게 27가지 요리속에 들려주고픈 생의 이야기를 담았다.

 

살아가면서 그날 그날 느끼는 감정과 그에 어울리는 레시피는 작가의 말대로라면 10~15분이면 가능하지만 음식엔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먹는 것, 살아가는 것이 따로 분리될 수 없으니 엄마가 딸에게 하는 이야기에 지혜와 삶의 깊은 맛이 조화를 이룬다.

 

"위녕, 산다는 것도 그래. 걷는 것과 같아. 그냥 걸으면 돼.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살면 돼. 그 순간을 가장 충실하게, 그 순간을 가장 의미 있게, 그 순간을 가장 어여쁘고 가장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만들면 돼. 평생을 의미 있고 어여쁘고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살 수는 없어. 그러나 10분은 의미 있고 어여쁘고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살 수 있다. 그래, 그 10분들이 바로 히말라야 산을 오르는 첫 번째 걸음이고 그것이 수억 개 모인 게 인생이야. 그러니 그냥 그렇게 지금을 살면 되는 것."(27쪽) 

 

"위녕, 엄마는 한때 이런 사람이었단다. 내가 싫었단다. 내 눈이 내 키가 내 발이 내 목소리가. 그때 세상은 모두 나를 싫어했어. 나는 이제야 확신할 수 있단다. 그런데 이제 엄마는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 어리석고 늘 덜렁거리며 변덕도 심한 나를 잘 견디면서 사랑해준단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국물을 내며 즐거워하는 휴일을 보낼 리가 없겠지. 나는 이제 안단다. 내가 내 눈을 내 키를 내 발을 내 목소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세상은 모두 나를 사랑한단다. 당연한 것은 없다. 내가 이 간단한 시금치된장국을 끓이는 법을 모르고 살았듯이 끓이기 전에는 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아무리 쉽고 아무리 간단해도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기 전에는 없는 것이지. 이제는 사랑하는 내 자신에게 좋은 음식을 주려고 해. 싸구려 재료들을 먼지가 앉도록 오래 보관하다가 합성 조미료에 비벼 낸 음식은 이제 먹지 않아. 번 "(108쪽~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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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그의 뼈를 비운다. 대나무처럼 뼈 속을 비운다. 그리고 몸속 공기주머니에서 뼈 속으로 끊임없이 바람을 불어 넣는다. 새의 조상은 파충류다. 뱀은 하늘을 날려고 오천만 년이 넘도록 '날개짓'을 꿈꿨다. 저주받은 몸통에 깃털을 틔우기 위하여 수도없이 허공에 뛰어 오르다 뒹굴었다. 온몸은 시퍼렇게 멍들었고 밤마다 피울음을 울었다. 그리고 마침내 쥐라기 시대, 익룡의 몸이 두둥실 하늘로 떠올랐다.

 

새의 날개는 앞발이다. 파충류의 앞발이 피눈물 나는 날개짓 끝에 깃털로 변한 한것이다 하지만 아직 새들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보다 높이 보다 멀리 날기 위해 몸부림친다. 높이 나는 새는 멀리본다. 날개짓을 많이 하는 새는 그만큼 높이 ,멀리 날 수 있다. '상상속의 새'붕새는 한 번 날개짓에 구만리를 난다. 벌새는 일초에 아흔번이나 날개짓을 해도 몇 십미터도 못간다."(196쪽)

김화성 기자의 <책에 취해 놀다>. ​중에서

연꽃구경을 하다 새 한마리를 봤다. 도심속 인간이 만든 연못에 와 있다. 신기해하는 내게 카메라 든 노인이 해오라기라고 알려준다. 어릴적 먼빛으로 보았던 고고한 녀석을 바로 눈앞에서 본다는게 신통방통하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해오라기는 도심속 비둘기처럼 벌써 인간을 적응한 걸까.

