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와 연필을 좋아하고 글은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쓰는 것이라고 말하며 빨리 가는 사람을 보면 왠지 쉬어 가라고 옷자락을 잡을 것 같은 사람이 있다.
<한 글자>(허밍 버드.
2014)는 카피라이터 정철이
262 가지 한 글자에 소중한 사람살이를 담아 보여준다. 한 글자를 추려놓고 오래 들여다보며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게 맞춤하게 담아낸
글
바구니엔 세상살이의 묘안이
가득하다.
글자 하나에 생각과 마음을 담은 차림표를 보면 놀랄
것이다. 세상에 우리가 쓰고 있는 한 글자가 이렇게나 많았나 하고 말이다.
뒤 옷 산 꽃 연 씨 봄 첫 팔 답 것 A 뒤 옷
산 꽃 씨 봄 첫 팔 답 것 돈 적 일 신 뼈 똥 공 방 쿨 잠 벼 삶 겁 헛 꿈 반 낮 곳 탑 늘 밭 띠 늪 덫 생 약 숲 철 컵 과 흠 하 귀 깃 효 다 뜻,....
씨앗 같은 글자 하나하나마다 카피라이터인 저자의
사유와 통찰력이 빛을 발한다.
"철- 아빠를 아버지라고 부를대부터 철이 드는 게 아니다. 아버지를 다시 아빠라고
부르고 싶은 순간부터 철이 든다. 숲- 숲을 보려면 숲을 보지 마세요. 숲을 보지 말고 나무 하나하나 의 사연을 더한 것이 숲입니다. 사람을 알고 싶으면 사람들을 만나지
마세요. 사람들을 만나지
말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세요."
"톱- 톱은 단칼에 나무를 자르지 않는다. 수십 개의
톱니로 수십 번 왕복하여 나무 하나를 겨우 토막낸다. 그래야 나무의 자존심이 상처받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의 자존심을 잘라야 한다면 칼이
아니라 톱이 되어야 한다."
책장마다 광고 카피 같은 구절은 한 호흡을 쉬게 한다. 그렇지 않고는 말의
결을 어루만질 수 없다. 눈코 뜰 새 없이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으니 이 즈음에서 쉬어가라고
하는 것
같다. 저자의
호흡
따라 가만가만
따라 하다
보면 그 안에 소중한 것들이
가득하다. 그동안 우리가 소중한 것을 얼마나 놓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한눈 팔고 해찰하면 큰 일 나는 걸로 알고 살아왔고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가르침 아래 앞사람의
뒤꼭지만 보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세상은 더러 삐딱한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다르게 봐야 새로운 길이 보인다.
항- 어항에 갇힌 물고기가 억울할까요. 덩달아 갇힌 물이 억울할까요? 수요일 하루쯤은
수항이라 불러 줍시다. 회- 우리는 생선회를 먼저 먹은 후에 매운탕을 먹는다. 날 것을 먼저 먹고
익힌 것을 먹는다. 지식도 그렇게 먹어야 한다. 익힌 지식, 삶은 지식, 끓인 지식보다 날 것을 먼저 먹어야 한다.
날 지식은 도서관이나 박물관에는 없다. 할머니의
느릿한 말속에,
계절의 바쁜 변화
속에,
개미의 복잡한 동선 속에 살아
있다. 우리는 이
말 지식을 지혜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세상
모든 지식은 지혜를 먼저 먹은
후에 먹어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다."(209쪽)
저자의 말대로라면 한 글자로 된 말의 의미만 잘 살펴도 삶에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가지나 가르침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특히
어렵지 않고 짧고 정갈해서 공부에 지친 아이들에게 권할만 하다 뇌도 쉬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생각과 사유가 정도를 맛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