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대산세계문학총서 41
야샤르 케말 지음, 오은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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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했습니다. 피가 튀기거나 엽기적 살인행각으로 잔인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이렇게 잔혹할 수 있는지, 집단적 광기는 사람을 얼마나 미쳐버리게 만드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야샤르 케말의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는 잔인한 소설입니다.

알라신의 작품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여인 에스메.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한 할릴이란 남자는 에스메에 대한 구애가 거절당한 뒤 어느 날 밤 그녀를 납치합니다.
할릴은 저항하던 에스메에게 마약을 먹여 겁탈한 후 정식 혼인신고를 하게 됩니다.
아들 하산이 태어나면서 점차 안정을 찾던 에스메의 일생은 연인이었던 압바스가 나타나면서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압바스는 연인을 납치한 할릴을 총으로 쏴죽이고 자신도 죽음을 맞습니다.
이제 에스메는 할릴의 친족들에게는 철천지 원수로, 동네 주민들에게 모든 재앙의 원인이며, 피의 보복을 받아야 ‘창녀’로 지목받게 됩니다.
그들이 알고 있고 원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
원통하게 죽은 할릴은 구렁이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돌고 있으니, 에스메를 죽여 복수함으로써 그 영혼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을 전체의 집단적 광기 속에 복수를 행할 적임자로 떠오른 이는 바로 아들 하산이었습니다.
하산은 마침내 아버지의 유품인 권총을 어머니 에스메에게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깁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원칙이 천명된 후,
중동 지방의 법적 원칙은 등가물로의 갚음, 생명에 대해서는 ‘피의 복수’였습니다.
문제는 그와 같은 피의 복수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인습이라고 해야 할 피의 복수의 주체는 언제나 남성이었습니다.
그리고 피의 복수를 통해 지켜내야 할 것은 가부장의 명예, 가문의 명예, 남성의 명예였습니다.
따라서 중동지역 여성들은 피의 복수라는 인습의 희생양일 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파생하는 여성으로서의 성적 차별의 이중 희생양이라 할 것입니다.

사실 모든 비극의 첫 번째 원인은 할릴이 에스메에게 최초에 가했던 납치와 강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할릴이 행한 남성적 폭력은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 대신, 오히려 자신의 신부를 얻은 용기있는 행동으로 치부됩니다.
에스메는 피해자였지만 그녀가 그리던 행복, 그녀가 바라던 사랑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에스메는 남편 할릴의 죽음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문과 마을공동체로부터 ‘남편을 죽음에 빠뜨린 여자’, ‘창녀’로 지목받아 ‘죽어 마땅한 여자’로서 피의 복수의 대상자가 됩니다.

더욱 잔인한 것은 할릴과 에스메의 아들 하산을 이 피의 복수의 집행자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원래 하산은 어머니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고 어머니를 지키고자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산에게 이렇게 충동질합니다.
“네 아버지는 원한을 풀지 못해 소복을 입은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돈다. 그 원한의 제공자는 네 어머니 에스메이다. 너는 할릴의 아들이니, 마땅히 할릴을 죽인 네 어머니 에스메를 죽여 원수를 갚고 아버지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직접 할릴의 혼백을 만났다는 둥, 할릴이 구렁이가 되는 것을 보았다는 둥 온갖 미신과 주술의 힘이 더해집니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도 곧이듣지 않을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세 사람만 합심해서 같은 거짓말을 하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믿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집단적 광기, 집단적 몰아세우기의 힘이 마침내 하산에게도 똑같은 광기를 가지게 하고, 어머니를 향해 복수의 총을 들게 하는 과정이 섬뜩하기만 합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독사’란 무엇이었을까요?
할릴의 친족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에스메는 죽여야 할 ‘독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으로 본다면 이와 같은 가부장적 차별구조와 남성 중심의 인습이야말로 죽여버려야 할 사회의 독사와 같은 존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산이 모든 참소를 이겨내고 어머니를 지켰더라면 그는 ‘독사’를 죽이고 생명을 얻은 셈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산은 독사에 굴복하였고, 어머니는 피해자로, 자신은 패륜자요 범죄자로 전락시켰습니다.

