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필. 겉은 나무요 속은 흑연이다. 흑연은 필요에 의해서 속내를 드러낸다. 흑심. 전처럼 향기는 그리 진하지 않다.
책이나 노트곁에 늘 붙어있다. 바늘과 실같고 먹과 벼루같다. 연필은 노트에 메모하거나 책 읽다 먀음에 드는 구절을 만나면 끼어 들게한다.
지금은 손전화가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 안에 내장된 카메라로 찍거나 메모장을 이용해 순간순간 생각들을 저장하곤한다. 작년까지만해도 내 주머니엔 손바닥만한 수첩과 몽당연필이 항시 들어 있었다.
길을 걷다 떠오른 생각이나 누군가의 말을 흘리고 싶지 않을 때 그즉시 적어둔다. 때론 이 짓이 번거롭고 구태의연하다 싶다가도 돌아서면 까무룩히 잊어버리는 내 기억의 한계를 알기에 내 스스르 선택한 비방책이다.
나중 삐뚤빼뚤 써 논 글자들을 보면 은근 재미있다. 이것을 메모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적어두지 않았다면 아예 기억조차 못할 에피소드가 아련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보면 연필은 메모리 칩같기도 하다.
단어와 생각이 어우러져 짧은 시 한편이 되기도 하고 호흡은 짧지만 한 편의 글로 완성될 여는 글인셈이다. 지금도 연필은 내 곁에 바짝 붙어 있다. 부르면 언제든지 온다.
책 속 한바닥 글을 붙잡아 사각상자에 가두기할 때도, 맘에 든 문장을 붙잡아 둘 때도 연필은 동거인이며 또한 나의 절친으로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한다. 세상에 이만한 일당백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