카메라를 들이대고 조무래기들이 놀라 소리지르고 봐도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다. 연못의 수초속에 긴 부리를넣었다 빼는 행위가 카메라를 든 노인같다. 생의 노련함이랄까. 긴 목을 쭈빗거리며 걷는 걸음걸이 마저 여유롭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앞발인 날개는 옆구리에 고이 접어주고 뒷발로 중심을 잡고 서 있다. 어쩌면 저 녀석은 지금 먹이를 핑계삼아 잠시 쉬고 있는 중이 아닐까. 붕새처럼 구만리장천을 날아오지 않았어도 여기까지 날아서 오느라 수도없는 날개짓에 날갯쭉지에 멍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새들은 허공에 자신을 내던질 줄 안다. 하지만 우리 삶은 어쩌면 정상을 오르는데 있지 않고 저마다 처한 위치에서 그냥 있는 그대로 보며 감사하고 감동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오는 날 문득 걷고 싶어 연못에 왔다가 뜻하지 않게 연꽃을 보고 해오라기를 보며 예쁘다하고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는 짠한 마음이 정상에서 얻는 깨달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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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는 위치는 14층 아파트 창문 방충망이다.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 초입이다.

방충망으로 바라보는 저 아래 세상은 온통 아파트다.

 

 건물들의 눈은 남향, 동향, 서향으로 상하좌우로 배열돼 있다.

얼핏 보면 벌집 같기도 하고 닭장 같다고 할까. 인간들은

저 한 칸의 공간을 갖기 위해 덜 먹고쓰고 긴 세월 동안 허리띠 졸라매고 산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저 공간의 주인이 되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일정한 금액을 맡기고  세 들어 산다.

사는 동안엔 듣기 좋은 말로 내 집이다.

참 인간들은 사는 게 웃기기도 하지.

천지사방, 사시사철 내리쬐는 햇빛도 내 것 네 것이라며 목소리 키우며 싸운다.

칸칸마다 비치는 햇살의 몫이 다르고 그것을 누릴 권리를 일조건이라고 한다.

더러는 그 일조권 때문에 법적 소송을 하고, 또 누구는 햇살 부족 때문에 우울증이 재발한다.

인간들은 언제부터 저렇게 마음속에 각을 세우고 살아가게  됐을까.

 

현관문만 단속하면 사생활이 보장된다는 아파트. 내가 보기엔 산 자들의 무덤이다.

한 공간에 사는 가족끼리도 방마다 자리 잡고 들앉으면 아예 마음의 문까지 닫아 건다.

 그리고는 사각의 벽과 벽 사이에 숨는다. 아파트엔 크고 작은 섬과 섬이 존재한다.

 

지난겨울 함박눈이 내려 온 세상이 뒤덮었을 때 모처럼 저것들도 눈 속에 숨어 순한 척 했지.

사람들도 잠시 마음속 까칠한 각을 버리고 순한 마음으로 돌아섰을 거라고 여겼지

 

눈 온 날은 아파트도 사람들도 조금은 두루뭉술해졌을 거라고

어둡고 캄캄한 땅속에서 그리 생각했지. 내년 여름이면  자연스레 알게 될 일이지만,..

 

*글쓰기 연습 공간입니다. 끄적끄적 메모로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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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겉은 나무요 속은 흑연이다. 흑연은 필요에 의해서 속내를 드러낸다.  흑심. 전처럼 향기는 그리 진하지 않다.
책이나 노트곁에 늘 붙어있다.  바늘과 실같고 먹과 벼루같다. 연필은 노트에 메모하거나 책 읽다 먀음에 드는 구절을 만나면 끼어 들게한다.

지금은 손전화가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 안에 내장된 카메라로 찍거나 메모장을 이용해 순간순간 생각들을 저장하곤한다. 작년까지만해도 내 주머니엔 손바닥만한 수첩과 몽당연필이 항시 들어 있었다.

길을 걷다 떠오른 생각이나 누군가의 말을 흘리고 싶지 않을 때 그즉시 적어둔다. 때론 이 짓이 번거롭고 구태의연하다 싶다가도 돌아서면 까무룩히 잊어버리는 내 기억의 한계를 알기에 내  스스르 선택한 비방책이다.

나중 삐뚤빼뚤 써 논 글자들을 보면 은근 재미있다. 이것을 메모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적어두지 않았다면 아예 기억조차 못할 에피소드가 아련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보면 연필은 메모리 칩같기도 하다.