인습의 힘과 인습의 무서움이란 것, 집단적 광기의 무서움이란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혹시 우리 사회도 무지함과 무관심 속에서 독사를 한 마리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마침내 그 독사가 자라나 자기자신을 물어 죽음에 이르게 했을 때에야 ‘그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라는 한탄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작가에 대해서....
오르한 파묵 이후로 두 번째로 만난 터키 작가였는데, 파묵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파묵의 작품은 서구화 속에서 터키의 전통을 지키고 계승하고자 하는 노력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속 인물들도 터키의 대도시에 거주하는 지식인 또는 사회지도계층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구요.
그런데 야샤르 케말은 터키의 기층 민중들의 삶을 보다 가감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파묵과 차이가 났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서구화나 전통의 계승보다는 인습이 된 전통이 어떻게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지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의 회복과 인습의 극복. 하나의 대상에 대해 정반대 방향에서 접근하는 위대한 작가를 둔 터키는 이 두 명의 작가로 인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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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공장
이언 뱅크스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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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후보작품으로까지 올랐다고 하니 나름대로 인정받는 작가와 책이긴 하였으나,
아동학대, 성도착, 가학적 혐오의식, 동물학대, 살인, 방화...
하여튼 인간의 상식으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소재들이 버젓이 소재로 쓰인 책이다.
네이버를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의 감상평을 보니 역시나 불쾌하다거나 혐오스럽다거나 구역질이 난다거나 하는 평가가 많았다.
책이 출판된 영국에서도 ‘영문학사에 남을 걸작’이라는 찬사와 ‘쓰레기’라는 혹평을 동시에 받았으니, 영국 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들과 느끼는 것은 비슷했나 보다.

[말벌 공장]은 스코틀랜드 외딴 섬에 사는 프랭크와 그 가족의 이야기이다.
프랭크는 한 마디로 말하면 어린 사이코패스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일상생활이란 누군가 집과 섬을 침범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매일매일 섬을 순찰하고,
갈매기, 쥐, 토끼와 같은 작은 동물들의 머리를 잘라 내어 해안가 기둥에 걸어 놓는 따위의 일이다.
높이 매달린 머리들에 섬을 경비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부여하는 행동인 것이다.
프랭크는 이미 어린 나이에 3건의 살인을 교묘하게 저지른 전력을 가지고 있는데,
악마와 같은 살인의 대상자가 된 아이들이 자신의 친동생과 사촌들이다.

프랭크의 가족도 만만치 않은 엽기성과 잔혹성을 보인다.
아버지를 오토바이로 깔아 뭉개어 불구로 만든 채 달아나 버린 어머니.
개의 몸에 불을 붙이고, 동네 아이들에게 구더기를 먹이고 다니던 형 에릭.
뭔가 큰 비밀을 간직한 채, 집안 모든 물건의 크기와 용량에 집착하는 아버지.

프랭크의 엽기적인 행각과 오컬트적 주술은 그가 다락방에 만들어 둔 신전(神殿)인 ‘말벌 공장’에서 절정에 이른다.
큰 시계 원반 위에 12군데의 통로를 뚫어두고 잡아온 말벌을 그 위에 둔다.
말벌은 12개의 통로 중 하나를 선택하여 들어가게 되고 그 끝에서 정해진 운명을 맞는다.
불에 타 죽거나, 화학약품에 녹아 내리거나, 전기충격에 튀겨지거나, 거미를 만나 먹이가 되거나, 개미들을 만나 뜯어 먹히거나....
말벌은 제단 위의 희생제물이 되는 셈인데, 그리고 나서 프랭크는 제물이 된 말벌의 운명에 스스로를 교감시키면서 자신의 앞날을 점치는 것이다.

프랭크의 인생은 태어났을 때부터 그의 아머지에 의해서 왜곡되었다.
어떤 왜곡인지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반전이므로 여기서 밝힐 수는 없겠지만,
“정해진 운명과의 마찰”이 그의 사이코패스적 행태의 원인이라는 정도만 적어 놓는다.
(그런데 먼저 서평을 쓰신 분들이 여기저기 그 결말을 다 적어 놓으셨더란 사실... -_-;;;)

어쩌면 프랭크는 말벌 공장에 자기 자신을 투영해 놓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프랭크에게 잡혀서 말벌 공장의 원반 위에 내려졌을 때부터 이미 그 말벌은 죽을 운명이다.
다만 말벌이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죽음이냐는 것 뿐.
그나마 자기가 선택한 죽음이 어떤 것인지도 실제 죽음을 맞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태.
프랭크는 정해진 운명 속에서 정해진 선택만을 해야 할 말벌과 자신의 삶을 부지불식간에 일치시켜 온 것 같다.
절대 되돌아 갈 수 없는 말벌 공장의 죽음의 통로에 놓인 말벌처럼, 자신의 인생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학대와 도착으로 풀어 놓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희생제물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자로 전환시킴으로서 스스로의 만족을 얻는다.
프랭크가 구축해 놓은 ‘말벌 공장’은 그의 의지로 모든 것이 가능한 그의 왕국이며,
희생제물인 말벌에게 프랭크는 ‘신’과 같은 존재이다.
불운과 아픔과 희생으로 프랭크의 가슴속에 들어차 있던 울분은 생사여탈권을 가진 신과 같은 전제(專制)의 위치에 올라감으로서 비로소 보상받고자 한다.

한 마디로 [말벌 공장]은 자극적이고 익숙하지 않은 소설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정신병원을 탈출한 그의 형 에릭을 자기의 무릎 위에 눕게하여 편안히 잠들게 하는 데에서 다소간 안정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한 소년의 비뚤어진 성장기는 내내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불편함이 크면서도 사실 ‘재미’로 승부하는 책도 아니다.
동물들을 학대하는 장면이나 동생과 친척들을 살해하는 장면, 에릭이 왜 미쳐버렸는지를 알려주는 장면, 마지막의 반전은 읽는 속도는 높여 주었지만, ‘재미있다’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불편하다.

어떻게 보면 이런 내용이 추악한 인간본성의 진실에도 닿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 책을 무조건 평가절하하기도 어려울 듯 하다.
과연 인간 심리 깊은 곳에는 사디즘과 잔혹성, 약한 자들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본성이 자리잡고 있어서 누구든 사이코패스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까?


뱀꼬리
풍광이나 사건들에 대한 묘사, 심리적 불안정성을 표출시키는 서술만 본다면 이언 뱅크스가 무척 뛰어난 작가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이건 번역자의 역량과도 관계된 것이긴 하지만, 그의 다른 작품 [플레바스를 생각하라]를 보면 역시나 영어권에서 왜 그를 촉망받는 작가의 대열에 올려놓았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화끈한 논란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이 책, [말벌 공장]을 처녀작으로 발표했다니...
이 작가도 만만치 않은 사디즘을 가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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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1 - 이기원 장편소설
이기원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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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을 읽으면서 백구은(白救恩), 즉, 노먼 베쑨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대학 신입생 때 추천도서 목록에서 발견하여 읽은 [닥터 노먼 베쑨]은 ‘내 인생의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캐나다에서의 안정적인 의사생활을 마다하고 파시즘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했던 스페인 내전과 중국 혁명의 일선에 참전합니다.
그리고 헌신적으로 부상병을 치료하던 중 손가락 상처로 감염된 패혈증으로 사망합니다.
그의 나이 49세였습니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제게 잊혀지지 않는 것은 노먼 베쑨의 일생과 함께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인의협)를 이끌었던 김록호 선생님이 쓰신 서문입니다.

질병을 돌보되 사람을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작은의사(小醫)라 하고,
사람을 돌보되 사회를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보통의사(中醫)라 하며,
질병과 사람, 사회를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그 모두를 고치는 의사를 큰의사(大醫)라 한다.