단어와 생각이 어우러져 짧은 시 한편이 되기도 하고 호흡은 짧지만 한 편의 글로 완성될 여는 글인셈이다. 지금도 연필은 내 곁에 바짝 붙어 있다. 부르면 언제든지 온다.
책 속 한바닥 글을 붙잡아 사각상자에 가두기할 때도, 맘에 든 문장을 붙잡아 둘 때도 연필은 동거인이며 또한 나의 절친으로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한다. 세상에 이만한 일당백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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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 - 소중한 것은 한 글자로 되어 있다
정철 지음, 어진선 그림 / 허밍버드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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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와 연필을 좋아하고 글은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쓰는 것이라고 말하며 빨리 가는 사람을 보면 왠지 쉬어 가라고 옷자락을 잡을 것 같은 사람이 있다.

 

<한 글자>(허밍 버드. 2014)는 카피라이터 정철이 262 가지 한 글자에 소중한 사람살이를 담아 보여준다. 한 글자를 추려놓고 오래 들여다보며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게 맞춤하게 담아낸 글 바구니엔  세상살이의 묘안이 가득하다.

 

글자 하나에 생각과 마음을 담은 차림표를 보면 놀랄 것이다. 세상에 우리가 쓰고 있는 한 글자가 이렇게나 많았나 하고 말이다.

 

뒤 옷 산 꽃 연 씨 봄 첫 팔 답 것 A  뒤 옷 산 꽃 씨 봄 첫 팔 답 것 돈 적 일 신 뼈 똥 공 방 쿨 잠 벼 삶 겁 헛 꿈 반 낮 곳 탑 늘 밭 띠 늪 덫 생 약 컵 과 흠 하 귀 깃 효 다 뜻,....

 

씨앗 같은 글자 하나하나마다 카피라이터인 저자의 사유와 통찰력이 빛을 발한다.

 

"철- 아빠를 아버지라고 부를대부터 철이 드는 게 아니다. 아버지를 다시 아빠라고 부르고 싶은 순간부터 철이 든다. 숲- 숲을 보려면 숲을 보지 마세요. 숲을 보지 말고  나무 하나하나 의 사연을 더한 것이 숲입니다. 사람을 알고 싶으면  사람들을 만나지 마세요. 사람들을 만나지 말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세요."

 

"톱- 톱은 단칼에 나무를 자르지 않는다. 수십 개의 톱니로 수십 번 왕복하여 나무 하나를 겨우 토막낸다. 그래야 나무의 자존심이 상처받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의 자존심을 잘라야 한다면 칼이 아니라 톱이 되어야 한다."

 

책장마다 광고 카피 같은 구절은 한 호흡을 쉬게 한다. 그렇지 않고는 말의 결을 어루만질 수 없다. 눈코 뜰 새 없이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으니 이 즈음에서 쉬어가라고 하는 것 같다. 저자의 호흡 따라 가만가만 따라 하다 보면 그 안에 소중한 것들이 가득하다. 그동안 우리가 소중한 것을 얼마나 놓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한눈 팔고 해찰하면 큰 일 나는 걸로 알고 살아왔고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가르침 아래 앞사람의 뒤꼭지만 보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세상은 더러 삐딱한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다르게 봐야 새로운 길이 보인다.

 

 항- 어항에 갇힌 물고기가 억울할까요. 덩달아 갇힌 물이 억울할까요? 수요일 하루쯤은 수항이라 불러 줍시다. 회- 우리는 생선회를 먼저 먹은 후에 매운탕을 먹는다. 날 것을 먼저 먹고 익힌 것을 먹는다. 지식도 그렇게 먹어야 한다. 익힌 지식, 삶은 지식, 끓인 지식보다 날 것을 먼저 먹어야 한다.

 

 날 지식은 도서관이나 박물관에는 없다. 할머니의 느릿한 말속에, 계절의 바쁜 변화 속에, 개미의 복잡한 동선 속에 살아 있다. 우리는 이 말 지식을 지혜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세상 모든 지식은 지혜를 먼저 먹은 후에 먹어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다."(209쪽)

 

 저자의 말대로라면 한 글자로 된 말의 의미만 잘 살펴도 삶에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가지나 가르침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특히 어렵지 않고 짧고 정갈해서 공부에 지친 아이들에게 권할만 하다 뇌도 쉬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생각과 사유가 정도를 맛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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