이번에 [제중원]을 읽으면서 이 말이 다시 살아왔습니다.
비록 허구의 소설이요, 역사적 팩션이지만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는 점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주고자 합니다.

[제중원]의 주인공 황정(黃正)은 이전의 여러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캐릭터이며, 그의 성장기는 전형성을 가지고 전개됩니다.
그는 계급사회의 최하층, 백정이라는 태생적 차별을 응어리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마침내는 경쟁자들은 물론 적들까지도 탄복하게 만드는 실력과 인품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서만 머물렀다면 드라마 속의 <허준>이나 <대장금>과 같은 개인적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도 죽을 고비를 무수히 넘겼고,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습니다.
금전적 이익이나 개인의 명예보다 백성을 사랑하고, 환자를 치료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그야말로 헌신적인 의사상을 구현하였습니다.

하지만, 주인공 황정의 일생은 마지막이 달랐습니다.
이 점이 의사로서 그의 삶을 곰곰이 음미해 봐야 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황정은 해피엔딩으로 끝낼 수 있는 안락함을 포기하고 가시밭길을 선택합니다.
식민지배가 현실화되던 조국의 현실앞에 그는 의사로서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만주독립군에 참가하기 위하여 망명의 길에 오릅니다.
어쩌면 그는 고향 땅에 다시 못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만주 벌판 어딘가에서 일본군이나 마적단의 총에 희생당할 수도 있고, 위생상태가 좋지 못한 전선에서 어떤 질병에 쓰러질 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는 좁은 길, 고난의 길을 선택합니다.

이제 우리는 독립된 나라를 되찾았고, 물질적 측면에서는 구한말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위생 관념은 철저해졌고, 좋은 의약품과 의료기술은 사람들의 평균수명을 높이고 있습니다.
수시로 이 땅을 습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과 공포로 몰아넣은 천연두나 호열자는 이제 거의 완벽하게 예방이 가능한 전염병의 일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의 의사 분들은 병을 잘 치료하고 환자들이 건강을 되찾게 해주면 그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치료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경제적인 양극화는 건강의 양극화로 이어집니다.
영국의 [Black Report]를 비롯한 수많은 연구에서는 빈곤층, 육체 노동자, 비정규직, 소외계층 등이 상대적으로 높은 사망률과 유병율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거주하는 지역이 어디냐에 따라서 사망과 질병의 확률이 차이가 난다는 것은 몇 년 전 신문보도까지 된 사실입니다.
저는 의사 선생님을 비롯한 보건의료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궁극적으로 치료해야 할 것은 바로 이 것, 즉, 가난과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오래전, 그러니까 1995년도에 발표한 내용입니다.

The world's most ruthless killer and the greatest cause of suffering on earth is listed in the latest edition of WHO's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 an A to Z of all ailments known to medical science, under the code Z59.5. It stands for extreme poverty.
Poverty is the main reason why babies are not vaccinated, clean water and sanitation are not provided, and curative drugs and other treatments are unavailable and why mothers die in childbirth. Poverty is the main cause of reduced life expectancy, of handicap and  disability, and of starvation. Poverty is a major contributor to mental illness, stress, suicide, family disintegration and substance abuse.


그렇습니다. 가난은 가장 무자비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사망의 원인입니다.
가난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예방접종을 맞지 못하며, 위생적인 환경에서 살아가지 못합니다.
가난은 수명을 줄이고, 장애와 영양실조, 스트레스, 자살, 가정파괴의 근본적 원인입니다.
여기에는 가난으로 인한 차별도 포함됩니다.
출생 국가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경제적 수준이 다르다는 이유로 받는 차별은 곧 가난을 유발하고, 이는 곧바로 건강불평등으로 이어집니다.
최근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의료민영화’에는 그 저면에 이러한 차별의 논리가 숨어 있기에 전적으로 찬성하기가 어렵습니다.

몇 년 전 의약분업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의사들의 파업은 보건의료계에 종사하던 사람으로서 엄청난 무력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의 불만이 무엇이고, 그 요구에 일리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이 선택했던 방식과 그 이후 보여준 ‘정치화’된 모습은 실망이었습니다.
때때로 차별의 논리와 경제적 이익 추구의 논리를 주장하는 것도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국에서 1% 안에는 들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의사는 멸시받는 직업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으로, 사회지도층으로 자리매김되어 있습니다.
많은 의사 분들이 진료 현장에서 묵묵히 환자들과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애쓰고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층과 자신의 지위를 떠나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의사 분들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의사분 개개인은 존경을 받을지 몰라도 ‘의사 집단’은 국민들에게 질책과 불신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중원]을 읽고, 이제 우리에게도 노먼 베쑨이나 체 게바라와 같은 의사가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들이 한 손엔 메스를, 한 손엔 총을 들고 억압과 차별과 제국주의에 대항해 싸웠듯이,
현재의 의사 선생님들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죽음과 질병의 근본적 원인에 대항해 싸워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덧붙여서.... [제중원]과 관련하여 두 가지 아쉬운 점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황정의 개인적인 노력과 백성사랑은 잘 나타나 있습니다만,
대의(大醫)로서의 일생, 즉, 만주에서 독립군에 가담한 일생이 약하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 부분은 황정과 애비슨 원장 사이에 오고간 편지로만 구성되어 있는데,
최소한 몇 가지 에피소드라도 더 보강되었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예를 들어 그의 의술을 통해 독립군 내에 존재하던 파벌이 화해하는 사건이라든지,
적군이지만, 부상당한 일본군을 몰래(?) 치료해 주는 것을 통해 의술이 담고 있는 보편적 사랑을 표현해 주는 것 등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둘째, 중반부에 등장하는 소년인 삼돌이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쉽습니다.
그는 제중원 원장 헤론에게 찍혔던 황정이 의학당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 이후로 갑자기 사라집니다.
역사의 격동기에서 제중원은 부침을 거듭하고, 당연히 제중원에 속한 사람들 역시 여러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삼돌이가 제중원에서의 경험을 통하여 어떻게 격동기를 살아가는지를 그려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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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블루베어의 13과1/2 인생 1
발터 뫼르스 지음, 안인희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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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뫼르스를 찬양하라!!!
이렇듯 신기하고 기상천외한 이야기의 틀 속에 지혜를 담아 우리에게 선물해 줄 수 있다니.
분명 그는 (최소한 나에게는) 찬양받아 마땅한 작가이다.

상상력으로 건설한 대륙 ‘차모니아’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서 처음 만난 이후로 내게 잊혀지지 않는 세계가 되었고,
미텐메츠, 루모, 에코 등은 차모니아 땅 구석구석을 내게 알려주는 소중한 길벗이 되었다.
더 나아가 차모니아 대륙은 이제 ‘언젠가는 나도 반드시 가보리라’ 다짐하는 현실속의(?) 세상이 되어 버렸다.

[캡틴 블루베어의 13과 1/2 인생]은 푸른색 털을 가진 곰(블루베어) 한 마리가 차모니아 대륙을 전전하면서 겪은 모험과 여행을 따라가도록 되어 있다.
독자들은 발터 뫼르스가 치밀하게 만들어 놓은 환상의 대륙을 방문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블루베어의 삶은 전세계와 저승까지도 전전하면서 겨우 귀향에 성공한 율리시즈와 같은 하나의 오디세이라 할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율리시즈의 오디세이가 엄숙‧장엄하고 처절한 숭고미의 여정이라면,
블루베어의 오디세이는 장난‧긍정의 즐겁고 재미있는 유머의 여정이라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 환상적인 꿈 속에서 한바탕 즐겁게 놀다 오면 된다는 거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놀이란 것이 단순히 시간죽이기를 위한 재미에만 그치지 않고,
어딘지 우리 일생에 대한 풍자를 담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 걱정도 없는 갓난아기가 보호를 받으면서 차차 ‘감정’이란 것을 먼저 알고,
다음으로 말을 배우고, 여러 가지 유혹과 욕심을 이성적으로 다스리는 법을 배운다.
교육을 받고,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알고, 나이를 점점 더 먹어 가면서 청년으로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인연들. 그리고 수많은 사건들. 위기와 기회의 순간, 절망과 희망의 순간은 결국은 모두 ‘현재의 나’를 존재하도록 만든 구성물이다.
발터 뫼르스는 블루베어의 인생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인생의 ‘구성물’에 매이지 말아라. 일희일비할 것 없다.
인생을 긍정하고 웃음으로 포용해 봐라.“

우리는 블루베어가 경험한 13가지 인생과 1/2 인생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까지는 블루베어의 전체 인생의 중간점검이라고 하겠다.
앞으로 그의 앞에 몇 개의 인생이 더 남아 있고,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의 인생을 보아 장담하건데,
아마 잠깐 동안은 반려자를 만나 2세를 낳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모험심과 탐구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에는 차모니아 대륙의 다른 곳으로 떠나갈 것이다.

블루베어의 여정을 따라가는 즐거운 놀이에는 두 가지의 즐거움이 동반된다.
첫 번째는 발터 뫼르스의 책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가장 기대하는 것인데, 바로 그가 직접 그린 만화같은 삽화들과 형식을 떠난 글쓰기이다.
그의 삽화는 ‘상상’이라는 무형의 존재를 확실하게 형상화시키는 탁월한 역할을 하며,
커지는 발자국 소리를 점점 큰 활자로 처리한다든가 하는 형식을 초월한 글쓰기는 순간순간 놀라움을 주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이 즐거운 놀이를 더욱 즐겁게 만드는 인문학적 지혜이다.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과 가역성, 언어의 역할, 꿈의 출발점, 세계를 이루는 물질들, 실상과 허상, 제도와 규율의 필요성과 그 수준 등, 많은 철학자들과 역사학자, 과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도전한 것들이 이 책에 녹아 있는 것이다.
때론 직접적으로, 때론 비비 꼬아서, 때론 유머러스하게, 때론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말이다.

발터 뫼르스의 책은 정말 재미있다.
그렇지만 그의 책이 주는 재미는 그냥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재미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카운터 어택과도 같은 결정적인 한 방도 기다리고 있지만,
그 결정적 한 방을 위해 툭툭 던지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잽도 보통이 아니다.
그러니 어떻게 발터 뫼르스를 찬양하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블루베어가 겪은 놀라운 인생을 간략하게 살펴 보자.
0) 블루베어는 푸른색 털을 가진 곰으로서 처음에는 호두 껍데기 속에 들어갈만큼 아주 작은 곰이었다.
1) 난쟁이해적 생활: 난쟁이해적들은 블루베어를 바다 소용돌이에서 구해내지만, 덩치가 커지자 배에 태울 수가 없어 바닷가에 내려놓는다.
2) 바다도깨비들과의 생활: 음울한 감정만 가진 바다도깨비들을 위해 울음을 공연하던 블루베어는 그들 사이에서 스타가 된다.
3) 도망 중의 나의 삶: 도깨비에게서 도망친 블루베어는 수다파도를 만나서 말을 배운다.
4) 미식가 섬에서: 먹이를 유혹하여 잡아먹는 식충식물인 미식가 섬에서 죽을 고비를 맞는다.
5) 항해사 생활: 미식가 섬의 위기에서 구조공룡 맥에게 구출된 블루베어. 그는 맥의 등에 타고 위험에 빠진 이들을 구한다.
6) 어둠산의 삶: 은퇴시기가 된 맥과 이별한 블루베어는 어둠산에서 나흐티갈러 교수로부터 다양한 차모니아의 학문을 배운다.
7) 큰숲에서의 삶: 학교를 졸업한 블루베어는 겨우 갱도를 빠져나오고 큰숲에서 숲거미마녀를 만나 구사일생으로 도망친다.
8) 차원구멍에서의 삶: 숲거미마녀를 피해 뛰어든 차원구멍에서 블루베어는 시간 및 차원을 초월하는 여행을 한다.
9) 설탕사막에서의 삶: 설탕사막에 도착한 블루베어는 그곳의 떠돌이인 둔칠이들을 만나 신기루 도시 ‘아나크롬 아프타’를 찾아 나선다.
10) 회오리바람 도시에서의 삶: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노인이 되어 버린 블루베어. 탈출방법은?
11) 큰머리에서의 삶: 볼록의 머리 속을 지나던 블루베어는 ‘아이디어’들을 만나게 되고, 여기서 여러 가지 꿈을 만들어낸다.
12) 아틀란티스에서의 삶: 마침내 거대 도시 아틀란티스에 도착한 블루베어. 그는 여기서 거짓말검투사로 명성을 얻게 되지만, 스마이크의 승부조작에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예선 몰록호로 쫓겨난다.
13) 몰록호에서의 나의 삶: 전세계를 지배하려 한 차모민의 음모 하에 움직이는 몰록호. 블루베어는 다시 등장한 나흐티갈러 교수와 함께 차모민을 막아낸다.
13 1/2) 휴식하면서 보낸 절반의 삶: 몰록호에서 해방된 블루베어를 비롯한 오색곰들은 큰 숲에 정착하게 되고, 블루베어는 행복하고 안정된 생활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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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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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사회문제를 보면서 가장 크게 고민하게 되는 것은 역시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법에 대한 것이다.
학문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양적(quantitative) 접근법이며, 다른 하나는 질적(qualitative) 접근법이다.
이 가운데 현재 학계의 주도적인 방법론은 양적 접근법이라 할 수 있다.
양적 접근법은 3개의 단계를 거쳐 진행되는데, 우선 연구자가 세운 가설에 대하여 해당되는 범주별로 연구대상의 특성을 일반화하는 변수를 설정한다.
다음으로 이들 변수에 대한 직접 조사 또는 기존 조사(센서스, 각종 정부 조사) 자료를 수집하여 dataset을 구축하고,
마지막으로 통계분석을 통해 가설의 채택/기각 여부를 결정한다.

모든 사람들을 조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측면에서 양적인 접근방법은 강력한 힘을 가진다. 물론 통계적 방법이 점점 엄정해지고 있다는 것도 큰 강점이다.
그렇지만 이런 통계적 방법을 밥벌이로서(!!!) 거의 매일 사용해야 하는 나 스스로도 이런 통계만능주의와 자료만능주의는 때로 갈등을 불러온다.
왜냐하면 이 접근은 기본적으로 ‘확률’이라는 특성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밀한 가설을 세우고 좋은 데이터를 모았다고 하더라도 그 결론에는 최소 1%에서 최대 10%까지의 오류가 나타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바꿔 말하면 양적인 접근법에서는 100명 중 대략 5명 정도는 결론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차이가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방법을 활용한 논문은 전문적인 훈련이 없이는 이해하기가 무척 어렵다. 어려운 수학기호와 통계적 방법은 그 형태만으로도 독자들의 기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수디르 벤카테시의 [괴짜 사회학]은 이러한 양적 접근법에 반기를 든 사회학적 연구성과라 할 것이다.
이 책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했던 머리 아픈 통계적 기호들도 찾아볼 수 없고, 안드로메다 언어를 옮겨 쓴 듯한 수학 공식도 없다.
학자로서 벤카테시가 갖춘 최고의 미덕은 손쉽고도 편안한 방법으로 자신의 학위를 준비할 수 있었던 조건을 과감히 포기하고 직접 몸으로 느끼는 방법을 선택한 점에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러하듯이, 그도 역시 도시 빈민들의 생활에 대한 기존 자료와 데이터를 모아서 통계 프로그램을 돌린 후,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다/없다’라는 기준으로 프로그램 결과를 해석하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쉽고 편안한, 그러면서도 시간이 절약되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시카고 슬럼가로 들어가 몸으로 부딪쳤다. 그는 거기서 갱단과 마약중독자, 매춘부, 경찰 등과 어울리면서 자신의 안전을 돌보지 않았다.

이런 그의 열정과 열심이 [괴짜 사회학]에 생명력을 부여했다.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작성 과정이면서 동시에 박사학위 논문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 책은 흔히 학회지에 발표되는 논문이 가지는 딱딱함과 전문성을 걷어내 버렸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벤카테시와 함께 흑인 빈민촌의 생활을 그대로 경험하고, 그 곳 사람들과 함께 그 공기를 호흡할 수 있게 된다.

[괴짜 사회학]이 주는 매력에는 방법론의 새로움 뿐만 아니라 흥미진진한 내용과 사회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풍부한 내용도 포함된다.
무엇보다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흑인 빈민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는 또 하나의 권력구조와 사회공동체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등장하는 엄석대가 구축한 권력구조와도 유사한 이중적 착취구조였던 것이다.

흑백 인종차별이 엄연히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은 상대적으로 백인들에 비해 사회의 하층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인종차별은 경제적 차별과 교육기회에서의 차별을 낳았고, 미국 대도시에는 거의 예외없이 이들의 슬럼가가 형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마약판매와 총기사고, 매매춘 등 각종 범죄 및 일탈행위들은 미국 복지정책과 도시정책의 중요한 과제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도시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정부 관리들이나 대학의 학자들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마약거래에 대한 엄격한 법집행을 주장하고, 지역을 개발함으로써 거주환경을 개선시키겠다는 주장을 펼 것이다.
그러나 실제 슬럼가를 생활 터전으로 삼고 있는 주민들은 이런 ‘교과서적인’ 해결방법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제도의 보호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겨서 신고해도 이들에게는 경찰이 오지 않는다. 아픈 사람이 있어서 연락해도 이 지역에는 구급차가 오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힘을 지닌 조직은 경찰이나 의료조직이 아니라 지역의 갱단들과 범죄조직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범죄조직은 주민의 보호자로서의 선한 사마리아인같은 역할만 수행하지 않는다.
이들은 주민들에게 마약을 팔고 경제활동에 대한 세금을 요구하며,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폭력을 앞세워 응징하거나 지역에서 살지 못하도록 쫓아 버린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부패한 주택공사나 경찰들과 결탁하여 부당한 이익을 편취하기도 한다.

이런 이중적인 권력관계,
즉, 공식적인 국가권력과 사회조직은 공공연히 빈민층을 방치하고,
자경주의(自警主義)를 내세우는 지역 내 조직이 빈민층으로부터 대가를 얻어 기생하는 관계는 도시빈민을 연구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먼저 파악해야 할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드르르한 복지정책을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제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책의 혜택이 가로채어지지 않아야 한다.
경제위기로 양극화가 심화되어 가고 있고, 주위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결혼이주여성들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미국사회와 같은 인종차별이 언젠가 나타나지 않는다거나 할렘과 같은 지역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이미 서울의 가리봉동이나 경기도 안산에서는 이러한 지역이 현실적인 형태를 띠고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또 한가지 이 책에서 인상깊었던 것이 있었는데,
빈민가를 지배했던 갱단인 ‘블랙 킹스’의 조직원이었던 티본의 일생과 죽음이었다.
티본은 다른 갱단 조직원들과 달리 하루라도 빨리 재산을 모아 손을 씻고 공부를 하면서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하였다.
생활 속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던 티본은 결국은 마약밀매 혐의로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죽는다.
‘다른 조직원들의 이름을 팔아 넘기지 않았다’라는 허울뿐인 칭송을 들으면서....
티본의 삶은 가슴 아프면서도 허술한 미국식 사회정책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아도 엄연한 인종차별 속에서 좌절하고 결국은 갱단에 들어와 마약판매의 길로 들어설 수 밖에 없었던 흑인 청년.
갱으로서의 생활을 청산하고자 열심히 일했으나, 그 일이란 것이 사실 사람들을 마약중독자로 전락시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청년.
미국 사회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제2, 제3의 티본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얼마든지 나오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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